Vitali, Josef-Wagner, Waldteufel, Weill,Weinberger,Williams
Wolf,Wolf-Ferrari, Wyman
(1) 비탈리(Tomaso Antonio Vitali,1663~1741이탈리아)
(2) 요셉 바그너(Josef F. Wagner 1856~1908년 오스트리아)
(3) 발트토이펠(Waldteufel,Emil 1837~1915프랑스)
에밀 발트토이펠(독일어로 숲의 악마)은 독일과 국경을 접한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대계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그의 아버지 루이스는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었으며 형 레온도 성공한 음악가였는데,레온이 파리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자리를 얻게 되어 가족이 파리로 이사하게 되었고,그는 평생을 파리에서 살게 되었다.
발트토이펠은1853부터1857년까지 파리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였는데,줄 마스네가 그의 동료였다.이 음악원 시절에 그의 아버지의 오케스트라는 파리에서 아주 유명해졌고,그도 중요한 연주에는 자주 초대받았다.그는27세에 나폴레옹3세의 왕후 외제니의 전속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28세 때 궁정 무도악장이 되었으며 왈츠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으나1870년의 보불전쟁으로 그 이듬해에 궁정이 무너지자 그는 오페라극장의 무도회를 지휘하는 등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작곡에 전념하였다.
1874년에 훗날 영국 왕 에드워드7세가 되는 웨일즈 왕자가 임석한 연주회에서「Manolo」왈츠로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영국에서 유명해 져서 빅토리아 여왕의 버킹함 궁정에서도 연주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기간에 그는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 널리 연주되고 있는 유명한 곡들을 작곡하였는데,그 중에서「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Les Patineurs(Ice Skaters)」(1882)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1885년 런던을 비롯해서1889년에 베를린 등으로 연주 여행을 하였고, 1899년 은퇴할 때까지 자신이 지휘하는 무도장을 위한 무도곡을 작곡하면서 지휘를 계속했으며, 1915년 파리에서 타계했다.
그의 음악은8분음표를 많이 사용하여 리드미컬하고 원기 왕성하지만 어딘가 침착성이 결여된 스트라우스2세를 비롯한 빈계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점2분음표와4분음표를 중심으로 한 선율로 음악성은 다소 부족하지만 품위 있고 익히기 쉬운 요소를 지니고 있다.
빈의 스트라우스 일가 이외에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소수의 왈츠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프랑스의 왈츠왕>이라고도 불리는 발트토이펠은 파리‧베를린‧런던‧빈 등에서 오페라 발레 지휘자로 활약하면서300여곡의 무곡을 남겼다.그 가운데서 왈츠「여학생」과「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특히 유명하여 오늘날에도 친근한 음악으로 남겨져 연주되고 있다.
(4) 바일(Kurt Weill, 1900~1950,독일)
(5) 바인베르거(Weinberger, 1896~1967체코)
1896년1월8일 프라하 태생으로,체코의 작곡가로서 모스크바·빈 등지에서 교수나 지휘자를 역임했다. 1922~26년에는 뉴욕 이타카 음악원 교수가 되었고,후에 유럽으로 돌아갔으나, 1939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플로리다에서 살았다.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를 낳은 보헤미아 정신을 다분히 지닌 바인베르거는,향토 음악 이상으로 개성적인 근대 음악을 지향했고,거기에 약간의 향토색을 포함시켰다.피아노를 위한5개의 전주곡과 푸가·스피넷 소나타·보히미아 무곡 등 많은 명
작이 있는데, 1967년 8월 8일에 타계했다.
(6)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영국)
다운안푸니 출생.케임브리지대학과 왕립음악원을 나왔으며,뒤에M.브루흐(1838∼1920)와M.J.라벨(1875∼1937)에게 사사하였다.
작품은 영국민요와 튜더시대의 음악이 밑바탕에 깔려 있으며,후기에는 독자적인 음질서(音秩序)에 따랐지만 어디까지나 영국적이었다.
작품으로는 교향곡《바다의 교향곡》 《런던교향곡》,오페라《소몰이 휴》 《바다로 가는 사람들》,관현악곡《탈리스의 주제에 의한 환주곡(幻奏曲)》등이 있으며,그 밖에 합창곡·교회음악·영화음악등이 있다.
(7) 볼프(Hugo Wolf 1860~1903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슈베르트ㆍ슈만을 계승한 최대의 가곡 작곡가의 한 사람.빈 음악원을 퇴학한 뒤 가난하여 독학으로 바하ㆍ바그너 등의 대가의 작품을 깊이 연구하였다.또 괴테ㆍ그릴파르처(F.Grillparzer)ㆍ클라이스트(H.Kleist)등 독일 문학의 가치를 인식하고,다른 나라의 문학을 깊이 이해하는 등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가곡 작곡가로서 독자의 세계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그의 가곡 형식은 시의 내용에 따라 자유이며,피아노부는 반주의 영역을 넘어 시 및 선율과 유기적으로 깊이 결합되어 있다.생전에는 인정되지 못한 채 만년에 발광(發狂)하여 비참하게 사망했다. 3백여 편의 가곡 외에 가극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작품이 전해진다.주요 작품으로는<뫼리케 시 가곡집53곡(1888)>•<아이헨도르프의 시에 의한 가곡 집20곡(1880~88)>•<괴테의 시에 의한 가곡집51곡(1888~89)>•<에스파냐 가곡집44곡(1889~90)>•<이탈리아 가곡집46곡(1891~96)>•관현악,이탈리아 세레나데 등이 있다.
(8) 볼프-페라리(E. Wolf-Ferrari 1876~1948,이탈리아)
볼프-페라리(Ermanno Wolf-Ferrari,兒名Ermanno Wolf : 1876~1948)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며 음악교수였다.
그는 희가극「수산나의 비밀(Il segreto di Susanna (1909)」로 널리 알려졌으며,대부분의 그의 오페라는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의 대본으로 쓰여졌으며,「호기심 많은 여자들(Le donne curiose(1903)」·「네명의 구두쇠(I quatro rusteghi(1906)」·「조그마한 광장(Il campiello(1936)」이 있다.
그는1876년 독일 화가인 볼프(August Wolf)와 베니스의 페라리(Emilia Ferrari)의 아들로 베니스에서 태어났는데, 1895년에 어머니의 성을 보태어 볼프-페라리로 개명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화가가 되기를 원해서 베니스와 로마에서 공부하다가 독일 뮨헨에 유학왔다가 라인버거(Josef Rheinberger)에게 음악을 사사하면서 뮨헨음악원에서 들어가 대위법과 작곡을 공부하면서 진로를 음악으로 바꾸게 되었다.
19세에 음악원을 졸업하고 베니스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합창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보이토(Arrigo Boito)와 베르디(Verdi)를 알게 되었다. 1900년(24살)에 신데렐라의 이야기에 기초한 오페라「신데렐라(Cenerentola)」를상연했으나 크게 망신만하고 뮨헨으로 돌아와 수정판을 만들어, 1902년에 브레멘에서는 크게 성공하였다,
1902년에는‘베네데토 마르첼로’음악원의 작곡교수와 지휘자가 되었고,세계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 까지 그의 오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어 그의 명성을 높였다.예컨대1911년(35세)에 작곡한 격정·모독·광란의 이야기인‘베리스모’오페라「성모의 보석(I gioielli della Madonna)」은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대 성공을 거두엇다.
그러나 세계1차대전으로 그의 조국 이탈리아와 활동 무대인 독일에서 버티기가 힘들게 되자 스위스 취리히로 피난했고,전 후의 그의 오페라에는 그림자가 덮였다.
1939년(63세)에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트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다가1946년 취리히를 거쳐 베니스로 돌아와1948년에 사망했다.
(9) 애디슨 와이먼(Addison P. Wyman(1832~1872 미국)
피아노 소품<은파>로 알려진 미국의 작곡가로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바이올린 교사로 일하다가 1869년에는 뉴햄프셔의 클레아몬트에서 음악학교를 설립하여 후배 양성에 힘썼다. 그는19세기 미국의 작곡가라는 정도 박에 더 알려지짖 않았지만 통속적인 피아노곡 <은파>는 지금도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