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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의 권고와 조치(9-17)
참된 부흥은 죄에 대한 각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현신된 신앙은 공동체 전체로 확산됩니다. 회개의 영께서 새로운 마음을 주셨고 구체적인 죄악으로부터 돌아서기 시작합니다. 죄 고백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고백된 죄악은 순종의 실제적인 결과로 나타나야 합니다.
9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10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11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12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13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14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15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 16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각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고 열째 달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17첫째 달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9-17)
마지막으로 에스라의 업적을 살펴봅시다.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통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에 불순종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이 문제들이 매우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 잘못될 수 있습니다. 성전을 세워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이스라엘에게는 이 범죄 사실을 매우 단호하게 조치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수고하였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때 잠시 회개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통혼을 공동체적인 죄악으로 규정하고 끊어버릴 것을 공적으로 선포했습니다.
⑴ 유다와 베냐민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임(9)
모든 백성들이 에스라의 요청에 따라 3일 안에 예루살렘 광장에 모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중요한 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였고, 성전 동편에 위치한 광장은 수천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의 지시가 공포된 지 3일 후 주전 457년 11-12월 무렵)에 백성들이 성전 앞 광장에 앉았을 때, 큰 비가 내렸습니다. 우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13, ‘큰 비가 내리는 때’), 그 자리에 모인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생각하여 두려워합니다(참조, 삼상 12:17-18).
⑵ 에스라의 권고와 조치(10-17)
에스라는 귀환민들이 이방 여인과의 통혼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조상들이 지은 죄에 또 하나의 죄를 더하였다고 말합니다(10). 이전에 조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이제 유다 공동체가 또다시 그런 위기를 자초하였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속히 그 지방 사람들 및 이방 여인들과 단절할 것을 촉구합니다(11). 에스라가 의도한 바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구별된 모습과 율법에 충실한 공동체의 삶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큰 소리로 에스라의 제안을 수락합니다(12). ‘큰 소리로 대답했다’는 것은 이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음을 의미합니다.
에스라의 결정을 곧바로 이행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①이방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고, ②우기로 인한 거친 날씨 때문이었습니다(13). 이로 인해 회중은 에스라에게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14). 그것은 방백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당사자들로 하여금 자진해서 성읍 위원회에 출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방백들이 성읍 장로들 및 재판장과 함께 예루살렘 법정에서 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록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각 지역의 장로들과 재판관들이 상황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합리적인 제안처럼 보입니다.
그때 ‘이 일’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는데(15), 그들의 이름은 요나단, 야스야, 므술람, 삽브대로 소개됩니다(므술람은 19절에 이방 여인과 통혼한 사람으로 나온다). 이들이 반대한 ‘이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방인 아내를 내보내는 일 자체로 보는 것이고, 둘째는 회중이 제안한 13-14절의 수정안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곧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해결하자는 회중의 제안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속하게 이 일을 처리하자는 주장입니다. 주류 학자들의 견해는 두 번째 해석을 지지합니다. ‘사로잡힌 자들의 자손’은 시간을 두고 하자는 회중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구제적인 시행에 옮기기로 합니다(16a). 에스라는 이 일을 위해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여 책임을 맡깁니다(16b).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는 10월 1일에 시작되고 3개월 동안 진행되어 1월 1일에 마치게 됩니다(17). 1년 전 바로 이날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위해 아하와 강가에 있았던 날입니다(스7:9; 8:15).
이방인 아내와 자녀들을 끊으라는 명령에 백성들은 대답합니다. 하지만 신중히 처리하기 위해 이를 맡아 처리할 방백을 세우고 정당한 재판을 거쳐서 결정하게 해달라고 제안합니다.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면서도 철저하게 이행하려고 제안한 듯합니다.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불과 4명에 불과하지만, 공동체 전체가 회개하고 죄를 끊어도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반대였기에, 이것은 소신이 아니라 의와 거룩에 대한 완강한 저항입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한 명단(18-43)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으로 믿는 자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드러내고 있는지를 지켜봐야 합니다.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려면 리더십의 의지와 공동체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18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19그들이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20또 임멜 자손 중에서는 하나니와 스바댜요 21하림 자손 중에서는 마아세야와 엘리야와 스마야와 여히엘과 웃시야요 22바스훌 자손 중에서는 엘료에내와 마아세야와 이스마엘과 느다넬과 요사밧과 엘라사였더라 23레위 사람 중에서는 요사밧과 시므이와 글라야라 하는 글리다와 브다히야와 유다와 엘리에셀이었더라 24노래하는 자 중에서는 엘리아십이요 문지기 중에서는 살룸과 델렘과 우리였더라 25이스라엘 중에서는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라먀와 잇시야와 말기야와 미야민과 엘르아살과 말기야와 브나야요 26엘람 자손 중에서는 맛다냐와 스가랴와 여히엘과 압디와 여레못과 엘리야요 27삿두 자손 중에서는 엘료에내와 엘리아십과 맛다냐와 여레못과 사밧과 아시사요 28베배 자손 중에서는 여호하난과 하나냐와 삽배와 아들래요 29바니 자손 중에서는 므술람과 말룩과 아다야와 야숩과 스알과 여레못이요 30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앗나와 글랄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다냐와 브살렐과 빈누이와 므낫세요 31하림 자손 중에서는 엘리에셀과 잇시야와 말기야와 스마야와 시므온과 32베냐민과 말룩과 스마랴요 33하숨 자손 중에서는 맛드내와 맛닷다와 사밧과 엘리벨렛과 여레매와 므낫세와 시므이요 34바니 자손 중에서는 마아대와 아므람과 우엘과 35브나야와 베드야와 글루히와 36와냐와 므레못과 에랴십과 37맛다냐와 맛드내와 야아수와 38바니와 빈누이와 시므이와 39셀레먀와 나단과 아다야와 40막나드배와 사새와 사래와 41아사렐과 셀레먀와 스마랴와 42살룸과 아마랴와 요셉이요 43느보 자손 중에서는 여이엘과 맛디디야와 사밧과 스비내와 잇도와 요엘과 브나야더라(18-43)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명단은 가장 먼저 제사장의 무리(18-22), 다음으로 레위인과 노래하는 사람들(23-24), 이어서 일반 백성들(25-44) 순으로 제시됩니다.
⑴제사장의 무리(18-22)
제사장 가운데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사람으로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 엘리에셀, 야립, 그달랴입니다(18). 예수아 가문은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건축을 주도하기도 했는데(스 3:8), 대제사장 가문으로서 본이 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습니다(레 21:13-15). 그렇지만 그들은 죄를 뉘우치고, 모두 이방 아내들을 내보내기로 맹세한 후에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립니다(19). 속건제는‘마알의 범죄’(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한 행동)에 드리는 제사로, 제물은 숫양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레 5:15-6:7).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행동’, 즉 언약을 어기는 행동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이들이 드린 속건제는 백성 전체의 잘못을 위해 드릴 것으로 보입니다. 대제사장 예수아 자손 외에 제사장 가운데 임멜 자손, 하림 자손, 바스홀 자손들도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20-22).
⑵ 레위인과 노래하는 사람들(23-24)
레위인 가운데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사람들은 요사밧, 시므이, 글리다, 브다히야, 유다, 엘리에셀입니다(23). 그 외에 노래하는 자 중에는 엘리아십, 문지기 중에는 살룸, 델렘, 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23).
⑶ 일반 백성들(25-44)
일반 백성들 가운데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사람들의 명단은‘이스라엘’이라는 명칭 아래 열 개의 가문으로 나뉘어 소개됩니다(25절의‘이스라엘’은 제사장과 레위인을 제외한 포로 귀환민을 가리킨다). 본문 읽기에 따라서 바니 자손과 느본 자손 사이에 빈누이 자손(38-39)과 자카이 자손(40)을 포함하여 열두 가문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전체 인원은 제사장 17명(혹은 18명), 레위인 6명,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 4명, 백성들86명, 도합 113명(혹은 114)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는 것은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가 귀환 공동체에 얼마나 깊숙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으로 보이는데, 그 땅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이 귀환민들보다 부요한 삶을 누리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비록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지만, 에스라의 개혁 안에 동의하고 이방인 아내와 이혼에 합의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살고 있는 가족과 결별하도록 하는 것은 지나친 결정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타락한 이방 문화와 우상숭배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던 상황에서 공동체의 정체성과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맺는말(44)
교회는 재건과 개혁은 항상 같이 갑니다. 교회가 재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지난번에 겪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재건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재건된 공동체는 상대화 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개혁이라고 부릅니다.
44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라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44)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목록은 맺는말로 종결됩니다. 본문은 그들 가운데 자녀를 낳은 사람들도 있었음을 밝힙니다. 가족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고자 하는 결단의 행동입니다. 그들은 부끄러운 과거와 결별합니다. 에스라가 내보낸 이방 여인들과 아이들은 아마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로써 앞에서(3) 선포되었던 계약은 성공적으로 종결되고, 에스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즉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을 마칩니다. 그렇지만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에스라의 개혁은 멈추지 않고 이후에도 지속됩니다(느헤미야서 8-9장).
구약 성경에는 이방인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거나 이방 연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본문들도 존재합니다(예컨대, 민 12:1;수 2장; 요나서; 룻기). 특히 룻기는 다윗의 모압 여인을 조상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룻기는 이방 여인에 대한 에스라서의 입장과 대조됩니다. 룻기와 에스라서는 둘 다 언약 백성의 정체성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여호와께 대한 충성에서 그 해답을 찾습니다. 그렇지만 두 책이 이방인을 수용하는 이슈와 관련하여 표현하는 방식은 상반됩니다. 에스라의 결정은 포로 귀환 후 새롭게 시작된 공동체가 주위 민족들의 영향으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던 당시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 안에 이방인에 대해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본문들과의 적절한 균현 속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순종은 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심히 가슴 아픈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이방여인과의 결별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신앙을 회복하고 순결한 신앙의 보존을 위해서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신앙적으로 모든 오염시킬 수 있는 원인에의 접근을 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에게 남아 있는 죄가 공동체에 악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도 깊이 돌아보아 남김없이 제거합시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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