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민요, 거제영등 할마씨, 영등신(靈登神)> 고영화(高永和)
영등신(靈登神)은 주로 영남지방과 제주지방에서 받드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영등할머니라고도 한다. 바람의 신인 영등할미는 곧 풍작과 풍어를 비는 농경시대의 상징적인 의식이었지만, 현대에는 미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2월에는 집집마다 영등신(靈登神)에게 제사 지낸다"고 하였다. 이것은 비와 바람의 운행을 두고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풍습이었다. 특히 뱃사람들이 정성껏 위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뱃일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신령 앞에서 비는 뜻으로 희고 얇은 종이를 불살라서 공중으로 올리기도 한다. 유구한 거제역사 속에서 예로부터 거제민의 가슴속에 소망과 욕망을 두루 살피는 전통 신(神)으로써 그 역할을 든든히 해왔다. '영등 할마씨'는 농업과 어업 모든 곳에서 불리어진 민요이다. 한두 마디 가사만 바꾸어서, 여러 가지 노동요에 불리어졌다. 민요를 선창(先唱)하는 사람은 '영등할매'에게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소원하며 불리었다.
* 참고로 거제민요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1979년에 채록하였고, 전국 구비문학자료 조사집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 8-1, 8-2권에 수록되어 있다.
(1). '영등 할마시' / 사등면 성내리 신만순, 1926년생"영등영등 할마시야 / 한 바구리만 캐어주소 /두 바구리만 되어주소/ 영등영등 할마시 /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등할마시 비나이다/ 이 갯물이 많이 나서 /두 소쿠리 캐고 나면 / 바다 물이 들어오소 / 비나이다 비나이다.
(2). '영동동 할마씨(한바귀만 불아주소)' / 박또악, 거제면 내간리 1910년생 영동동 할마씨 / 많이도 하지마고 / 젝기도 하지마고/ 한바기미만 불아주소 / 영등 영등 할마시야. 봄나물을 캐러왔소 / 많이도 하지말고 / 적기도 하지말고 / 한 바구리만 불아주소 / 영등 영등 할마시야.
*유달리 가난했던 어릴 시절, 동네 처자들은 나물 캐러 자주 다녔다. 나물은 많이 캐어지지 않고 햇볕에 캔 나물이 말라서 줄어들면, 나물 캐는 칼을 땅에 꽂고 그 앞에 앉아서 바구니를 돌리면서 불렀다고 한다. 또한 사리 날 갯가에 개발 가서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많은 식구들 걱정에 한 소쿠리만 더 캐야 되는데.. 아쉬워하며 부르던 민요이기도 하다. 보통 한국 민요의 박자는 6/8, 3/4, 3/8, 9/8 등 3박자 계열 또는 3음 리듬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6/8박자가 으뜸가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민요는 4/4박자가, 일본의 민요는 2/4박자가 대다수인데, 위의 "영동동 할마씨"는 한 음보를 2/4 박자에 곡조를 붙여서 경쾌하게 노래했다.
*이학규(李學逵)선생은 1812년 영남악부(嶺南樂府)를 인용해, '영동신(靈童神)'을 바람의 신으로써 영남의 풍속이라고 소개하며, '풍파(風婆, 바람의 노파)', '영등신(嶺登神)'과 같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황현(黃玹,1855~1910년)선생은 매천집(梅泉集)에서 '영동 할미를 '영등신(永登神)'으로 소개하면서 "매년 음력 2월1일을 맞아 각 집마다 깨끗한 물을 떠놓고 술과 안주를 갖추고 어둑할 때 바람의 신(영등신)께 제사를 12일이나 20일이 될 때까지 지낸다"고 하며, "유교의 영향으로 토속신앙이 대부분 사라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영등할미' 영등신(靈登神)은 조상숭배와 달리 여성들의 힘(모계사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러한 토속신앙은 사라지고 조상숭배만 남았지만, 이것은 유교의 영향과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해 오면서 변화된 사회현상 때문이다.
그리고 거제도 영등포(永登浦)의 명칭의 유래는 바로 '바람을 타고 순행하는 포구'로 그 어원을 유추할 수 있다. '永登'은 '진등', 또는 '긴 등성이'라고 한자어를 훈독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육지 속의 지명에 사용할 때 붙이는 뜻이며, 바닷가 포구(항구)는 옛 부터 전해오는 영등할미에 대한 "항해 길의 안전"과 "풍요로운 바다", "바람타고 쏜살같이 달릴 수 있는 돛배" 등을 소원해, 한자의 음을 차용하여 쓰이는 명칭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옛 사람들의 태도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 우리민속 전통의 일부로써 전승해야 할 부분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