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정치시민넷 초청강연회
“익산 정체성 탐색”
-신귀백 영화평론가-
좋은정치시민넷은 6월 19일(월) 저녁7시에 사무실에서 “익산 정체성 탐색”이라는 주제로 영화평론가 신귀백 선생을 모시고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신귀백 영화평론가는 익산영화인문모임 대표로 다양한 인사들을 초청하여 지역에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특히, 익산의 근대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아 꾸준한 연구와 탐색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다음은 신귀백 선생의 강연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도시 정체성은 브랜드로 연결된다. 도시의 브랜드를 결정하는 것은 타 도시와 어떤 차별점이 있느냐 일 것이다. ‘한 지역의 특별한 성격’을 나타나는 정체성으로 전주 ‘꽃심’(한옥마을), 군산 근대문화역사(시간여행, 역전의 명수), 서울깍쟁이, 부산 갈매기, 강원도 감자, 인천 ’짠찬물‘도 있다.
익산이 백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왕도로서의 백제 유적의 가치, 나아가 무왕의 카리스마를 인정한 것이다. 미륵탑과 왕궁탑은 천년이 흐른 후에도 번듯하다. 백제와 종교사 그리고 근대문화유적 등 구슬을 꿰는 일이 중요하다.
문제는 통합 이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식민지 근대도시 이리에 대한 기억과 백제문화로 대표되는 익산이 교집합으로서의 역사가 아직 짧다는 사실이다. 또는 익산은 소재가 너무 많다보니까 갈피를 잘 잡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백제가 왜 패배의 역사냐, 절, 천도 등을 보면 무왕이 보통 왕이겠느냐”, 드라마나 영화, 전문가 등의 연구로 제조명이 필요하다.
익산하면 ‘깡패도시’라는 이미지가 있다. 추신수가 활동하고 있는 미국프로야구팀 텍사스레인저스, 텍사스하면 범법의 도시이지만 반대로 레인저스는 보안관의 도시이다. 익산이 깡패도시라는 이미지가 있다면, 왜 그랬을까? 치환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익산은 고대사의 자랑스러움의 바탕, 그리고 근현대 역사적 산물인 철도 관문이라는 터미널적 정서가 이중적으로 존재한다. 터미널의 정서란 왔다가 목적을 달성하고 간다는 것이다. 익산은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간다. 이런 곳에서는 정체성을 찾기가 어렵다.
이리는 일제강점기 철도가 놓아지면서 발달한 도시다. 만경강 직강공사와 대아댐 건설 등 몸 하나로 열심히 일만한다면 먹고는 살만한 도시가 익산이었다. 갈대와 뻘밭으로 된 공간이 사람들이 모여들고 학교가 들어서는 호남의 유수한 도시로 형성된 것이다.
익산 사람들은 좀 ‘쎄다.’고 말한다. 왜 그렇까? 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도시들은 분지지형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산과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은 도시를 관통한다. 대구의 신천과 전주의 전주천, 남원의 요천, 정읍의 정읍천이 그렇다. 익산은 미륵산을 제외하고는 산다운 산이 없다. 그러니 물길이 작다. 삼기 쪽과 팔봉에서 흘러내린 물은 과거 요교를 거쳐 탑천으로 흘러가고, 금마쪽물은 익산천으로 흘러간다. 익산천과 탑천이 합수되는 만경강은 익산과 김제를 두고 흘러간다.
식민주의자들은 허허벌판에 철도를 놓고 도시를 형성해 놓았다. 물이 없었다. 그래서 수리조합을 만든 식민통치자와 지주들은 물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진행된 결과가 대아댐 건설과 경천저수지의 건설로 인한 대간선수로다. 그리고 만경강 직강공사다. 익산 지역은 물 관리를 통한 생산력의 향상과 함께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다.
근대 이리의 출발은 사막이나 바위 위에 세운 도시가 아니기에 전설이 없다. 단지 후일담이 있을 뿐이다. 학교가 많아 통학생들이 까마귀 떼처럼 이리역을 덮던 소도시, 아래로는 정읍과 김제, 저 위로는 논산, 강경에서 기차를 타고 오던 검은 교복을 입던 그들이 한국의 역사다. 수많은 학생들이 기차를 타고 내리던 것이 당시 익산의 에너지였다.
만경강을 따라 일제가 건설한 만경수로와 오산 일대의 만경평야, 춘포 일대의 조선농장(호소카와농장), 익옥수리조합의 설립, 농림학교와 새로운 종교가 들어서는 반면 새 도시에 들어서는 외부인들의 삶은 안온하지 못했다. 텍사스 혹은 리버풀(노동자의 도시이자 축구도시)처럼 다혈질적인 도시의 이미지는 통합시가 되면서 쉽게 버렸다.
익산은 무엇을 하면 ‘for’가 없다. 정치인들도 당선이 되면 관리만 하지,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지도자가 문화적 마인드를 가지고 귀를 열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채만식의 탁류가 군산을 다룬 소설이라면 익산을 다룬 대표적인 소설로는 1950년대 후반 이리시를 다룬 윤흥길의 『소라단 가는 길』과 익산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박범신의 『더러운 책상』이 있다. 윤흥길 소설을 제시하는 이유는 단지 익산을 다뤄서가 아니라 문학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익산의 정체성을 담은 기초자료가 된다.
소설 『소라단 가는 길』은 대산문학상을 수상한다. 이리라는 공간은 한국근대도시의 전형성을 가지고 있기에 남바우와 소라단 등 50년대 후반의 공간과 기억을 다룬 작품들과 대한민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은 『기억 속의 들꽃』을 기억한다.
박범신의 소설 『더러운 책상』운 익산 창인동의 창녀촌과 구 남성고 자리 또 빵집 고려당 등을 품고 있다. 안도현 시에서는 기차역과 굴다리, 엘베강을 다루고 있다. 하나 더, 〈아침이슬〉의 김민기를 기억하고 준비해야 한다.
익산의 근대문화유산을 문화콘텐츠로 확산하려면 영화촬영이나 예능프로인〈1박2일〉유치에 대한 공략이 필요하다.
당연히 윤흥길 작가를 익산으로 모셔 와야 한다. 박범신 작가는 논산에서 모셔가 버렸다. 차후 박범신, 양귀자, 안도현, 천이두, 정도상, 백가흠 등 훌륭한 작가들의 문학적 성과를 익산 발전의 연구과제로 풀어야 한다.
도시 이미지가 형성되고 호명되는 것은 도시가 갖는 역사적인 맥락과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장소에 따른 이미지와 이야기를 파는 전력이 좋다. 하지만 폐허의 절터를 산책하기 좋은 식의 글쓰기 태도는 삼가야 한다. 익산 백제는 무왕의 카리스마가 작용한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로의 설정이 필요하다.
정체성은 단지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 도시에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밀수 오명도시는 여수밤바다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예향의 도시 목포로 안 되니 새로운 이미지를 확립시키는 작업으로 근대화의 도시로 바꿔가기도 한다. 도시의 이미지는 그 지역사람들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정체성은 천형이나 조상의 유산만은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