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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5일 주일 설교
시리즈 제목: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34
설교 제목: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로마서 16:19~20
설교를 위한 묵상:
사도 바울은 교인들에게 편지의 끝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강의 하나님이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실 것이다.’ 나는 이 말씀에서 다음의 몇 가지를 발견한다: (1)하나님이 속히 사탄을 벌하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심판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향한 것이다. 이것은 말세에도 적용된다. (3)사탄은 악의 세력이다. 묵시문학에서는 그 세력을 짐승으로 표현했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말은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을 말한다. (4)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전쟁 또는 씨름으로 번역된 그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에베소서 6장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어떤 것인지가 묘사된다.
설교 개요:
1. 하나님의 심판은 속히 임한다
2.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당대를 향한다
3. 하나님의 대적자들은 누구인가?
4.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어떤 방식인가?
5.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
1. 하나님의 심판은 속히 임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끝인사에서 격려의 말씀을 줍니다. 그 격려의 말씀은 하나님이 속히 사탄을 그들의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에서 뱀에게 내린 저주를 생각나게 합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저주 말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교계에서는 관심사였습니다. 성경 본문을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15
일반적으로 개신교회는 여자의 후손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여자의 후손을 마리아로 이해하는지 마리아가 뱀을 밟고 서 있는 형상을 제작하여 전시합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를 보면, 성도들의 발 아래에서 사탄은 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은 성도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이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이김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이렇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창세기 22:16~17
여기서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는 말씀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과 유사한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정적인 승리를 의미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입니다.
제가 사도 바울의 말에서 주목한 단어는 ‘속히’입니다. 헬라어 성경(네슬-알란드 27판)에는 속히(ἐν τάχει)라는 어구가 들어있어서 그 의미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곳이 아니더라도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성도들에게 ‘속히 오실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계 3:11, 22:7, 12). 왜 주님은 속히 오신다고 말씀하실까요? 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속히 사탄을 우리의 발 아래에 상하게 하실 것이라고 단언할까요?
이 문제는 예수님의 재림과도 관련된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하여 다음 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당대를 향한다
법조계나 정치계에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이것은 본래 정의를 실현하는 법조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어떤 재판은 몇 년씩 걸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정의를 세우는 일이 지연되면 피해를 입은 사람은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그때 승소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그의 삶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법체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운용하는 법조인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때에 판결을 받도록 여러 판사들을 세우라는 지혜는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모세가 혼자 모든 백성의 소송을 감당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여 그의 장인 이드로가 조언했습니다(출애굽기 18장). 그 결과 모세는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세워 백성들의 소송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개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재판이 속히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속히 사탄을 벌하실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 주님도 요한계시록에서 속히 오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심판은 속히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믿음이며 우리 주님의 약속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의 재판은 때때로 너무 느리게 보입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하나님을 향한 이런 하소연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편 13:1, 참고: 6:3, 79:5
동양의 현자 노자도 그의 책 도덕경에서 하늘의 재판에 대하여 글을 남겼습니다. 그 말은 지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용됩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
(天網恢恢 疎而不漏 천망회회 소이불루)
기독교에는 종말론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종말론의 특징은 임박성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선포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저 멀리 하늘에 있거나 또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항상 준비하라는 식의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종말선포는 ‘지금 여기서’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격려한 말씀, 속히 사탄을 상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주님이 속히 오실 것이며 속히 사탄은 심판을 받으리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그들은 악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선으로 악을 이기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춘원 이광수 같은 지식인들이 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희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저지르는 악행이 속히 바로잡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상실한 사람들은 일제의 통치와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희망은 정의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희망은 사람을 부패하지 않게 합니다. 희망을 잃은 사람은 즉시 부패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심판이 당대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1, 마태복음 16:28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10: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가복음 14:62, 마태복음 26:64
이 말씀들은 모두 주님이 속히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씀은 듣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당대의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성경은 언제일지 모르는 지구종말의 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독교회의 종말론을 그렇게 이해하면 우리 기독교회는 그 독특한 생명력을 잃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런 증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회복해야 할 개념 중에 하나는 종말론입니다. 이 종말론은 주님이 속히 오신다는 약속을 제대로 붙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대적자들은 누구인가?
그러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은 사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우리들의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 사탄은 옛 뱀이며 마귀이며 큰 용으로 묘사됩니다(계 12:9). 그리고 그 용은 짐승에게 권세를 줍니다(계 13:4). 다니엘서를 보면 이 짐승은 왕입니다.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다니엘 7:17). 그러면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말은 짐승의 압력에 굴복하여 불의와 불법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땅에는 하나님을 비방하고 하나님을 진실되게 따르는 백성들을 해하는 왕들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에 나봇이라는 경건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합 왕과 그의 부인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서 거짓 증인을 매수하여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습니다(열왕기상 21장). 그런 사람은 대표적으로 악한 왕이며 짐승에 해당합니다. 성경이 악한 왕들을 짐승에 비유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하나님이 사람에게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진실하고 의로운 모습입니다(엡 4:24).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매매를 할 수 없으므로 물건을 구입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은 속히 오셔서 이 세상의 짐승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짐승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미혹하여 자신의 길을 따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짐승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짐승을 경배하기 위하여 불의와 불법, 그리고 거짓말에 동참합니다. 그런 이유로 짐승들과 함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함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판타지로 기록된 것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입니다. 거기에 공통으로 나오는 짐승은 모두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해롭게 합니다. 그런 권력자에게 아부하면서 영달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친일인명사전이 있습니다. 일제에게 부역하면서 동족을 어려움에 빠뜨린 사람들에 대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하여 2009년에 발간되었으며 거기에는 4,776명의 사람들이 저지른 친일행적과 반민족행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는 듯한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똑같이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데 독일은 수상부터 솔선수범하여 과거의 일에 대하여 사과함으로 유럽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자기들의 범죄를 숨기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종군위안부들의 고통을 나타내는 소녀상을 철거하기 위해서 세계 곳곳에서 로비를 벌이고 있습니다. 전쟁범죄 전시관을 만들고 그런 죄를 다시 되풀이하지 말자는 독일에 비하면 일본 정부의 행태는 다시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아시아에서 패권을 차지하고 이웃 나라를 힘으로 짓밟겠다는 속내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일본 정부의 행태는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짐승과 같습니다. 그 짐승은 사탄의 사주(使嗾)를 받아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고 이웃을 더 큰 고통 속에 몰아넣는 행위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이 짐승과의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떤 방식으로 싸워야 할까요?
4.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어떤 방식인가?
성도들의 싸움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소개합니다. 에베소서에 기록된 이 무장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그 대적자들과 싸울 때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護心鏡)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10~17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님을 가장 먼저 밝힙니다. 혈과 육이란 사람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그 혈육의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세력을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에서 큰 용이나 옛 뱀, 또는 마귀나 사탄으로 표현됩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이 세상 권세와 무력, 그리고 음모와 거짓말, 그리고 미혹입니다. 이 세력에 대하여 싸우기 위하여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갑옷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성도의 갑옷과 무장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성도의 무장은 허리띠, 호심경, 전투화, 방패, 투구, 검입니다. 그것은 혈육을 상대할 때 필요한 무장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싸움은 혈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무장은 진리, 의로움, 평안의 복음, 구원,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무장들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짐승 같은 세력을 맞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일깨워주는 싸움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거짓에 맞서는 진실의 싸움이며, 교활함에 맞서는 당당함의 싸움입니다. 또한 우리의 싸움은 땅의 사람들에게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가장 큰 대적은 거짓말입니다. 예를 들면, 주가조작은 거짓말로 주식을 사고 파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하여 어떤 사람들은 남 몰래 큰 돈을 벌지만 수많은 소액투자자들은 피해를 봅니다. 그것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 아니라 백주 대낮에 눈 뜨고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군대에서 사망한 해병대원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외압이 작용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사건을 가지고 일년이 넘도록 우리 사회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 사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사탄이 준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아 일신의 영달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 시간에 양심적인 사람들은 고통을 받고 어떤 공직자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두어 곳에만 국한되어 일어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그 어디에나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무장은 진실이며 당당함, 그리고 공동체의 안위에 대한 헌신과 승리의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도우실 것을 믿는 확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확신으로 교회에 편지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속히 사탄을 너희의 발 아래에 상하게 하실 것이라’고 격려했을 것입니다.
5.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저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검이라고 말한 대목을 묵상해 봅니다. 검은 찌르는 무기이며 공격과 살상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대적에게 어떤 말씀을 선포해야 할까요? 그것은 성령의 검과 같아서 적의 심장과 폐부를 찌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산헤드린의 법정에서 성령의 검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6:64
사도 바울은 요한계시록과는 달리 사탄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것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라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임금이라는 말로 요한복음에서 소개되었습니다(요 16:11). 사도 바울은 사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그 이름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자기의 힘과 권세를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서 그들을 시켜 짐승의 방식으로 통치하게 합니다. 그것은 임금님 놀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성경에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용이 그 짐승에게 권세를 주니,
사람들은 그 용에게 경배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누가 이 짐승과 같으랴?
누가 이 짐승과 맞서서 싸울 수 있으랴?" 하고 말하면서,
그 짐승에게 경배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3:14, 표준새번역성경
누가 감히 우리에게 맞설 수 있는가? 누가 감히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단 말인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권세를 의지하고 특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10만원 정도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을 가지고 수십번 압수수색을 하고 재판정에 오라가라 하면서도 300만원이 넘는 명품백을 받은 사람에 대하여는 혐의없음으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현재 권력자들입니다.
이처럼 자기 권력을 믿고 양심적인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은 분명합니다. ‘진짜 권력은 너희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 ‘앞으로 너희는 내가 진정한 권력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초기교회는 만인이 로마 황제 시이저를 향하여 그가 퀴리오스라고 고백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이 주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 12:3).
베드로도 군중 앞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2:36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에서 동일한 신앙고백을 소개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9~11
교우 여러분, 지금 이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누구입니까? 누가 진정한 퀴리오스입니까? 누가 주님입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권세를 주시고 만국을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대상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을 포함한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그런 예배자들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무력화되어 구경거리가 된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짐승의 표를 받을 수 없으며 그 짐승에게 경배할 수도 없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나가서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러 나갈 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