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코스 : 신륵사 입구 -> 한강 문학관
신륵사 입구에는 원호 장군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본관 원주(原州). 자 중영(仲英). 시호 충장(忠壯). 경원부사 때 이탕개(尼湯介)의 침입을 격퇴하였고, 1587년(선조 20)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때 좌도(左道)에 침입한 왜구를 막지 못하여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패잔병 ·의병을 모아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구미포(龜尾浦)에서 패주하는 잔적을 섬멸하였다.
이 공로로 여주목사 겸 경기 ·강원 방어사(防禦使)가 되었으며, 김화(金化)에서 적의 복병을 만나 분전 끝에 전사하였다. 병조판서, 좌의정이 추증, 김화 충장사(忠壯祠) 등에 제향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호 [元豪]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역사 교과서에서 배우지는 못하였지만, 지역 주민들이 세운 기념비에 새긴 공적에 두 손을 모으고 여주 도서관으로 향한다. 강변에는 눈발이 날린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걸어갈 때 황포 돛배 선착장이 있다.
강가에 정박한 황포 돛배를 바라보니 ‘…….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 돛대야‘ 나도 모르게 황포 돛대라는 유행가가 절로 나온다. 콧노래 속에 여주 도서관을 지나고 11시 방향으로 영월루와 마암이 눈에 띤다. 여강길 오일 장터길을 걸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에는 꽃피는 봄철이 되어 강변에서 나물 뜯는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민들레 샛노란 꽃이 피어 있었다. 따사로운 햇볕에 반짝이는 강물의 전경은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가 있었는데 오늘은 차가운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탓인지 사람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남한강의 고요한 정적에 마음이 차분해 짐을 느낀다.
강 건너 미암과 영월루에 마음을 빼앗기며 여주 대교를 건너간다. 영월루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잔잔한 물결의 남한강은 나를 따라오고 있는지 흐르지 않고 멈추어 서 있다.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대교 가운데 이르러 발길을 멈추어 눈 내리는 남한강을 바라본다. 불현듯 차가운 강에 나룻배에서 삿갓을 눌러쓰고 낚시를 하는 노인네의 모습을 그린 한강 독조도가 눈에 아른거린다.
눈이 내리는 날에 고기를 잡으러 강가에 나갔다가 고기는 잡지 못하여서도 낚시하는 노인을 보고 한 폭의 그림을 얻었지만 길을 걷는 길손은 빈손 가득한 채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어라고 말하는 부끄러움을 안고 영월공원에 이르렀다.
공원에는 6, 25참전 기념비와 호국 무공수훈자 공적비가 있고 과거 이 지역에 공직자로서의 올곧은 삶을 추모하는 영세 불망비와 그리고 애민 선정비, 성덕선정비, 열녀비, 거사비 등을 이곳에 세워 놓았다.
두 마리의 말이 기이하게 물가에서 나왔다는 여주 팔경의 2경인 마암은 눈에 싸여 다소 위험하여 다가가지 않았고 공원 내의 구부러진 각양각색의 소나무의 모습에서 올곧은 사람다운 성정과 덕성을 음미해 보기도 하였다.]
근린공원의 상징인 영월루는 원래 군청의 정문으로 18세기 말 건물로 추정되는데 현재의 영월루는 1965년 군청을 옮기면서 지금 있는 자리에 누각으로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하였다.
영월루에서는 여주 팔경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치악산과 용문산의 연봉 그리고 한강 유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조망할 수가 있었기에 문인 묵객들의 즐겨 찾는 곳이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그 아름다운 조망을 할 수는 없는 아쉬운 마음에 고려말 대학자이신 목은 이색 선생께[서 지으신 한시를 떠 올린다.
여강에 빠진 마음 驪江迷懷 - 牧隱 李穡
天地無涯生有涯: 천지는 끝없고 인생은 유한하니
浩然歸志欲何之: 호연히 돌아갈 마음 어디로 가야 하나
驪江一曲山如畵: 여강 굽이굽이 산은 그림처럼 아름다워
半似丹靑半似詩: 반은 단청 같고 절반은 시 같구나 !
영월루 누각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중년 부류의 친목 단체가 무리를 지어 이르렀다. 그들은 도봉 초등학교 동문회로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하는데 만남의 장소를 식당이 아닌 우리 땅의 명소를 찾아 걷기를 한다고 하였다.
오늘은 여강길의 1코스인 금은 모래 공원에서 세종 대왕릉까지 걸어간다고 한다. 동문회 모임을 술자리에서 하지 않고 길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며 더욱 우정을 돈독히 하는 동문회를 보니 신선하게 다가왔다.
영월 공원에서 내려와 제2 금은 교를 건너 남한강 자전거 도로에 진입하여 금은 모래 야영장에 이르렀다. 예전에 여강길 1코스를 걸을 때는 이곳에서 신륵사와 황포 돛배를 볼 수가 있었는데 오늘은 흐린 날씨로 강건너의 풍광을 바라볼 수 없었다.
금은 모래 캠핑장에서 강의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백사장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고도 아쉽다. 그 아쉬운 마음을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란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폰 박물관을 지나며 강변길이 아닌 공원으로 재탄생한 공원길을 걸어간다. 눈이 내려 마치 산속을 걸어가는 착각을 들게 하였다. 눈을 밟는 정다운 소리를 들으며 여주 언양동 유적지와 갑돌이와 갑순이의 테마파크를 지나 이호대교 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한강 문학관에 이르러 경기 둘레길 34코스 걷기를 마치었다.
아직도 눈발이 날리고 있다. 날은 춥다. 그러나 시간은 아직 2시가 되지 않았다. 경기 둘레길 34코스는 완주하였지만 이대로 오늘의 걷기를 마치기에는 다소 서운하였다.
하지만 35코스는 12km로 일몰 시각 가까이에 끝이 날 것 같았지만 더욱 걱정되는 것은 오전의 폭설로 도로가 결빙되어 저녁에 올라갈 길이 보다 걱정되었다.
34코스에서 끝을 맺을 것인가? 아니면 35코스까지 종주할 것인가? 고심의 순간에서 동행한 일원들은 하나같이 예정대로 35코스를 걷기로 의견이 일치되어 도리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