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기획] 국내 1호 시청각장애인 박사의 근황은?[인터뷰] 시청각장애인 박사 조영찬 씨
2023-04-20 이새은 기자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모두 있는 농맹인은 도움이 절실하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서다. 늘 어두움 속에 홀로 남겨진 듯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상 시청각장애를 별도 장애 유형으로 분류하지 않아 집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사회로부터 고립된 시청각장애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 작년 시청각장애인으로 국내 최초 박사 학위를 취득한 조영찬 씨 근황. ⓒ데일리굿뉴스
[데일리굿뉴스] 이새은 기자 = 지난해 2월, 시청각장애인이 국내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바로 조영찬 씨. 조 씨는 2007년 나사렛대학교에 입학해 15년 만에 신학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논문 제목은 학위 논문 제목은 '하느님, 언어, 삼관인(三官人)'. 5개의 감각기관 중 세 감각을 가졌다는 의미로 시청각장애인으로 언어학적 성찰을 담았다.
조 씨는 아내 김순호 씨와 시청각장애인들 앞에 놓인 혹독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왔다. 그러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들의 존재는 묵살되기 십상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 1년 이상 지난 지금 조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서면으로 만나봤다.
다음은 조영찬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Q. 박사학위를 받은 지 1년 이상 흘렀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A. 동일한 일상의 반복입니다. 졸업하고 한동안 천안에 머물며 돌파구를 찾아봤지만 아직까지 특수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 활동하거나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대학가를 떠나 고향인 대전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 뒤로 지금껏 고독을 씹으며 독서와 공부를 벗삼아 세월의 텃밭에서 꿈의 흔적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Q. 가정교회인 '하늘언어교회'를 운영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A. 하늘언어교회는 가정집에서 지인들과 모여서 예배와 친교를 나누는 가정 교회입니다. ‘하늘언어’라는 이름은 소외된 이들을 구원으로 이끌어주는 사랑과 희망의 언어 등을 통칭하고자 고안했습니다. 비록 상황은 여의치 않지만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이상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큰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늘언어교회가 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길을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할 대상이 없습니다. 시청각장애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회를 스스로 모색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구축해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적합한 선례를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Q. 최근 겪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A.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속기사가 지원되었습니다. 제가 속기사에게 점자를 가르쳐서 점자통역까지 가능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학교 졸업 후 대전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제게 통역을 해 줄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정교회 사역에 동참할 동역자가 있다면 꿈을 실현하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Q.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소통과 재정 등 여러 면에서 활동 반경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외부 활동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신앙과 학문에 있어서 깊이에 대한 갈망이 우선 충족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고 배워가는 일입니다. 학문적으로는 학교에 다니면서 점자로 공부하느라 미처 소화하지 못한 책들을 섭렵하는 일입니다. 이 외에도 인문학 등 여러 방면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를 부단히 해 나가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부단히 해나가며 꿈을 실현할 기회를 기다리고자 합니다.
Q. 아직까지 국내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한국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하나의 장애만 갖더라도 한 개인과 주변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엄청납니다. 하물며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지게 되면 그 무게감은 몇 곱절로 커지게 됩니다. 시청각장애인은 최약자로서 사회를 향한 도움의 손길을 절박하게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청각장애인은 소통에 장벽이 있어 고충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가가 시청각장애인의 침묵의 외침을 경청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성숙한 복지국가로 거듭날 수가 있습니다. 소외되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경청의 의지를 표명해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Q.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교회의 본질은 가장 작은 소자에게 복음을 전해 천국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은 오랜 타성에 젖으면서 본질보다는 형식적이고 관습적인 의례의 반복에 봉착해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형식주의를 타개하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소자들에 대한 실천적인 나눔도 가능하게 됩니다. 그렇지 못하고 형식적인 종교에 머물러 있다면 소자나 장애인은 고사하고 비장애인과 강자들 사이에도 참된 사랑이나 소통이 오가지 못하고 이기심과 무관심의 벽으로 가로막혀 복음 정신이 질식하게 될 것입니다.
Q. 덧붙이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A. 저는 여태 최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이 현실적인 변화로 다가오는 기미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다가가기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어떻게 다가가고 소통을 해야할지 모르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비록 장애인 당사자를 직접 만나서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관심을 갖고 배움에 도전해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을 키워 가는 일은 다름 아닌 본인들의 인성과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직접적인 봉사활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사회 전반에 걸쳐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시나브로 확산되어 간다면 결국은 모든 사람이 참된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회로 성숙해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 가정교회인 '하늘언어교회'를 개척해 말씀을 전하는 조영찬 씨.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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