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묵시아' 가는 길을 찾아서(31)...
2015년 11월 14일(토)~ (31일째... Negreira~ Olveiroa: 34km
순례자숙소: Alb. Santiago de Olveiroa 공용 알베르게, 6유로)
아침 7시반경 'Negreira' 알베르게(숙소)를 나서니 길가옆 가로등 불빛이 안개속에 희미한 동선을 밝히고 있다.
카미노 친구 대여섯명과 잠시 길을 걷는가 싶었는데 저들이 훨씬 먼저 길을 재촉한다.
궂이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혼자 걷는 여유로움이 더 좋은지라 이 아침의 고요를
디카속 세상으로 어여삐 담아내고 있다.
새벽 공기가 차갑긴 하지만 맑고 상큼하다.
청초한 꽃잎에 아침 이슬이 방울방울 머금어있다.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본다.
이 길에서 만나는 또다른 행운이라 생각하며...
이곳에 바(Bar)라도 있으면 따끈한 레체(우유) 한잔을 마실 수 있을텐데...
어제 슈퍼에서 사둔 빵과 토마토로 아침을 대신하다.
여전히 안개 자욱하다.
어느 동네를 지날무렵 담벼락에 표시된 화살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돌아 500m여를 걸어왔는데도
두갈래 길이 나누어지는 지점에 표지석이 없다.
'이길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다시 되돌아 와보니 왼쪽으로 화살표가 표시 되여있다.
되돌아 올때의 긴장감과 맥이 확 풀리는 그 기분이란...
하지만 어쩌랴 내 시선의 부주의한 탓을...
흙길옆 풀 내음이 촉촉하다.
한시간여를 걸은 것 같기도 하고...
안개에 쌓인 저길 끝 너머 새로운 풍경이 사뭇 궁금하다.
제주올레길에서 무수히도 마주쳤던 저 노란 화살표의 친숙한 표시는 단순한 동선을 가르키는 의미가 아닐진대...
이역만리 낙옆 떨어진 저길을 내가 걷고있다.
누군가 작은 소망을 올려놓았다.
'만추'... 아침햇살 가득히 포근한 날이였습니다.
내 그림자 도반(道伴)의 벗이 있어 결코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길 걸으며 사랑하며..!
안개가 걷히고 가을 하늘이 파랗다.
기분 상쾌하다.
한적한 마을 풍경이다.
작은 개울가를 건너간다.
콧노래 솔솔 '옹달샘' 동요를 불러본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먹고 가지요.'...
동심(童心)으로 돌아가는 유년시절의 그리움이 아련하다.
길옆 작은 풀섶가로 시선이 멈춰선다.
거미줄에 비치는 붉은 색감이 화려하다.
총총 엮여낸 미완의 대작이다.
여자 카미노가 걸어가고 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와 별반 다를 것 같지않을 카미노 여정의 무탈과 가족의 그리움일 듯 싶다.
이길에선 모든것이 단순해지는 일상인 듯 하다.
어느덧 카미노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다시 아스팔트 길이 쭈욱 이어진다.
두시간 정도를 걸은 것 같다.
평온한 풍경이다.
꽤나 먼길을 걸어왔다.
마음 푸근해지는 풍경이다.
하늘은 파랗고 가을 햇살 가득하다.
빨리 걷기가 아까워 천천히 한발자욱 두 발자욱...
그러다 오늘 걸어야 길이 만만치 않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다시 이길을 따라 1km여를 걸어 어느 작은마을 초입에 다달았는데 이번에도 표지석이 안보인다.
마침 그곳에 있던 서너명의 동네 주민에게 물어봤더니 오른쪽 산길로 되돌아 가란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 길옆에 세워진 표지석을 못본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두번째 허탕이다.
마침 그길로 들어서는 낮익은 여자 카미노에게 왕복 2km를 리턴 했다고 하니 '오 마이 갓' 하며
제일인양 안타까워 한다.
그래도 위로해주는 친구가 있어 한결 기분이 낫다.
오후의 가을 햇살이 따갑다.
목초지에서 풍겨오는 소똥냄새가 코를 잔뜩 진동시킨다.
멀리서 보는 목가적 풍경과는 사뭇 다른 고역의 순간이기도 하다.
30분여를 더 걸어가니 대 여섯명의 카미노들이 그늘에서 쉬고 있다.
건네주는 청포도 한알 상큼한 맛이 청량하다.
그 일행중 한명은 직업이 조경사란다.
인상이 선한 친구인데 '말레이시아'에서 8년을 근무하는 동안 한국인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사이좋게 잘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에 대한 호의가 남다르다.
얼굴이 예쁘고 상냥한 미국인 아가씨는 늘 웃는 모습이 선녀를 닮아있다.
셋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핸폰 번역기 + 바디 랭귀지^^)를 한참이나 나누며 길을 걸었는데
'Olveiroa'에 도착후 그들은 사설 알베르게로 난 공용 알베르게로 가면서 헤여졌는데
그후의 모습들이 궁금하다.
지금도 떠오르는 얼굴 표정이 생생하다.
바로 엊그제 같건만 그립다.
어느 마을일까...
달랑 지도한장 품고 다니느라 세세한 마을 이름은 알길이 없다.
낮익은 친구들이 걸어오고 있다.
낮은 산봉우리가 마치 제주의 아담한 오름을 닮아있다.
세상 태어나자마자 걸었던 제주 올레길과 오름은 내겐 영원한 어머니의 포근한 품속이다.
부드러운 곡선의 그 닮음을 이곳에서 본다.
평화롭다.
초록세상이다.
옹기종기 처마를 맞대여 살아가는 곳...
오후 5섯시경... 'Olveiroa' 마을 초입에 다달았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숙소)에 도착 후 샤워 후 빨래를 마치고 쉬고 있으려니
몇일전에 만났던 한국인 부부가 들어서며 반갑게 아는체를 하며 악수를 청한다.
두번 다시 만나고 싶지않은 인연인데
뿌리칠 수가 없어 별로 내키지 않은 악수를 하려니...
이제 내일이면 '묵시아' 바다 '대서양' 대해를 마주하게 된다.
33일만에 대하는 넓디 넓은 바다이다.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띈다.
부드러운 생맥주 한잔으로 지친 심신을 달랜다.
'이건 그냥 맥주가 아니야...
사랑이야!'
몇해전 제주 '삼다숲길'을 걸으며 누군가 들려주던 시구(詩句)를 떠올리며^^...
첫댓글 사람은 희망이 있기에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