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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공 종중에 건의 합니다.
근래에 건강이 여의치 못한 관계로 종중집회에 참석을 못한 대신,종중 집행부에 조심스런 마음으로 다음 몇 가지를 건의하고 자 합니다.
1-1. 사당 건립 계획은 현 집행부의 기념비적 탁월한 결정입니다. 사당을 건립할 바에는 부조묘(不祧廟:영원히 제사지내는 조상의 사당이라는 뜻)를 건립하는 것이 백 번 옳을 듯 합니다.
0 부조묘는 국가적 부조묘, 즉 나라에 큰 공이 있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부조지전(不祧之典)을 국가로부터 하사 받아 설치한 부조묘가 있고, 그렇지 못하여 가문에서 조성한 부조묘가 있는데, 원래는 국가의 공인 절차를 받아서 부조묘를 설치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에 의해서 정해지면 가문에서 부조묘를 설치하기도 하였습니다. "우자급" 병사공께서는 국가로부터 "부조지전"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가문의 부조묘"로 조성해야 하는데, 이 때는 옛날의 방식대로 유림 단체(지금의 향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 부조묘를 설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병사공께서 돌아가셨을 때 숙종 대왕께서 훈신(勳臣)의 예를 갖추어 장사지내라 하시고 제문(祭文)을 하사 하시었는데 이 치제문(致祭文:종가에 원본 보존)을 제시하면 부조묘 설치 대상 인정은 충분할 것입니다. 이런 자료들을 갖추어 보성향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는 게 좋겠습니다. 가문에서 개별적으로 사당을 건립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0 사당 명칭은 따로 지으려 말고 “병사공양우급부조묘”(兵使公梁禹及不祧廟)라고 명명(命名)하면 될 것 같습니다.
0 "병사공부조묘"라 할 수도 있지만 "병사공"은 어떤 사람의 이름이나 호(號)처럼 특정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닌, 다만 벼슬명칭이라는 점과 또, 조선 500년 역사상 병사공을 지내신 분이 몇 십명도 넘을 것이기 때문에, "병사공부조묘"라는 말로는 "우자급"선조의 부조묘라는 의미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병사공양우급부조묘"라고 함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학포공부조묘"는 "학포"가 이름 대신 사용되는 “호”이므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0 사당의 위치를 다전마을 입구 근처로 고려하고 있는 것도 탁월한 입지 선택입니다. 병사 공께서 태어나고 자라나신, 고향 마을 뒷산 당신의 유택에서 빤히 내려뵈는 동구 밖에 사당을 건립한다니 말입니다. 학포 선조님은 유택이 화순 쌍봉인데 부조묘는 화순 능주면 월곡리에 위치합니다. 이러기도 하지만, 유택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당이 건립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1-2. 사당의 규모와 설계는 별도의 전문가의 몫이겠지만, 그보다 먼저 집행부의 원시적(遠視的), 거시적(巨視的) 안목이 중요하며, 근거리의 군머리에 위치한 최대성 장군 사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고려해 주시고
1-3. 다른 부대시설과 함께 "교육자료관"을 꼭 마련하여 20-30명의 집단 숙식의 장과 선조와 가문 및 역사교육의 장을 만들어 후진 양성 도장으로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1-4. 병사공 선조님의 초상화 제작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0 무슨 괴변이냐 할지 모르지만, 단군왕검 초상화를 과거에는 교실마다 게시하였고 단군 종교 신봉 단체는 지금도 단군초상을 게시하고 있습니다. 그 초상은 실제 초상이 아니고 가상의 초상입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시청각 교육 효과 때문입니다. 우리 병사공 선조님은 초상화만 없을 뿐이지 실존인물이시고 다수의 교지와 서신, 투구, 연못, 풍체와 인품 등의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고 口傳으로 전해진 부분도 있기에
0 이들 유물, 유적, 구전을 바탕으로, "초상사진"은 불가능하지만, 인물에 근접한 초상화는 제작이 가능할 수 있으므로 전문가와의 논의를 제안합니다. 사당 없이 묘제로 모신 시제와 달리, 새로 건립한 사당에 초상화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사당의 위상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초상화가 없는 현재의 처지에서 代案으로, 일단 숙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윗대 선조님들의 초상화는 왜 한 점도 없는지 아쉬움이 많습니다. 초상화 문제라면 판서공 익자표(益標) 선조님, 절충장군 두환(斗煥) 선조님, 만경현령 철진(喆鎭) 선조님들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발상 같지만 남대문 같은 문화재도 원형이 소실되어 복원 했다지만, 그게 본래 실제의 남대문 원형입니까? 아니잖아요. 인위적으로 비슷하게 조작해 만들어 냈지요. 마찬가지 논리로 숙고를 제안합니다. 텅빈 祭室(제실) 건물에 지방 써 붙여 놓고 병사공 선조 교육하는 것 보다 근접한 초상화라도 보이면서 교육하는 것 것은 시청각 교육상 비교가 안 됩니다.
1-5. 사당이 마련되면 우리 가문의 차원을 넘어서, 군내 기관장 및 타문중 대표까지 아우르는 군 단위 不祧廟享祀(부조묘향사)로 발전시켜, 병사공 선조님을 顯揚(현양)함으로써 우리 亳谷(박곡) 양문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2-1. 다음은 舊碑(구비)의 誤字(오자) 정정 문제입니다.
0 병사공 구비의 "절충장군行전라도병마절도사"에서 "行"을 "守"로 수정해야합니다. "行守法"에도 맞지 않고, 敎旨(교지)와도 맞지 않으며,1910년 이후 무려 100여 년간 방치되어 온 오자(誤字)를 수정해야 한다고, 다전 종파 좌장(座長)이신 유승(瑬承) 종친께서 정정 요구를 하셨음에도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0 2004년에 건립한 병사공 비문중 “조부는 휘 철용으로 증우승지이고”의 “우승지”를 “좌승지”로 정정해야 하고
0 역시 2004년에 건립한 징(徵) 선조의 비문 중 탄신 날짜인 “6월
10일“을 ”6월 25“로 정정해야 하며, 돌아가신 해인 ”숙종 38년“은 ”28년“으로 정정해야 합니다.
0 한 가지 오류가 더 늘어났습니다. 묘를 이장하였으므로 병사공 비문은 "보성군 득량면 송곡리 다전마을뒷산에 정부인 경주이씨와 합께 이장하였다"로 고쳐 적어야 하고, "징" 선조의 비문도 이장지의 주소에 맞게 고쳐 적어야 하는데, 두 분의 비문에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로, 먼저 그대로 적혀 있으니 큰 오류가 아닐 수 없지요. 이 같은 오류 때문에 묘를 이장하면 그래서, 비석도 바꿔 세우는 것이 원칙인데, 비문 수정 계획이 서 있는지요?
0 비석은 1-20년도 아니고 몇 백 년도 넘게 유지되기에, 묘소 이장 벌써 전에 비문의 오류를 지적하였기에, 묘소 이장과 더불어 수정되겠지 하는 기대를 가졌는데, 수정 없이 비만 옮겨 놓았으니 하루 빨리 수정해야 합니다.
3-1 사업 책정의 완급(緩急)을 잘 가려야 합니다.
0 재정은 있을 때 관심이 필요합니다. 특히 종친회의 재정 투자 순위는 첫 째가 위선사(爲先事)요, 그런 다음 후손을 위한 사업은 위선사업 다음의 후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후손을 위한 장학사업은, 위선사업인 “이장사업”과 “사당건립”과 같은 시급한 당면과제를 먼저 처리하고 나서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업의 선후와 완급을 잘 가려야지 그렇지 못하면 종중 자본이 어느 순간 급감(急減)해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0 그래서 서류 결재에 의한 책임성과 투명성을 절대로 높여야 한다는 건의를 하는 것입니다.
4-1 회장의 탁견(卓見)과 리더십이 절대 필요한 때입니다.
0 종중의 운영은 종친의 협조와 집행부의 헌신적 봉사.노력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선제적(先制的)으로 요구되는 것은, 역대 회장 중 탁월한 경륜과 탁견(卓見)을 갖춘, “동관” 현 회장의 판단력과 리더십입니다. 한 조직이나 집단이 다스려지는 것은 여러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 같지만, 내면을 사려 깊게 들여다 모면 한 사람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한 사람에 의하여 흥하고 패하였음을 역사갸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결국 회장의 역할에 종중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5-1. 소통과 화합의 개혁
0 인터넷 의견 수렴을 강조하다 보면, 장년과 노년은 소외되고 젊은이 중심 의사소통에 막히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 미디어 시대라 하지만 노년층은 sns에 능숙하지도 못하고, 건강상 총회 참석도 여의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0 그래서 제안합니다. 각 계파별로 몇 분을 선정하여 전화 의견 수렴도하고 중요 의결 사항이나 행사 결과를 안내해 드림으로써 종친회의 소통과 화합 및 경로 의식을 집행부에서 먼저 솔선수범으로 본을 보여주시면 어떻겠습니까?
0 예컨데 보성 다전종파의 "유승" 族長님(T 031-793-6559), 보성 겸백 계파의 "영승"족장님(T 061-853-6323), 겸백 덕음 계열의 판서공 奉祀孫(봉사손)인 "동재" 종손님(T 062-261-4013), 김포 계열의 000 족장님 등 이 분들은 계파의 대표이시기 때문에 집행부에서 관심을 보여 주시면 종중의 화합과 통합에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0 “종중 회보”를 발간 배포하는 것도 소통과 타협의 좋은 무기일 것입니다.
6-1. 의사결정의 투명성 확보
0 종중의 주요 업무추진은 구두 결제를 배제하고 서류결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사업 추진은 실명제 추진으로 기록을 남겨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투명해야 합니다.
0 예를 들면 2014년 토지 보상금에 관한 제반 절차와 과정상의 구체적인 기록이 보존 되고 있는가? 2015년도의 묘지 이장에 관한 전체 계획과 하부 영역별 추진계획이 결재에 의하여 수립 되었고 추진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서류가 정비되고 보존되어 있는가?를 항시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합니다.
7-1.종친회가 젊어져야 합니다.
0 노쇠한 종친회는 발전이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문마다 강력한 종친회를 조직, 운영하면서 신진 젊은 종친에 관심을 두는 것은 가문마다 제각기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을 면하기 위한 자구책(自救策)이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병사공 종중도 노인이 좌지우지하는 노쇠한 종회가 아닌, 보다 젊은 종친의 모임이 되도록 특단의 묘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0 그러기 위해서는, 총회 하부 조직으로 세대별 조직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청년조직(20-30대), 장년조직(40-50대), 노년조직(60-7,80대)으로 구분하여 세대별로 탄탄한 조직 구성에 역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종친회가 젊고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 그러려면 종친회의 체질개혁 혁명이 필요합니다,
0 누가?--똑똑한 종친이 나서서
0 어떻게?-*새로운 시스템 구축,새로운 비젼 제시
*확실한 방어,확실한 공격의 전문성, 투명성 확보
* 싱크탱크 운영(사안별로 외부 전문가 1-2명포함)
# 병사공 종중 역사상 지금과 같은 무거운 짐을 져본 집행부가 없었습니다.
언제 지금과 같은 종중의 재정과 우수한 능력을 가진 집행부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까? 집행부 여러분은 마치, 우리나라가 70년대에 농업기반 사회에서 중화학공업 사회로 탈바꿈하는 기로에 용감히 서 있는 산업전사처럼, 무언가 해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과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종중이 모처럼 맞이한, 330년 만의 절호의 기회를 잘 활용하여 우리 종중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유능한 집행부로 평가되기를 기대합니다.
종중의 무궁한 발전과 집행부 여러분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建議者 : 兵使公 11代孫 梁東奎
첫댓글 먼저 동규형님의 건의에 공감을 표합니다. 위 건의 1-2와 1-5에 관한 의견입니다. 군머리 건너편에 있는 최대성장군의 사당을 예로 들었는데, 물론 관직의 위차는 우리 병사공선조님이 높다 하겠지만, 국가의 공헌도는 우리 선조님이 그 분에 못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조님을 선양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계에 우리 선조님에 대한 연구 용역을 주고, 발표회를 열어서 학계와 향토 유림들을 이해시키고, 그 바탕 위에서 국가기관의 주관 부조묘가 조성되든가 아니면 우리 문중의 주관 아래 사설 불천위 부조묘가 조성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되면 부조묘 향사도 국기기관의 예산으로 영구히 봉향할 수가 있을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