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동을 거닐다
천수정
개들이 연애결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제동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는 여지없이 개를 만날 수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대문을 열어놓고 살던 시절 개나 아이들은 골목길에 쏟아져 나와 왁자한 함성과 열기로 한때를 보냈다. 해가 저물어 엄마가 "밥 먹어라."하고 외치면 아이들을 따라 개들도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개들은 저마다 주인이 부르는 이름이 있었지만 우리는 누르스름하면 누렁이, 흰색에 가까우면 흰둥이 등 색깔로 판가름해 아주 단순 명료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골목이 우리를 키웠듯 개들도 흙바닥에 어지러운 발자국을 남기며 자유를 영양분 삼아 근력을 키웠다. 개들은 주인이 노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거나, 혹은 꼬리치고 따라다니다가 갑자기 암수 서로 눈이 맞아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 개들은 한참 뒤에 어느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곤 했는데 간혹 대담한 녀석들은 우리가 버젓이 보고 있는 앞에서 한참씩 짝 짓기를 했다.
물론 이런 자유가 모든 개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사람을 공격할 의도가 없거나 덩치가 작아 아이들에게 덤빌 깜냥을 못내는 개들만이 주인이 열러 놓은 대문간을 뛰어넘어 사람과 섞일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개들은 대문에 떡 하니 붙어 있는 '개조심' 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를 훈장처럼 내세운 채 코만 벌름거리며 골목의 공기를 맡았다. 이런 녀석들은 대문 근처에만 가도 온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 대는 것으로 자신의 세를 과시했다. 가뜩이나 묶여 있는 것도 서러운데 녀석들의 부자유는 우리가 마음 놓고 해코지할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 앞을 얼쩡거리며 약을 올리고, 으르렁거릴라 치면 아이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묶여 있는 개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녀석의 목줄 길이를 보건데 펄쩍 뛰어도 내게는 미치지 못하겠다 싶었다. 송곳니를 드러내며 그르릉 소리를 내던 누렁이는 내가 지나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 장딴지를 물었다. 마침 주변에 남자어른 서넛이 있었고 어른들은 얼른 내 바지를 벗겨 상처를 확인하였다. 어른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욕을 개한테 하더니만 개를 말뚝에서 끌러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난생처음 줄에서 벗어난 녀석은 해방은 고사하고 힘에 제압당해 엉덩이를 한층 낮추고 꼬리를 엉덩이 사이로 감춘 해 바닥에 배를 질질 끌며 끌려나왔다. 어른들이 개를 잡으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에 떠는 녀석의 눈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 개가 죽으면 어쩌나 몹시 걱정이 되었다. 무슨 민간요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른들은 녀석의 꼬리 끝에 있는 털을 가위로 조금 잘라낸 후 불에 그슬린 후 잘 개어서 내 상처에 발라 주었다. 지금도 햇빛에 반투명으로 빛나던 녀석의 꼬리 중에서도 가장 끝에 나 있던 털의 빛깔을 잊지 못한다.
지낞 카메라를 들고 소제동을 찾았다. 개조심이 쓰여 있는 대문을 찍기 위함이었다. 골목에는 더 이상 개가 없었다. 덩달아 개조심도 찾기 힘들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배려의 뜻으로 붙인 '개조심'은 원도심의 쇠락과 더불어 사라지고 말았다.
한참 골목을 헤맨 끝에 개조심을 발견하였다. 여러 번 덧칠한 듯 보이는 대문이었는데 왼쪽은 스프링으로, 오른쪽은 끈으로 고정을 해 놓았다. 오래전 서까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붕은 세월의 무게를 지지대에 기대고 있었고, 대문 사이로 보이는 황토벽은 이 집의 역사를 짐작하게 했다. 가까이 다가가도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주인이 떠나면서 함께 떠났거나, 더 이상 개를 키울 수 없는 어떤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개를 키우던 시절 대문에 썼을 '개조심'글귀를 보며 낯선 대문 앞에 서서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이 집 주인은 참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개조심을 한 번도 아닌 두번을 써 놓은 이유는 어느 대문이 열려 있을지 모를 상황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대문의 결을 살려 넓은 면에 글씨를 썼는데 좌우 똑같이 한 칸을 비워 두 번째 칸에 되도록 같은 크기와 필체로 쓰려고 노력한 꼼꼬맘이 읽힌다, 대문의 색깔에 비추어 잘 보이도록 약간 연두빛이 도는 페인트로 쓴 것을 보니 예술 감각도 있는 사람이었겠다, 글자의 부드러운 선을 볼 때 성격이 원만한 사람이었겠다, 글자 크기만큼이나 작고 아담한 발바리를 키웠을지도 모르겠다 등등...
개와 함께 뛰어노던 골목의 추억을 떠올리고, 마을에 살던 사람들의 다양한 성정을 짐작하는 즐거운 상상에 빠지고 싶었던 나의 시도는 아쉽게 단 한번으로 그치고 말았다. 여러 번 소제동을 찾았으나 더 이상 개조심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신나는 작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개조심이 담고 있을 작고 따뜻한 이야기를 찾아 나는 여전히 소제동의 어느 골목을 거닐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개조심이 아니라 맹견주의를 써 붙이고 담장위에는 깨진 유리조각을 꽂아놓고 그 위에 다시 철조망을 둘러친 삭막한 골목이 아닌 포근, 아니 푸근함이 느껴지는 소제동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역시...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