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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산행] 제153차 ♣ 강원도 정선 닭이봉(1,028m)
▶ 2015년 6월 21일 (일요일)
* <산행 코스> 마차령 쉼터→ 고랭지 밭 언덕길→ 곰봉→ 닭이봉→ 암릉 길→ 안부의 숲속(점심식사)→ 계봉→ 암릉 길→ 내리막 하산길→ 기탄마을(억조식당)→ 귀경 <구의동>
♣ [닭이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 — 수직의 절벽 위를 치고 오른다
☆… 12시 20분, 안부(鞍部)의 숲에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후미를 기다려 숲그늘에서 뜨거운 숨을 고르면서 앞을 바라보니 가슴을 압도하는 산봉이 가로막고 있다. 이제 우리가 올라가야 할 바로 그 닭이봉이다. 오늘의 정상 포인트이다. 산봉의 서쪽은 천인단애의 절벽이요, 위로는 하늘을 이르듯이 올라가야 할 가파른 경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산딸기 밭은 거기에도 있었다. 막간을 이용해서 자연을 맛을 즐기는 시간, 고즈넉한 산행이다. 후미의 대원들이 모두 합류하고 나서 천천히 정상을 향한 오르막길을 올려치기 시작했다. 앞서 곰봉을 오를 때보다 더 가파르고 길은 멀었다. 그런데 길은 사실 수직의 절벽 위를 걷는 능선 길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가수리 동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파르고 험난한 길이지만 정상을 오른다는 일념으로 모두 말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 올라갔다. 땀이 비 오듯 하지만 산속의 숲이 싱그러워 문득문득 상큼한 바람결이 이마를 스쳐지나갔다.
산딸기 공주
이름 모를 야생화 — 이렇게 정갈하고 고고할 수가 …
♣ [오늘의 산행 포인트, 닭이봉 정상] — 수천 길 절벽 위의 정점, 동강이 보인다
☆… 오후 1시 04분, 드디어 닭이봉 정상에 선두 그룹이 도착했다. 정상은 공간이 아주 좁았다. 닭벼슬의 꼭지점이다. 정상은 한 개의 작은 입석이 서 있을 뿐이었다. ‘닭이봉 1,028m’, 정상의 표지도 어느 산악회에서 입석에 매달아 놓은 아크릴판이었다. 서쪽은 수천 길의 깎아지른 절벽이다. 동강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상황을 원격으로 보면 절벽의 꼭지점에 서 있는 격이다. 생각해 보면 아주 아찔한 정점이다. 여기선 공간이 좁아 많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도착하는 대로 개인별로, 그룹별로 정상등정의 기념사진을 찍고 순서대로 내려갔다. 카메라를 지닌 호산아는 후미의 대원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올라오는 대로 일일이 인증샷을 눌러 주었다. 일단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안부로 내려가야 한다. 올라올 때의 경사만큼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
♣ [험난한 암릉 길] — 절벽 위의 능선을 타고 가는…
☆…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고 난 뒤는 험악한 암릉길이 이어졌다,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길은 피할 수 없은 절벽 길, 그 오르내림이 아주 험난했다. 닭벼슬처럼 크고 작은 암봉을 넘고 넘었다. 간간히 가느다란 보조자일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었지만 가파른 바위를 기어오르고 낭떠러지 외길을 통과해야만 했다. 경사만 급한 곰봉과 닭이봉을 오를 때하고는 다른, 위험하고 아찔한 암릉 길이다. 숲이 가리지 않은 암봉에 올라 보면 길게 물돌이[曲流]를 하고 있는 동강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림 같이 펼쳐진 깊은 산곡의 강물이다. 아쉬운 것은 동강의 수량이 너무 줄어들어 모래 바닥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보면 지나온 길의 절벽 위의 능선이 아득하고, 앞으로 내다보면 앞으로 가야할 길의 절벽이 단애를 이루고 있어 지금 우리가 오르내리고 있는 암릉 길이 얼마나 아찔한 험로인가를 헤아릴 수가 있다. 그냥 앞만 보고 다른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1시간 가량 무지막지한 산봉의 험로를 타다가 안부의 내리막길로 내려왔다.
천인단애의 절벽 위에 올라 앉아 여유만만한 이 사나이
아! 동강!
우리가 지나온 산의 능선 — 멀리 곰봉이 보인다
♣ [숲 속의 점심식사] — 음식을 나누며 마음도 나눈다
☆… 오후 2시, 안부(鞍部)의 숲 속에 이르렀다. 숲속의 풀밭에 자리를 잡아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모든 대원들이 한 자리에 앉을 만큼 넓은 공간이 없어 몇 몇 그룹을 나누어 자리를 펴고 식사를 했다. 각자 지녀온 것을 내어놓는다. 일단 내어놓으면 네것내것 가리지 않고 모두 같이 함께 음식을 나눈다. 통통공주가 따라 주는 시원한 막걸리 한잔은 산행의 뜨거운 열기를 씻어 내리는 보약이었다. 거기에다 ‘꽁지’ 문승배 사장이 내어놓은 별미 멍게젓 한 점을 곁들이면 그 산뜻한 입맛은 말로 할 수 없다. 수정공주는 손수 가꾸었다는 싱싱한 상추에다 맛깔스런 쌈장을 준비해 오고, 꼬마공주가 나누어준 들기름에 구운 바삭한 김이 또한 입맛을 돋우었다. 지평대장이 건네주는 갈색의 약술 한 잔이 깊은 향을 풍기는데, 어떻게 제조했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깊고 신비한 맛이었다.
♣ [세 번째 산행 포인트 계봉] — 험준한 산길에서 만나는 생명들
☆… 오후 2시 30분, 식사 후 산행을 계속했다. 다시 앞을 가로막는 산봉은 계봉(鷄鳳)이다. 안부에서 650m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걸어보니 그 이정표의 거리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산길과 험난한 바윗길이 문제이다. 금방 식사를 하고 난 뒤라 모두 힘이 들었다. 앞서 닭이봉 능선을 지나올 때의 암릉과 비슷한 가파른 절벽 길을 오르기도 하고 가파른 비탈의 협소한 외길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한적한 숲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 산길 좌우의 곳곳에는 수많은 세월을 기구하게 살아온 참나무 등걸도 보이고, 여기저기 분홍빛 싸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꽃이 숲속의 고요한 정적을 한 몸에 담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이 험난한 산길에 두 개의 공원 벤치가 동강 쪽을 향하여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숲이 가려 동강은 보이지도 않는 지점이다. 아마 고단한 등산객을 위하여 설치해 놓은 것이리라 생각하니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무거운 것을 어떻게 여기까지 운반해 왔을까. …
☆… 그리고 또 하나 경이로운 것은 사람의 눈높이보다 낮은 길목의 나뭇가지에 지어 놓은 새집이었다. 나뭇잎과 지푸라기를 물어와 야무지게 만든 동그란 새집에는 한 알의 새알이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아, 저기에도 생명이 숨 쉬고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어미새가 날아와 밤새 품을 것이다.
이 한 알의 생명을 보호하소서!!
♣ [세 번째 산행 포인트 계봉] — 그리고 급전직하의 하산 길
☆… 오후 3시 10분, 안부 산비탈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하산(下山) 길로 접어들게 된다. 모든 함께 휴식을 취하면서 대열을 정비했다. 해발 1,000고지의 암릉과 숲길을 걸어온 역정(歷程), 이제 세상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민창우 대장이 예고한 대로 하산 길은 참으로 무지막지한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발을 딛고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 정도로 아래 쏟아지는 산길이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몸의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다. 길은 자연히 지그재그로 더듬어 내려오지만 어느 한 곳 만만한 곳이 없었다. 급전직하의 비탈길을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문득 아득한 절벽 위에 서 있다. 아찔하게 위험을 느낀다. 그러나 그 절벽(絶壁)의 가장자리에 장대한 노송(老松)들이 멋진 풍광을 이루고 있으니 가히 안복(眼福)이 넘친다. 멀리 동강(東江)이 내려다보이는 송암(松巖)이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아름다운 절경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것은 지금까지의 쏟아지는 급경사 그대로였다. 다리의 발목과 무릎이 저리기도 하고 종아리와 대퇴부의 근육이 뭉쳐 아파오기도 했다. 내리막길은 쉬 끝나지 않았다. 그냥 아래로 아래로 쏟아지고 쏟아질 뿐이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길고 길었다.
♣ [하산지점-동강로 가탄마을] — 버스를 기다리며
☆… 오후 4시 35분,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산길을 내려왔다. 점심식사 후, 2시간 동안을 험한 능선과 가파른 산길을 타고 내려온 것이다. 무거운 몸무게를 실은 하체의 근육이 뻐근하고 가파른 산길에 발목 또한 시큰거렸다. 해발 1,000고지에서 산 능선에서 동강의 강안까지 급전직하로 쏟아지는 산길은 그야말로 고행 그것이었다. 하산지점은 동강 가에 위치한 동강로 가수리 가탄마을이다. 동강로(東江路)는 정선읍에서 동강을 따라 산동읍까지 이어지는 지방도로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의 분홍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전화로 확인해 보니 하산 지점을 잘못 안 기사가 ‘예미’라는 엉뚱한 곳에 가서 있었다. 대원들은 동강로 옆 <억조식당> 마당의 그늘에서 오래도록 버스 오기를 기다렸다.
♣ [정선아리랑] — 민초들의 애환이 스민, 애절한 전래민요
☆… 버스를 기다리는 망중한(忙中閑)의 시간, 길가의 정류장 유리벽에 적혀 있는 이 고장의 전통민요인 <정선아리랑>이 눈에 들어왔다. 곡진한 서민의 정서가 깃들어 있는 <정선아리랑>이다. 그 구성진 가락에 실어서 부르는 민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애틋한 감상에 젖어든다. <정선아리랑>의 노랫말은 자그만치 700∼80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 중에는 다른 지방의 아리랑 사설과 견주어 볼 때 서로 공유(共有)하는 것이 많다. 우리나라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아리랑이다. 여기 적어 놓은 정선아리랑은 수많은 사설 중에서 고정적으로 전승되는 노랫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 앞의 사설 중 첫 번째 것에는 <정선아리랑>의 기원설화가 담겨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 말엽 조선창업을 반대한 고려 유신(遺臣) 72명이 송도(松都, 개성) 두문동(杜門洞)에 숨어 지내다가 그 중 전오륜을 비롯한 7명이 정선[南面 瑞雲山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기고,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여 여생을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았다. 이들은 당시 고려왕조에 대한 흠모와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외롭고 고달픈 심정 등을 한시로 지어 읊었는데, 뒤에 세인(世人)들이 이를 풀이하여 부른 것이 <정선아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노랫말에는 다른 설화가 전한다. 아우라지 나루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두 마을(여랑리와 유천리)의 처녀와 총각이 서로 사랑을 하였다. 여랑리 처녀는 날마다 싸리골 동백을 따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유천리로 건너가 정을 나누었다. 그러던 중 여름 장마로 홍수가 져 물을 건너가지 못하게 되자, 총각을 만날 수 없게 된 처녀가 이를 원망하여 부른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정선아리랑>에는 노래 전체에 관련된 기원설화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개별적인 노랫말에 얽힌 사연까지 들어있다. 이는 노래를 부르고 또 전한 사람들에 대한 자기 해설이자 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 [‘배려(配慮)’가 있어 유쾌한 귀경길] — 그리고 ‘따끈한 칼국수’로 인정을 나누고…
☆… 오후 5시 30분, 동강로(東江路) ‘가탄마을’에서 귀경길에 올랐다. 다른 곳에 가 있는 버스를 기다리는 데 거의 한 시간 동안을 허비했다. 오늘 대원들은 하산 길에서 무척 힘든 고행을 했다. 땀도 많이 흘렀고 체력도 많이 소진했다. 모두 목이 마르고 속이 타고 있었다. 장병국 회장은 대원들의 그런 목마름을 간과하지 않았다. 우리의 버스가 동강로의 험한 고갯길을 넘어와 산동읍에 들어왔을 때, 장 회장은 읍네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과 시원한 막걸리와 냉장된 맥주를 사 왔다. 대원들은 모두 유쾌한 기분으로 흥겨웠다. …
동강과 동강로
산동 읍내
☆… 38번 국도에서 중앙선에 올라 치악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일로 영동고속도로를 진입하였다. 도로는 여주 부근에서 한참 동안 정체를 보이다가 중부선에 올라서서는 아주 원활하게 소통 되었다.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서울의 구의동에 도착했다. 오늘은 장병국 회장이 대원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지난 달 아들 혼사에 따뜻한 축하를 보내준 회원들에게 답례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구의동 <민속국시>는 구수한 고향의 맛이 살아있다. 팍팍한 속을 풀기에는 그 따끈한 국수가 아주 일품이다. 거기에다 파전과 막걸리와 맥주까지 곁들여지니, 서로 훈훈한 인정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분위기가 아주 가족적이다. 장 회장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오늘 처음 우리들 산행에 참석하여, 지평 민창우 대장과 함께, 대원들의 안전산행에 큰 도움을 준 김동만 대장에게도 깊이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 [에필로그] — 고통만큼 넉넉한 행복감을 주는 산(山)
☆… 강원도 정선의 ‘닭이봉’은 일반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오지의 심산(深山)이다. 그만큼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이 그대로 살아있고 지금까지도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세상의 아무리 아름다운 명승이라도 유명세를 타게 되면 그 아름다운 모습이 훼손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산을 좋아하면서도 산을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일시적인 기분이나 행락의 장소로 산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순수한 생명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청정하고 싱그러운 자연은 우리의 심신을 건강하게 한다. 산행은 일종의 고행(苦行)이다. 혹자는 ‘뭐 하려고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말하지만, 그 고행이 주는 그 은근한 통증이 바로 심신의 건강을 살려내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산과 자연은 사람을 순수하게 한다. 그리고 그 오르고 내리는 고통만큼 우리에게 청신한 행복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우리는 변함없이 산을 찾고 하늘과 자연에 대하여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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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알은붉은오목눈이새알같습니다
뻐꾸기가탁란시키는새로유명하지요
잘읽고갑니다
고문님 감사합니다.
감탄과 감단일 뿐이고
좋은글 잘 경청하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또한번 감사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새재 사랑산악회 정겨운 모습입니다. 사진 글 잘보았습니다.
아무도 보여주지 않아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별처럼
우리 사는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선
오늘도 자기의 할 일를 묵묵히 해냐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햫기롭습니다
새재 사랑산악회는
새재 사랑산악회 회원님들의 친목과 발전을 위해 묵묵히 애써주시는
오고문님이 계서서 더욱 향기가 나는듯 합니다.......사랑합니다(에스아이 = 백승일)
그렇게 험악한 산길을 걸으셨군요...
저도 그 시간에 길도 없는곳을 헤매며 내려오느라 죽을고생했습니다..ㅎㅎ
주옥같은 후기 잘 읽고 다음달 산행은 꼭 참석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