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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날에
아무 약속도 없고 주말행사처럼 이어지는 혼례도 오늘은 한 건 없다. 아내도 누님들과 선약으로 진짜 모처럼 찾아온 해방된 주말이다. 다시 오지 못할 이 황금에 하루를 그냥 보내면 나 답지 않다.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으로 주섬주섬 전날 쪄 놓은 옥수수 두 개를 작은 손 가방에 챙겨넣고 도봉역으로 향했다. 십 여분 기다려 한반도 서북쪽으로 향하는 동두천행 전동차에 올랐다. 오전이 다 지나갈 즈음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인해 전동차 안은 발 디딜틈이 없다. 나에게만 오는 봄이 아닌가 보다. 집 앞 골목이나 도봉산 자락을 비롯해 주변엔 따뜻한 남쪽나라 빠알간 동백의 잎술처럼 화사한 꽃 소식은 좀 더 기다려야 하는 나의 주변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이른 봄 야산에 모습은 아지랑이가 기지개를 펴듯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모습이 이 따금씩 보이는 누르스름한 잔디 모습과 함께 자작나무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예 그냥 서서 덜컹거리는 열차 바퀴소리를 들으며 가기로 마음 먹었다. 덕정역을 지나니 하이킹 동호인들의 한 무리가 열차와 함께 달린다. 이 따금씩 볏집을 태우는 농부들에 모습과 겨우네 묻혀있던 폐비닐을 걷어내는 시골 아주머니 모습도 보인다.
동두천역에 도착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몇 달 전 백마고지역이 개장됐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철의 삼각지 제일 가까이 있는 백마고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백마고지행 열차를 타려면 동두천에서 국철로 갈아타야 한다. 1시 30분에 출발하는 백마고지행 열차표(1,000원)를 구입하고 나니 12시 30분이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기에 일단 소요산행 시내버스에 올랐다. 두 세 정거장 거리다. 많은 등산객과 나드리 상춘객들로 소요산역은 붐볐다. 동두천 출신 최수경 시인에 글이 역 건물에 언뜻 보였다. “소요산 왕방산 해룡산 마차산이 사철 절경으로 둘러싸고 꽃술 터 별나비 처럼 꿈을 나르며 실향민도 이방인도 모여 사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딱히 갈 곳이 없어 두리번 거리니 역 맞은편에 벨기에.룩셈부르그 6. 25 참전탑이 보였다. 서유럽에 작은 두 나라가 세계지도 극동 틈바구니에 끼인 한 작은 나라 한국에서 전쟁이 났다고 참전 16개국에 일원으로 피를 흘린 우방이었던 두 국가다. 어릴 적 베네룩스 삼국이라고 배웠다. “자유와 평화의 신념으로 공산군들과 싸웠던 벨기에, 룩셈부르그의 용사들! 고귀한 피를 흘린 448명의 전 사상자들의 이름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계실것이요. 우리는 그들의 업적을 찬양하며 여기에 비를 세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벨기에는 1개 대대병력을 파병하여 97명의 전사자와 350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룩셈부르그는 11명의 장교들을 파병해 풍전등화 처지에 놓였던 우리나라를 구했다. 하얀 모습에 참전탑과 주변은 잘 관리되고 있었으며 수 십년은 넘은 듯한 목련나무들이 수호신처럼 꽃망울을 솜털로 보호한 체 수호신처럼 참전 영령들을 대신해 따스하게 잠든 영령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소요산역 앞엔 “희생을 강요하면 대책을 강구하라” 라는 현수막이 몇 개 걸려 있기도 했다. 미2사단이 주둔하는 동두천시 주민들이 군사시설 때문에 발전을 못한다며 미군부대와 시설을 이전시키고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해결점을 찾기에 쉽지는 않은 문구다.
백마고지행 열차에 올랐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아니 지금 어느 때인데......이런 열차가 아직도 있나? 열차에 겉 모습을 보니 빛 바랜 회색에다 열차안은 오래 전 통일호 열차 모습이다. 도시 주변에서 깔끔하고 화려한 모습에 열차가 아닌 칠 팔십 년대 3등열차 모습이다. 그래도 열차안은 빈좌석이 없었다. 좌석은 앞 뒤로 마주보는 형태였고 출입구 쪽에는 세 명이 함께 마주하는 공동좌석이다. 의외의 모습에 좀 놀랐다. 어느 새 열차는 포천시 서쪽 끝인 초성리역을 지나 한탄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한탄교 다리를 건너기 직전 오른 쪽 방향으로 십 여분 정도 걸리는 교통편으로 포천방향으로 가다보면 열 두 개울과 허브공원을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심한 가뭄으로 한탄강의 물 흐름은 시늉만 내는 정도로 가뭄으로 인해 극 소랴이었으며 돌에 푸르둥둥 이끼들에 모습만 차창 넘어로 보인다. 한탄강역이다. 잠시 정차한 세 칸에 열차는 서서히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전곡역이다. 서북지역에서 제일 큰 군사중심지역의 역이다. 전곡지방에 넓은 논 밭을 가르며 열차는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간간이 대전차 방해물인 콩크리트 장애물도 보인다. 빨강 노랑 깃발에 군사훈련지역표시다. 역시 접적지역 최전방이다. 이 중서부전선과 농촌에도 봄의 기운은 완연했다. 남녘보다는 훨씬 늦게 오지만 신은 공평하다. 볏집을 불태우는 농부들도 이따금씩 보인다. 열차가 커브를 돌며 신망리 역에 가까이 도착하는데 오른 쪽 야산 밑에 두 아낙네들의 나물 캐는 모습도 보인다. 그림 같은 모습이다. 양구출신 박수근 화백의 그림도 생각났다.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 마다 봄 바람이 남으로 오네” 혼자 작은 소리로 흥얼거렸다. 보이는 철길 주변 개천에 모습들은 전형적인 이른 봄날의 매말라 있는 모습들이다.
신망리 역이다. 태풍전망대 가는 철길 안내판이 왼쪽으로 보였다. 몇 해 전 전망대 갔을 때 철책 안쪽에 보였던 노루 한 마리가 생각났다. 넘을 수 없는 인간들이 쳐 놓은 이념에 철책이지만 그래도 그 노루는 짝을 만나 사랑의 결실로 이 순간 인간이 모르는 철책 안에서 대 가족을 이루며 평화롭게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 안에서 본 신망리역 작은 뜰엔 장남감 같은 열차 앞부분이 전시되어 있었다. 비록 검은 모습이었고 작았지만 나의 집 정원에 끌어다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네 자녀와 함께 사십도 안된 듯한 아이엄마가 열차에 올랐다. 막내는 아들인데 등에 엎혀 자고 있었으며 세 딸은 재잘대며 사탕을 빨고 있는 모습이다. 요즘 세상에 참 보기드문 모습이지만 내가 본 모습은 행복했다. 이 세태에 골든여성과 편함, 미혼, 늦은 결혼, 사회문제 국가문제 등등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아이엄마와 아이들은 신탄리역에 내렸다. 아마 오늘 막연하게 남아 이른 봄을 사색하려고 열차에 올랐지만 아이엄마와 아이들에 모습이 더 기억 될것만 같다.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에요. 예. 그러세요..... “도시가 아닌 곳에서 남편은 어떤 일에 종사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네 아이들을 잘 양육하며 자연을 벗 삼아 무럭무럭 자라 건강하게 살기를 보이지 않은 곳에서 소원합니다“ 라는 말로 답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광리역을 지나니 문득 조카 생각이 났다. 이 근처 동막리라는 포병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복무기간이 벌써 반을 훌쩍 넘었다. 올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 제대하리라. 면회 한 번 가보지 못한 사형제 중 하나 있는 남자조카다.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가을에 전역하고 보자며 무언의 약속을 했다. 이제 열차는 마지막 구간을 향해 달린다. 이곳 지역은 낯설지 않은 전형적인 전방 시골마을이다. 아내와 함께, 아니면 동호인들과도 여러번 다녀왔던 지역이다. 열차에 종착역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백마고지역이다. 지난 해 개통하고 이 역은 처음이다. 아들 면회객을 비롯해 이곳 전방지역 관광을 하고 역사에 붙여놓은 다녀고 부쳐놓은 노랗고 빨갛고 파랗고 색색들의 추신들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조그마한 손가방에 가지고 온 옥수수를 먹으며 말이다. 백마고지역은 철에 삼각지 지역 안보관광을 위해 많은 승용차들이 주차하고 있었다. 백마고지 관광은 도보로 해야한단다. 20분 정도 되는 거리를...... 바깥은 옅은 황사였고 바람이 몹시 불어 그냥 백마고지역에 그냥 머물렀다. 이곳저곳을 살펴 보면서, 붙어 있는 추억의 글들을 보면서, 연천, 철원지역에서 나는 농산물 판매장을 두리번 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대미 쌀이 철원을 홍보한다. 이곳 철원평야는 넓기도 하다. 포천시 끝인 운천에서 신철원 동송 월하리 평강고원으로 이어지는 평야지대는 6. 25전란과 현대사 굴곡에도 쌀이 남아도는 우리 국민들에게 지금도 질 좋은 양식을 공급하고 있다.
세시 반이다. 다시 동두천을 향해 출발한다는 열차 안내 방송에 얼른 열차에 올랐다. 타고 왔던 그 열차다. 벌써 열차안 좌석은 거의 찼다. 동두천으로 향하는 차창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서히 미끄러지듯 열차는 출발했다. 신망리를 지나며 차탄천에 적지 않은 물이 봄 햇살에 유난히 반짝거리는 전형적인 농촌에 모습이다. 십여년이 지났을 오래 전 전방지역에 큰 비로 이 개울이 범람해 많은 피해를 줬던 차탄천이었지만, 연천지역 농업용수와 주민들에게 공급하는 생명수와 다름없는 귀한 물줄기다. 열차안은 스며드는 강한 햋빛으로 따스함이 내 눈꺼플을 스스르 덮는 느낌이다. 동두천역이다. 서울행 전철은 소요산에서 승차한 승객으로 않을 자리는 없었지만, 차창 밖 풍경은 남녁에 화신을 재촉하듯 열차에 덜커덩 덜커덩 거리는 바퀴소리만큼 빨라지는 모습이다. 무언가 머리속에서 맴돈다. 괜찮은 하루였다.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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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드리 가고 싶으시죠.
봄의 기운이 다가 오느 주말입니다. 행복에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멋져요 정말 멋지게 사시네요.걸리적임이 없는 깔끔한 주변이 부럽기도 하구요.
난 겨우 소요산까지 밖에는 못가봤는데 덕분에 철원까지구경 잘 했어요.다시 한번 6. 25도 회상해 봤구요
글솜씨도 정말 좋아지셔서 재미있게 잘 정리해 주셔서 정말 잘 읽었읍니다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조정자 비록 혼 자만의 심심한 나들이었다고 느낄수 있겠지만,
결코 심심하지 않았던 나름대로의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사님
노란 햇살이 쏟아지는 봄날에 정한 곳 없이 떠도는 발길이 정겹네요^^
이제 여행작가로서의 새로운 변신......
장로님! 11일경이면 동두천행 야산주변에도
만물들이 파릇파릇 돋아 나겠지요??? 봄 나들이 코스 잡아볼까 합니다.
좋지요~
예. 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