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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바람처럼
하루 종일 찌푸리던 날씨가 해 질역이 되자 하늘은 차츰 맑아지기 시작을 하였다.
바다에 인접한 부대의 막사에서는 언제나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저녁이 되자 조
용해지고 다만 보초를 교대하려는 병사 몇 명이 총을 들고 보초막으로 이동을 한다.
바닷가의 가을저녁은 여름 같지 않아서 해만 떨어지면 벌써 을씨년스러울 만큼 바람이 서늘하다.
그 시각 새로 지급된 군복을 입은 사병 두 명이 막사 뒤편으로 가더니 담배를 피우기 위해 막 라이터의 불을 붙이고 한 모금을 기분 좋게 빨아 들였다가 내뿜는 순간이었다.
마침 당직 사령이 지나다가 담배 피우는 병사들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 너희들은 어느 소속이냐.”
그렇지만 파도소리에 묻혀 들리지를 않았는지 둘은 담배연기를 허공에다가 내뿜고 있었다.
그때 분대장도 막 막사 밖으로 나오다가 당직사령을 만난 것이다.
“ 충성 .”
분대장이 거수경례를 하자 그는 한마디를 하였다.
“ 분대장. 너의 소대원 교육 좀 잘 시켜야 하겠다. 담배는 절대로 옥외에서 피우면 안 된다고 하였지, 특히 저녁이 되면 그것이 적의 표적이 된다고 하였는데 분대장이 책임을 지라오.”
당직 사령은 그 한마디를 하고는 뒤돌아서서 옆 동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당직 사령은 다른 때 같으면 분대장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가격을 해도 몇 번은 하였을 것이나 그날은 잠자코 돌아간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 야 너희들 내말이 말 같지 않았더냐.”
분대장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돌진을 하였지만 파도소리는 분대장의 격앙된 목소리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 야 너희들 내 말이 안 들려.”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의 상체를 향해 손바닥이 날아가더니 다시 구둣발로 두 병사의 옆구리를 걷어내 차자 둘은 등걸토막처럼 나곤드라진다.
두 병사는 아직 사회의 물이 덜 빠진 상태의 뉘 집 막내아들처럼 절도도 없는 신병이었다.
“ 지금부터 제2 보초막까지 포복한다. 실시.”
분대장의 말이 떨어지자 포복을 하기 시작하는데 병사 하나의 동작은 꽤 빨랐다.
분대장이 기압을 준 후에 곧바로 막사로 들어가자 김 상병이 막 무장을 하는 찬 라였다.
“ 김 상병 무얼 하고 있어 어서 순찰하러 나가지 않고.”
분대장이 다그치자 김 상병은 급하게 총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복창을 한다.
“ 충성.”
“ 가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가? 오후엔 통 보이지를 않던데 말이야.”
사실 김 상병은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가 편치 않으시다는 연락을 듣고는 마음이 착잡해서 하루 종일을 막사 안에만 있었다.
“예. 골이 좀 아파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 골이 아팠다고 그렇다면 진작 의무대에 가서 약을 타다 먹지 않고 그랬어.”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얼마 있으면 처남 남매지간이 될 터인데 뭘 그렇게 어렵게 대하나.”
“ 예?”
“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테지만 어제 밤에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김 상병이 물끄러미 분대장을 바라보자 그는 김 상병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하였다.
“ 분대장님. 제 누이가요. 꽤 예쁘거든요. 지금 한창 남자를 찾고 있는 중인데 누나 눈에는 보이는 사내들 마다 맨 쭉정이 같다고 하더라구요. 분대장님 같으면 우리 누이 눈에 쏙 들것 같은데 말이에요.”
“ 제가 그랬단 말입니까.”
“ 만날 술 못 한다고 하면서도 혼자서 슬금슬금 마시는 이 상병한테 물어보라구.”
김 상병이 생각해보니 어제 밤에 휴가를 갔다 온 곽 일병이 저녁을 사기에 분 대원이 함께 단골 맥주 집엘 간 것이다.
거기 가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고 2차를 간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사실 김 상병은 아버지 걱정을 하다 보니 그날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를 않자 더위 먹은 황소가 뜨물 들여 키듯이 쉴 새 없이 술을 퍼 넣었던 모양이다.
만일 분대장에게 정말 그런 말을 하였다면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닌가.
분대장은 서울대 출신으로 졸업 후에 삼성에 입사를 하였다가 입대를 하였는데 제대를 하게 되면 바로 복직이 된다고 하였다.
김 상병이 생각을 해보아도 비록 누나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긴 했어도 눈썰미가 있고 재학 중에 특허신청을 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풍부하였는데 그 소질을 살리지 못하고 현재는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분대장을 매부로 삼고 싶었던 것은 그가 외아들이기도 하지만 며느리 감 만은 고등학교 출신을 어머니가 고르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밀로 간직할 말을 미리 발설해버렸으니 체면이 구겨지게 된 것이다.
김 상병은 그런 일이 있은 다음에 아무래도 누나에게 분대장에 대해서 소개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분대장의 인물 됨됨이를 상세히 적어서 보냈던 것이다.
그러자 누나는 그 말에 펄쩍 뛰면서 누가 군인 아내가 되고 싶다더냐 하면서 동생을 나무라는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김 상병은 모처럼 누나를 좋은 집으로 시집을 보내려 하였는데 책망만 들었으니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고만이라는데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펄쩍 뛰던 누나한테서 다음날 도착한 등기편지 내용은 엉겁결에 편지를 써서 붙이고 난 다음에 생각을 해보니 그런 집으로 시집을 간다면 호박이 덩굴채로 구르는 격인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면서 이 편지가 내 진짜 마음이니 꼭 그렇게 되도록 주선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편지 끝에다가 이번에 휴가를 나오게 되면 어렸을 때 늘 사달라고 하던 캬보이 모자에 권총 차는 홀태바지까지 사주겠다는 것이다.
김 상병은 그 편지를 받아 보고는 혼자 웃으면서 편지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 누나. 내가 지금 초등학교 어린아이인줄 아나. 캬보이 모자와 권총까지 사준다니? 나 지금 장가를 갔으면 아들 삼형제는 거뜬히 두었을 미남 총각이란 말이야. 알았어."
“ 동생아 미안하다. 니 벌써 나이를 그리 먹었나. 이 누나는 아직도 너를 똥 누고 밑 씻겨 달라던 어린 동생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누나도 그러고 보면 그 편지를 받고 나서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기에 이런 답을 보내 왔을 것이다.
김 상병은 기왕에 말이 났으니 누나로 하여금 부대로 면회를 오라고 연락을 하였고 누나는 시간을 내서 한번 오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며칠 뒤에 부대에는 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니 앞서 담배를 피우다가 분대장에게 기압을 받던 병사가 보초를 서는 중에 오발로 다른 병사의 머리를 관통시켜 그 자리에서 사망케 하였던 것이다.
부대에서는 즉각 중대장과 선임하사 및 분대장의 책임을 물어 모두 영창으로 입창 조치를 한 것이다.
중대장님도 그렇지만 우선 분대장과는 좋은 인연을 맺고 싶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자 김 상병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군법회의에 회부된 세 사람은 모두 중징계를 받아 다른 부대로 인사 조치되었다고 하니 누나와의 맺으려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난 것이다.
사실 김 상병(경동)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다. 경동이나 누나가 집에 있으면 아버지의 조석을 해드릴 수가 있지만 누나도 객지에 나가 있으니 아버지는 때를 제대로 챙겨 잡수시지를 못하셨다.
그래서 경동은 군대를 갔다가 제대하게 되면 취직을 한 후에 바로 장가를 들어서 마누라가 아버지를 모시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는 학교 졸업 후 입영영장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시일이 있어서 그 안에 돈 벌 곳을 찾다가 마침 우체국에서 아르바이트를 1년간 하게 되었다.
그의 업무는 집배원 실에서 택배 물품을 배분하는 일로 매일같이 접수되는 택배가 많다보니 하루 종일 쉴 사이가 없었다.
하지만 일요일만은 낮잠을 자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강으로 낚시를 가다가 어느 날 부터는 독고노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에 참여키로 한 것이다.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언젠가 TV를 보다가 어떤 단체의 여직원들이 독고노인들을 찾아서 위문을 하고 음식까지 해드리는 것을 본 다음부터이다.
김경동은 매월 봉급의 일부를 떼어서 봉사활동 비용으로 썼는데 그러다 보니 친구들의 모임에도 자주 나가지를 못하였다.
그 무렵에 우체국에는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들어 왔는데 그는 외무고시 준비생으로 사회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외무고시하면 영어는 기본이고 제 2외국어를 한 가지 이상은 하여야 하는데 그는 영어 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단어를 오이는 것이다.
홍 옥화의 이름을 가진 이 아가씨는 매우 명랑한 편이지만 주위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려 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들리는 바로는 그는 무남독녀로 자라서 그런지 친한 친구도 별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을 하고 보니 홍 옥화가 보이지를 않아서 그날의 업무를 김경동이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그는 급성 맹장염의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소릴 듣고 나니 문병을 가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일과 후에 병원을 찾아가자 홍 옥화는 뜻밖에도 반가워하였다. 그의 말로는 어머니가 욕실에서 넘어져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친척도 별로 없다 보니 물을 떠다줄 사람도 없다면서 이런 때는 동생이라도 여럿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난 김경동은 마음이 찐해서 일과가 끝나면 말동무도 돼주고 물도 떠다 주는 심부름을 한 것이다.
사실 홍 옥화는 김경동을 처음 대할 때는 탐탁하게 생각지를 않았고 책을 보는 데만 열중하였는데 입원 후에 태도를 보니 너무도 고마웠던 것이다.
그래서 퇴원 후에 저녁을 한번 사주었는데 그날 이후 홍 옥화의 가슴에는 빨간 장미꽃 한 송이가 멍울지기 시작을 한 것이다.
“ 고맙기는 뭐가 고마워요. 같은 사무실에 있다 보니 동정이 가서 문병을 갔을 뿐인데요.”
김경동은 홍 옥화가 저녁을 사면서 한 말에 대해서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
두 사람의 사이는 그 후에 ’꽃 본 나비. 물 본 기러기‘처럼 가까워지기 시작을 하였는데 홍 옥화가 더 적극적으로 김경동을 좋아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 직원들이 우리 두 사람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것 같으니 너무 다가오지 말아요.”
김경동이 경계의 말을 하자 옥화의 눈빛은 금방 이슬 맺힌 연잎처럼 영롱해지더니 환하게 웃으며 귓속말을 한다.
“ 난 오빠가 그런 사람인 줄을 처음에는 전혀 몰랐어요.”
김경동은 그의 말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빤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런데 옥화는 갑자기 김경동의 바지 주머니에다 손을 찔러 넣는다.
“ 아! 왜 그래요.”
“ 혹시 주머니에 자석이 있나 해서요.”
“ 내 주머니에서 웬 자석을 찾아요.”
“ 오빠는 그것도 몰라요. 사람 끄는 자석이 있나 하고 뒤져 본건데. 호호.”
옥화는 처음으로 경동을 오빠라고 불렀는데 경동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옥화를 꽉 끌어안고 말았다.
홍 옥화와 김경동은 그 후 일요일이면 파도치는 영동으로 바다구경을 가거나 설악산 비선 대며 금강굴까지 올라가 보기도 하였다.
비선 대 반석바위를 타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물보라를 본 옥화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신비스런 자연에 매료되고 있었다. 더구나 금강굴을 향해 올라갈 때에는 숨이 차다는 것을 억지로 손을 잡아끌어서 가파른 층계를 오르니 법당 안에는 금빛 찬란한 부처님이 두 사람을 굽어보고 계셨다. 경동이 합장을 하자 옥화는 경동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이끼가 낀 절벽바위에서 떨어지는 약수를 컵에 받아서 옥화에게 주자 아무 말 없이 받더니 솔잎을 타서 돌려주는 것이다.
“ 설악산의 신비가 가득 담긴 약수이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부처님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하자 옥화는 한참 후에 “ 비밀.” 하더니 눈을 찡긋 하였는데 옥화의 눈은 은구슬처럼 아름다웠다,
옥화의 아버지는 전직 외교관으로 주로 미국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고 귀국을 하였는데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병인 폐암으로 옥화가 6학년 때에 돌아가셨다.
옥화의 어머니는 남편이 돌아가시자 외동딸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외교관으로 키우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였다.
옥화는 후일 외교관이 된다면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것을 알 수 없으니 늘 마음에는 걱정이 쌓이는 것이다.
더구나 장차 직업 외교관이 되어 해외로 나가게 된다면 필경은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서 생각한 것이 어머니가 스스로 개가를 하시면 어떨까 하는 망상까지 해본 것이다.
속담에 ‘과부가 찬밥에 곯는다“ 는 말도 있듯이 그동안 어머니는 혼자되신 이 후 딸을 기르시느라 더운 밥 한술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시고 살아오신 것이니 이제는 자유롭게 사시게 해드리는 것도 딸이 할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지 얼마 후에 김경동과 양가 부모님에 대한 걱정을 하다가 옥화가 생각했던 말을 하자 경동도 그렇다면 이번에 두 분을 한 끈으로 맺어 드리면 어떠냐고 한 것이다.
“ 그렇게 되면 우리가 걱정하는 일은 다 해결이 되는 셈이네. 야, 멋있는 발상이야. 야호 .”
옥화가 경동보다도 더 좋아하였다.
둘은 그렇게 하고 각각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옥화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렇게 된다면 둘의 사이는 애인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음날 옥화는 서둘러서 출근을 하자마자 그 말부터 꺼냈다.
“ 오빠. 우리 어제 한말 취소해야겠어요.”
“ 무슨 말인데 그래,"
" 어제 아버지 어머니 맺어드리기로 한 약속 말이에요. “
“ 왜 갑자기 마음이 변했는데 그래 . “
“ 오빠는 센스가 그렇게도 없어요.”
“왜 점점 어려움말만 해 .두 분을 맺어드린다면 그렇게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어.”
“ 오빠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멍텅구리야. 그럼 우리는 어찌 된단 말이야. 난 몰라
몰라아…. “
옥화는 제 말에 못 이겨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다.
그제야 옥화의 말을 새겨들은 경동은 옥화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옥화야. 네 말이 맞는 말이다. 내 짧은 소견의 어제 한 말을 모두 취소하자.”
김경동은 그 말을 하고는 옥화를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자 옥화는 밀치지 않았다.
옥화야 말로 처음으로 대할 때에는 모든 것을 낯설어 하고 온실에서 길러내는 화초처럼 청초하고 연약한 면이 있었지만 차츰 세상을 알아가는 속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옥화는 외무고시에 응시를 하게 되었고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옥화의 이름이 또렷하게 게시판에 걸려 있자 옥화는 고무공처럼 방방 뛰면서 좋아하였다.
“ 이제 우리나라에도 여성 외무장관이 탄생하게 생겼어.”
“ 오빠는. 내가 다른 나라로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 오빠를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사실 김경동도 옥화가 멀리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만일 가게 된다면 옥화의 어머니에 대한 걱정도 되는 것이었다.
“ 옥화야. 너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나에게도 곧 징집영장이 나오면 너를 자주 만날 수도 없고 어쩌면 2,3년간 헤어질지도 모른단 말이야.”
“ 뭐야. 벌써 1년이 지나갔단 말이야. 그 놈의 1년이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갔지.”
옥화는 요즘 들어 경동이만 보게 되면 징징대며 어린애처럼 울기만 하였다.
“ 오빠. 엄마는 날 보고 왜 요새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느냐고 걱정을 하시는데 난 그럴 때마다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속이 다 타 들어가는 것 같아요.”
경동은 옥화가 하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옥화와 얼른 결혼을 하게 되면 다 해결이 될 일인데 그러자니 그것은 현실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다.
“ 아! 어떻게 하면 좋지.”
그러는 사이에 경동에게 영장이 나왔고 일주일 후에 논산훈련소로 입소하게 된 것이다.
“ 오빠. 정말 우리는 이별을 하는 거야.”
옥화는 입영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메일같이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며 울었다.
“ 이제는 울지 않는 연습도 해야 돼. 네가 그렇게 만날 우는 모습을 보이면 입대 후에 사격 연습을 하다가 너 생각하느라 총구멍도 제대로 찾지 못할지도 몰라. “
“ 남자들은 뭐 보이지 않는 구멍도 잘 찾는다면서요.”
“ 그건 또 뭔 소리야.”
“ 내가 알아. 언젠가 오빠가 한 소리란 말이야.”
“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하였지? 다른 소리는 못 알아듣더니 그런 소리는 용케도 기억을 하네.”
“ 오빠가 얼마나 웃기는 소리를 잘 하는데 그래. 언젠가 시골 디딜방아 간을 지나다가 날 보고 뭐라고 하였는지 알아요.”
“ 내가 방아를 보고 뭐라고 그랬는데. “
” 이 세상에 방아가 몇 가지냐고 묻더라구요. “
“ 방아가 한 가지 밖에 더 있느냐고 하였더니 오빠는 그렇지 않다면서 방아 중에는 곡식을
찧는 방아가 있고 또 한 가지는 뭐 애를 만드는 방아가 있다던가. “
“ 설마 그런 소릴 하였을 라구,”
“ 정말 그랬다니까요. ”
“ 난 통 기억이 안 나는데 방아소리를 하다가 별 소리를 다 한 모양이군 그래.”
그런데 입대날짜가 이틀로 박두한 날 옥화에게는 6개월의 연수통지가 나왔는데 연수 후에 해외로 발령이 날 것이라고 하였다.
“ 연수 시간이 6개월이면 오빠 만나기가 쉽지 않겠는데 어떡하지.”
“ 나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과정을 마치면 바로 부대 배치를 받을 터인데 그때 면회 한번 오면 될 거야.”
“ 면회를 오라구요.”
마침내 김경동이 입대하는 날 기차역까지 나온 옥화는 어제의 그 명랑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눈물부터 펑펑 쏟으면서 가지 말라고 앞을 막는 것이다.
“ 아직 6개월 동안은 국내에 있다면서.”
“ 그래도 아주 멀리 가는 사람 같고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눈물이 나와요.”
“ 내가 가긴 어디를 멀리 간단 말이야. 운이 좋으면 유엔군 파견군으로 나갈지도 몰라. “
“ 아! 그렇다면 내가 가는 곳으로 파견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마침내 기차가 떠나기 시작하자 옥화는 손수건을 흔들었지만 그 모습은 점점 작아지다가 보이지를 않았다.
김경동이 논산훈련소의 훈련과정을 이수하고 바로 영천의 부관학교에서 2개월간의 교육을 마친 후에는 동해안의 육군부대로 배치를 받아 본부중대의 서무계를 맡게 되었다.
그는 매일같이 대간첩작전의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도 옥화에게 편지를 여러 번 써서 보냈지만 답장이 오질 않아서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옥화가 부대로 전화를 한 것이다.
옥화는 수화기에다 대고 너무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아서 이번 토요일에 면회를 오겠다는 것이다.
토요일이 되자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정장을 하고 있는데 10시에 면회를 왔다고 하여 한 다름에 뛰어나가니 그는 휴게실 한쪽 벽에 기대앉아 있다가 팔딱 뛰어 안기는 것이다.
“ 여기서 이러면 안 된 단 말이야.”
“ 왜 안 된다는 거야. 군인들은 여자를 안지도 못한대요.”
옥화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도 않은 채 경동에게 매미처럼 착 달라붙는 것이다.
“ 앗. 뭔 냄새가 이리도 지독하지.”
“ 응. 어제 야간훈련을 하고 온 후에 땀을 못 씻고 잤더니 그 냄샌가 봐.”
“ 야간 훈련이라는 것이 고된 모양이지요. 그러고 보니 그 냄새는 오빠의 살 냄새네.”
“ 땀 냄새가 싫지.”
“ 아니. 오빠의 이 살 냄새를 오래도록 잊지 않을게요.”
이날 옥화는 한과 한 곽을 사가지고 와서 동료들과 나누어 먹으라는 것이다.
“ 언제 그렇게 사람 챙기는 교육을 받았어.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어. 얼굴이 좀 빠진 것 같네.”
“ 서방님도 살이 빠지셨아와요. 호호.”
옥화는 한 마디를 하고는 이내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다.
“ 울기는 ? 어머니는 건강하신가.”
“ 여기를 오면서 엄마에게 우리의 관계를 말씀드렸어요.”
“ 그랬더니.”
“ 한번 만나고 싶대요.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인사를 드리고 오는 건데 그랬어요.”
“ 그러게 말아야. 나도 사실은 말이 나오지를 않아서 하지를 않았지.”
“ 오빠가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나 배고프니 우리 밥부터 먹어요.”
식당은 면회를 온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옥화는 집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더니 배고 몹시 고팠다면서 밥 한 사발을 다 먹는 것이다.
“ 이다음에 해외로 발령이 나거든 3년만 있다가 돌아와. 나도 그때가 되면 제대할 것이고 그때 우리 결혼하자.”
“ 3년만 있다가 오라구요. 난 몰라. 생각하면 너무 난감할 뿐이에요. 더구나 어떻게 그렇게 긴 세월을 나 혼자 가서 있어야 할지.”
점심을 먹은 다음에 두 사람은 겨우 손만 잡아보고는 헤어졌는데 옥화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그날도 김경동은 아침 일찍 중대 본부에서 업무 파악을 하고 있는데 중대장님이 몸이 편찮아서 출근을 하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런 때는 이를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선임하사님은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김경동은 아무 조치도 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이날 갑자기 육군 본부 감사팀이 나온다고 해서 김경동은 어제 일보를 근거로 인원을 파악하다 보니 외출한 인원과 현원의 차이가 몇 명이 나자 감사팀은 중대장의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대장 대리로 선임하사가 보고를 하자 중대장의 행방을 찾게 되고 부대를 무단이탈한 상태로 확인이 된 것이다.
그러자 감사팀은 중대장의 경위서를 제출하라 하고는 다른 부대로 이동을 한 것이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대대장은 일이 난처하게 되자 선임하사와 인사계를 다음날 인사 조치를 하였으니 둘 다 경비중대로 전출을 시킨 것이다.
김경동은 선임하사의 지시대로 했는데 보초병으로 내몰린 것이 여간 억울하지 않았다.
그는 재학 중에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정학을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이번의 대대장의 처사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일로 중대장 본인의 잘못이 왜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느냔 것이다.
군대라는 것이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고 하지만 이일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김경동은 다음 날 대대장실을 찾아 간 것이다.
“ 일병 김경동 대대장님께 용무가 있어 왔습니다.”
대대장실에는 날카롭게 생긴 선임하사가 김 일병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용무를 말하란다.
“ 네. 대대장님께서 먼젓번 저에게 내려 주신 명령이 부당하다고 생각이 되어 왔습니다.”
” ‘과부 집에 가서 바깥양반 찾는다’ 더니 네가 뭘 잘못 알고 찾아온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가.”
그렇게 묻는데 대해서 뭐라고 답변을 해야 할지 몰랐다.
“ 너 군 생활을 얼마나 했나.”
“ 네 이제 10개월 되었습니다.”
“ 너 참 한심한 놈이로구나. 사내자식이 그런 것쯤 감수를 하지 못하니 이다음에 사회 나가서 어떻게 살 셈이냐.”
선임하시님의 조리 있는 말씀에 김경동은 고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양심의 가책이 되는 것이었다.
“ 군대라는 곳은 인간에게 불가능이 없다는 신념을 길러 주는 곳이고 나라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충성심을 길러 주는 곳이다. 지금 너의 행동은 남자로서 자격이 미달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며 우리는 그러한 군대를 기르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때에 마침 대대장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 무슨 일인가.”
“ 네. 먼젓번에 중대장님으로 인해서 인사 조치된 병사로서 대대장님을 뵙겠다고 왔습니다.”
“ 그래. 무슨 말인데 해보라오 .”
“ 네. 방금 선임하시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 기왕에 왔으면 나한테 말을 해보라우.”
“ 아닙니다. 없습니다.”
김경동은 대대장실을 나오면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운 것을 억지로 참았다.
대대장님께서 감사팀의 지적에 따라 누군가는 인사 조치를 해야 할 입장이라서 그렇게 하였지만 얼마 뒤에는 원대복귀 계획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니 김경동은 죽은 듯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보초근무는 매일 같이 3교대 근무를 하게 되어 있고 밤과 낮이 없었다.
김경동은 처음 경비대로 배속되면서 어떻게 하면 쉬운 시간이나 밤 근무를 면해 볼까 하는 궁리를 했었다.
그런데 선임하사님의 투철한 국가관과 불가능이란 용어를 인정치 않는다는 말에 감명을 받은 이후에는 매사를 솔선하고 어렵고 궂은일을 앞장서서 하였는데 어느 날 선임하사님이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 부대에서 모범생활을 한다면서.”
“ 아닙니다. 충성.”
홍 옥화는 마침내 6개월간의 연수가 끝나면서 미국의 뉴욕총영사관으로 발령이 났으며 곧 임지로 떠난다는 연락과 함께 한번 왔으면 하였으나 부대에서는 마침 을지연습중이라 장병의 휴가는 중지 상태였기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옥화는 만리타향으로 가는 사람을 배웅도 해주지 못하느냐면서 아이들처럼 전화에다 대고 징징 우는 것이었다.
군대라는 것이 자유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지만 옥화는 들은 체도하지 않고 그동안에 정이 떨어져서 그럴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김경동인들 마음 아프기는 옥화 못지않았지만 사람이란 누구에게나 헤어지고 난 후에는 또 다른 기쁨의 만남이 있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후 한 달 만에 뉴욕에서 붙인 편지를 받았는데 첫 장부터 보고 싶다는 말과 미국에 와서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너무 외로워서 만날 눈물만 흘린다고 하였다.
옥화는 마음을 달랠 수가 없을 때에는 센트럴파크에 가서 카우보이모자를 쓴 마부가 이끄는 말 마차의 뚜벅거리는 말발굽 소리를 듣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서점에 가서 동화책을 읽기도 한다는 것이다.
직장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였는데 미국에 가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라고 하면서 출퇴근길에 혹시 다른 사람과 조금만 부딪쳐도 “ 엑스큐스미.” 하고는 미소를 짓는 그들에게서 사람 사는 멋을 발견하였단다.
한국에서는 이런 질서 생활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예절에 대한 기본적인 행동을 실천하겠다고 하였다.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는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지 어디 출장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놀라운 것은 가는 곳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가 있어서 남다른 국력의자부심을 느낀다고도 하였다.
더구나 1950년 6.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참전을 하여 무려 5만 여명에 이르는 군인들이 전사를 하였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각주마다 6.25에 대한 참전비를 해 세우고 그 분들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가슴이 뭉클하였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옥화야 말로 참다운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진 외교관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외톨이로 자라서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꺼려하던 옥화가 외국의 바람을 쏘이더니 조국과 국민의 삶에 대한 걱정까지 하는 애국자가 되었으니 언젠가 외무고시에 합격을 하였을 때에 한 말을 상기해 보았다.
“ 이다음에 여성외무장관이 되도록 해 봐.”
그리고 한동안 소식이 없던 차에 편지가 왔는데 이번에는 음식이 맞지를 않아서 그런지 만날 병원엘 간다는 내용이었으며 보고 싶어 죽겠으니 어떻게 하던지 한번만 와 달라는 것이다.
“ 옥화야. 너 말이 되는 소리 좀 해봐라.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워서 실천하려 한다더니 내가 지금 어떻게 네 곁으로 간단 말이야. 오빤 지금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란 말이야.”
김경동은 편지를 향하여 말을 했지만 만 리 밖에 있는 옥화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왔다.
그러고 나서 다시 두 달 후에 배달된 편지를 반갑게 뜯어보다가 깜짝 놀란 것이다.
그날 옥화는 저녁에 회식이 있어서 다른 날 보다 늦게 집을 향해서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에 난데없이 길 가던 소년이 달려들더니 옥화를 넘어뜨리고는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다는 것이다.
너무도 갑자기 봉변을 당하자 온몸이 떨려 꼼짝을 못하다가 겨우 집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대사관에 이야기를 하였더니 대사관에서는 근처 안전지대로 방을 옮겨 주었다.
그런 다음부터는 길조심을 몹시 하는데 어느 날 직장의 직원 초청을 받고 집 구경을 하게 되었다.
딸이 없는 그 집에서는 앞으로 자기를 딸처럼 보살펴 주겠다고 하더니 원하면 신랑감 까지도 소개를 해줄 것이라고 해서 웃고 돌아왔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어쨌거나 옥화는 미국에 가 있으면서도 마음은 집의 어머니와 오빠에게 매여 있다고 하면서 낮에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밤만 되면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울고 오빠가 그리워서 잠을 못 잔다고 하였다.
타국 만리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옥화야말로 앞으로 더욱 강인한 여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이란 같이 있으면 무한정 정이 들고 멀리 떨어지면 들었던 정도 식어진다는데 하는 불안한 마음까지 들기도 하였다.
옥화가 한눈을 팔지 않게 하는 방법은 그의 옆으로 다가가는 것이지만 그에게는 그럴 힘이 없어서 단지 편지를 쓰고 난 뒤에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 옥화야. 너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
그런데 그렇게 자주 오던 옥화의 편지가 뜸해지더니 한 달이 지나 석 달 그리고 반년이 지나서야 겨우 온 것이니 그동안의 소식이 너무도 궁금했던 것이다.
김경동은 일등병에서 상등병으로 진급이 되어서 옥화의 축하를 받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것이 서운하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급하게 편지를 뜯다가 김 상병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으니 편지의 첫머리부터 전과 달랐기 때문이다.
김 경 동 씨.
진작 편지를 써야 하는데 이제야 소식을 보내게 되어 미안해요.
처음으로 미국에 오고 보니 모든 것이 낯이 설어서 오빠 생각만 하였는데 세월이 가다보니 이제는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어떠한 난관이라도 헤쳐 갈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정말 뜻하지 않은 일이 내 앞에 벌어져 부득이 경동 씨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펜을 들었지요.
언젠가 친구들이 하는 말이 “ 첫사랑은 바람처럼 살아지기 쉽다.”고 하여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하였는데 그 후 그 말이 맞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으니 내 마음에 병이 단단히 났기 때문이겠지요. 그 병이 무슨 병인지는 묻지 말아 주세요. 나 자신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나도 모르니까요. 미안하고 할 말이 없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잊어주세요.
처음으로 부대에 면회를 갔을 때 땀 냄새가 건강한 남자의 상징 같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요. 그러고 보니 우리의 운명은 아마 그날이 마지막이었던가 봐요. 난 부대를 나오면서 땀 냄새를 맡지 않으니까 살 것 같더라구요.
우리는 한때 서로 좋아했지만 봄에 피는 꽃이 일찍 떨어지듯이 지금은 그것이 한낮의 잠깐동안의 꿈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만 보아도 진작 헤어지기를 잘 하였는지도 몰라요.
나는 지난달에 어머니를 이리로 모셔왔는데 미국에서 사귄 친구네가 다 주선을 해 주었지요. 참 좋은 사람들이에요. 한국에는 나보다도 더 훌륭하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을 거예요. 오래도록 행복하시기를 빌게요.
뉴욕에서. 홍 옥 화 .
편지를 읽고 다시 훑어보다가 경동은 너무도 어이가 없고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와 같다더니 옥화가 미국으로 떠난 지 겨우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를 단 번에 다른 사람으로 변화를 시킨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옥화를 정말 사랑했고 옥화 또한 김경동을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벌써 그 사랑의 종말이 오다니……….
” 옥화야. 안 돼 그것은 절대로 안 된단 말이야…”
김 상병은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싶었다.
면회를 왔을 때 옥화의 한 말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 오빠의 살 냄새를 오래도록 잊지 않을 거야.”
金 斗 洙
2016.9월 호 (한국소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