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반,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가슴이 철렁!
이른 아침에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벌써 15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새벽에 5시에 동생의 울먹이는 전화를 통해 들었던 어머니의 부음 소식에,
내 심장은 한 길 낭떨어지로 쿵! 하고 떨어져 봤기 때문입니다...
깜짝 놀라 잠을 깨고,
트라우마로 놀라 날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받은 전화...
세실리아 수녀님 전화였습니다.
"신부님... 우리 정혜 엘리사벳 수녀님이 너무 힘드네요...
마지막으로 신부님 목소리라도 듣고 가고 싶은 것인지...
마지막 인사 해 주시겠어요?"
동창의 마지막이 너무도 어려우니까... 전화를 하셨던 겁니다.
나의 일방적인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수녀님은 말씀을 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마지막 숨을 거칠게 내 쉬는 소리만이 귀로 들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인사를 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했던지...
작년까지만 해도, 수녀님은 누님같이, 생일이나 축일같이 특별한 날이면 축하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허나, 이번에는 특별한 날에, 수녀님이 임종준비를 하신다는 메시지를 동창수녀님으로 부터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벌써 열흘 넘게 지난것이니...
곁을 지키는 사람도 지치고, 또 본인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소식을 들은 날부터 9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03위 성인께 전구를 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설마 그 안에 손을 잡아주시겠지... 했는데,
그 기도가 다 끝나고 나서야 성인들이 찾아오셨던가 봅니다.
수녀님과 전화 통화 하고나서, 9시간 후에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만남이 여러가지 여러모습이라 하지만,
수녀님과의 만남은 다소 '운명적'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금천동 성당 보좌시절, 중고등부 교재를 구하고자 무작정 찾아갔던 서울교구 청소년국,
시골 교구, 촌티가 줄줄 흐르는, 꽤재재한 모습의 처음보는 신부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반겨주고, 도와주고, 굳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서울교구 청소년국 신부를 만나게 해 주는...
너무도 좋은 인상의 수녀님이셨습니다.
'야... 이런 좋은 수녀님도 계시구나...'
본당에 내려와, 주임신부님과 대화중에, 그런 좋은 수녀님이 계시더라... 했더니
그 수녀님 이름을 물었습니다.
한국 순교성인의 이름인지라, 특별해 기억한 그 이름을 말씀드리니,
신부님 왈, "그 수녀님, 우리 본당으로 오실꺼야." ^^
열흘 후, 부임하시고, 서로 만나며, 참 재밌는 인연이라 우리는 크게 웃었습니다.
그런 좋은 인연이었기 때문일까...
수녀님은 참 좋은 몫을 많이 나눠 주셨습니다.
첫 인상이 좋았지만, 나중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초지일관... 늘 한결같은 미소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딸 답게,
필요한 자리에 도움의 따뜻한 손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수녀님은 모든 상황안에서 가장 긍정적인 것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또 그렇지 못한 불편함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기쁘게 즉시 주님께 봉헌해 드리는...
참으로 마음이 깨끗한 분이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일까...
편안히 다른 소임을 맡으셔도 되었겠건만...
험한 선교지에 나가시게 되었고...
거기서 어려운 상황을 맞으셨던 것이지요....
멀리 있으니... 사람구실도 못하는 구나...
물론, 워낙 구교우집이고, 집안에 신부수녀들이 많으니 기도부대도 많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도리가 있는 것인데...
수녀님의 임종준비 소식을들으면서, 부고를 받으면서,
해외에 사는 우리 교우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애달플 것인가...
가보지도 못하는 그 심경이...
다들, 그런 마음들을 한켠에 담아놓고 살아가는 분들인지도 모르겠다...
수녀원 미사를 하고 와서, 바로 부고 메시지를 보았습니다.
옛날 어른들 말씀이, 죽자 마자 가장 필요한 것이 미사라고 들었기에...
눈물을 닦고, 바로 다시 미사를 차렸습니다.
수녀님의 영혼을 위한 첫 위령미사...
위령미사의 복음이 여러개가 있지만, 첫 복음을 읽었는데,
마태오 복음 5장의 행복선언이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그 말씀을 읽는데...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수녀님의 카톡 프로필은 늘 "정혜 엘리사벳~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 수녀님은 하느님을 뵙겠구나...
그럼 되었다!
고통의 터널을 떠나,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손을 잡고,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을 뵙고 계실 수녀님!
수녀님 같이 좋은 분을 만나고, 많은 기도와 사랑과 도움을 받았음에 감사 드립니다...
제가 받은 많은 부분,
이제 제가 이 땅에 있는 동안,
미사 안에서, 기도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갚아 나가겠습니다.
수녀님도, 하느님 나라에 들거든,
이런 저런 부족함 투성이의 안타까운 저를 기억해 주세요.
감사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첫댓글 우리 신부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 정혜 엘리사벳 수녀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