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리에 다녀와서
손진숙
초여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명월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살며시 적셔 주는 비였다.
마을로 들어서자 우선 빈집이 눈에 띄었다.
정성을 다하여 기른 아들딸들이 모두 떠나버린 집이었다. 사람과 사물을 알게 하고 세상과 자연을 깨닫게 한 훌륭한 보금자리였다. 그 보금자리를 어머니 홀로 지키고 있었다. 감나무와 음나무, 오죽烏竹에 둘러싸인 집.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들과 친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었을 동네였다.
명월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부러 집을 비워 놓았는지도 몰랐다. 비어야만 찰 수 있음을 깨달은 분의 뜻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를 맞아준 집에서 차려 내온 점심상이 입맛을 돋우었다. 재래의 솜씨로 빚은 동동주. 나는 아직 술맛을 모른다. 취해도 괜찮을 만치 자유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터라 술을 배우지 않았다. 동동주 한 잔을 받아든 선생님께서는 “술을 알아야 문학을 안다.”고 하셨다. 술잔을 들어 마시는 시늉만 하고 내려놓는 나는 문학과 먼 거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동주가 담겨 나온 그릇은 오디빛 옹기였다. 음식 고유의 맛을 살리려 함이었으리라. 질박한 모양새에서 풍기는 토속적인 맛을 잃지 않게 하려는 정성으로 보였다. 이제는 옹기도 보기 드문 세상이 되었다. 무겁고 다루기 불편하여 차츰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는 밀폐 용기가 새롭게 선보인다. 김장김치를 저장하는 김치냉장고도 갈수록 편리해지고 있다. 추운 겨울, 땅속에 묻어 둔 김장독에서 꺼내 먹던 김치 맛은 옛이야기 속에 묻혀 가고 있다.
점심 반찬은 주로 나물 종류였다. 취나물 등 나물마다 특유의 맛과 향이 구미를 돋우었다. 나물을 먹고 사는 명월리 사람들은 풀의 부드러움과 자연의 향기가 가슴속에 배어들어 인간미가 넘치리라.
산에서 갓 채취한 송이의 감칠맛을 즐기기도 하였다. 살아 있는 금강송 뿌리에 기생한다는 송이버섯. 송이버섯의 그윽한 향과 곧은 줄기 위 갓 쓴 모습은 지조 높은 선비의 품성을 대하는 듯 숙연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추어탕에서는 자연산 미꾸라지의 뼛가루가 혀에 닿았다. 추어탕을 끓인 가마솥. 가마솥은 무쇠로 만들어 투박하고 무겁지만 날렵하고 가벼운 양은솥과는 다르다. 장작불로 진진하게 달구어 음식을 조리하면 그 깊고 진한 맛은 파르르 끓었다가 금세 식는 양은솥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다.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에는 그때까지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장작불이 타들어가는 아궁이를 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아궁이에 불을 때면 불꽃의 뜨거움으로 솥을 달궈 음식을 익힌다. 남은 열기가 연기와 함께 고래를 타고 들어 난방이 되는 일석이조의 놀라운 효과.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고 따뜻한 온돌방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눈다. 밤이 이슥해지면 나란히 누워 잠이 드는 정경이 가슴 따뜻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아궁이 앞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가족을 생각하는 알뜰한 마음을 불로 지폈을 우리들의 어머니. 불꽃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도록 남아있던 온기는 쉽게 변하지 않던 어머니의 지순한 사랑이었다.
명월리는 그 이름이 말하듯 달밤이면 골짜기 한편에 있는 저수지에 달이 비춰 들어 가히 절경을 이룬다 한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달이 뜨기에는 이른 시각에 우리는 마을을 벗어났다. 아쉽게도 육안으로는 달을 볼 수가 없었다.
하늘에 둥실 떠오른 달. 호수에 아른아른 비치는 달. 가슴에 봉긋 커가는 달. 달과 벗하며 사는 명월리 사람들의 꿈은 이울다가도 다시 덩두렷하게 떠오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나가고 없어 한갓진 명월리. 그 아름다운 산골마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달빛처럼 맑고 고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