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망건을 왜 고치럄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야담에서는 단순 유희나 성 해학 등이 유희로 그려질 뿐만 아니라 웃음 속에 단순한 웃음 이상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이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지만 작품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뚜렷한 작가 의식의 표출과 함께 풍자도 담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자아를 망각한 인간을 풍자한 작품을 보기로 한다.
부잣집 소년이 헤어진 망건을 쓰고 있었더니, 곁의 사람이 그 꼴을 보고는 빈정거렸다.
[왜 망건을 고쳐 쓰지 않니?]
소년이 답했다.
[네놈 좋게 하려고 고칠 까닭이 없지.]
묻는 자가 껄껄거리며 답했다.
[네 놈이 망건을 고치건 안 고치건 내게 무슨 상관이람?]
소년이 답했다.
[내 망건이 낡은 걸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야 말이지...]
富家少年 着了破網巾 傍人見之曰 何不補結而着之 少年曰 豈爲汝好而補着耶 問者笑曰 汝網巾之補不補 於我何好 少年曰 吾網巾之破傷 吾豈可見之乎. [破睡椎](20話 : 破網巾). [栖碧外史海外蒐逸本](卷26).
부잣집 소년과 어떤 사람의 대화 가운데 소년의 무지가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망건이 낡았다고 지적하는 상대를 꾸짖는다.
그리고 그것이 낡았건 말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몰아 붙여 자신의 우둔함을 드러낸다. 남과 나와의 관계에서 상대를 전혀 인식하지 않은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는 자신의 결점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다는 논리다.
이는 곧 자기 상실이나 자기 성찰을 거부하는 전형이다.
출처 : 이원걸. [조선 후기 야담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