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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0
잠실 편의점주가 김포에서 남양주로 셋집 옮긴 사연
그날은 아내 생일이었다. 편의점 일을 마치고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는데 아내의 휴대폰이 울렸다. 심상찮은 표정으로 누구와 대화를 주고받더니 전화를 끊으며 하는 말. “집주인이 나가라는데……?”
집주인은 지방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상황이 좋지 않은가 보다. 사업을 접고 김포에 올라가 살겠으니 우리더러 나가달라는 것이다. 통보를 받은 순간 우리 부부의 첫 반응은 이랬다. ‘집주인의 말이 과연 사실일까?’
집주인과 소송 불사할 세입자 얼마나 될까?
2020년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앞으로 임대료 인상 상한은 5%. 2년 전 계약 당시 우리 아파트 월세는 80만 원이었다. 따라서 우리 부부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집주인의 상한은 84만 원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요즘 집값이 폭등해 인근 아파트 월세는 120만~150만 원에 이른다. 내가 집주인이라도 묘한 감정에 휩쓸리겠다. 매월 50만 원쯤 손해 보고 있다는 느낌 아니겠는가.
집주인이 임대차보호법을 회피할 방법이 있긴 하다. 바로 우리 집주인처럼 직접 거주하면 된다. 임차인에게는 그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격 올려 임대하는 꼼수가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과거 임차인은 집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데, 무슨 수로 집주인의 실거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까?
부랴부랴 검색했더니 우리가 퇴거한 뒤로 새로운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았는지 주민센터에서 확인하면 된단다. 하지만 확정일자 없이 전입신고만 하는 세입자가 소수이긴 하지만 있을 수 있고, 그런 경우 전입세대 열람을 해야 하는데, 이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주민센터에서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단다. 제도의 빈틈이다.
▲ 10월 11일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 뉴스1
그런데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한들, 과거 집주인과 기어이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이것저것 조사하고 다닐 집념(?)의 세입자는 얼마나 될까? 이미 이사했는데 다시 예전에 살던 곳으로 찾아가 주민센터에서 서류를 떼어본다는 것도 무척 번거로운 일이다. ‘뭐가 이리 복잡해’ 하는 생각에 우리 부부도 두 손 들고 말았다. 집주인이 이미 마음을 굳혔는데, 법망을 피하려면 여러 꼼수가 있을 텐데, 싸우면서까지 머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음 날부터 이사 갈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2년 전 서울에서 김포로 이사한 이유는 식당과 편의점을 차릴 요량 때문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모든 계획이 무산됐고, 김포에 머물 이유 또한 사라졌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지금 운영하는 편의점(서울 잠실에 위치)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우리 부부는 결심했다. 사실 그동안 출퇴근의 고역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말하나 마나, 서울에 집 구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게 됐고, 수도권 동부 외곽 도시로 눈길을 돌렸다. 결론인즉, 남양주 마석에 전세 4억 원짜리 아파트를 계약하게 됐다.
유시민·김홍걸 살고 있다는 곳까지는 아니어도
이번에 집을 구하며 깨달은 몇 가지 사실이 있다. 무엇보다 “한번 서울을 벗어나 살면 다시 서울로 진입하기 어렵다”는 선배님들의 말씀은 진실이었다.
‘신도시’라는 이름이 붙은 지역은 전국에 많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김포 신도시는 꽤 살기 좋은 곳이다. 일단 녹지 환경이 최상이다. 아파트 바로 옆에 공원이 있고, 호수가 있고, 잘 닦인 조깅 코스와 산책로가 있고, 가벼운 등산도 할 수 있다. 번화한 상업지대도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는 새로 지어 깔끔하다. 아직 대형 쇼핑몰이 없다는 단점만 빼고, 모든 생활이 ‘신도시’ 안에 완벽히 가능하다. 내가 운영하는 편의점까지 거리는 2시간이 넘지만 서울 서부권에 일터를 둔 사람은 광역버스로 1시간 안에 닿는다. ‘출퇴근 왕복 2시간’의 체감지수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면 나름대로 자기계발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 쾌적한(?) 환경에 살다가 빽빽한 서울로 돌아간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만약 서울에서 신도시 신축 아파트급 생활환경을 누리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들까? 유시민 작가와 김홍걸 의원이 살고 있다는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정도는 돼야 할 텐데, 그 아파트 매매가를 살펴보니 30평형대가 35억 원쯤 된다. 전세도 무려 20억 원이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 구입한 주택일 테니 일절 시샘이나 부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시 무지렁이 백성으로서는 평생 꿈도 꾸지 못할 거액이다. 나는 과연 그런 곳에 살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묘한 모방심리가 있어 당장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비스름하게라도 흉내 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것이 ‘아파트’와 ‘신도시’라는 생활환경을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 아닐까. 아파트는 최저 비용으로, 최소 면적에, 최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주택 양식이다. 좁은 공간 안에 똑같이 ‘찍어내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우리는 성냥갑 같은 공간 안에 머물며,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붙박이장과 키친아일랜드가 있고, 거실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우아하게(?) 커피 마시며 요리하는 풍경을 자신의 삶에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아침에는 안개 낀 아파트 단지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달리고, 석양 무렵에는 반려견과 함께 근처 산책로를 한가로이 거닐고…….
우리 한국인은 이런 ‘닮고 싶은 욕망’이 유난히 크다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그리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성공하고 싶다, 성취하고 싶다,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다. 그런 욕망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으니까. 대한민국이 빠른 정치·경제 성장을 이룩한 동인(動因)은 바로 그것이니까. 한국의 아파트와 신도시는 행복을 가불해 지금 당장 실현하려는 욕망의 표상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결코 부정적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그런 환경에 살다가 ‘서울’이라니 영 답답한 일이다. 그래서 갑자기 잭팟이 터져 일확천금이 쏟아지지 않는 이상, 신도시 신축 아파트 중대형 평수를 경험한 사람이 다시 서울로 진입해 신도시와 비슷한 여건을 누리는 일이란, 로또 당첨보다 희박한 가능성 아닐까.
우리 부부가 바로 그런 ‘바보’다
▲ 은행들이 순차적으로 전세 대출 등을 제한하는 가운데 10월 6일 서울 강남구 한 은행 벽에 주택 관련 대출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다시 우리 부부의 고군분투 전세 탐방기로 돌아와, 기대를 한껏 낮추면 서울에서 살 수도 있다. 왜 못 살겠는가. 반지하 월세라도 구해 부부끼리 오순도순 행복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자녀가 있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자녀 연령대에 따라 선택이 또 달라진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거나 중·고등학생쯤이면 오히려 양육 환경을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학교-학원-집으로 동선이 단순화되니까. 자기 방에서 공부하거나 휴대폰을 붙들고 있을 테니 집이 그리 넓지 않아도 상관없다. 학군 정도 고려하면 모를까, 서울 어디나 생활환경은 엇비슷하다. 반면, 영·유아를 두고 있는 부모로서는 넓고 쾌적하고 따뜻하고 편리한 집을 찾기 마련이다. 그런 조건으로는 신축 아파트가 최상이다.
녹지 환경 역시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일수록 고려하는 조건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게 만들고 싶으니까. 하지만 이제 갓 결혼해 아이를 낳은 30대 중후반 부부 가운데 서울시내에 그런 조건의 아파트를 구할 수 있는 ‘능력자’는 얼마나 될까? 사실은 그런 아파트 자체가 서울에 귀하다. 가장 필요한 시기에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할 아파트는 사실 그것이 그다지 필요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 일견 모순이긴 하지만, 현실이 그런 걸 어쩌리.
따라서 20~30대 청년들의 선택은 자연스레 수도권 신도시로 쏠린다. 출퇴근하는 번거로움만 약간 참으면 되고, 직장이 신도시 근처에 있으면 최상이다. 화성 동탄, 수원 광교, 하남 위례, 남양주 다산, 인천 송도 같은 신도시가 뜰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하여 계속 거기 눌러 살거나, 착실하게 재산 모아 다시 서울로 ‘금의환향(?)’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아니, 이것은 ‘금의환경(錦衣還京)’이라 해야 할까.
이번에 집을 보러 다니며 새삼 놀란 점은, 역시 요즘은 모든 정보가 오픈돼 있다는 사실이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살고 싶은 지역을 먼저 고르고, 원하는 금액과 조건을 검색 옵션으로 입력하니 추천 매물이 지도 위에 친절히 표시된다. 사진과 도면 등으로 기본 정보를 확인하고, 심지어 그곳 거주자들의 ‘리뷰’까지 꼼꼼히 읽어보고, 적절한 매물을 골라 연락하면 된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며칠간 여러 아파트를 꼼꼼히 둘러봤다. 그러면서 또 새삼 놀란 점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현재 시세뿐 아니라 특정 지역 집값이 그동안 어떻게 변동됐는지 과거 이력까지 모두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종적으로 놀란 사실이 있었다. 수도권 외곽 집값이 이토록 올랐던가!
서울 집값 폭등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풍선효과 때문일까. 수도권 외곽 집값 또한 최근 만만찮게 올랐다. 우리가 계약한 남양주 아파트는 2년 전만 해도 매매가가 2억5000만 원이었다. 이번에 전세보증금은 4억 원. 2년 만에 ‘전세’ 가격이 기존 매매 가격을 2배 가까이 추월했다. 그 지역 아파트 전세가 모두 그렇다. “지금 집 사면 후회합니다. 머잖아 부동산 가격은 폭락할 거예요”라고 정부 관계자들이 공포감을 조성하며 말할 때, 그때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던 사람들은 오늘 땅을 치고 통곡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바로 그런 ‘바보’다.
도포 자락 휘날리며 걸을 수 있는 도시?
아파트 집주인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설마 자신의 아파트가 2년 만에 이렇게 가격이 폭등할 줄 꿈에도 몰랐겠지. 아파트 구입할 때 담보인정비율(LTV)은 80%가량 됐을 것이다. 그러니까 2억5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현금 5천만 원 갖고 구입해 2년 만에 전세 4억 원에 내놓은 것이다. 대출금을 한 번에 다 갚고 2억 원 차익이 생겼다. 아파트는 아파트대로 계속 소유한다. 누군가의 성공(?)을 시샘하지는 않지만,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역시 자책할 따름이다. 이래서 ‘수도권 아파트 불패’라는 말이 생겨났구나 하는 교훈(?)을 얻는다. 그래서 그렇게 청약에 줄 서고 갭투자하는 사람도 많았던가 보다.
필자는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고,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집 보러 다니다 보니 부동산 정책에 대한 ‘서민적 의구심’이 생겼다. 서울에 집을 많이 지으면 되지 않을까? 물론 서울에 그럴 만한 땅이 많지 않다지만 재개발, 재건축이라도 허용하면 되지 않을까? 가깝게 지내는 후배는 “반환되는 용산미군기지 자리에 아파트를 지으면 될 것을 왜 공원을 만든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서울에 공급이 늘면, 경제학적 상식으로는 공급이 늘어 가격이 내려가지 않을까? 물론 서울 집값이 내려갈 리야 없겠지만 지금처럼 폭등하며 ‘패닉 바잉’이 생겨날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지금처럼 수도권 외곽까지 덩달아 집값이 치솟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기묘한 일이다. 10년 가까이 서울시장을 지낸 분은 임기 내내 재개발, 재건축을 막았다. 심지어 전임 시장이 짓기 시작한 한강 다리(월드컵대교)까지, 막대한 공사 중단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딴죽을 놓았다. 도대체 무슨 심보였을까. 서울을 한성(漢城)쯤으로 되돌려놓고 싶었던 것일까. 실제로 그분은 도포 자락 휘날리며 사대문 내외를 도보로 걸을 수 있는 ‘도시재생’을 꿈꾸었으니, 그 계획으로 주택 25만 호 공급 계획이 날아가 버렸다.
그 여파를 지금 우리가 고스란히 겪는 중이다. 지도자의 삐뚤어진 상식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는지, 나비효과와도 같은 사례를 오늘 우리는 경험하는 중이다. 결국 그분은 성추행으로 피소될 위기에 처하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까지 서울시민을 부끄럽고 참혹하게 만드는 기행을 일삼았다. 정치인을 떠나 참 나쁜 인물형이다.
‘부동산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화
먹고살기 바쁜 무지렁이 백성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에 좋고 나쁜 감정을 가진다 한들 당장 내 삶에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다만 꾹 참고 기다리다가 다음 선거에 ‘투표의 기준’으로 삼을 따름이다. 그것이 당장에는 영향이 없어도 5년, 10년 뒤 내 삶에는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이번에 여실히 깨달았다.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그런 민심의 냉정함과 무서움을 똑똑히 보여줬다. 다음 대통령선거에도 ‘부동산’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아파트를 구하며 아내와 나는 걱정했다. 혹시 우리가 가격의 ‘정점’에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건 아닐까? 어차피 계약했으니 되돌아볼 필요는 없지만, 가격이 수시로 변동하는 재화를 거래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가격이 높을 때 구입했다면 조금 억울할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뉴스를 살펴보니 부동산 전문가들도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문가가 있고, 지금이 정점이고 앞으로는 내릴 것이라 내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으되, 우리 부부가 서둘러 아파트를 계약한 이유는 대출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3%에 머물던 전세자금 대출금리는 최근 4%에 육박한다. 앞으로 더 오른단다. 심지어, 금리가 문제가 아니라 대출 자체가 제한된다는 소문도 떠돈다. 지금 아니면 전세마저 어려워지는 것이다. 패닉의 패닉이 다가온다. 지난해까진 지진이었고, 이번엔 쓰나미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논거는 이렇다. 서울 입주 물량이 내년에는 더욱 줄고,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로 매물마저 줄어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반대 측은 반박한다. “금리가 오르고 대출이 규제되면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고 집값 하락의 근거를 제시한다.
어느 쪽이 옳을지 감히 예단할 수 없지만, 이번에 소박하게 느낀 점은 이렇다. 금리가 오르고 대출이 제한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심리적 위축이야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부동산 하방 요인까지 될 수 있을까? 어떤 재화든 가격이 끝을 모르고 오를 수야 없겠지만, ‘부동산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계속되는 한, 조금이라도 나은 집에 살고자 하는 욕망의 조건이 꺼지지 않는 한, 아직 가격 상승의 요인은 충분한 것 같다. 게다가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으니 믿어달라”(대통령), “지금 집값은 오를 만큼 올라 있다”(부총리)는 말을 우리가 한두 번 들었던가. 그럼에도 가격은 계속 올랐다.
이번에 학습효과를 톡톡히 경험한 20~30대들은 ‘어떻게든 내 집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과도 같은 교훈을 얻었다. 그것이 지난 10년 사이 내 집을 가져 이번에 흥행(?)을 맛본 40~50대들과 세대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이다. 차제에 말하자면, 현재 직장에 다녀 수입이 있는 40~50대들은 아파트 공시가격이 올라 재산세가 올라가는 것에도 그리 민감하지 않다. 그것이 똑같은 주택을 지녔지만 이미 은퇴한 60대 이상 세대들과 또 다른 측면이다. 최근 정치권에 대한 세대별 지지도 편차에는 이러한 이유도 각각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정자는 모르는 을과 을의 현실
▲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 6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부동산 시장법 제정’ 국회토론회에서 환영사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그의 뒤로 ‘부동산 거래 공정화’라는 문구가 보인다. / 사진공동취재단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좋든 싫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기본 원리다. 재화가 무한 공급된다면 모르겠으되 자원은 희소하고 그것을 차지하려는 사람은 넘친다. 그것을 잘 조정해 사회적 고통과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주택이라는 재화는 단시간에 찍어 공급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오늘 계획하면 5년, 10년 뒤에야 효과가 나타나는 분야가 주택 문제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5년짜리 대통령은 당면한 이벤트에만 급급하지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어떤 후보는 ‘기본주택’을 공약으로 앞세웠다. 누구나 조건 없이 30년 거주할 수 있는 공공 임대주택 100만 호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후보는 ‘청년 원가 주택’이니 ‘역세권 첫 집 주택’이니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는 주택담보대출을 80%까지 제공하겠다는 공약도 보인다. 다들 20~30대 유권자가 부동산 문제에 특별히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어떤 대통령 후보는 시장으로 재직할 때 민관합동개발을 하면서 특정 세력에게 수천억 원 이익을 안겨주고, 그 사건 핵심 관계자가 수백억 원을 챙겨 미국으로 도주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패닉에 패닉, 분노에 분노를 얹는 현실이다.
공약을 힐끔 보자. 1990년대 초반 만들어진 일산, 분당, 산본 등 1기 신도시 규모가 30만 호가 채 되지 않는다. 그때보다 사회가 훨씬 복잡해진 오늘날 100만 호나 되는 주택을, 그것도 임대주택으로 짓겠다니 말이나 되는가. 게다가 사람들이 집을 사는(買) 이유 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 민초들이 집을 사는 것은 단순히 살려고만(住) 사는 것이 아니다. 재산 가치의 상승을 함께 보는 것이다. 재테크는 우리처럼 깨어 있고 배운 사람들이 할 테니 너희 백성들은 국가에서 주는 대로 소작농처럼 살라는 것인가. 누가 선뜻 ‘30년 임대’에 살려고 하겠나. ‘역세권에 집을 짓겠다’는 공약은 공약이 아니라 ‘공상’에 가까워 말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금 20~30대들이 어떤 집을, 왜 원하는 것인지, 파악조차 못하는 것 같다. 후보는 물론이고 이런 공약을 만드는 사람들은 평생 집을 구하러 돌아다녀 보기라도 했을까?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고,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고, 산비탈에서 평지로 내려오고, 서울에서 외곽으로 이삿짐 트럭 타고 떠나는, 그런 기분을 알기라도 할까? 집주인이 실제 거주하는지 확인하러 주민센터에 들르고, 거실 벽에 못 박는 문제 하나로 다투는, 을과 을의 서러운 현실을 알기라도 할까?
내년 대선이 열리는 3월이면 봄철 새 학기 맞아 집 보러 다니는 사람이 부쩍 늘어날 시즌이다. ‘위드 코로나’로 경제가 수습되는 단계에 이르면 금리는 역시 올라갈 것이다. 그동안 시중에 잔뜩 풀린 유동성도 흡수해야 할 터다. 부동산은 다시 민심의 뇌관이 될 확률이 높다.
계약서에 도장 찍고 돌아오며 아내는 혼잣말처럼 물었다. “언제쯤이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우리는 묵묵히 분노의 한 표를 던질 수 있을 뿐이다.
봉달호 / 편의점주
신동아 202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