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영혼의 닻 같은 소망
Text 히6,9-20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20)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1. 장마철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장마라고 해서 계속 비만 내리는 것이 아닌 것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비가 자주 오는 중이지만 가끔씩 해가 반짝 날 때도 있습니다. 별생각 없이 그저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어제는 비가 그치고 해가 난 중에 잔디를 깎고 채소와 나무에 약을 치며 낙엽을 치우면서 ‘아, 하나님께서 장마철에 동물이나 식물이나 병나기 쉽고 빨래도 말릴 수 없는 등 여러 곤란한 상황들을 해결하라고 중간중간에 해가 나게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장마철에도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믿을 수 있어서 저는 참 좋습니다. 우리가 입이 닳도록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라’고 외치고 증거했던 것처럼 노년기를 사는 우리 자신도 끝까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기를 잘하기를 기도하면서 본문 히6,7-20 말씀을 중심으로 ‘소망을 영혼의 닻으로’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2. 먼저 9-10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9절의 ‘이보다 더 좋은 것’이란 앞의 7-8절에서 말한 ‘땅이 흡수하여 채소를 내거나 잡초를 내게 하는 비’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비보다 더 좋은 것은 ‘구원에 속한 것’ 즉 ‘구원 받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땅이 비를 흡수하여 채소를 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가 사랑으로 성도를 섬기는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하나님의 복을 상으로 받을 수 있다고 10절은 말합니다.
인생에게 좋은 모든 보상과 복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주어집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믿고 사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행복의 이유도 돈이고 불행의 이유도 돈이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재물에만 소망을 두고 삽니다. 하지만 그들이 인생의 소망으로 삼아 왔던 재물은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한적한 산속에 있는 외로운 무덤들을 보십시오. 살아 있을 때 소망으로 삼았던 재물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인생의 소망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시편49,13-20절에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의 모습을 반복해서 비교하면서 전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음부가 그들의 거처가 될 것이라 합니다. 부자가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도 따라가지 못하니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은 ‘하나님이 영접하실 것이니’라고 자신 있게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저는 성도들 장례식을 치를 때,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는 찬송가 구절이 크게 위로가 되는 것을 너무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고 하시면서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의 닻을 내리고 마음을 꿋꿋하게 하여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딤전6,17에서는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다 소망의 닻을 내리고 있습니까?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지니 열심히 병원 의사의 말을 성경 말씀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은 아닙니까? 은퇴를 하여 돈줄이 마를 것을 우려하여 노후에 돈이 없으면 못산다고 맨날 돈, 돈 하며 돈에다 소망의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믿음 없는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며 세상적인 염려와 걱정으로 늘 인상을 찌푸리고 살지는 않습니까? 혹은 반대로 눅12,16-21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곳간을 크게 짓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었으니 내 영혼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면서 평안과 쉼과 즐거움의 근거를 하나님이 아닌 저금통장, 돈 잘 버는 자녀, 건강 등에다 소망의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본문 10절을 봅니다.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만이 언약하신 대로 당신의 백성에게 다 해주실 수 있는 능력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이 있으신 분이니 우리는 하나님께만 내 영혼의 닻을 내리십시다.
3. 11-12절을 봅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주님께서는 본문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에게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주님의 약속하신 것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되라고 하십니다. 또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훌륭한 선진들이 아주 많으니 그분들을 잘 살펴 본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못할 것과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약점(강점도 됩니다)이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본문은 그 선진들의 대표격으로 아브라함에게서 그의 믿음과 소망과 순종에 대하여 본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13-15절입니다.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을 받고 친척과 아비와 이웃을 떠나 하나님을 따라 살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고 모험적으로 새 출발을 한 것입니다. 가진 것 없이 타향 땅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환경이 늘 그를 위협했습니다만 꿋꿋이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나중에 돈이 생기고 힘이 생겼습니다. 그랬더니 그 돈과 힘이 하나님만을 소망하며 사는 삶에 걸림돌이 되려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것도 이겨내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넘지 못할 벽이 생겼으니 자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라고 하시면서 격려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자녀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자 후처를 들여 아들을 얻자는 아내의 권면을 슬며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고 하시면서 다시 한 번 더 후손이 번창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닌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의 부유함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시험거리가 됩니다. 불경건한 자들의 부와 자랑은 그리스도인들을 위축시키고 낙담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믿음이 연약할수록 부자들이 더 많이 부러울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그들이 많은 재물을 자랑하며 스스로 복 받은 자들이라고 큰소리를 칠 수 있습니다. 부를 맘껏 누리며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의 성공을 칭송하며 그들과 합세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조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자가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도 따라가지 못하니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시49,13-20 말씀은 흔들리는 성도를 일깨워줍니다. 오히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생에게 말씀하십니다. 돈이 많아도, 혹은 적어도, 하나님만 소망하라고. 건강할 때에도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은근슬쩍 인간적인 방법으로 제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소망의 닻을 내리려는 성도들에게도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하시면서 소망의 닻을 하나님에게서 다른 데로 옮기지 말라고 분부하십니다. 내가 네 방패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주시겠다는 고마운 다짐도 하십니다. 16-17절에서는 아주 확정적으로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람 여러분, 끝까지 동일한 부지런함으로 영혼의 닻을 하나님께 내리는 소망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마지막으로, 19-20절 말씀입니다.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20)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잘 아시는 대로 닻은 배가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고 제 자리에 있게 하기 위해 모래톱에다 박아놓는 갈고리처럼 생긴 것입니다. 성도의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떠내려가지 않게 하는 영혼의 닻은 소망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결코 자기가 자랑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 힘과 소유와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이 영혼의 닻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그리스도의 기적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변하는데, 그 놀라운 성역을 감당하시고 계신 비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질문에 프랜시스는 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 땅 위 모서리 한 구석에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눈동자는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저 사람이다. 저를 통해서 나의 강함과 나의 지혜로움과 나의 능력을 나타내리라. '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요일3,3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벧전3,5에서 베드로 사도께서도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답게 우리는 마지막 숨 거두는 날까지 흔들림 없이 든든하게 영혼의 닻을 오직 주님 한 분에게 내리고 있는 수고를 기꺼이 하는 성도가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