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장마" 비평 (중략)중편 '장마'의 경우, 보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표제 그대로 기상 현상이요, 천재적(天災的)인 재난인 장마와 인위적인 재난인 살육의 전쟁을 상호 병렬시키고 있는 점이다. 여기에, 서로가 사돈간인 김씨 집안과 권씨 집안이 전쟁으로 인해 받는 서로 다른 재해와 전쟁이 조장시킨 갈등과 이질화가 토착적인 속신(俗信) 사고 내지 집단 상징 사고에 의해서 화해로 극복되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어린이(동만)의 시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말하자면 길고 지루한 우기의 기상 현상인 장마를 상징적인 분위기와 배경으로 하면서, 상호의 이질화를 심화시키는 현실적인 이념의 배타성이 보편적인 사유의 밑바닥에 깊이 숨겨져 있는 토착적인 신앙 가치의 융합력에 의해서 조정되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가 바로 어린 서술자에 의해서 관찰되고 서술됨으로써 시점은 친가와 외가로 대립되는 두 세계에 대한 방향 결정의 중심을 이루면서 전개된다. 이 중심의 좌우에는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존재한다. 이런 호칭이 벌써 소년 나레이터를 중심으로 함을 암시한다. 양자는 사돈간이란 의좋은 유대의 관계였으나, 전쟁과 함께 서로가 다른 이념을 선택함으로써 불행하게 죽은 두 아들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서로가 갈등의 관계로 전화된다. 전자는 인민군 쪽을 선택한 아들 김순철(삼촌)을, 후자는 국군 장교가 된 아들 권오문(외삼촌)을 둔 어머니들의 관계이다. 그런데 순철이 인민군의 퇴각과 함께 그들을 따라 행방을 감추어 버림으로써 그 어머니로 하여금 긴 기다림의 한에 빠뜨리게 한다. 그리고 대밭 속 굴을 파고 숨어서 의용군을 피하던 오문은 국군으로 입대하였으며 꿈의 예조를 철저하게 믿는 그 어머니(외할머니)의 불안한 심리에 어울리게 전사를 한다. 이런, 사상이 다른 두 아들들의 행방 불명과 전사는 결과적으로 평범하고 소박하기만 한 두 모성으로 하여금 사돈으로서의 화합의 관계를 냉각시키게 할 뿐 아니라 각자의 불행의 원인이 마치 상대방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갈등의 대립 관계를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이념의 배타성과 전쟁의 공격 논리가 긴밀하거나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까지도 경직화시켜 버리고 만다는 것을 암시한다. 서술자인 소년이 이념의 대치가 일으키는 무서움을 깨닫는 것은 바로 두 할머니의 이 같은 불화 이외에도 더 있다. 그것은 부역자인 삼촌의 행적을 추적하는 맥고 모자를 눌러 쓴 어떤 '사내(수사관)'의 유혹의 초콜릿에 내장되어 있는, 즉 소년의 배고픔을 철저히 이용하는 간교함이다. 이를 통해서 소년은 어른 세계와 전쟁이 가지고 있는 매수와 배신의 낙인과 같은 무서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마'는 그 서사 구조가 전이에서 다시 재전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죽어 버리거나 또는 실종된 두 아들의 삶마저 다시 원상태로 돌이키지는 못할지라도, 살아 있는 생자들―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나'와 할머니―은 끝내 이념이 부추긴 관계의 불화 내지 적대적인 황막함의 상태로부터 다시 화합의 전기를 마련한다. 이 같은 화합의 전기를 가능한 것은 긴 장마 속에 나타난 구렁이의 출현이다. 장마 진 날 집 안에 찾아든 구렁이와 이에 대해서 두 할머니가 다 같이 망자(亡者)의 귀환으로 보는 반응을 지적해서 탁월한 상징적인 장치로서 이해하는 견해도 없지 않지만, 무당이 삼촌의 귀환을 예언한 바로 그 날 긴 기다림 끝에 찾아든 구렁이는 전래적인 속신 사고의 세계관에 있어서는 사자의 현신(現身)된 귀환으로서 확신된다. 외할머니도 할머니도 다 같이 그렇게 믿는다. 이러한 토속적 무속 신앙에 내재하고 있는 자연신론 내지 환생관에의 귀의가 현대적인 전쟁과 이념에 대응하는 합리적인 응전력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집단 상징으로 해서 두 사람의 어긋난 관계가 정감적으로 규합과 화해를 가져 온다는 사실은 그런대로 중요한 표상성을 갖는다. 그것은 집단적인 자아가 투영된 전통적 문화 가치가, 낯설은 이념이 심화시키는 이질화를 메꾸고 극복하는 근거임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마'는 현실과 신화를 교호시키면서 불화와 화해의 상관 관계를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평론가 이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