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당연히 작가의 주제 의식에 주목한 것이지만 빼어난 번역의 힘이라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그 번역 밑바탕에는 한글로 빚어낸 한강의 섬세한 한국어 표현이 있었다. 결국 한강의 치열한 역사 인식과 한글 표현, 그리고 번역의 세 요소가 융합되어 노벨상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기적’이라고 한 것은 한국어 표현의 독특함과 섬세함은 원천적으로 번역할 수 없어 노벨상 받을 만한 번역문 탄생이 근본적으로 어렵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영문 번역이 가장 어려운 이유는 문화적 차이보다도 한국어에 발달하여 있는 흉내말(음성상징어)도 그러하지만, 조사와 동사, 형용사의 어미변화가 가장 큰 이유이다.
스미스가 한국어를 배운 지 3년 만에 ≪채식주의자≫(2007)를 The Vegetarian(2025)으로 번역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헐버트(Homer Hulbert)가 떠올랐다. 미국인 헐버트는 1886년에 23살의 나이로 한국에 와 한국어 배운 지 3년 만인 1889년에 미국 뉴욕 트리뷴지에 한글과 한국어 우수성을 밝힌 The Korean Language라는 글을 발표했다.(김동진.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참좋은친구. 참조) 헐버트는 이 글에서 한글의 간결함과 과학성, 우수성 외에 놀랍게도 한국어의 우수성까지 언급했다. 곧 한국어는 조사와 어미가 발달해 영어보다 더 섬세하게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김슬옹. ≪한글학≫. 경진출판. 14장 한글의 중시조론 참조)
헐버트의 이런 인식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외국인들은 한국어의 조사와 어미 때문에 너무 어렵고 배우기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그것을 매력적이라고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 이도(1397-1454)는 인류 문자의 꿈인 언문일치가 가능한 가장 이상적인 문자를 창제(1443), 반포(1446)했다. 언문일치 문장은 서구에서는 근대 이후에 가능한 것이었으나 세종은 아예 태생부터 가능한 문자를 만들었다. 언문일치는 누구나 말하듯이 글을 쉽게 쓰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어는 조사와 어미의 섬세한 발달에 따른 섬세한 문장 구성력과 그것을 그대로 적을 수 있는 한글이 있어 언문일치의 이상적 실현에 특화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영어의 장점은 간결한 문장 구성력에 있지만, 한국어는 조사와 어미의 현란한(?) 운용으로 섬세한 표현이 장점이다. 문장뿐만 아니라 어휘 차원에서도, 초성, 중성, 종성의 음운 결합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이러한 한국어와 한글의 놀라운 특징과 우수성을 처음으로 알아본 외국인이 헐버트이고 과학적인 문법으로 체계화한 이가 주시경이다. 주시경의 수제자가 최현배이고 최현배 선생은 문법 체계화와 한글전용의 위대한 세종의 꿈을 완성해냈다. 그래서 최현배가 평생을 봉직한, 한강 작가를 배출한 연세대 국어국문과가 한글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전 세계 유일하게 연세대에 한글탑이 있는 이유이다. 한강 작가의 섬세하면서 강인한 문장의 힘은 이런 토대 위에 형성된 것이다.
노벨상은 일차적으로 한강 작가의 주제 의식에 주목한 것이지만 한국어와 한글의 섬세한 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하다. 물론 번역자가 위대한 것은 한국어의 독특한 문장 힘, 한강 작가의 섬세한 표현력을 최대한 살려 번역한 그 문체력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헐버트는 주로 국제적인 칼럼이나 논문, ≪사민필지≫(1891)와 같은 최초의 한글전용 교과서로 한글과 한국을 빛냈지만, 스미스는 한글 문학의 빼어난 영문 번역으로 한국 문학과 문화를 전 세계에 빛내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한글과 한국어 배우는 열풍이 이미 불고 있는데 이제 한글문학의 노벨상 수상으로 그 열풍은 용광로가 될 것이다. 스미스는 헐버트의 환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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