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좀 재미있는 주제다.
기독교, 불교에 대한 명리학적 해석에 관해서다. 애초에 명리학은 음양오행의 이치를 두고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이므로 종교와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기독교, 불교적 관점이 명리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연구해보는 일은 흥미로울 것이다.
첫번째, 기독교다. 기독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세상을 선악으로 나눈 것이다. 그리하여 무조건 선을 추구하게 만들고 악을 배척한다. 그 방법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으로 올바른 삶이란 성경의 말씀에만 따르면 되는 것이다.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 세상에 신이 있다는 증거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덕이나 선악은 없을 것이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어쨌든 이 세상에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리는 존재하고 그것이 바로 신의 존재이유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상을 명리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기독교는 음양의 구분을 극한까지 추구한 것이다. 이 말은 양이 선이고 음이 악이라는 1:1대입이 아니라, 음양이라는 이분법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 천국과 지옥, 신과 인간이라는 이분법이야말로 기독교적 가치관이다. 마찬가지로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음양도 이 세상을 이분화 해서 보는 것을 말하므로 기독교는 음과 양의 차이에 집중하여 가장 추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가장 선하고 축복받은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두번째, 불교다. 불교의 공사상은 세상을 선악으로 나누지 않는다. 판단을 번뇌, 괴로움이라고 한다. 세상만물에는 옳고 그름,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이 없다. 그러한 것을 나누어 번뇌에 빠지는 행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불교이므로 당연히 판단기준도 제시해놓지 않는다. 오히려 기준을 없애라고 한다. 이것은 음양오행에서 음양을 초월한 무극에 해당한다. 오행 중 '토'의 성질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토(土)도 목,화,금,수와 마찬가지로 음양에서 갈라져 나온 오행이므로 토를 음양을 초월한 것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극이란 무엇인가? 사실 무극은 없다. 음양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음양을 만들어내는 것은 서로의 상대성이므로 음의 위치에서 양을 바라보지 않고 양의 위치에서 음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음양이 없어진다. 이것을 무극이라 한다. 마치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볼 때나 거기가 동쪽인 것이지, 동쪽에서 또 동쪽을 바라보면 거기가 서쪽인 것과 같다. 이렇듯 알듯 모를듯 알쏭달쏭한게 무극이고 공사상이다. 때문에 불교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심오한 세계가 펼쳐져 고민이 하찮은 것으로 눈 녹듯이 사라진다.
여기까지 명리학에 대입하여 기독교와 불교를 알아보았다. 인간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종교가 모두 뿌리는 음양에 두고 있으니 음양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를 깨우치는 길이리라.
첫댓글 고민이 눈녹듯이 사라지기를.........ㅎ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