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의 만인 성자교회 정문에 34세의 젊은 성직자가 비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두루마리 종이가 들려 있었다. 짧은 순간의 침묵이 흐르고 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종이를 펴
교회 정문에 붙였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진리에 목마른 루터는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논의하고 토론해서 진리를 밝히려고 하니 관심있는 사람은 참여하길 바란다."
독일의 종교개혁자이자 개신교 탄생의 문을 연 마틴 루터(1483~1546)는 34세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권위보다는 교황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삼았던 카톨릭에, 그리고 우매한 민중에게 면죄부를 팔아 교황청을 짓는 교회의 부패에 그렇게 맞섰다.
그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면죄부 판매자 요한 테첼을 비판하고 진리를 끌어내기 위해 95개 조항의 명제를 붙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독일 전체의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마인즈 대주교는 루터를 파문했다.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아이스 레벤에서 출생했다.
부친 한스 루터는 구리광산 노동자였다. 가난했던 한스 루터는 용광로를 임대 운영하면서 돈을 벌어 자식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루터를 변호사나 판사로 만들려고 했다.
루터는 부친의 뜻을 좇아 에르푸르트 대학 인문학부를 나온 뒤 법학공부에 나섰다.
그러던 그가 22살이 되어 1505년 7월 2일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 천둥벼락을 만나 같이 길가던 친구가 벼락을 맞아 숨지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그는 서원(맹세)했다.
"성 안나여 살려 주십시오.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이 갑작스런 사고로 하나님의 실존을 체험한 루터는 법대를 자퇴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간다. 수도회 생활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고행을 한다.
그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분노와 공의(公義)를 두려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죄인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께 무언가 해드리려고 하면 할수록 루터는 마음의 평안이 아니라 오히려 더 두려움을 느낄 뿐이었다.
루터는 은혜로운 하나님을 추구할수록 하나님은 나에게 "공의를 요구하신다"고 고백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에 맞추려고 철야기도와 금식을 했다.
여러가지 절제된 생활과 고행을 2년간이나 계속했건만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치 못했다.
성경을 읽다가도 공의(公義)라는 단어만 나오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떠올라 두려움에 성경을 닫았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공의가 많이 언급된 로마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이런 루터를 보면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원장이었던 요한 슈타우피츠는 로마여행을 권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로마의 마리아 교회에 있는 12층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갔다 내려오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루터는 무릎에서 피가 나도록 계단을 오르내리며 고행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황청의 여러가지 모습만 보고 실망한 채로 비텐베르크로 돌아왔다.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시편을 강의하던 그는 어느날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의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사람이 무언가를 함으로써 얻는 사람의 공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죄를 해결하시고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공의라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 자신의 의가 아닌 "타자(他者)의 의", "낯선 의"인 것이다.
다시 로마서를 펴든 그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의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해와 사랑을 이루게 하는 근본 요소이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 저주를 당하심으로 우리가 축복을 얻었으며 그의 죽음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었고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구나. 우리가 공로를 세워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깨달음이었다.“
루터는 이런 믿음의 확신 속에서 성직을 팔고 우매한 민중들에게 면죄부를 팔아서 까지 베드로 성당을 지으려는 카톨릭 교회에 강력히 대항한다.
루터가 붙인 95개 조항의 문제는 전독일로 확산되면서 종교개혁 논쟁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루터의 종교개혁사상은 당시 교황청으로부터 독립 시민국가를 형성하려는 분위기와 맞물려 영주들의 보호를 받으며 오늘날 개신교의 태동을 가져왔다.
루터가 가졌던 믿음의 확신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건과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는 공의는 혼란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의지해야 할 나침판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