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기 전 우리는
본문 성구 : 요 3:3,5 ; 롬 3:11 ; 엡 2:1
관련찬송: 영원히 죽게 될 내 영혼 (13,289,544)
유머1. 점
차기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미국 정치인이 점을 보기 위해 몰래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쌀로 점을 친다는 아주 용한 점쟁이를 극비리에 찾아가 물었다.
“내가 다음번에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점쟁이는 쌀을 상 위에 휙 뿌려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음…, 힘 들겠어….” 그러자 정치인이 아주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러면…. 미국 쌀로 다시 해봐요.”
유머2. 집들이
10년 만에 집을 장만한 남자가 처음으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한 친구에게 집안을 구석구석 안내하고 있는데, 마당 구석에 있는 큰 개집을 한참동안 지켜보던 친구가 물었다. “자네가 개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걸? 그런데 개는 어디 있나?”
그러자 난처한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가 말했다. “개라니…
저건 내가 술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왔을 때 마누라가 문을 안 열어주면 임시로 사용하는 내 방이라네.”
유머3. 학과별 여자 꼬시는 방법
1. 국문학과오늘도 바람에 별이 스치운다….
이 멋진 밤에 저와 함께 사랑의 시를 지어 볼까요?
2. 수학과오! 이렇게 얼굴이 미분적으로 생길수가~!
가슴은 환상적인 포물선을 그리는군요.부디 오늘 저에게 당신의 몸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3. 회화과당신은 모나리자의 미소와 조각한 것 같은 아름다운 손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또한 당신의 피부는 비너스 상과 같이 희고 부드럽군요.
4B연필보다 더 진한 저의 마음을 받아 주세요!
4. 정보통신과당신은 다양한 재능이 보이는군요. 천리안과 같은 눈을 갖고 계시고, 싸이월드 같은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함께 소프트한 밤을 지내볼까요? 저와 당신은 초고속 인터넷처럼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어요.
유머4. 아내의 속마음암에 걸려 투병 중인 남편 옆에서 아내가 친척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
아내를 지그시 쳐다보던 남편이 말했다. “여보, 나 아무래도 가망 없겠지?” “여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당신은 나을 수 있어요!” “그...그래. 내가 회복하면 우리 함께 여행 가자고.” “그럼요.”
아내는 계속 편지를 쓰다가 말했다. “여보. 장례식이라고 쓸 때 ‘장’자는 한자로 어떻게 쓰는 거예요?”
유머5. 다리를 보면
어느 대학의 생물학 시험 날, 교수가 문제지를 나눠줬다.
문제지에는 새의 다리 그림들과 함께 문제가 쓰여 있었다. '
다리 모양을 보고 새의 이름을 쓰시오.' 그러자 어느 학생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일어서서 말했다.
"교수님! 이 시험을 망치면 졸업을 못한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이런 문제를 낼 수 있나요?"
학생은 문제지를 내던지며 교실에서 나가려 했다. 그러자 교수가 소리쳤다. "이봐! 자네 이름이 뭔가?"
그러자 학생이 바지를 걷어 다리를 보여주며 말했다. "글쎄요? 교수님이 한 번 맞춰보시지 그래요?"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는 우리들은 고기의 중요성에 대해 간과해 버릴 경우가 많습니다. 또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 못하다고는 하지만 양친 부모가 살아있고 가정이 화목한 가운데 생활하는 아이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에 살고 있는 지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모양은 오늘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은혜로 거듭나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자주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들의 망각을 떨쳐버리고 날마다 벅찬 감격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한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거듭나기 전 어떤 모습, 어떤 삶을 살고 있었단 말입니까?
전인격이 부패하여 있었습니다.
최초 인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복되고 풍요로운 땅 에덴 동산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행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며, 또 그 하나님과 항상 친밀히 교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로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모든 복의 출처가 되시는 하나님과 친교할 수 있는 그곳이 바로 복된 하나님의 나라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사단의 미혹에 빠져 하나님이 금하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창 2:7)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범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창 3:1-6). 그럼으로써 결국 기존의 행복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슬픈 운명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서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금하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지만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범한 죄와 허물로 인해 그 영혼이 완전히 어두워져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게 되었으며, 그 양심이 완전히 무디어져 의로운 일이나 선한 일에 있어서 결코 올바로 반응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롬 1: 18-23).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법을 스스로 저버린 인간은 전인격이 부패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더 이상 대화 할 수도, 그분에게 거리낌 없이 나아갈 수도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두려움으로 떨 수밖에 없는 인생처럼 비참하고 절망적인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창 3:8-10). 오늘 여러분은 아무 근심 걱정이나 주저함 없이 하나님의 얼굴을 바랄 수 있습니까?
2.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생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이 세상 재물과 쾌락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과 관계되면 자신의 욕심과 그릇된 소망을 이룰 수 없기에 하나님 없는 것이 차라리 행복하다고 교만히 말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 없이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단 말입니까? 첫 인간 아담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위와 같은 인간들의 생각이 얼마나 허망하고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범죄 이후에 결단코 행복하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 흘려 척박한 땅을 갈아서 거기에서 나는 조악한 소산으로 힘겹게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하와와는 불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또 자신이 나은 자식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살인 참극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창 4:1-15). 그러나 이러한 여러 고통스런 일련의 일들보다 더 아담을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죽음이란 문제였습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과 단절됨으로 인해 고통과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진 존재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죽을 운명에 처한 존재는 결단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인류는 이러한 아담의 슬픈 운명을 그대로 전수받은 비극적은 존재들입니다. 아무도 사망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진 존재는 비록 살았다 하나 죽은 존재요, 행복하다 하나 불행한 존재입니다(요 15:5).
3.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시력을 잃어버려 볼 수 없는 사람을 시각장애자라고 부릅니다. 시각장애자들은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생활하는 데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정상인 보다 불의의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더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각장애자들보다 더 위험스럽고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들은 바로 영적인 소경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영적으로 어두운 세계에 갇혀 있는 참으로 불행한 존재들 말입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 인간은 철두 철미 영적으로 무감각해져있고, 또 양심과 인격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있어서 바른 것을 볼 수도, 의로운 것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영적인 소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꺼이 영접해 들일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소경된 자들은 늘 상 죽음의 그늘 아래 있을 수밖에 없고, 또 늘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찢기고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녕 이러한 불편함과 불안함을 가지고 끝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럽고 부패한 자신을 고집하는 인생이 있다면 그는 결국 영원한 불 못에서 영영히 고통당하며 절규하게 될 것입니다(계 20:11-15). 오늘 당신의 영안은 어떻습니까?
성도 여러분!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 거듭나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을 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나기 전의 인간은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져 있고, 전인격이 부패하여 있으며, 그 영혼의 눈이 멀어져 있기 때문에 결코 선한 것을 볼 수도, 또 참 행복을 찾아 나설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세상적 욕심을 채워가는 헛된 노력을 떨쳐버리고,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능하고 무패한 자신의 삶을 참회 청산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매달려야만 할 것입니다. 거듭난 인생만이 복과 생명을 영영히 향유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