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출장에서 돌아와 금욜에 회사 잘 갔다온 남편이 시차 적응이 덜 되었는지 토욜에는 밥만 먹으면 자고 있었다.
오후 5시쯤 되었을 때 깨워야하나 고민하다가 깨웠다.
'공지영의 의자놀이와 들국화 콘서트'를 보러 가기로 했었기 때문이었다.
하늘는 시커멓고, 날은 후텁텁한 게 영~시내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안들었지만, 남편은 공지영 작가를 생각하며, 난 들국화의 시
원한 노래를 생각하며 땀이 뚝뚝 떨어지는 더위에 시청역 대한문 앞으로 갔다.
비까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30분 일찍 도착했으나 좁은 공간에 놓여진 300석 의자는 이미 거의 차 있었다.
우비까지 입고들 앉아 있었다.
"성당하고 똑같아! 앞쪽에 분명히 빈 자리 두 자리쯤은 있을거야!!" 장담하며 남편을 끌고 앞쪽으로 갔다.
과연 앞에서 4-5째줄 중간 쯤에 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나중에 우리 두 줄 앞에 백기완 선생님이랑 정동영 의원이 앉아서 공연을 봤기 때문에 두 분 뒤통수도 아주 잘 봤다.
일단 자리를 잡은 후 우비를 받아 입고 나는 공지영 작가의 사인 받는 줄에 가서 섰다.
나도 공지영 작가를 좋아하지만, 나보다는 남편이 더 좋아하니까 남편 이름으로 사인을 받아서 주려고 30분 남짓 줄을 서 기다렸
다가 <의자놀이>책에 사인을 받았다.
<의자놀이>는 공지영 작가가 쓴 르포르타주이다. 보통 '르포'라고 하는데, 사실을 중심으로 내막까지 밝혀내는 말하자면....
글로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걸 쓴 거다.
공지영 작가는 <인간에 대한 예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유럽 수녀원 기행> <도가
니> 등 정말 뛰어난 글을 쓴 작가이긴 하나 르포 작가는 아닌데 어떤 르포를 썼을까...?
3년 전 무더운 한여름.. 저녁 뉴스에서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을 옥상에서 진압하는 장면을 보았다.
곤봉을 든 전투경찰들이 도망가는 노동자를 쫓아가 때리고 쓰러진 다음에도 여러 명이 달려들어 발로 밟고 방패로 내리 찍는 장
면이었다. 한 10여초 정도 보여준 것 같았다.
나는 광주학살 사진을 처음 보았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섭고 덜덜 떨렸다.
그리고는 그 일을 잊고 있었다. 3년간 가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자살했다는 짧은 뉴스를 몇 번 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공지영 작가의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알게 되었다. 공지영 작가가 그 사건에 대한 르포를 썼고, 그간
죽어간 사람이 22명이나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하나같이 유서조차 없이 그렇게 죽어갔다는 것을....
왕따를 당해 자살을 하는 아이들도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토로한다.문자로라도...그런데, 어떻게?
나는 그 끔찍한 진압 광경이 떠올랐고, 몇 년동안 잊고 산 것이 미안했다.
이번에 책을 사면 작가가 받아야 할 인세와 출판사가 받는 돈을 모두 쌍용차해고노동자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책이라
도 한권 사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개런티 없이 재능기부로 노래를 한다는 들국화의 공연도 보고 싶었다.
흰머리가 더 많은 단발머리를 뒤로 묶고,밤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어눌하게 '말을 잘 못해요'라며 노래를 시작하는 전인권!
첫곡은 '행진'이었는데, 목소리가 사운드에 묻히기도 하고..전성기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이는 못 속이는구나 생각했다.
그래 언젯적 들국화고 언젯적 전인권이냐...? 나이 60이 다 되어가지 않나?
그리고 '매일 그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 '사노라면' 한 곡 한 곡 불러나가는데...조금씩 전인권의 목소리가 살아나고 있었다.
전성기때와는 다르지만 그에 손색없는, 진심을 다해 노래하는, 가수의 인생이 전해지는 목소리였다. 감동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슬쩍 보니 남편도 연신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4-50분 정도(7~8곡) 부른 것 같았는데, 내가 가사를 거의 대부분 따라부르고 있었다. 오~놀라워라!!
나의 20대 초반과 그들의 전성기가 대충 겹치는 덕분에 귀에 익숙한 노래가 많은 것이었다.
어찌나 소리소리 지르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펄펄 뛰었는지, 흥분해서 배도 고프지 않고 그냥 집에 가기도 왠지 서운했다.
세종문화회관 옆에 빈대떡집에서 빈대떡에 막걸리 한 사발을 놓고 남편과 오래오래 공연에서 받은 감동을 이야기했다.
대마초 사건...멤버들의 교체..자살한 여배우와의 스캔들....공백과 칩거....연예계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나도 기억하는 사건들!
지난 20여년간 이 모두를 겪어 내고 진짜 음악인이 되어 무게감을 보여준 멋진 남자 전인권에 대해서...
첫댓글 전성기때의 들국화 전인권..."레전드"가뭔지를 보여줬었지요. 지금은 그목소리가 안나오지만 그래도 그느낌은 전달됐으리라 봅니다. 좋은 공연보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