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다시 한번 16강 모래돌풍을.'
중동의 '녹색전사' 사우디아라비아는 천신만고 끝에 3연속 월드컵 본선에 올랐지만 처음 본선에 출전한 94년 미국월드컵에서의 16강돌풍에 이은 또 한번의 반란을 꿈꾸고 있다.
오일달러를 앞세워 유럽과 남미의 명장들을 데려와 80년대 이후 중동축구의 맹주로 군림해온 만큼 21세기 첫 월드컵에서 8년만의 16강, 아니 8강까지 진입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적의 역전극
1차예선 10조에서 30득점에 무실점으로 사뿐히 최종관문에 올랐지만 8월 17일 A조 첫 경기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바레인에 끌려가다 종료 7분 전 겨우 1-1 동점을 만들고 7일 뒤에는 이란에 2-0으로 완패했다. 1차예선서 11골을 몰아친 골잡이 탈랄 알메샬의 부상과 200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로 뽑힌 플레이메이커 나와프 알테미아트의 무릎수술에 따른 공백이 너무도 컸다. 98월드컵서 유고를 10위로 이끈 슬로보단 산트라치 감독을 전격 해임하는 것으로 불을 껐다.
9월 21일 바레인에 4-0 대승으로 복수했지만 다시 7일 뒤 이란과 2-2로 비겼다. 그러나 '20세기 아시아 골키퍼'이자 A매치 출전 세계랭킹 3위(153회)에 빛나는 베테랑 수문장 모하메드 알다예야(29)가 부상에서 회복돼 장갑을 끼고 나서 10월 5일 이라크전에서 선방해 2-1로 신승했다. 10월 21일 최종전. 태국에 이기더라도 이란이 바레인을 꺾는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조 2위로 플레이오프로 밀려나게 되는 위기.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던가. 태국을 4-1로 격파하는 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섬나라 바레인이 이란을 3 -1로 꺾어줘 기적의 역전극으로 본선 직행티켓을 따낼 줄이야.
▶감독교체의 효과
사우디아라비아는 300만달러를 주고 데려온 브라질의 파헤이라 감독을 98월드컵 본선에서 해고하는 등 대회 도중에 사령탑을 바꾸기로 유명하다. 지난해 10월 아시안컵 첫 경기에서 일본에 4-1로 대참패하자 체코의 밀란 마칼라 감독을 해임하고 나스르 알조하르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결승까지 올랐다. 이번에도 1차예선을 알조하르 감독이 이끈 뒤 99년 산둥루넝을 중국리그와 FA( 축구협회)컵을 한꺼번에 석권한 산트라치에게 지휘봉을 맡겨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산트라치는 최종예선 전초전에서 젊은 선수들로 짜인 북한에 겨우 1승을 거두고 카타르에 2-1로 패하는 등 암운을 안고 최종예선에 나섰다가 2경기 만에 낙마했다. 또 위기의 해결사는 42세의 알조하르 코치. 98년 이후 5번째 감독의 대임을 맡았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사상 세번째 자국인 감독으로 5승1무로 막판 뒤집기에 성공해 일약 영웅으로 우뚝 섰다.
▶신구의 조화
지난해 아시안컵에서 비록 일본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지만 '어린 마라도나'로 불리는 공격형 미드필더 모하마드 알슬로브(21)와 탈랄 알메샬(23), 오마르 알감디(22), 살레 알사크리(22) 등 젊은 선수들로 과감히 세대교체를 감행했다. 여기에 수비사령관 모하메드 알킬라이위(30)와 공격의 핵인 사미 알자베르(29)를 포함해 94·98월드컵에 연속출전한 베테랑이 4명, 또 8경기에서 골을 터뜨려 10골을 쌓은 오베이드 알도사리(24)를 비롯해 98월드컵에 나선 선수만도 13명이나 포진했다. 예선에서 활용한 28명 중 절반 정도가 월드컵 경험이 있어 막판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었다.
스포트라이트 스타
사미 알자베르 ... 그의 별명은 '푸른 여우'.
170㎝ 65㎏의 단신이지만 숲을 헤쳐가며 골 먹잇감을 찾아내는 예민한 후각과 꾀는 사우디아라비아대표팀과 그의 소속팀 알히랄의 자랑거리다. 29세의 나이에도 총알처럼 빠른 스피드가 여전히 파괴력을 높여주고 있다.
1차예선서만 11골을 터뜨린 골게터 알메샬이 뛰지 못한 최종예선서 위기에 처한 팀을 구해냈다. 9월 15일 태국과의 원정경기서 동점골을 터뜨렸고 다음 바레인전에서 쐐기골을 작렬했다. 또 직행이냐 완행이냐, 본선티켓을 가리는 마지막 태국전에서는 2-1로 추격당하는 상황에서 리드골을 성공해 3회연속 본선진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1차예선서는 5골을 기록했다.
20세의 나이로 92년 알히랄에서 데뷔했다. 94월드컵 모로코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려 2-1승을 이끌었고 98월드컵 마지막 남아공화국전에서도 동점골을 터 뜨려 2-2 무승부의 밑거름이 됐다. 96년 아시안컵 우승주역이자 지난해 아시 안클럽선수권 제패를 이끌어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로는 최초로 잉글 랜드에 진출해 넉 달 동안 디비전1 클럽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임대선수로 활약했다. 알히랄은 150만달러에 이적을 요청받았으나 거절했을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보급' 공격수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A매치에 103회 출전해 45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