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들어서면 가난한 홀몸 노인들이 냉골에서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이 뉴스에 단골로 등장한다. 해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비단 가난한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물론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비싼 연료를 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시노동자와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주택 난방 문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 달에 수십만 원씩 들어가는 보일러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어 실내에서 내복에 점퍼까지 입고 생활하며 겨우 잠자는 방 한 칸만 난방을 하고 지내지만, 그마저도 춥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열만 잘해도 열 손실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어
귀농·귀촌인들을 중심으로 한 개인이나 단체들이 대안 에너지를 찾아 나서는 노력들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 전문성을 갖추기도 한다. 태양열 온풍기·온수기는 이미 상용화 수준을 넘어서고 있고, 적정기술을 이용한 화목보일러와 벽난로도 기존의 상용화되어 팔리고 있는 난로들보다 더 높은 열효율로 농촌 주택의 주요 난방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과 성과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앞뒤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주택 난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에너지원을 무엇으로 쓸 것인가에 앞서 외부 에너지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집 안에 머물게 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때 황토 흙집이 귀촌인들에게 선호되면서 흙으로 집을 많이 지었다. 그런데 흙의 따스한 성질을 앞세워 집을 지었지만, 주말마다 가는 흙집은 추워서 견딜 수 없는 지경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과학적으로 보면 흙의 단열 성능은 콘크리트와 거의 같고, 스티로폼 10cm의 단열 효과를 얻으려면 벽체를 거의 90cm 두께로 해야 한다. 단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건축법에 단열에 대한 법적인 규정을 둔 것은 불과 20년도 안된다. 나 자신도 건설현장에서 목수로 수십 년간 일해 왔지만 누구 하나 건물을 지으면서 단열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교육한 적이없다. 지금도 역시 단열에 대한 법적 규정은 있지만 어떻게 단열을 해야 한다는 시방서의 내용은 없다. 한마디로 무지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 열에너지가 어디로 얼마만큼 도망가고 있을까? 벽면으로 39%, 창문으로 24%, 천정으로 19%, 바닥으로 9%, 문틈으로 빠져 나가는 열손실도 9%에 이른다. 그렇다면 단열을 다시하면 난방비는 얼마나 줄일 수 있고 실내온도는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거의 절반에 가까운 열손실을 막을 수 있다.
간단한 단열 공사만으로 난방비가 50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줄어
현재 건축물 대장 기준으로 단열기준이 느슨하거나 부재했던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 90% 이상이고, 단열기준 자체가 없었던 1980년대 이전에 지어진 노후 주택의 비중도 약 9.7%로 적지 않다.
한편 2008년 기준 가정용 용도별 에너지소비를 보면 난방에 44%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온수 24%, 전기기기 19%, 취사 9%, 냉방과 조명이 각각 2%라고 한다.
귀농·귀촌인이 중심이 된 대안 에너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도시에서도 할 수 있을까? 도시에서 화목보일러나 화목난로를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우리 집난방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오래되고 낡은 주택일수록 난방비가 많이 지출되고, 주택의 단열 상태는 거의 무시해도 될 정도로 엉망이다.
1990년도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 부설 유치원 리모델링 공사를 한 적이 있다. 기름보일러를 쓰는데 난방비가 월 500만 원 이상 지출되는 661㎡(200평) 규모의 건물이었다. 창문은 알루미늄 창틀에 단창이고, 벽체단열도 되어 있지 않았다. 난방비가 너무 많이 지출되기 때문이었는지 유치원에서는 바닥 난방을 하지 않고 가스온풍기를 쓰고,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지급한 패딩조끼를 입고 실내화를 신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등원하는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서면 입김이 뻗어 나갈 정도였다.
보통 유치원은 아기자기하게 치장하는데 중심에 두고 구조변경을 하지만 이 경우에는 건물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 중심을 두고 이중 창호를 덧댐 시공하는 등 단열 공사를 했다. 간단한 공사만으로 기름보일러로 월 500만 원 지출되던 난방비가 그해 겨울 가스보일러로 월 70만 원 나왔고, 아이들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됐다.
개인 주택의 경우 전체를 단열 공사하기힘들 때는 주로 사용하는 방 한 칸이라도 벽체 단열과 창호 교체 정도만 하면 난방비를 40~50% 절감할 수 있다. 먼저 단열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단열은 불필요한 소비가 아니라 난방비 절감을 위한 투자이다.

(위) 저소득층 주택에너지 단열사업을 하면서 열반사 단열재를 붙인 모습. 벽면과 천정으로 빠져 나가는 열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아래) 경북 성주 신축 건설현장에서 기초 단열공사를 한 모습. 바닥으로 빠져 나가는 열손실을 막는다.
적은 비용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우리 집 단열
얼마 전 녹색연합에서 주관한 워크숍 ‘도시에서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에 참여하면서 성미산마을을 다녀왔다. 성미산마을에너지 활동가들은 절전발전소를 만들고, 집에서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가정에서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고 함께 해결하려고 지혜를 모아 나가는 데 큰 감동을 받았고, 이러한 활동을 모델로 해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면 주택 에너지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창호단열: 창문 유리에 에어캡(뽁뽁이)을 붙이고, 알루미늄 창틀을 뚫어 우레아폼을 충전한다. 창틀 주변은 기밀테이프로 정밀하게 붙이고, 창문 레일에는 방풍막을 끼운다.
*바깥 공기와 닿아 있는 벽체: 압축 단열재나 열반사 단열재를 붙이고 석고패널을 시공한 후 도배로 마감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몇 명이 모여 품앗이하듯이 서로 도우면 된다. 작업 공구와 필요한 자재를 공동으로 구매해서 돌아가며 나눠 쓰고, 목수 일이 필요한 부분은 몇 집이 한꺼번에 필요한 부분에만 작업을 의뢰하고 나머지는 직접 하면 기존 인테리어 회사에서 요구하는 공사비의 절반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위) 일명 ‘다다미’라고 하는 볏짚보드로 단열 시공하는 모습 (아래) 볏짚보드를 붙인 후 황토 미장을 하면 훌륭한 생태단열이 된다.
생태 단열로 난방 효과 높이고 건강도 챙기자
최근에 분양하는 아파트들은 처음부터 베란다를 확장해 버리고 시트지, 타일, 실크도배지 등 유기화학물질이 끊임없이 유출되는 화공약품 덩어리를 많이 쓴다. 먹거리에 대한 경각심은 점점 커져서 유기농 농산물을 찾아 먹지만, 제3의 피부라고 할 수 있는 주거환경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단열재 역시 화학제품을 사용하거나 단열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고도 오히려 더 뛰어난 단열재를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볏짚보드, 왕겨, 훈탄(왕겨 숯), 흙 미장 등인데 시골 농협이나 마을 등에서 인터넷 주문 판매를 하고 있다.
도시에서 ‘생태 단열’이라고 하면 너무 힘들고 어렵게만 생각한다. 그러나 몇 집이 함께하면 일반 시공업자에게 맡기는 것의 절반 가격으로 단열 시공을 할 수 있다.
볏짚보드는 전동공구를 사용해서 벽체에 고정하고 황토 미장을 하거나 아랫부분은 편백나무 등으로 루버 시공하고 윗부분은 황토 미장한 후 한지로 도배하면 훌륭한 생태 단열이 된다. 훈탄으로 단열할 경우 벽체에서 10cm 이상으로 나무틀을 짜고 목조 주택에서 사용하는 방습포를 돌린 후 그 안을 훈탄으로 채워 넣으면 된다. 그리고는 편백나무, 자작나무 등 친환경 원목으로 벽체를 시공하면 단열 효과도 뛰어날 뿐 아니라 아토피·천식 등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주거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주택 에너지 문제는 개별 가정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밀양에서 송전탑을 반대하며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핵발전소 송전 선로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도시에서 과소비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개인과 시민사회단체부터 주택난방 에너지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주거복지, 에너지복지의 거대 담론도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 체온을 가진 따뜻한 세상, 따뜻한 방 한 칸을 위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과 방을 먼저 돌아보면 좋겠다.
↘ 조기현 님은 건축사, 설계사, 건축기능사, 주택에너지진단사 등이 모여 만든 다울건설협동조합 대표로 주택에너지진단사이기도 합니다. 체온이 있는 따뜻한 집을 설계하고, 짓고, 고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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