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네 곁을 떠나온 지도 벌써 90일이 되어 가는구나!
그동안 공부에 열중 하고 있을 손녀를 생각하며, 가슴속 출렁이는 사랑의 미련은 머나먼 그곳 너의 곁으로 가고 또 가고 있단다.
이곳 한국에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산과 들에는 연둣빛 새싹들의 힘찬 웃음의
합창이 봄을 만끽하고 있지만, 할아버지 마음속은 아직도 한겨울 그 속에서 꽁꽁 얼어버리고 방향 잃은 발길 앞엔 흰 눈이 가득히 쌓여 있구나! 우선 할머니의 건강부터 너에게 얘기할게! 첫째로 조울증 두 번째는 머리 왼쪽 모세혈관 하나가 막혀있대! 지금 조증은 어느 만치 잡혔는데 우울증이 나타나고 있대.
혈관 한쪽 막힌 건 나이가 많아 수술은 못하고 약물로 치료해 보자고 하여 약을 먹고 계신데
혈관 뚫리는 것은 의사도 장담을 못한대! 다행인 것은 그곳을 지나는 모세 혈관이 두 개인데
한곳은 막히지 않았대. 만약 두 개가 모두 막히면 신체 반쪽을 쓸 수 없다는 구나!
그래서 막힌 곳 뚫는 것도 있고 나머지 한쪽 예비 차원에서 약을 복용하고 계셔!
할머니가 퇴원하신지 거의 60일이 되어 가고 있고 아침 식전 4알 약 드시고 아침식후 또 4알 드시고
저녁 식전 4알 잠자기 전 또 4알(현재 이것도 줄어든약이야) 매일 이렇게 반복해서 먹고 계서!
의사의 지시대로 보름에 한 번씩은 꼭 병원에 들러 병의 진전을 체크해야 되고 환자의 전반을 면밀히 관찰해서 의사에게 말해야 된단다.
의사의 말이 이 병은 완치가 힘들고 재발 확률이 높다고 얘기 하면서 환자보다 가족들이 더 힘들다고
하더라. 모든 면에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된다하니 어찌 세상살이에 그것이 쉬울 수 있겠니?
매일 걷기 운동을 해 드리고 있는데 걸음이 어눌하고 다리를 끌면서 걷고 계시고 200미터도 못가서 쉬어가야 하고 무척 힘들어 하셔! 꼭 부축을 해 드려야 하고 머리 감는 거나 샤워도 작은 고모가 늘 돕고 있단다.
주무실 때 숨을 잘 쉬지 못하셔서 몇 번 깨어서 앉아 계시곤 해! 그리고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잘 쓰지 못하여 지난달 진료를 해 보니 어깨에 석회가 쌓여서 주사 맞고 레이저로 파괴를 했는데 지금도 너무 아파 하셔서 내일은 또 병원 가는 날인데 정형외과, 정신과, 호흡기 내과를 가야해! 하루 종일 걸릴 거야!
웃음이 없고 말도 없고 무엇을 물어도 대답이 없고, 눈빛이 너무 흐려 무엇을 보는지조차 분간 못 하겠어. 화를 내거나 쌍욕 하는 거는 하나도 없고 꼭 바보같이 멍하니 있기 만해!
기억력이 무척 떨어지고 인지 능력도 너무 떨어져서 무슨 말을 해도 이해가 부족해!
할아버지 생각엔 그 지독한 약을 몇 달 동안 먹어서 독한 약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보고
의사와 의논해 봤어. 의사 얘기로는 지금 먹는 약을 줄이면 병이 도지기 때문에 줄일 수 없다는 거야!
이 모든 것이 할아버지의 운명인 것을 어쩔 수 없지만 작은 고모 고생 하는 게 불쌍해서 가슴이 아파!
사랑하는 손녀 소람아!
이토록 고민과 고독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면 예쁘고 상냥한 너를 생각 하면서 마음을 달래 본단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행복한 사람이야! 혹독한 고독 속에서도 마음을 주고 의지하며 사랑을 보낼 수 있는 네가 있으니까 말이야! 작은 고모도 큰 고모도 경제적인 여유가 너무 없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더더욱 미안함뿐이란다. 병원비가 장난 아니게 나오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필요한 물건 구입과
용돈도 작은 고모한테 기대고 있으니 미안할 뿐이야!
소람아! 재용이 소정이 소람이 너희들이라도 며칠에 한번 할머니한테 카톡을 보내 줬으면 좋겠어!
할머니는 지금도 너희들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지 재용이 밥은 잘 먹고 있는지 걱정이 많으셔! 그렇게나 손자들 사랑하는 마음 지금도 변함이 없으셔. 너희들 위로의 몇 글자가 할머니한테는 큰 위안이 되리라 생각해!
카톡을 작은고모 전화로 하면 작은 고모가 할머니께 읽어 드리면 되고 너희 삼남매 동영상을 보내주면 더욱 좋겠지....니모도 가끔 보고 싶어 하시니까 니모도 찍어 보냈으면 좋겠지?
지금은 할머니가 미국은 못 가시고 나중에 웬만큼 건강이 회복이 되셔야 갈 것 같아!
보고 싶은 마음에 너에게 몇 자 안부 전한다. 모쪼록 공부 잘 하고 건강해 다오!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