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군.
1995년 삼척시와 통합하여 도농통합형태의 삼척시가 되었다. 일찍부터 석탄광업이 시작되었고, 풍부한 석회암층과 철도 및 항만시설을 기반으로 시멘트 공업이 발달했다. 지금의 삼척시 도계읍·원덕읍·근덕면·하장면·노곡면·미로면·가곡면·신기면 등 2개읍 6개면 161개 동리가 이 지역에 해당한다.
삼척군이 위치했던 지역은 삼한시대에 진한의 실직국(悉直國)이었으나 102년(파사왕 23)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신라는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를 설치하고 군주를 파견했다.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757년(경덕왕 16)에 삼척군으로 개칭, 명주(溟州:강릉) 관하가 되었다. 이때 영현(領縣)으로 죽령(竹嶺)·만향(滿鄕:또는 滿卿)·해리(海利)·우계(羽溪)를 관할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척주(陟州)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는 삼척현으로 강등되어 동계(東界)에 속했다가 1377년에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穆祖)의 외향이라 하여 1393년 부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가 되어 조선시대 동안 지속되었다. 강릉과 더불어 영동의 큰 고을이었으며, 삼척포진(三陟浦鎭)이 설치되어 강원도 해안방어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척주·진주(眞珠) 등의 별호로 불렸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강릉부 삼척군, 1896년에 강원도 삼척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부내면·말곡면이 부내면으로, 도상면·도하면·견박곡면이 북삼면으로 통합되어 9개면이 되었다. 부내면은 1917년에 삼척면으로 개칭되고, 1938년에 삼척읍으로 승격되었다. 1945년에 북삼면이 북평읍으로 승격되었다. 1960년에 상장면이 장성읍으로, 1963년에 소달면이 도계읍으로, 1973년에 장성읍 황지출장소가 황지읍으로 각각 승격되었다. 1980년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이 통합되어 동해시로, 이듬해에는 장성읍과 황지읍이 통합되어 태백시로, 1986년에는 삼척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됨으로써 중심 지역들을 상실했다. 한편 1980년에 원덕면이 읍으로, 1986년에 원덕읍 오저출장소가 가곡면으로, 1989년에 도계읍 신기출장소가 신기면으로 승격되어 2개읍 6개면을 관할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삼척군과 삼척시가 통합되어 삼척시라는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 삼척시
1995년 삼척군과 삼척시가 통합해 지금의 삼척시가 되었다. 강원도 동해안 최남단에 있으며, 동해시·태백시·울진군과 접하고 있다. 일찍부터 석탄산업이 발달했으며, 석회암층이 풍부하고 철도 및 항만시설이 발달해 우리나라 시멘트 공업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도계읍·원덕읍·근덕면·하장면·노곡면·미로면·가곡면·신기면·남양동·성내동·교동·정라동 등 2개읍 6개면 4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은 27개). 시청소재지는 중앙로이다. 면적 1,185.78㎢, 인구 73,434(2006), 인구밀도 62명/㎢(2006).
강원도 삼척시 북부에 있는 면.
면소재지는 하거로리이다. 험준한 산이 많으며 서부에 두타산(1,353m)·쉰움산(688m) 등이 솟아 있다. 동부를 흐르는 오십천이 소하천들을 합류하면서 동해로 흘러들며, 하천 양안에 소규모의 충적지가 분포한다. 마늘·옥수수·감자 등 밭작물이 주로 생산되며 소의 사육두수도 많다. 문화재로는 활기리의 삼척활기굴(강원도 기념물 제41호)과 내미로리의 천은사가 있다. 영동선과 도로가 오십천을 따라 나 있다. 하거로(下巨老)·무사(武士)·사둔(士屯)·상거로(上巨老)·하정(下鼎)·상정(上鼎)·천기(川基)·활기(活耆)·하사전(下士田)·상사전(上士田)·동산(東山)·삼거(三巨)·고천(古川)·내미로(內未老) 등 14개 동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은 19개). 면적 99.44㎢, 인구 2,242(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