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 첫 부임 설교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제일 떨 때입니다. 두 번 세 번 하다 보면 더 자연스럽게 되겠죠.
오늘 찬양을 들으면서 찬양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천사들이 와가지고 앞에서 찬양을 막 하고 연주를 막 하는데 하늘의 문이 열리는 거 보셨습니까? 장로님 보셨죠? 그리고 하늘의 문도 열리고 마음의 문들도 열리는 그런 찬양이었습니다. 그죠? 그 찬양을 통해서 앞에서 찬양할 때 보면 너무 간절함으로 이 찬양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의 마음이 열리고 그 마음 문이 열려서 이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런 마음으로 찬양을 할 때에 찬양이 참으로 은혜가 되고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는 시간이 돼서 이 설교하기 전에 너무나 벌써 이미 반은 다 열어놨구나 이 예배를 잘 인도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와서 보니까 우리 구미 목장교회는 너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밥이 맛있습니다. 이 입이 열려야 마음이 열리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밥이 다른 교회는 가면 그냥 국수 아니면 이제 국하고 밥 그렇죠 그리고 김치 하나 그렇게 주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리 큰 교회라도 그런데 뭐 잡채가 나올 때도 있고 김치찌개가 나올 때도 있고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들이 나오니까 이렇게 입이 열리고 같이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거는 식구 아닙니까? 이 공동체가 늘어 공동체구나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모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무너지지 않고 틀어지지 않는 교회인 것입니다. 이 교회론이라고 하는데요. 이 교회론이 교회의 부재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본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이제 연말에 이제 그 부서에 부장님들이 이제 교체가 되고 다시 이렇게 새롭게 뽑히면 어떤 부장 집사님이 이 부서에 있다가 다른 부서를 섬기는 자리로 이렇게 이동을 하면 같이 섬기던 교사들이 대거 같이 쫙 옮겨가지고 다른 부서로 가는 그래서 몇 명 안 남는 그런 경우를 보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이지 사람을 보면서 내가 사역을 하고 일을 하는 거였나라는 그런 충격을 받았던 적도 있고요.
또 이번 코로나 때에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전까지는 교회에 안 나오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안 오고 방송을 통해서 예배를 드리고 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많이 무너지고 또 교회를 떠나는 그리고 신앙이 많이 이탈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교회론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재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구나 이런 신앙이 흔들리는 일들이 생기는구나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에는 그냥 예루살렘 성전에만 가야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거기만 계신 그런 거였죠. 그래서 양 한 마리씩 이렇게 들쳐매고 가가지고 예배를 한 번씩 드리고 오는 거였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지진이 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휘장이 있지 않습니까? 성전의 휘장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찢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예배를 그 성전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에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면서 가라 땅끝까지 이르러 전하라 하셨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구원자로 믿는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그리스도인이 생겨났으며 그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주님의 몸된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 신약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열흘째 되는 날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을 받아서 설교를 하니까 그 앞에서 있던 3천 명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초대 교회가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의 말씀을 보면 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값주고 사신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보살피시고 세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그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다가 가이사라 지방에 이르러서 갑자기 뜬금없이 제자들에게 물어봅니다.
사람들이 나 누구라 그러냐 나를 뭐라 그러냐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예레미야라고도 하고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도 하고 그렇게 그런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라고 얘기하니까 예수님이 궁금했던 거는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렇게 3년 가까이 같이 제자로 삼아서 데리고 다녔는데 너희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너는 내가 누구인 것 같아 너희는 내가 누구인 것 같냐
라고 예수님이 물어보시게 됩니다. 제자들은 상당히 당황하게 됩니다.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 무릎에 오늘 본문 말씀처럼 시몬 베드로가 대답을 합니다. 수제자답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베드로가 신앙의 고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맞다고 베드로에게 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다. 응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원래 베드로는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이었는데 예수님이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너 그 시몬으로 살지 말고 앞으로 베드로라고 살아
왜요? 워낙 베드로가 다혈질입니다. 열받으면 칼 들어서 귀도 자르고 그죠 그리고 막 다열질로 그렇게 하다가도 또 자기도 나도 예수님처럼 무리를 걷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또 무리를 걷다가도 또 빠지기도 하고, 그랬던 베드로는 심지가 굳지도 않고 흔들림이 많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예수님이
너 잘한다
그러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렇게 살아라는 너 베드로로 살아
베드로는 페트라입니다. 페트라는 반석이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흔들림이 없는 반석, 육중한 반석 위에 그 신앙이 서야 된다고 베드로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그 베드로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그 고백 위에 세워진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이며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자를 뜻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넘어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교회 모래 위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반석 위에 지어진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을 보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낳으신 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친이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라
고 말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몸은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야 됩니다. 몸이 이것을 지으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래서 이렇게 물을 마셔야 되는데, 그러지 않고 휴지를 짚는다든지 딴 짓을 하면 그거는 뭔가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몸은 움직여야 됩니다. 풍이 걸리거나 뭔가가 신경에 문제가 있지 않는 한 건강하다면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그 몸은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머리 대신 주님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건강한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에베소서 4장 15절 말씀을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으므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고 얘기를 합니다.
제가 이 컵을 집어야 되면 머리에서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면 그것이 이 손이 집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서 손의 일이라고 해서 내가 눈이 내 일이 아니야. 눈을 감는다든지 고개가 이쪽을 봐줘야 되는데, 보지 않고 딴 데를 보고 있다든지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숙여주지 않는다면 이 손이 이것을 짚는 데에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을 하는 것은 손이지만 같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서 연결돼서 같이 움직여야 되는 게 이 몸의 지체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몸은 움직이지만 교회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있기 때문에 다 생각이 다르지만 그 생각을 어디에 맞춰야 됩니까? 머리 대신 예수님께 맞춰서 함께 움직일 때에 내 일이 아니지만 그 손이 움직이기에 같이 협력할 때에 그 일이 얼마나 더 순적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들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한 공동체로서 부르심을 받은 지체들입니다. 머리 대신 예수님의 뜻대로 마음을 모으고 생각을 모아서 한몸으로 움직이는 우리 구미 목장교회 지체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머리가 온몸을 주장하고 지배합니다. 머리가 없으면 몸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모든 중심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모든 활동의 중심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머리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몸된 교회가 공급함을 받고 성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머리만 큰 가분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같이 몸도 자라야 됩니다. 성장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된 교회의 우리 지체들을 결코 잊으시지 않으시며 선한 목자로서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몸소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우리 공동체 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구속의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내가 뭔데 내가 뭐라고 날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 높고 높으신 보자 위에서 이 낮고 천한 곳에 날 위해서 오셔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이 몸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성장해서 하나님 나라의 지체들로서 자녀들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버팀목과 같은 것이죠. 울타리와 같은 것이 교회 없이 어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우리의 신앙을 굳건함으로 이 어지러운 세상, 흔들린 세상에서 지탱하고 성장하고 제대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몸된 교회를 공동체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머리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온전하며 견고함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우리 구미 목자 성도들이 지체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