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소송이 일본 최고재판소에 패소한 후 후지코시 회사 앞에서 규탄 행동, 앞줄 가운데.(2011.10.31)
도야마를 찾은 광주 고등학생들과 후지코시 회사 앞에서 가진 문전행동을 마치고...(2015.8.5)
도야마 후지코시 회사 앞에서 가진 문전행동.,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오카다 쇼지 선생님.(2015.8.5)
도야마 후지코시 회사 앞에서 가진 문전행동. 맨 오른쪽이 오카다 쇼지 선생님.(2015.8.5)
오카다 쇼지 선생님이 후지코시 문전행동 중 손수건으로 김정주 할머니가 들고 있는 액자에 빗물을 닦아주고 있다. (2011.10.31)
도야마 후지코시 회사 앞에서 문전행동을 마치고. 앞줄 맨 왼쪽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3.11.26)
정경희 선생님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2015.8.5)
문전행동 계획을 입수하고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대형 스피커를 장착하고 나온 우익단체들.(2017.7.30)
어려운 상황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울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교류단 일행(2017.7.30)
노구를 이끌고 문전행동에 나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2018.7.30)
도야마 후지코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지원 활동에 앞장서 활동해 왔던 ‘호쿠리쿠연락회’의 중심 멤버 오카다 쇼지(岡田昭治) 선생님이 지난 1월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다음은 나카가와 사무국장님이 알려온 내용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복지 시설을 이용하고 있어 안부가 궁금했는데, 반송돼 온 우편물 메시지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오카다 씨는 원고 할머니들과 같은 세대였습니다. ‘차별과 전쟁을 용납하지 않는다’. ‘전쟁·도야마 공습 체험부터 반전운동’에 열심인 분이었습니다.
후지코시(不二越)의 2차 소송에서는 연락회의 중심적 존재였습니다.
3.11 대지진(2011) 이후에 임한 호쿠리쿠 전력 앞의 행동에는 항상 오카다씨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겸손하고, 뒷일을 진행하시는 분으로, 밝고 큰 웃음소리로 항상 격려했습니다. 온화한 그가 후지코시 주주총회에서 거세게 사장을 비판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일 청소년 교류에서 광주에서 온 고등학생들이 후지코시 문전행동에 참가했을 때,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오카다 씨)가 후지코시를 향해 싸우고 있는 모습에 놀라며, 학생 자신들은 ”아무것도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납니다.
누구에게나 차별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소년과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오카다 씨.
존경하는 인생 선배님이 또 한 분을 떠났습니다.
부디 저희를 지켜봐 주세요.”
...
생의 마지막까지 굽은 허리를 일으켜 세워 할머니의 존엄 회복을 위해 싸웠던 오카다 쇼지(岡田昭治) 선생님을 오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고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