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36
후소 김여정 시인
후소(後笑) 김여정(金汝貞) 시인이 『김여정 시전집(1968-2012)』과 『김여정 문학세계』란 책을 택배로 보내왔다. 이 더운 여름 폭서에 이렇게 두꺼운 저서를 펴내대니, 사실은 ‘김여정 시전집 간행위원회(박제천 조건상 강우식 이지엽 이상호 장순금)’에서 김여정 시인의 팔순(八旬)을 맞아 그의 문학을 총정리한 우리 시문학사에 길이 보존될 자료였다.
내가 김여정 시인을 만나게 된 것은 박체천 시인이 경영하는 ‘문학아카데미’ 월례 모임이 대학로 샘터 파랑새극장에서 열렸는데 여기에 갔다가 그를 만나게 되었고 그후에 문협과 예총에서 자주 뵙게 되었다.
언젠가는 내가 그가 근무하는 재외국민교육원으로 그에게 전해줄 원고료(당시 내가 예총『예술세계』주간으로 있었음)를 담당 직원에게 직접 전달하도록 보냈으나 거기에는 ‘김여정 선생’이란 분이 전체 직원 명단에 없어서 전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수소문을 해본 결과 김여정 시인은 필명이며 본명은 김정순으로서 교사, 교감, 교장까지 역임했다.
그후 다시 샘터 파랑새극장 모임에 참석하고 행사가 끝나서 식당으로 갔다. 저쪽 구석에 있는 나를 불렀다. 옆에 앉았더니 식탁 건너편에 앉아있는 묘령의 여인을 소개했다. 그이가 이기애 시인이었다. 여기 ‘문학아카데미’에서 오랫동안 연마해서 우리『심상』지 신인상에 당선되었으나 다음 호에 게재된다고 했다. 내가 같은 잡지 출신의 선배이니까 잘 부탁한다는 당부 말까지 곁들여서 소개했다.
그 이기애 시인은『문학과 창작』과『심상』에서 많은 작품 활동을 하다가 작년엔가 혈액암으로 아직 한창인 때에 일생을 마감하였다.
‘나의 문학과 인생’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에게 있어 문학은 ‘올레길’이요, ‘차마고도’라고 피력한 바 있거니와 고독과 고통의 내 인생역정에서 동거자요 동반자였던 문학은 곧 내 삶의 그 자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여 남은 내 앞의 사업의 길이 얼마일지 또 얼마나 가시에 찔리며 절뚝이며 더 걸어가야 할지는 미리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는 시전집 ‘책머리에’서 위와 같이 적고 있다. ‘팔순의 나이 앞에 서게 되어 시업 40년의 마지막을 정리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상념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1933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여 진주여고를 거쳐 성균관대 국문과와 경희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68년에『현대문학』에 「남해도」「편지」「화음」이 심석초 선생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후에 그는 월탄박종화 선생의 문하생들의 모임인 <수요회>(권태웅 등 소설가들과 김구용, 성춘복 강계순, 김수남 시인과 윤병로 평론가가 참가) 멤버로서 활동했으며 <청미(靑眉)> 동인(김선영 이경희 임성숙 김혜숙 허영자 김후란 등) 으로도 명성을 드높이면서 첫시집 『화음』에서부터 제13시집『미랭이로 가는 길』을 간행하고 1993년 회갑때 시집 8권을 묶어서『김여정 시전집』을 발간하였으며 그후 발간한 시집 5권과 미발간 63편을 묶어서 이번에 다시 팔순기념『김여정 시전집』과『김여정 문학세계』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렇게 청초하고 수줍은 여인이 있었나 / 저녁 으스럼 조심조심 밟아 내려오는 / 운악산 산자락 / 울울한 나무 그늘에 없는 듯 조용히 / 해맑은 미소 머금고 있는 / 은난초꽃 / 수줍디 수줍은 생면부지의 젊은 여인이 / 나도 몰래 / 내 마음을 빼앗아 가고 말았네 // 왜 장옷으로 얼굴 가린 아리따운 / '조선의 여인'이 떠올랐을까. / 銀의 공택 / 난초의 기품과 / 은은한 향기를 두루 갖춘 여인의 모습 / 청아한 은난초꽃 // 참으로 뜻밖의 귀한 만남 / 오래 오래 내 가슴 깊은 산자락에서 / 새벽이슬 같은 꽃 피우고 있으리
이 작품 「은난초꽃」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인자한 인품을 연상할 수 있는 ‘청초한’ 이미지가 풍겨온다. 이렇게 청초하고 수줍은 ‘조선의 여인’이 난초의 향기로 청아한 그의 시혼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그는 시집 외에도 수필집『고독이 불탈 때』등 2권과 5인공동(홍윤숙 천경자 박완서 이해인) 수필집 『사랑은 고통받는 기쁨이더라』를 발간하여 우리 문단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노력인 인정되어 월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동포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균문학상, 남명문학상, 공초문학상,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시인은 죽을 때까지 현역이어야 한다’ 시의 세계에 은퇴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작품을 쓰는 것은 시인의 의무이자 사명이며 산다는 것은 결국 작품을 쓰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품을 쓰지 않는 시인은 새이며 날지 않는 새가 아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날다가 곤두박질할 수 도 있지만 그것도 날아오르기 위한 곤두박질이어야 한다고 생각입니다.
그가 시집에 대한 대담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해연사(海燕詞)’는 바다 제비의 노래라는 뜻인데 이처럼 ‘바다는 항상 움직이며 소용돌이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바다 위를 나는 제비는 날개를 접고 쉴 수가 없지요. 그러한 상황이 바로 우리의 삶이 아닌가’ 하는 시적 연결로 시인의 창작 열기에 대한 게으름을 적시하면서 교훈을 던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 일상과 관련을 가지면서 사물의 내면을 추구하여 그 배후에 인생의 의미를 내포(『한국문예사전』하고 있다고 했으나 고명철 평론가는 ‘우리가 김여정 시인의 시에 친근감을 갖는 데에는 그가 어떠한 염결성(廉潔性)과 엄숙성에 젖어든 범접 못할 시인이기보다는 우리들 이웃에서 우리들의 일상성 속에서 스러져가고 있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해내어 그것을 우리와 함께 교감하는 가운데 삶은 아름답다라는 정서를 자연스럽게 환기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다감한 정서가 중심을 이룬 작품들은 ‘1993년『김여정 시전집』기점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에는 ‘비상과 정착의 조화를 띤 작품 경향이 두드려졌다면 후기시 세계는 ’성숙과 나눔이다‘라고 시접집 간행위원장 강우식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는 문학행사가 끝나면 의례히 뒷풀이로 술집에 모여서 술을 곁들인 좌담을 계속한다. 주로 동행하는 이들은 강우식, 정진규, 김종철, 이상호, 박상천 등 그와 절친한 후배들이다. 그런데 강계순 시인을 제외하고 여류 시인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의 Y담을 비롯한 구수한 입담은 항상 좌중을 웃음천국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의 활달한 성품과 고매한 인격의 내면에서 풍겨나오는 다정다감이 그의 삶과 작품이 더욱 어우러지는 정신세계의 혼불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전화를 통화했다. 시전집과 문학세계 책 잘 받아서 읽고 있음과 그동안의 건강, 그리고 그의 지론과 같이 시인은 죽을 때까지 현역이라는 명언을 잊지 않고 열심히 쓰겠노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