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가처음 배운단어는 "엄마"였을것이다.
시도때도 없이 아마 엄마를 외쳤을것이다.
신나고 자랑하고 싶을때, 힘들고 외워로 지칠때도 혼자 조용히 엄마를 부를며 울었었지.
그런 엄마가 이젠 점점 빛을 잃어간다.
지난 설 때 설 전으로 긴 연휴가 생겨 이번 설엔 일찍 성묘를 하고 친정 엄마에게 가서
하루 묶고, 얼음 축제를 함께 즐기고 엄마가 원하시면 동생집에 모셔다 드리고 올 계획으로 서둘러 장보기를 했다.
홀로 계신 엄마집은 언제나 반찬도 빈약하고 온기도 없었다.
자식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챙겨 놓은 음식도 다음 간 자식들이 정리하기 일수 였다.
우리가족은 캠핑 가듯 장보기를 준비하고, 엄마가 두고 드실수 있는 및 반찬으로 견과류를 넣은
멸치도 우리집 레시피로 넉넉히 볶고, 젖갈, 구운 김, 사골 국, 걷절이도 챙기고
과일도 동네분들과 나누워 드시라고 귤도 한박스 사고 샤인머스겟도 한박스, 늘 드시는 베지밀도, 군것질용으로
달콤한 사탕도 한봉지,
지난번 자카르타에서 사온 과자와 커피도 , 엄마가 좋아하시는 감도 넉넉히 준비해
박스에 잘 정리해 아들 차에 차에 싣고
일단 성묘를 위해 충청도를 향했다.
모처럼 들뜨고 신난 마음으로 출발~~~
아들과 딸도 모처럼의 외할머니댁 방문과 얼음 축제를 기대하며 장거리 운전을 마다 않고
음악 볼륨도 한껏 높이고 달렸다.
아직 설 삼일 전이니 엄마는 동생집엔 안가셨을게다.
그 동안 엄마는 늘 명절 하루 전에 동생집에가셨으니...
'그래도 전화는 드려야지, 방에 보일러라도 올려놓으시라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이 목소리가 기운이 없으시다. ' 엄마 왜 목소리가 왜 그래요. 어디 아프세요 불편하세요? 하니
'나 정수네 왔어. 하신다 . 정수네요, 벌써? 하니
'내가 어제 밤에 씨러져서 애들이 날 데려왔어 .'하시며 큰 올케에게 전화기를 넘기신다.
올케 말이 어제밤 천장에 보일러실을 통해 쥐가 들어 온것 같아 그 쥐를 쫓으신다며
침대위에서 옷걸이를 천장을 향해 휘드르시다가 그만 침대에서 떨어지셨단다.
그바람에 밤중에 병원으로 향하셨고 , 병원에서 골반 위쪽 뼈가 금이 갔다며 움직이지 않아야 되기에
소변줄을 끼우고 ,동생 내외가 함께가서 동생집으로 모셔왔다고 한다.
엥~~~
멍하다. 골반뼈는 누구에게나 쉽지않은 위치다.
난 시어님께서도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골반뼈가 부러지고붙지않아 결국 돌아가셨다.
머리가 갑자기 휑하다.
전화를 끊고 차 안은 급 조용해졌다.
'일단 성묘하고 철원으로 가보자'. 아들은 알았다.며 충정도 시댁 선산쪽으로 달렸다.
산소에들려 성묘하고, 서둘러 선 산 주변에 계신 당숙댁, 친척 몇 집을 들려 준비한 선물을 드리고 나와
삽교천에서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쉼 없이 철원을 향했다.
동생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꺼칠한 모습으로 소변줄을 달고 쇼파에 앉아계셨다.
뒤이어 여동생도 연락을 받고 왔다.
모두가 웅성거리며 인사를 했다.
그러나 엄마는 점점 선망승세가 심해지시는것 같다.
작년 침해 검사에도 '경증 인지 장애' 였으나 생활 하시는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으셔서
늘 익숙한 고향에서 혼자 생활하고 계셨다.
그런데 지금은 식구들은 모두 알아보시지만, 당신이 왜 여기에 ,언제 오셨는지를 계속 혼란스러워 하신다.
엄마에게 연달아 지금 상황을 설명 드려도 잠시 후엔 또 손으로 소변줄을 빼려하시고
계속 일어나려하신다.
의사 선생님은 움직이지 말라 하셨다는데...
그리고 다음날 진통제효과가 끝나니, 고통을 호소하시고 계속 상황을 기억 못하시고 행동하셔
설 연휴이기도 하고 입원할수 있는곳이 마땅치 않아 여기저기 알아본끝에 철원 성심 요양 병원에 입원하셨다.
두달 정도 어쩌면 그 이상 입원하셔야 할것 같다고 했다.
설명절을 보내는데, 영 기분이 신통치 못하다.
의례적으로 막내 작은 아버님댁 식구들과 차례를 모시고 ,사촌 시동생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챙겨주고
우리 아들과 딸에게 세뱃돈과 세배 받았지만, 마음은 영 어수선하다.
내가 요 몇 일 '엄마' 엄마, 엄마를 얼마나 속을로 불렀는지 모른다. 앉으나 서나 무엇을 하던
그져 시도 때도 없이 소리없이 '엄마'를 불렀다.
내 평생 부른 숫자 만큼 될것 같다.
난 일찍 엄마 곁을 떠나 엄마와의 추억은 유년기 시절이 거의다다.
난 씩씩하게 자립하여 지금꺼 잘 살아 왔고. 어린시절 엄마가 몹시도 그리웠었지만, 그시절의 생활이 날 강하게 억제하여
잘 참고 살았다.
졸업후엔 직장생활에 명절과 가끔있는 행사에 다녀 오는것이 다였고
결혼후에도 종가집이라는 타이틀로 시집이우선이였고, 내 아이들 키우고 살다보니
엄마는 늘 그져 저 만큼에 있었던것 같다.
안 그래도 됐을텐데...
요 며칠은 참으로 마음이 진정이 안됐다. 뭔가 자꾸만 허둥대고 집중하지 못했다.
설 연휴가 끝나는 금요일 엄마에게 갔다.
환자복을 입은 엄마모습이다.
생전 용감하고 억척스러우리만큼 강했던 엄마인데...
자꾸만 콧등이 움직인다.
남편과 큰동생 내외 다 알아 보시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왜 오셨는지는 자꾸만 오락가락 하신다.
빨리 집에 가셔서 일하러 가셔한단다.
참으로 이런 상황에서도' 일 ' 당신이 살아있음을 일로 증명 하며 한평생 사신분이니...
안타깝고 속상하다.
상황은 변함 없이 같은상태로 한 달이 됐다.
몇 번의 면회를 갔고 볼때마다 같은 상태다. 입원이 너무 지루해 하시고
동생 내외가 그렇게 열심히 하루도 빠짐없이 드나들어도 그져 빨리 집에만 가시고 싶어 하신다.
아직도 의사 진단은 한 두달은 더 계셔야 한다는데...
그나마 처음 병원가실때, 못나오실것 같은 마음에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집에 가시려는 생각과
침대에서 일어나려는힘이 있어 다행이다. 싶다.
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