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lisabeth Bergner 엘리자베스 베르그너
20세기 초 중반 유럽 연극과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독특한 분위기와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1897년 8월 22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망: 1986년 5월 12일
국적: 오스트리아 출생, 이후 독일·영국 등에서 활동
직업: 배우 (연극, 영화)
Escape Me Never (1935)
그녀의 대표작이자 가장 큰 성공작
어린 시절, Jacob L. Moreno 모레노와의 만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lisabeth Bergner
제 32권 1979
집단 심리치료, 심리극 그리고 사회측정학
젤카가 이런 글을 쓴 이유는
단순히 엘리자베스의 전기 소개가 아니라,
사이코드라마의 기원과 가치를 “살아 있는 사례” 로 보여주기 위해서인 듯
사이코드라마는 병원에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놀이, 상상,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모레노는 빈의 아우가르텐 공원에서
아이들에게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는 청년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창조했습니다
아래 기사의 배경이 되는 모레노의 청년 시절은
모레노의 1909~1917년 전후 (빈 대학교 시절) 입니다.
그는 의대를 다니면서 철학과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가정교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사이코드라마학회 저널
제 32권 1979년 발표
집단 심리치료, 심리극 그리고 사회측정학
나를 결코 떠나지 마라 Escape Me Never
: 젤카 T. 모레노
참고 :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젤카이지만
글 속에서 말하는 이는 엘리자베스입니다.
모레노가 매우 젊은 시절, 빈의 정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던 경험은
그의 치료적 방법이 발전하게 되는 토양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 놀이들에 대해 1908년 『아이들의 왕국(Das Koenigreich der Kinder)』에서 저술하였습니다.
그가 제공한 기회 속에서 한 아이,
또 한 아이가 진정한 극적 재능을 드러내는 모습을 목격하였다고 서술하면서,
그는 결코 자부심 없이는 이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훗날 연극계에서 두드러진 경력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마 가장 재능이 뛰어나고 널리 찬사를 받은 인물은 배우 엘리자베스 베르그너였을 것입니다.
베를린의 막스 라인하르트 극장에서,
런던에서는 찰스 코크런과 함께,
영화에서는 알렉산더 코르다 및 그녀의 남편 파울 치너와 함께 활동하며,
세계 각지를 순회 공연하였던 그녀는 무대의 빛나는 존재였습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은 오늘날 영화사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작품들 가운데에는 그녀의 가장 큰 성공작인
『나를 결코 떠나지 마라(Escape Me Never)』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어쩌면 그녀가 모레노에게 품었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엘리자베스 베르그너는 자신의 자서전
『많이 찬미받고 많이 비난받다(Bewundert Viel und Viel Gescholten)』를 집필하였습니다.
그녀는 우아함과 탁월한 표현력으로 모레노에게 진 빚을 갚고 있습니다.
뮌헨의 C. 베르텔스만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저는 다음의 발췌문을 번역하였습니다:
저는 아직 열 살입니다, … 저의 아버지께서 … 모레노를 저의 어린 삶 속으로 데려오셨습니다.
분명히, 분명히, 저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습니다.
빈 대학교의 의대생이었던 야콥 모레노는 대략 스무 살, 많아야 스물세 살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수염 때문에 백 살처럼 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주 나이 많은 남자들만이 수염을 길렀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콧수염을 기르셨습니다.
모레노는, 제가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되었듯이, 그리스도와 같은 수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날씬했으며, 언제나 미소 짓고 있는 듯한
매혹적으로 아름다운 푸른 눈과 짙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가장 매혹적이었던 것은 그의 미소였습니다.
그것은 조롱과 친절이 뒤섞인 것이었습니다.
사랑스럽고도 유쾌한 미소였으며,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가 우리 가족 전체를 보며 달콤하게 즐거워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레노는 우리의 새로운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그의 어머니를 아셨던 것인지,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갑자기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아무것도 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는 그저 어느 날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간의 흐름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저의 정신적 탄생의 시작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이 시기와 제 삶에서 모레노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다면,
이 다소 의문스러운 자서전 집필도 어떤 목적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 역사는 거짓말의 미시시피강이다. ”
전기나 자서전을 읽을 때마다 저는 종종 이 말을 강하게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인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우리의 성장과 형성, 그리고 우리가 노출되는 영향들—단지 의식적인 것만이 아니라—
이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을 깨우고,
결국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그리하여 모레노는 우리의 새로운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께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제 자신에 대해 쓰는 것보다 아버지에 대해 책을 쓰는 것이 더 흥미로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여동생도, 남동생도 수업 외에는 모레노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모레노 역시 그들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저에게만 속해 있었습니다.
아니, 제가 그에게 속해 있었던 것입니다 !
그것도 무척이나 깊이 !
그는 단지 우리에게 공부만 가르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아우가르텐과 프라터에도 갔습니다.
그 전까지는 어린 남동생과 저는 그때의 요리사와 함께 프라터에 갔었습니다.
그녀는 주로 “부어슈틀프라터”에 있는 “예술가들(Artists)”이라는 장소로 우리를 데려갔습니다.
부어슈틀프라터는 아이들, 하인들, 군인들에게 아주 적합한 프라터의 한 구역입니다.
그곳에는 롤러코스터와 동굴을 통과하는 기차, 트램, 소시지 가게, 그리고 “ 예술가 극장 ”이 있었습니다.
남동생과 저는 그 부어슈틀프라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특히 “예술가들” 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제 인생 최초의 연극 경험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붉고 금빛의 비단 커튼이 드리워진 높은 무대를 가진 야외 맥주 정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곡예사, 마술사, 무용수, 광대, 마임 배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동생은 마술사를 더 좋아했지만, 저는 마임 배우들에게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보통의 경우, 요리사는 우리를 그곳에 데려가서는 “우연히” 아는 군인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 군인은 우리를 맥주잔이 놓인 그의 테이블로 초대했습니다.
우리는 매우 만족해하며 무대를 매혹된 눈으로 바라보았고,
요리사와 그 군인이 두세 시간 뒤에야 다시 테이블에 나타난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그녀는 말했습니다.
“자, 자, 이제 꽤 늦었구나.”
그러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낙원과도 같았던 시기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끝났습니다.
어느 때, 남동생과 제가 맥주잔과 함께 단둘이 앉아 있을 때,
한 남자의 눈이 뽑히는 긴장감 넘치는 무언극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관객들과 공연자들은 당황하고 짜증을 냈으며,
그제야 두 아이가 어른 없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요리사와 군인은 찾아졌고,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떠났습니다.
저는 한동안 울음을 멈출 수 없었고, 남동생이 저를 달래주었습니다.
“바보같이 굴지 마, 저건 진짜 피가 아니야. 얼굴에 바른 빨간 물감일 뿐이야.”
요리사도 말했습니다.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앞으로 ‘예술가들’에는 절대 데려가지 않을 거야.”
집에 도착할 즈음 저는 울음을 멈췄고,
그날 저녁에는 아무도 아무 일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비명을 지르며 울면서 잠에서 깨어났고,
놀란 부모님께 눈이 뽑힌 장면과 피로 뒤덮인 얼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으로 “예술가들” 시기는 끝이 났습니다.
우리는 다시는 그곳에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예술가들”에 대한 기억에 깊이 감사하고 있으며,
이 “예술가 시기”가 제 안에 연극에 대한 매혹을 불러일으켰다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관객으로서의 연극에 대한 매혹만큼은 분명합니다.
비록 저는 지금까지도 『리어왕』 공연에서
글로스터의 눈이 뽑히는 장면이 나오면 로비로 도망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지만 말입니다.
단순히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도 시도해 보았습니다.
또한 이 “예술가들” 경험이 부모님께 더 이상 우리를 요리사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필요성을 깨닫게 했고,
그 결과 모레노를 집으로 들이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레노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업이 쉽고 빠르게 끝난다는 사실은 곧 더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를 외우도록 주어졌습니다.
그것도 교과서에 있는 「종」이나 「인질」 같은 것들만이 아니라,
가장 거칠고도 아름다운 “알려지지 않은” 시들이었습니다.
“달이 떠오르고 작은 황금빛 별들이 빛난다.”
“달려라, 달려라, 낮을 지나 밤을 지나 다시 낮으로.”
.........................
“하지만 줄넘기를 하려면 꼭 줄이 필요한 것은 아니란다!
자, 이 줄넘기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난한 아이에게 주자꾸나!”
“공놀이를 하려면 공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란다!
자, 내가 태양을 너에게 던져 줄게, 받아 보렴!”
“아야, 저 타버렸어요!”
“자, 자, 화상이 가라앉을 때까지 내가 붕대를 감아 주마.”
그리고 프라터로 가는 길에 그는 거리에서 만난 아이 몇 명을 데리고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장난감은 그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모두 풀밭에 앉아야 했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우리만의 동화를 만들어 보자!
옛날 옛적에 일곱 아들을 둔 왕이 있었단다.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모든 아이는 이름과 성격, 그리고 운명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는 이야기의 흐름을 돕기 위해 중간 중간 질문을 던졌습니다.
많은 아이들은 이 놀이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늘 다시 왔고, 또 다른 아이들을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놀이들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했습니다.
반면 제 남동생은 그것을 지루하게 여겼습니다
그 다음 모레노는 우리와 함께 연극을 하기 시작했고,
극을 연습했습니다.
제가 맡은 첫 역할은 The Imaginary Invalid 에서의 투아네트였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함께 연기했습니다. 저는 마치 물속에 던져졌지만 곧바로 헤엄칠 수 있게 된 것과 같았습니다.
제가 모레노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어느 날 제가 스케이트를 타고 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의 일을 이야기하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는 저보다 30분 먼저 와 있었습니다.
저는 몹시 두려웠습니다.
“괜찮아요,”
문을 열어 준 요리사가 말했습니다.
“지금 어머님과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그냥 들어가세요!”
저는 돌처럼 굳어 버렸습니다.
커피라고요?
그가 커피를 마신다고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처럼?
그것은 모욕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요리사는 저를 열쇠구멍으로 밀어 넣었고,
저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커다란 빵을 한 입씩 베어 물고 있었습니다.
말문이 막힌 놀라움 속에서 저는 그를 완전히 다르게 인식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몹시 실망했습니다.
훗날에야 저는 더 큰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범한 육신을 지닌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특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제 삶 속에 4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시간들이었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어휘 속에 “추상적(abstract)”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단어와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 “추상성”이라는 개념이 말하자면 제게는 어머니의 젖과도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모레노에게 받은 저의 모든 교육은
이 “추상적인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흡수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제 앞에서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배우가 될 것입니다.”
“그거야말로 우리가 딱 필요했던 거군요,”
아버지께서 대답하셨고, 모두 웃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말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는 배우가 될 것입니다.” ..........
이 4년은 저에게 새로운 배움과 성장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
- 참고 자료 -
1900년대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에서는
아이를 부모가 직접 돌보기보다 하인(요리사, 유모, 가정교사)에게 맡기는 것이 흔했다.
요리사와 군인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모레노를 만나기 이전의 그녀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모레노를 만나고 난 후 엘리자베스는
관계와 의미와 창조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엘리자베스는 부모가 아닌 요리사에 의해 돌봄을 받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위에서 말한 " The Imaginary Invalid " 상상병 환자라는 연극에서
모레노가 엘리자베스에게 이 역할을 맡긴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Le Malade imaginaire 이 풍자 코미디에서
투아네트의 역할은 사실상 사이코드라마의 역할 교대와 비슷하다고 함
엘리자베스는 모레노를 거의 초월적 존재처럼 인식하고
신비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 엄마랑 커피 마시고 빵 먹는 평범한 모습 ” 을 목격하게 되면서
모레노에 대한 신화가 깨지면서, 모레노는 인간이면서도 비범하다고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