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49)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 ②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 시인 안도현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브런치/ 글에 깊이를 더하기 위하여 -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 ②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
시인의 관찰은 과학자와 버금가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 사물의 현상이나 외피에 집중하는 과학자의 관찰을 넘어 시인은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과학은 삶을 앞으로 진보시키지만 시는 삶을 반성하게 만드는 양식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일은 그 사물의 실체와 본질을 밝히는 첩경이다. 시인은 그것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해서 형상화해야 하는 자이다. 그래야만 독자에게 ‘아, 나는 왜 그것을 보지 못했을까?’ 라는 뒤늦은 후회를 안겨주면서 속으로 득의만만한 웃음을 띠며 우쭐댈 수 있게 된다.
바닷가 고요한 백사장 위에
발자국 흔적 하나 남아 있었네
파도가 밀려와 그걸 지우네
발자국 흔적 어디로 갔나? 바다가 아늑히 품어 주었네
―김명수, 「발자국」 전문 (『바다의 눈』, 창비, 1995, 28쪽)
바닷가 백사장 위에 찍힌 발자국은 누구나 볼 수 있다. 파도가 밀려와 그 발자국을 지우는 풍경도 바닷가에서는 흔하게 보게 된다. 그 당연한 사실에 의문을 가지는 데서 오롯이 시가 생겨난다. 발자국 흔적의 행방을 찾는 이 의문은 ‘품어주다’라는 동사를 만나 아연 시적 깊이를 획득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백사장 위의 발자국을 오래 바라보며 관찰하는 시인의 눈을 만나게 된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표제작인 다음 시의 제목은 『바다의 눈』이다. 관찰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 시에서 ‘바다의 눈’은 바로 ‘시인의 눈’이다.
바다는 육지의 먼 산을 보지 않네 바다는 산 위의 흰 구름을 보지 않네 바다는 바다는, 바닷가 마을 10여 호 남짓한 포구 마을에 어린아이 등에 업은 젊은 아낙이 가을 햇살 아래 그물 기우고 그 마을 언덕바지 새 무덤 하나 들국화 피어 있는 그 무덤 보네
―김명수, 위의 책, 33쪽.
세상을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 곳을 보기 위해서는 망원경이 필요하고, 미세한 것을 보기 위해서는 현미경이 필요하다. 거대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7~80년대에 시인들은 주로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았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시인들은 현미경으로 사물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미시적 관심을 가지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광장’을 바라보던 시인의 눈이 ‘골방’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광장에 서서 망원경을 들고 군중을 바라보던 ‘그’가 골방의 ‘나’로 회귀한 형세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해 외치던 3인칭의 목소리를 1인칭의 내면 탐구 형식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장의 햇빛을 뒤로 하고 골방의 그늘에 들어앉은 시는 그 이전보다 훨씬 촘촘한 상상력의 밀도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골방은 음습해서 점점 자폐적 공간으로 바뀌어가게 마련이다. 광장을 떠나온 자아는 아예 광장을 외면하거나 기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 단계 한국시의 자폐적 경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인의 눈과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할 때가 되었다. 시인은 옆에 항상 망원경과 현미경을 함께 준비해두어야 하고, 광장과 골방 사이에서 그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그 둘 사이에서 긴장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인이란 시를 빚는 사람이면서 자기 자신을 빚는 사람이므로.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의 시작법(안도현, 한겨레출판사, 2020.)’에서 옮겨 적음. (2023. 5.16. 화룡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