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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3학년 누리, 솔, 건희와 우리말 수업으로 만났습니다.
재잘재잘 말 많고 밝고 사랑스런, 세 학생들 기운 받으며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3학년 들어 깊어지는 생각들을 나누며,
친구들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봄학기에는『열다섯의 곰이라니』라는 소설을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이 책은 사춘기 아이들이 동물이 된다는 재밌는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또래의 고민이 담겨있는 책이라 등장인물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고,
소재도 흥미로워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매주 책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골라 소감글을 적는 숙제를 했는데요.
그중 몇 편을 골라 나눕니다.
누리
"차라리 비둘기가 되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곰탱이가 되어서는 (...)"
내 처지가 어렵고 맘에 안 들면 남이 더 커 보이고 부러워진다.
사실은 그 누군가도 자기만의 불편함과 단점이 있는데도 말이다.
책 속에서 태웅이 되고 싶어하는 비둘기도 알고 보면 별로 좋을 게 없고 나름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부러움이 가득 찬 마음으로는 그 속마음이나 세세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나의 가장 큰 단점이 그에게는 없다는 사실만 집중한다. 그래서 자주 비교하고 자책하고 속상해하게 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각각의 처지에 다 이유가 있다. 나의 나약함이 나의 은사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약점으로 느끼던 것이 어떤 부분에서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도움이 안 된다고 힘들어하는 건 미련한 일 같다. 또한 나의 약점이
나만의 고유한 모습이 될 수도 있으니 나만의 약점만으로 남아있지 않게 잘 가꾸고 싶다.
"저렇게 크게 앓고 나면 남은 생애는 사람으로 잘 살아갈 걸세. 이 시기를 겪지 않으면 눌러둔 제 본능 때문에
언젠가 괴로워할 날이 있을 테고. 제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 따라 그 길이 생기는 거라네.
가장 많이 머문 곳에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이 그림자가 되고, 그 그림자가 동물이 된 걸세."
나에게 위로하고 응원해주는 말이었다. 그동안 끝없이 고민하고 무언가로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다 필요한,
겪어야 할 시기였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도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고, 어려운 시간을 통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어려움을 처음 마주할 때는 막막하고 싫고 피하고 싶지만 용기 내서 겪어보고 마침내
이겨내면 정말 많이 성장해 있다. 그래서 나에게 어려운 일들이 찾아오는 게 고맙기도 하다.
습관적으로 밀어내게 되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할 수 있을 때 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하고
기회가 오면 일단 시도해보고 실패도 많이 해보고 싶은데 두려움, 걱정, 꺼림이 먼저 찾아온다.
아마 지금을 인생의 전부로 보고 너무 집중해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이 가장 중요해서
잘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무의식 중에 든다.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도 좋지만,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다. 또한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르니 지금, 할 수
있을 때에 더 많은 것을 시도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마음에 두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길을 만든다고 하니, 지금 필요한 것을 생각하며 잘 지내야겠다.
“네 울타리는 네가 열고 나와”
주변 이들이 아무리 도와주고 이야기하고 재촉해도, 막상 마음을 열고 변화를 시작하는 건 자기 자신의 몫이고 선택인 것 같다.
무엇이든 내 의지와 노력과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나를 보면서, 친구들을 보면서 자주 느꼈다.
그리고 그때 지켜보는 이로써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지만 꽤 많은 것들이 있었다.
‘스스로 마음을 열 수 있게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것, 기도하는 것,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않는 것,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허무해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것.’ 모두 지금까지의 내 경험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이다.
앞으로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 이걸 기억해서 마음을 여유롭게 하고,
내 안에 있는 울타리를 찬찬히 둘러본 뒤 어떻게 나오면 좋을지 고민해야겠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렵거든. ‘엄마’는 애를 낳으면 쉬 불리는 이름이지만
‘좋은 엄마’는 참 난감한 이름이잖아. 내 배로 낳은 자식이 아닌 아이를 내 자식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보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를 수백, 수천 번 고민하게 되더라고.”
이 글을 읽으며 좋은 사람,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 좋은 가족이 무엇인지 살짝 알게 되었다.
내 자식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보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말처럼
내 상황, 내 마음보다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며 고민하고 살아가는 게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인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 내 몸을 던지거나 상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한 번 더 떠올리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헷갈려서 이상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도 있는데 우리 모두 똑같이 귀한 사람이란 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또 좋은 사람이 되려면 상대를 오래 관찰하고 깊게 관심을 두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럼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까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때때로 좋은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말하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솔
“세희는 처음으로 이상한 소원이 생겼다. 세희는 말랑거리던 제 마음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나도 허무맹랑하고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소원을 빈 적이 많다.
그런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다 진짜 현실적이고
덤덤한 소원을 빌 때는 좀 우울해진다. 난 요즘에 소원을 잘 안 빈다. 불투명한 희망보다는
내 노력이, 고민이 더 가치 있는 것 같아서 소원을 비는 게 아니라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그렇지만 세희의 그 마음이 공감되어서 기억에 남았다.
“왜 각기 다른 동물로 변할까요?” “제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 따라 그 길이 생기는 거라네.
가장 많이 머문 곳에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이 그림자가 되고, 그 그림자가 동물이 된 걸세.”
주지 스님과 다른 스님이 개가 된 국영을 보며 나눈 대화다. 나는 동물화를 겪진 않지만, 이 말이 공감되고
기억에 남았다. 꼭 동물이 되지 않더라도 가장 많이 머문 곳과 가장 많이 한 생각에 따라 사람도
달라진다. 지내는 환경과 주변 이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 흔적이 그림자가 된다. 그러면
그 그림자는 평생 그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특히 어렸을 때 겪은 사건들이 더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런 편안하고 행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다행이고 앞으로도 이 기억들을 잘 간직하고 살고 싶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자 국영은 모골이 오싹해졌다.
자신은 몰라도 라텔의 엄마와 외할머니가 다쳐서는 안 된다.”
국영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한 긴박한 상황인데도 먼저
라텔의 엄마와 할머니가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하고,
도망칠 수 있는데도 그 집을 끝까지 지키려 하는 모습이 대단했고 국영이 너무 착한 것 같았다.
나라면 겁먹고 도망쳐버릴 것 같은데, 자기를 거둬주고 가족처럼 대했던 이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국영이 멋졌다.
“제각각의 동물화를 겪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함이다. 역설적으로
사람의 태에 어울리는 속마음을 키우도록 그런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으리.”
우리는 책의 등장인물들처럼 동물화가 되지는 않지만 사람의 태에 어울리는 속마음을 키워가는 중인 것 같다.
그런 방법으로 동물화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난 동물화가 되고 싶지 않고 될 수도 없지만,
앞으로 남은 푸른이 시절을 태웅이나 국영, 세희 같은 친구들처럼 마음의 키를 키우며
지내고 싶다. 나는 종종 웃자랐다는 말을 듣는다. 그건 내가 키에 비해 힘이 없는 것도 있지만
마음의 키와 몸의 키가 나란히 크지 않고 아직 어린 마음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도
지금 사춘기 시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동물화를 겪고
있는 것 같다. 내 속도대로, 천천히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건희
"다리와 집을 오가며 날개는 더욱 강해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가끔은 하천 주변을 날며 다리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나도 자전거 혼자 타며 이런 것을 느낄 때가 많았다.
또 산 타서 정상에 올랐을 때 길의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져 너무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좀 공감된 장면이었다.
"서우야 말로 이 동물화 세계의 진정한 강자가 아닐까. 마음만 먹으면 이 일대를 평정하고
왕이 될 수도 있는 놀라운 힘을 가졌을 텐데. 태웅은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진짜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서우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이 잘하는 것, 자랑하고 뽐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나 너무 떠들지 않고, 모두를 위해 가만히 있다 필요할 때 그 힘을 쓰는 것이
진정한 고수라고 느껴졌다. 우리 일상에서 너무 뽐내거나 튀려고 서로 노력하면
소외되는 이도 있고, 속상하고 부러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딱 필요할 때만
그 힘을 쓰는 이들이 정말 멋지게 느껴졌다. 근데 입이 가벼우면 안 해도 되는
말을 한다. 나도 주의해야겠다. 자나 깨나 입조심!
"말하기 싫은 사람 입 억지로 털고 싶지 않아. 네 울타리는 네가 열고 나와."
생각해 보면 정말 맞는 말 같았다. 아무리 상대가 듣고 싶고, 들을 마음이
있어도 정작 본인이 할 마음이 없으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 마음의 소리인 것 같다.
나도 새빛들 중학교를 처음 경험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는 별개로 내 마음이 닫혀있었다.
이런 마음을 느낀 나이기에 이 문구가 와닿았다. 생각해보면 마음의 문은 억지로 여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믿을 때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 같다.
“다들 정신 차려! 저놈이 하는 말은 다 헛소리라고! 사람이 되는 건 사람 밥을 먹게 되는 순서라고 했잖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람이 되니까 그전에 바짝 돈을 벌어놓아야 한다고."
나는 이 대장의 외침이 사회의 외침으로 들렸다.
그러니까 다른 상황에 이 말을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말이다. 사회나 세상에서는 더 많이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렇게 살기 위해 성적이 좋아야 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외침의 끝은, 그러니까 이렇게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삶의 끝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사고 싶은 욕심뿐 인 것 같다. 진학을 고민하는 요즘이야말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만약 학림에 가거나, 일반학교에 가거나 아니면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주변의 속삭임이 아닌
나의 뜻을 세우며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싶다.
* * *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어떤 책인지 소개하는 글을 써보았어요.^^
누리
이 책은 사춘기 아이들이 동물로 변한다는 새롭고 재밌는 주제를 가진 이야기다.
소설 속 푸른이들이 제각기 다른 동물로 몸이 바뀌면서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세상은 어수선해진다.
누군가는 몹시 당황하고 누군가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그걸 이용하거나 즐긴다.
그리고 저마다의 삶에서 저마다의 속도에 맞게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으며 성장한다.
그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동물화가 된 아이들이 겪는 상황을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하고 답답하거나 화가 나기도 한다.
누구 하나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조금이나마 자신을 알아가고, 이 세상을 알아간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마침내 성장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살짝 흐뭇해지기도 한다. 또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동물화가 일어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배움을 하면서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사실 현실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동물화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겉모습도 바뀌고
큰 불편함을 느끼면 더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보이지 않는 동물화(사춘기)가
우리에게 힘들고 어둡기만 한 시간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지,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올려보게 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어떤 상황과 사건을 여러 이들의 시점으로 보여줘서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소설 속 푸른이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민과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끝까지 읽고 나면 그 실수
많은 등장인물들이 밉지 않다. 누구 한 명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는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소설 주제와 잘 맞는 설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소설 속에 흥미진진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사이사이 뜻깊은 문장들과
생각해 볼거리들이 있어서 더욱 풍성하고 좋았다. 설정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참신하고 읽어볼 만한 소설이었다.
솔
<열다섯에 곰이라니>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작스레 동물로 변해버린 사춘기 아이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열다섯 살 태웅은 어느 날 갑자기 곰이 된다. 곰 농장에 잡혀가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겨우 다시 학교로 돌아왔지만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고 하이에나 상욱에게 시비를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키 작은 기린이라고 불리는 서우와 태웅을 좋아하지만 아주 말썽쟁이인 동생 영웅과 함께
사건 사고를 겪으며 점점 마음이 단단하고 성숙해진다.
곰, 비둘기, 기린, 들개, 라텔 등으로 변한 아이들은 여러 사건을 겪으며 스스로 만든
자신의 상을 깨고 한층 더 성장하게 된다. 사춘기 시절 겪는 여러 감정과 생각들을
현실적으로 풀어내어 10대 푸른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내는 내용이다. 여러 감정과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는 책이다. ‘동물화’라는 계기로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같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흥미진진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책 속으로 들어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열다섯에 곰이라>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각의 이야기로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10대 푸른이들과 그 푸른이들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내용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동물화를 겪는, 그러니까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어가는 모든 푸른이들에게 추천한다.
건희
열다섯에 곰이라니 라는 작품은 사춘기 아이들이 동물로 변한다는 재미있고, 기발한 설정을 가지고 시작한다.
이 책은 주인공 태웅부터 차례대로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여러 고민과 여러 가지 생각들을 볼 수 있다.
곰으로 변한 태웅, 기린으로 변한 서우, 비둘기로 변한 지훈과 세희, 라텔로 변한 영웅, 개로 변한 국영,
하이에나로 변한 상욱 등의 많은 친구들이 각각 자기만의 주제로 고민하며 치열하게 답을 찾는 과정에서 배울 것이 많다.
구체적으론 동물로 변한 아이들이 동물화가 되어서 직접 경험하며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만의 뜻을 세워 지켜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 그렇게 고민 끝에 해답,
자신의 길을 찾게 되는 순간 동물화는 끝이 나고 아이들은 더 성숙해진다. 꼭 이 소설만이
아니라도 자신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져서 자신만의 고민을 하는 아이들 모두 동물화 된 이들이다.
자신의 동물화를 소설로 인해 더 깊게,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동물화 된(사춘기 시절 여러 고민을 갖고 있는)
푸른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또 동물화 된 이들을 이해하려는 이들이 읽기에도 참 좋은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의 동물화를 잘 이해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을학기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슬픔과 원망, 외로움 같은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감정들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며 인간의 깊은 내면을 알아가는 시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
용기 있는 선택과 행동을 한 시민들의 삶을 알아가며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행복이 소중한 것임을 깨닫고 그 역사에 고마운 마음을 품는 시간,
또 여전히 이어지는 폭력과 어둠을 외면하지 않고 잘 바라보고
이 폭력들에 맞서기 위해 지난 아픔을 잘 기억해야 하는 우리의 자세를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한 장 한 장 곱씹어 읽는 이 시간 통해 우리 마음도 한층 더 깊어졌다고 느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1장 어린 새
누리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끔찍하고 괴롭고 두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 이렇게 마음을 정리했다고 느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군인들, 죽음을 감수(혹은 자처)하면서도 무언가를 지키려는 시민들, 억울하게
죽어버린 희생자들, 그리고 그 속에서 도망쳤던 자신. 끝없는 죄책감과 괴로움과 분노와 이해할 수 없는
마음들이 오가며 내려진 이 결론이 납득되고 조금이나마 공감되었다.
이 상황에서 평온하거나 즐거운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솔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라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슬픔과 절망과 끔찍한 순간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담아낸 문장은 제대로 쳐다보기조차 어려웠다. 나는 아직 그런 슬픈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도,
할아버지와 소년의 마음이 바로 느껴졌다.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건희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 오래 머물러 있을까.
(...)
눈이 더 나빠져 가까운 것도 흐릿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너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흐릿하게 보이지 않는다. 무명천을 걷기 전에 너는 눈을 감지 않는다. 피가 비칠 때까지
입술 안쪽을 악물며 천을 걷는다. 걷은 다음에도, 천천히 다시 덮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달아났을 거다, 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
주인공이 참혹한 일들을 당한 사람들을 보고도 계속 정대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 생각이 난다.
너무 참혹하고도 두려워 그 상황에선 그 누구라도 버리고 도망갔을 것이다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 포함)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며
나에게 너무 소중한 이들을 절대적인(?) 힘 때문에 잃게 됨에 끔찍함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느껴지는 절망감이 잘 느껴졌다. 그 절망감은 나까지도 용서하지 못할 만큼 크다는 것도...
다시 한번 나의 오늘에 감사하다.
*
1장 읽으며 느낀 점
누리
첫 장부터 내가 쉽게 상상하거나 느껴볼 수 없는 장면들이 나왔다. 작년 5월에 광주 공부를 했던 게 떠올랐다.
조금 뭉뚱그려서, 상황만 배웠던 그때와 달리 책을 읽으면서는 5월 광주 상황을 훨씬 자세히, 사실적으로 볼 수 있었다.
여러 묘사들이 이야기를 훨씬 실감 나고 빠져들게 만들었다. 1장 주인공은 중학생이어서 몹시 새로웠고,
그 상황에서는 시민들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느꼈다.
솔
1장을 읽으면서는 이번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집회에 갔던 경험이 떠올랐다.
약간 축제 같은 분위기였고 사람이 정말 정말 많았다. 다들 비장했지만,
웃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런 집회가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죽어갔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장에서는 집회에 나갔다가 혹은 그냥 휘말려서 죽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고,
모두들 목숨을 걸고 싸운다. 정말 슬프고 괴로운 일이었겠지만,
그분들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어주셨다.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희
나는 이번 장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어떤 이, 어떤 일을 길게 생각하고, 추도하고, 기리고,
고민해 본 적이 많이 없다. 나의 핑계는 항상 바쁘니까. 시간이 없으니깐.
그러나 이들은 많은 사람이 들어와도 모두를 똑같이 정성스레 기린다.
나도 이들을 보며 지난 나의 행동들을 돌아보았다.
대충 빠르게 넘기는 것이 천천히 느리게 넘기는 것보다는 정성이, 경험이 덜 남는다.
나도 요즘 여러 가지 고민들 있는데 꼭꼭 씹어 넘기고 싶다.
2장 검은 숨
누리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 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격한 감정과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메마른 말들이었다. 단지 가망 없는 바람과 사실만을 담고 있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수많은 마음과 생각이 들었다. 그 속에 담긴 괴로움, 분노, 억울함, 의문,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길 원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당연히 들 만한 마음들 그러나
내가 결코 헤아릴 수 없는 마음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모든 것을 완전히 빼앗긴
사람들의 감정과 시선이야말로 진정한 두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어서, 걱정되어서
찾아오는 두려움이 아닌 알고 있어서, 그러나 무언가를 할 수 없어서 찾아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곧 두려움이 되었다.
피할 수 없지만 피하고 있는, 피하려 했지만 차마 피할 수 없는 이 역사가 나에게는 두려웠다.
역사 속 그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서, 사실은 아는 듯해서 내 마음이 막힌 느낌이 들었고 답답했다.
숨이 편하게 안 쉬어졌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내가 이리 숨 쉬고 있어도 되나.
이 역사가 나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솔
"그날밤 난 홑이불을 배에 감고 누워 일찍 잠든 척하고 있었지. 언제나처럼
야근을 하고 들어온 누나가, 언제나처럼 세면장에 상을 펴고 식은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소리가 들렸어.
(...) 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헝겊 지우개를 한번 들었다가 제자리에 놓았지.
언제나처럼 나에게서 멀리 이불을 펴고 누웠다가, 가만가만 무릎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지.
잠든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나는 정말로 눈을 꼭 감았지. 누나가 내 이마를 한 번,
뺨을 한번 쓰다듬곤 이부자리로 돌아갔어."
정대의 영혼이 누나와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자세하고, 왜인지 슬픈 내용이라
읽으면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몽글몽글하고 간질간질한 그런 기분이었을 것
같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 그 둘은 죽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누나와 동생의 애틋함 같은 게 느껴졌고,
나도 죽을 때가 왔을 때 그런 장면 하나쯤은 생각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건희
"그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는 환자복을 입은 젊은 남자였는데, 가마니를 가슴에 덮고 누운 그는
누구보다도 청결했어. 그의 몸을 누군가가 씻어 주었어. 환부를 꿰매고 약을 발라주었어.
(...) 똑같이 죽은 몸인데, 누구나의 손길이 남아 있는 그 몸이 한없이 고귀해 보여서 나는
이상한 슬픔과 질투를 느꼈어."
정대는 환자복을 입은, 남의 보살핌을 받았던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처지와 대조해 질투심과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몸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증오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모두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데 그것을 받지 못했을 때
하찮은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의 심정은 정말 절망적인 것 같다. 하지만 생각했을 때
나는 정대의 몸이 결코 하찮지 않다고,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대는 자신의 몸과
자신의 의지를 아직 가치 있게 보지 못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몸조차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
2장을 읽고 느낀 점
누리
읽어갈수록 점점 더 생생해지고 잔인해졌다. 세세하고 깔끔한 표현들은 당시 상황을 훨씬 또렷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혼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현실적인 상상으로, 이 수많은 혼들이 정말로 있을 것 같았고 그럴듯했다.
몸과 연결된 혼, 서로를 조금 느낄 수만 있는 혼들, 그들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삶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듯 죽음도 공평하지 않다.
모두가, 죽은 뒤에 대가를 치르고 마땅한 상과 벌을 받기를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만
죽음이란 단지 삶의 끝이자 연속이었다. 아무런 보상도 처벌도 없다.
솔
이번 부분을 읽으면서도 시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묘사가 엄청 자세하기에 더욱 잔인하다.
나는 시체에 관련된 내용을 잘 못 본다. 그래서 영화 같은 데에서 시체가 나오면 그냥 눈을 감는다.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만나도 고개를 돌린다. 그런데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정말 끔찍한 내용이었다.
이번 부분이 지극히 사실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이 더 끔찍했다. 이번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로 끔찍한 것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잔인하고 끔찍한 현실을
이겨낸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이들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건희
이번에는 1장의 동호의 친구 정대의 이야기가 나온다. 정대는 이미 죽은 이후였는데,
나는 정대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다. (한강 작가님 소설이어서인지) 내가 느꼈을 때는 정대는 정이 많은 아이이다.
그런 아이가 죽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어두운 기억을 잊으려 하며 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절망하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특히 살아있을 때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가슴 아팠는데
정대를 보며 나도 소중한 시간 누리고 있다는 배움을 했고, 나에게 다시없을 이 아름다운 시간들을
아름답게 잘 가꾸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소년이 온다』 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게 되어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3장 일곱 개의 뺨
건희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머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나도 진로를 생각하며 머리로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떳떳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마음은 불확실한 도착지를 보고 살아간다는 것이 불안하고도 무서웠다.
은숙은 덜 위험한 삶을 선택했고,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뚜렷하지 않은 도착지가 있음을
그리고 여호와 주님이 이끌어주실 줄 믿고 40년 동안 헤맨 뒤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것을
(요즘 두레 본문) 보며 이스라엘 백성처럼 살려고 한다.
‘그 어떤 선택도 나쁜 선택은 없다. 마음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대영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옳은 말이다.
나도 내 마음 따라서 즐겁게 살고 싶다.
솔
78-79P
이 문장들을 처음 읽었을 때, 주인공 은숙의 마음이 가장 공감되고 와닿았던 것 같다.
내가 정말 열심히 쓴 글을 출판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 세상의 부조리함 때문이라는 것에 화날 것 같고,
그 이상으로 이미 겪은 일이 많아서 은숙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페이지가 불탄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 사실은 자기 마음이 까만 숯덩어리가 된
느낌이었을 것 같고 정말 괴로울 것 같았다. 이런 일이 과거에는 흔히 일어났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난다. 옛 분들의 용기와 희생이 지금의 자유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숙연해진다.
누리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계속 마주하다 보면 무감각해지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준비되지 않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정심을 잃고 도망치게 된다. 내가 죽더라도 지켜야 할
그리고 지키고 싶은 존재,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는 그런 존재가 없다면, 누구든지 죽음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친다. 그 상황에서는 혼자서라도 살아남는 게
유일한 목적이다. 멀쩡히 살아있는 지금이야 다양하고 이성적인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하겠지만,
죽음이 코앞에 닥쳐오면 수많은 다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한 가지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은숙처럼 끔찍한 죽음들을 생생히 목격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죽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삶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죽음보다는 안전하니까.
물론 나는 편하지 못한 죽음과 아주 가까워져 본 적은 없어서 그들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그 상황을 상상해 보며 조금이나마 헤아려 본다.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오직 자신의 죽음에서만 예민해질 뿐
남의 죽음은 둔감해지고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사람란 존재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더없이 큰 두려움을 느끼고 속수무책으로 나약해지기 쉬운 것 같다.
4장 쇠와 피
건희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130쪽에 김진수가 주인공에게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영혼은 깨지기 쉬운데
유리는 단단해 보이지만 깨지기 쉽다. 또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유리로 이루어진 것을 알지 못하지만,
유리가 깨지면 비로소 유리의 존재를 깨닫는다고 김진수는 말한다. 나는 이야기를 읽으며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깨지기 쉽다. 그리고 한번 깨진 마음은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마치 유리처럼. 그렇기에 나의 유리만큼 다른 이의 유리도 소중히 생각하고 다루 어어야 하고
나의 유리도 살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
나는 지금까지 기억들은 언젠가 희미해진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히 그 기억을 잊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게 충격이었다.
어디선가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됐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이런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잊는다는 것은 정말 간절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반대로 그들이 잊히는 것도 괴로울 것 같다.
잊든, 잊지 못하든 그 사람들은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이 사람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리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시민들이 더 이해되었다. 이들은 양심이 있었기에 숨지 않고 남았고,
또 양심이 있었기에 군인들에게 아무런 저항도 못했던 것이다.
죽게 되더라도 맞서는 힘,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없는 막아섬,
무엇보다 강하지만 또 무엇보다 연약해지는 것. 그것이 양심이었다.
끝까지 양심을 버리지 않았던 시민들의 모습이 참 순수했다.
5장 밤의 눈동자
건희
174쪽에 나오는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단지 자유를 원했던 순수한 영혼들이 이는 고통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 희망을 품지 못하고,
체념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가혹하고 절망적이라고 느껴졌다. 또 사람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어 홀로 고통을 참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 것 같았다.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좀 더 나았을 수도 있는데...)
앞에 장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약하디 약한 것이라서 소중히
다루어야 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
"깜박 잠드는 순간, 집에서 막 깨어나는 순간마다 그 얼굴들을 봅니다.
창백한 피부, 다문 입술,
반듯이 현수막을 덮고 누워 있던 그 모습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턱과 뺨에서 연한 핏물이 떨어지던, 눈을 반쯤 뜨고 있던 남자의 얼굴과 함께...
도려낼 수도 없는 내 눈꺼풀 안쪽에 박혀서."
나도 가끔 악몽을 꾼다.
나는 주로 귀신이나 좀비가 나오는 꿈을 꾸거나 전쟁이 나는 꿈을 꾼다.
그런데 그렇게 악몽을 꾸다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면, 다시 눈을 감기가 두려워진다.
그래서 가끔 밤을 지새우다시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평소에는 꿈도 안 꾸고 푹 자는 편이다.
그런데 이 5월 광주를 겪었던 이들은 매일매일 악몽을 꾼다.
매일 꿈에서 죽은 사람들을 본다. 그래서 매일 그 끔찍한 기억을 되새긴다.
그런 기분은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도 평안해야 할 잠이
가장 두려운 것으로 자리 잡는다는 건, 평생 ‘행복’이라는 감정 없이 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끔찍한 삶을 견뎌온 이들을 잘 기억해야겠다.
누리
“숨을 쉴 수 없었어.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어.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낼 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엄청난 고통과 충격은 큰 자극이 되어 사람을 한없이 어둡고 괴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힘을 주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무기력하고 힘들 때에 더 나아가
밑바닥을 찍고 깨어나며 결국 딛고 일어나게 하는 힘 말이다.
그리고 이 더 큰 괴로움을 되살아갈 힘으로 느낀 선주는 정말 강하고 단단한. 그러나 진정한 마음이
있는 사람 같다. 또 (몸과 마음의) 고통과 고통 속에서 나에게 울림이 되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6장 꽃 핀 쪽으로
건희
183쪽에 동호의 형들이 싸우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둘 다 동호를 사랑하고 아꼈기에 서로를 원망하며 싸우게 되었다.
정작 싸우고 있는 서로의 마음과 상황을 완전히 무시한 채 서로를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처럼 여기고 자신 말만 한다.
사실 돌아보면 나도 동생들과 지내며 그런 적이 많다. 서로 하자고 했는데 잘 안 되어 있다거나,
말과 마음이 엇갈릴 때 함께 분위기를 만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은 때 대부분 이런 상황이 나오는데
서로의 생각을 잘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야만 상황이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것 같다.
평소에 지내며 소통하고 나누고, 받아들일 때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솔
“나중에 느이 작은 형이 그러드마는 총을 맞고 피를 너무 흘려서 네 얼굴이 그리 희었다고.
그래서 관이 가벼웠다고. 네가 아무리 덜 컸다고 해도, 그렇게 관이 가벼울 수는 없었다고.
그람스로 두 눈에 핏발이 서드라이. 이 원수는 내가 갚을랍니다. 그것이 뭔 소리다냐,
깜짝 놀라서 내가 그랬다이. 나라에서 죽인 동생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는다냐. 너꺼정 잘못되면 나도 따라 죽을 거이다.”
지금까지는 직접 광주를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이번엔 유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가족들도 자식, 부모, 친구를 눈앞에서 처참하게 잃은 고통에 정말 괴로웠을 듯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인 독재자와 군인들이 그 뒤로도 호의호식하는 것을 지켜보며 정말 괴로웠을 듯하다.
나도 지금까지는 유가족의 슬픔과 공포, 분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민주화 운동 희생자를 외에 유가족들도 살아가는 내내 고통이었을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전두환 정권의 이인자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고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는 등 그 뒤로 일어난 사건들이 하나하나 모두 그분들 마음속에 비수가 꽂히는 일이었을 것 같다.
역사가 계속 반복된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참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5월 광주의 사람들처럼 조금 더 깨어있는 시민이 되면 좋겠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누리
“아니제
그럴 수 없는 것을 내가 알제,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게.”
역시 어머니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헛것을 보았음에도 곧바로 현실을 자각하는 힘이 대단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차라리 환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더라면 마음은 편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자신이 물질적으로 직접 고통받는 것도 너무나 힘들지만, 그만큼이나 괴로운 것이 남의 고통을
보는 것일 것 같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고통받고 억울하게 죽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보다 더 마음이 힘들 수 있을까. 큰 고통이 아니더라도 지내면서 주변 이들이
무언가 많이 어려워하거나 놀림받는 모습만 봐도 괜스레 안쓰러워지고, 도와주고 싶고, 대신 화가 나기도 한다.
이렇게 다른 이들의 일에도 감정을 느끼는 것이 공감이라 생각했고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가는 것이 진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7장 눈 덮인 램프
건희
"그 소년 역시 너무 평범해 누구와도 혼동될 것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광주 사람들은 특별하거나 특이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광주 사람들이 총칼에 학살당한 것도, 그들이 뭉쳐 의지하며 대동세상을 가꾸며 살아간 것도
그들이 특별하거나, 특이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주에 계엄군만 오지 않았다면 모두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을 보며 ‘와 대단하다’하고 감탄만 할 것이 아닌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가꾸어보자.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살펴주는 삶을 살아보자 말할 수 있다. 나도 우리 마을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리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이 세상에 아직도 수많은 아픔과 고통과 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광주에만 갇혀
머무르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부분이었다. 광주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것들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하는 그런 부분. 또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부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간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미얀마를 위해 그리고 끊임없이 고통받는 사람들과
다양한 전쟁에 맞서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온 이유를 알려주었다.
고립되고 짓밟히고 훼손된 여린 영혼들, 순수한 생명들. 그들을 지나치지 않고 피하지 않고,
기도하고 돕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광주를 기억하는 일이었다. 전부터 광주와
여러 아픈 역사들을 배우면서 어떻게 늘 잊지 않을 수 있을지, 이 공부를 통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주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며 고민이 어느 정도 풀렸다.
수많은 아픔들은 이어져 있다. 크고 작은 폭력들이 반복되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타깝지만 아픔들도 끊이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든, 누군가의 삶에든, 주변에든,
저 멀리에든 어디에나 아픔은 있다. 단지 내가 찾지 않고 밀어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현재에 일어나는 여러 광주 항쟁들을 마주하고 기도하고 함께 싸우는 것이
내가 아픈 역사들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광주라는 이름을 가진 채 힘겹게 싸워가고 있는 모든 것들이 80년 5월 광주만큼
안타깝고 끔찍해지지 않도록, 아픔이 아픔으로만 남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해나가야겠다.
솔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장을 읽으며, 특히 이 부분을 읽으며 작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지금까지의 글을 읽으며 한강 작가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그 섬세함과 차분함이 멋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에필로그에서 진짜 한강의 이야기를 보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생명에 예민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고통스러운 글쓰기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가 방사능피폭과 같은 일이라는 말도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일을 겪고도 생의 끈을 놓지 않으신 분들과, 또 그 이야기를 듣고
읽고 적어야 하는 작가의 마음이 잘 헤아려지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한강처럼 글을 쓰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나도 그런 울림을 가진 글을 쓰고 싶어서 그 섬세함을 반의 반만 닮고 싶다.
『소년이 온다』 다 읽고 느낀 점
건희
난 예전부터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느긋하게 소설을 읽을 시간도,
한강 특유의 아름다운, 그러면서 가슴 아픈 문체를 읽어 나갈 깡이 안 되었다.
그래서 우리말 시간에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조금의 걱정과 많은 기대가 있었다. 아니 거의 기대가 걱정을 묻었다.
아무튼 그런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년이 온다>를 읽기 시작했는데 예상대로
<소년이 온다>는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이 아픈 소설이었다. 5.18과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마음, 고통 모두 너무 잘 느껴졌다.
나는 글로 예술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한 장 읽고 인상 깊은 점 나누고
저마다의 질문에 함께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특히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좋았는데
그 이유는 서로의 생각을 꺼내고 그 생각을 하나의 생각으로 맞춰 가는 것이 서로를 좀 더 알아가는 시간 같아
즐겁고 재밌었기 때문이다. 다음번 할 때도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 있으면 좋겠다.
누리
처음 읽어보는 한강 작가님의 소설이자 광주를 담은 소설인 <소년이 온다>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작가님의 문체 때문이었다.
잔혹한 학살과 아픔과 당시 사람들과 그들의 마음이 그대로 적혀있었기에 마음이 힘들어졌다.
그러나 묘사하는 문장들이 모두 정교하고 짜임이 있어서 이상하게 빠져들고 조금은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했다.
정말 놀라운 글이었다. 어둠을 정확히 직면하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놓치지 않게 이끌어주다니.
이렇게나 술술 읽히는데도 배울 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가득 안겨주다니.
책을 읽어가는 내내 작가님의 글솜씨에 감탄했다. 상상이 아닌 현실을 담은 이야기, 기억해야만 한
하는 역사를 소재거리로 쓰는 용기, 한 치의 거짓됨이 없게 하려고 정보를 모으려는 노력,
탄탄하게 짜인 구성, 적합하게 고른 낱말들, 딸려오는 울림과 여러 생각들. 정말이지 부족함이 없었다.
진심으로 나도 이분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가님도 이런 글을 쓰기 위해 외로운 시간을 길게 보내셨겠지. 지루한 연습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소설 속에 진정한 삶을 녹여낼 수 있는 거라고 느꼈다.
소설을 읽고 공부해 가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과 고민들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였다.
나는 뜨겁고도 참혹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을 그저 보고 듣기만 하고 힘들어한 뒤 서서히 잊으며
끝나는 것은 광주에 대한 예의가 절대 아니라고 여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내 삶에 얼마나 들어오고 자리 잡는가였다. 광주를 통해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않으면
이 배움은 아무 의미도 쓸모도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시간에
‘우리 삶에 드러난 광주의 모습’을 찾았던 때가 가장 좋았다.
그동안 여러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며 내용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광주 민주화 운동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순수하고 정의로운 움직임이었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전쟁에 맞서는 것, 깨어서 판단하는 것, 남을 괴롭게 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는 것,
함께 힘 모으고 마음 모으는 것, 삶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모두 지금 내가 광주를 기억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사실이 놀라웠고, 늦지 않게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당당하게 광주를 잊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겠다.
80년 5월에 순수하고 용감했던 그들을 이어 나만의 민주화 운동을 펼쳐가자고 조용하고도 굳게 다짐해 본다.
솔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본 건 처음이었다.
뭐 그렇게 별 거길래 이렇게 열광하나 궁금했는데
책을 읽고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이야기는 한강이 직접 겪은 것이 아니고, 소설 내용에는 한강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작가가 느껴졌다.
내가 소년이 온다에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슬픔이긴 했지만
또 그뿐만 아니라 사랑, 희망도 함께 있는 것이 보였다.
광주 사건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지만, 그것보다도 사람에 대해 더 알아갔던 시간이었다.
처음 책을 펴자마자 다 읽어버렸는데, 수업에서는 여러 장으로 쪼개어 공부를 했기 때문에 또다시 읽어야 했다.
그렇게 세 번, 네 번 곱씹어 읽으면서 또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에서 문장들을 찾고, 글을 쓰고, 질문을 만들어 묻고 답하는 과정이
이 책을 소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가 토론을 잘 해가는 역량이 부족한 것을 느끼기도 했다. 가끔 한 주제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고 언쟁이 될 때 조금 어렵기도 했는데, 그래도 점점 해가면서
조금씩 즐겁고 평화롭게 대화하는 법을 연습했던 것 같다.
난 원래 이런 우울한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런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사실 배울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이번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나중에도 한번씩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열심히 토론하고 정리했던 친구들,
그리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배워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다. 뜻깊은 시간이었다.
정지용 시인의 시와 삶을 공부하며
이 시 좋다! 마음에 와닿았던 시
건희
<별 1>
|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 - 구나. 아스름 닫치려는 눈초리와 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불리울 듯, 맞아드릴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한에 피어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위에 손을 여미다. |
나는 별 1이라는 시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이 시에서 화자는 어두운 방에 누워서
밤하늘에 별을 바라본다. 그 별은 가까운 것 같기도, 먼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별이 함께 살아가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가까우면서도 멀고,
떠올리면 지난날의 잘못도 지금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나의 연약한 마음도 싫어지고 후회된다.
하지만이 시의 마지막처럼 답은 두 손 모으고 기도하며 함께 한 걸음 씩 걸어가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비>
|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서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가리 손가락 펴고. | 멎은 듯 새삼 돋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
이 시는 내가 봤을 때 뭔가 대단한 뜻은 없다. 그러나 비 오는 날을 차분하게 잘 표현하고 있고
이 시를 읽는 나조차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진다. 뭔가 힐링되는 느낌이다.
나도 비오는 날 산에 갔을 때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느낌이 살아나기도 한다.
<인동차>
| 노주인의 장벽에 무시로 인동 삼긴 물이 내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에 책력도 없이 삼동이 하이얗다. |
나는 인동차를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노인을 보며 인동차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인동차란 무엇일까 떠올리면 어둠과 추위 속 갇혀 있던 나를 따뜻한 관계로 꺼내준 친구들이 아닐까? 떠올려본다.
시의 배경은 겨울이지만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누리
<고향>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이 시에서는 화자의 고향이, 자연은 모두 그대로이지만 시대가 변해 사람들과
자신은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주로 이모, 삼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고향에서는 산을 깎고 옛 집을 헌 뒤
새 건물을 지어서 딴 마을이 되었다고 하신다. 하지만 시인이 살던 때는 아직 그 정도가
아니었나 보다. 집도 산도 그대로인데 사람과 기운이 바뀌었다 해서 새로웠다.
정말이지 마을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같이 사는 곳인 만큼 자연이나 동물 보다도
사람의 변화가 더 크구나 싶었다.
집과 자연은 기억 속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모습도 마음도 달라져 있으면 화자가 많이
낯설게 느꼈을 것 같다. 또한 어릴 때의 자신과 달리 마을 속에 잘 스며들지
못하니 당황스러웠겠다. 아마 이때 화자는 스스로에게 있던 순수함과 개구짐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커버린 자신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아무리 씁쓸하고 외로워도.
하지만 그때의 마음만은 여전히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첫 마음, 첫 뜻, 순수할 때 느꼈던 행복을 잊지 않는다면 한참 뒤
다시 찾아와 만나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바다 2>
|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랐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붙이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앨쓴 해도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회동그라니 받쳐들었다! 지구는 연잎인 양 오므라들고......펴고...... |
바다를 표현하는 묘사들이 무척 새로웠다.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아닌, 오는 순간 사라져 가는 모습에 주목한 것과 푸른 도마뱀 떼라고
표현한 것이 참신했다. 흔히들 설명하는 바다와 달라 좋았다.
뒤로 갈수록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정지용 시인답게
표현한 바다인 것 같다.
이 시 속 바다는 재빠르고 잠재력이 있는 바다라고 느껴졌다.
<조찬>
| 햇살 피어 이윽한 후, 머흘머흘 골을 옮기는 구름. 길경 꽃봉오리 흔들려 씻기우고. 차돌부리 촉 촉 죽순 돋듯. 물소리에 이가 시리다. 앉음새 갈히여 양지쪽에 쪼그리고, 서러운 새 되어 흰 밥을 쫏다. |
초반에 묘사하는 자연은 모두 깨끗하고 고요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이들 옆에 자리 잡은 화자는 대체 왜 서러운 새가 되어 밥알을 쪼았을까?
아름다움 옆에서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낀 것 같다.
자신이 순수하지도 빛나지도 않은데 제약은 많다고 느끼니 서러워져서 밥이나 먹은 것 같다.
쭈굴 해진 화자를 보니 안타깝다.
그렇지만 주변에 멋진 게 많으니 하루쯤은 속상함을 다 잊고 즐겨도 좋지 않을까.
혹은 주변처럼 자신도 그렇게까지 못나지는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그나마 밥이라도 잘 먹고 있으니 다행이다.
<비>
|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서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가리 손가락 펴고. | 멎은 듯 새삼 돋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
비 오는 느낌을 잘 살린 시다.
읽으면서 바람 불고 서늘한 날에 투두둑 내리는 비가 떠올랐다.
이 시도 정지용 시인 느낌의 묘사와 흐름 덕분에 상황이 와닿았다.
어떻게 이런 새로운 표현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
솔
<풍랑몽>
|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까. 끝업슨 울음 바다를 안으올 때 포도빛 밤이 밀려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까.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까. 물 건너 외딴섬, 은회색 거인이 바람 사나운 날, 덮쳐 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까.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까. 창 밖에는 참새 떼 눈초리 무거웁고 창 안에는 시름겨워 턱을 고일 때, 은고리 같은 새벽달 붓그럼성스런 낯가림을 벗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까. 외로운 졸음, 풍랑에 어리울 때 앞 포구에는 궂은비 자욱히 둘리고 행선 배 북이 웁니다, 북이 웁니다. |
솔직히 정지용 시는 어려워서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조금 와닿았던 시는 풍랑몽이었다.
이 화자처럼 감정의 깊이가 많이 깊은 건 아니지만
어려움을 마주할 때, 또 잘 떠올려지지 않는 미래를 생각할 때 드는 마음과
조금은 닮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모습, 어떤 마음의 일들이 펼쳐질까 잘 그려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앞으로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설레고 기대되는 점도 많은 것 같다.
이 시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나는 마냥 슬프고 쓸쓸하게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막막한 속에서도 작은 기쁨들, 그리고 현재를 잘 누리며 지내고 싶다.
<별똥>
|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 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소. |
일단 시의 문장들이 되게 예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모든 행이 여섯 글자로 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런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내용도 많이 와닿았다.
나도 요즘 어렸을 때 했던 여러 상상들을 다시 떠올릴 때가
많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뭘 하고 있을지, 누구와
있을지... 그런 걸 많이 상상해 왔는데, 실제로 앞으로의
그리고 하나씩 쌓였던 고마움이나 작은 소원들도 시간이
지나며 흐물흐물해졌다.
이 시를 읽으며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오르며 즐거워지기도 했다.
앞으로도 후회 없이 지내야겠단 다짐을 오늘도 한다.
<인동차>
| 노주인의 장벽에 무시로 인동 삼긴 물이 내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에 책력도 없이 삼동이 하이얗다. |
이 시는 겨울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를 읽고 나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분명 눈 내리고 바람 부는 추운 날인데도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멋졌다.
정지용 시인이 어떤 풍경과 마음을 전하는 것을 정말 잘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도 피부로 느껴지는 것들이 춥고 매섭더라도 그 속에 있는
따뜻함을 찾고 싶다.
<향수> 패러디 시 쓰기
건희
태어났을 때 처음 안기었던
그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 품속
날 항상 정답게 업어주던
그 넓고, 단단한 아버지의 등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해 뜨는 아침부터 해지는 저녁가지
동무들과 함께 뛰놀던,
집에 도착해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다 까무룩 잠이 들던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내가 짜증 내고 투덜거려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는
내가 어렵고, 이해 안 되면
끝까지 끈기 있게 알려주는 사람이 있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나를 생각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정성껏 차려준 맛있는 밥이 있는
나의 눈을 사랑으로 맞추며
솔직하고 진실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누리
푸른 산들 사이로 용오름 계곡물이 세차게 흘러가고
두 마리 개가 반갑게 짖어대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볕 좋은 날 마당에 빨래 널고 곡식 말리고,
해 저물면 집 나갔던 차들 하나 둘 돌아와
마당을 가득 채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나무들과 함께 자라난 내 마음
하늘을 보고 밭일을 하며
기쁨을 얻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방긋방긋 사랑스런 아가와
우렁차게 소리치는 어린이들,
흥 많고 마음 넓은 이모삼촌들이 함께 하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때때마다 동물들이 날아들고 기어들어 같이 살고,
사시사철 든든한 검은 기와지붕 아래 모여
시끌벅적 웃음 짓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솔
아미산 산자락으로
여름이면 북적대는 용오름 계곡이 흘러가고
덥수룩한 몽실이가 언제나 온 맘 다해 짖어대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앞마당 단풍이 물들어가면
해 비치는 바깥 벽으로 무당벌레 기어가고,
굶주린 새빛들의 푸릇푸릇한 아이들이
고구마 냄새 풀풀 풍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봄학기 말본 시간에는『어른의 말공부』라는 책을 길잡이 삼아,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다양한 낱말이 어떤 말밑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며 정확한 뜻을 모르고 쓰고 있었던 말들을 알게 되기도 했고,
처음에는 다른 뜻을 지녔던 단어가 시간이 흐르며 다르게 쓰이게 된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말의 어원을 배우며, 우리가 겪었던 역사를 배우고, 우리 조상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았던 배움을 정리한 글입니다.
건희
<이랑과 고랑>
난 1학년 하늘땅살이 시간에 밭구조를 배울 때 처음으로 이랑, 고랑을 배웠다.
한동안 이랑, 고랑 개념이 어려웠다.
예전에 배운 방식대로는 그냥 다 고랑이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낮은 곳이 이랑, 높은 곳이 고랑이었나?
아닌가, 그 반대인가?’ 하며 계산하며 1학년 하늘땅살이 시간을 보냈다. 근데 이 책에
나온 대로 이랑은 일구어 쌓은 것이니 이랑, 고랑은 골처럼 들어가 있으니 고랑
이렇게 외웠으면 덜 헷갈렸겠다 싶다.
<개판 오 분 전>
이번 수업 때 읽은 분량에서 ‘개판 오분 전’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나도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개판이 강아지들 싸움판 정도 되는 뜻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공부하니 6.25 전쟁 때 배식시간 5분 전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난장판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물론 그때는 전쟁이고, 살기가
너무 힘드니 그런 난장판이 벌어졌을 수 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으니 너무 자기 것만, 자기
근처 사람들 것만 챙기지 말고 따뜻한 마음으로 모두 나누며 행복하게 살며 '개판 오 분 전'이라는
말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렇기 위해서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한데
전쟁이 있던 시대에는 물론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너무 배가 고프면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도 있겠다 싶다.)
<싫증 난다>
나는 이번 책 내용에서 <어디까지 왔노?> 파트가 기억에 남는다. (일단 제목부터가 너~~무 친숙한
경상도 사투리어서 좀 더 점수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싫증으로 시작한다.
싫증 다음으론 싫증 날 때까지라는 뜻의 실컷, 그리고 껏과
비슷한 말인 한껏, 양껏, 힘껏 등이 나온다.
나는 싫증이라는 말에 마음이 갔는데, 빨리 뜨거워져 하고 싶어 하고, 또 빨리 싫증 낸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것이 겉핥기식으로 한다. 그래서 열심히 하긴 했는데 성과는 많이 없는 그런 상태이다.
근데 하나에 꽂혀 뜨거워지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하나에만 너무 집중해서...) 그래서
실컷은 하는데 실컷 같지 않다고 할까. 그래서 나는 싫증이 나도 좀 참아가며 더 깊게
배우고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나를 꾸준히 하고 싶다.
<보람차다>
나는 이번에 ‘보람차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보람은 구별하기 위한 식별의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요즘은 그냥 좋은 결과만으로 뜻이 나온다고 한다. 나도 생각했을 때
보람이라는 말을 좋은 결과의 뜻으로만 보았지,
내가 가는 길 내가 해왔던 것에 대한 식별이라는 뜻으로 써오진 않았다. 뭐든 다 보람차고
좋은 결과만 있을 수 없으니 그냥 내가 해왔던 대로 보람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대나무>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는 대나무의 ‘대’ 자가 인상 깊다. 생각보다
대나무의 ‘대’자가 많은 곳에 있는데
왜 ‘죽’이 아닌 ‘대’를 썼는지는 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래도 새로운 개념이라 좀 더 신기했다.
깃대, 돛대, 대금, 대게, 대쪽 등이 그런 예인데 대게는 조금 의외이긴 했다.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겨서 ‘대’ 개였다니. 아무튼! 이육사시인 공부하면서도 느낀 것인데 대나무처럼
올곧게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같다. 그래도 나의 뜻, 내가 세운 뜻 생각하며 대나무와 같이 올곧게 살아보고 싶다.
<배우다>
나는 이번에 배우다라는 단어의 어원이 참 흥미로웠다. 몸에 배게 한다라는 것이 참 멋진 말 같다.
배울 때는 온 마음으로 배우고 익혀서 언젠간 자신도 모르게 옛날부터 해왔던 습관처럼 나오게 하는 것이
배움이라는 것이 정말 멋졌다. 그래서 배움은 머리로만 계산하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예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습관처럼 행동이 나오는 것이 배움이다. 풋살 훈련도 마찬가지인데 훈련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그 기술이 실전에서 본능처럼 나오게 하는 것이 풋살 훈련이라 들었다. 나도 배울 땐
딱 열심히 배우고 내 몸에 스미게 해서 내 삶에서 배움이 우려 나오게 하고 싶다.
누리
<평생 애물단지>
몸속 장기들의 토박이 이름들을 알게 되어 새로웠다. 지금까지 장기들의 한자 이름과
토박이 말이 들어간 여러 표현들을 완전히 따로 생각하고 쓰고 있었기에 무척 놀랍고 재밌었다.
폐는 허파, 마음으로 가면 부아, 심장은 염통, 위는 양, 간은 애.
그중 마지막에 애에서 이어진 애물단지가 인상 깊었다. 겉으로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막상 쥐고 있으면 까다롭고 속 썩이는 애물단지.
나에게 애물단지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먼저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이 떠올랐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많고 머릿속에서는 나름 될 것 같지만 막상 사람들을 마주하면
어렵고 두렵고, 답답하다. 그래도 그런 애물단지가 없으면 허전할 테니 더 노력해야겠다.
<무지개>
무지개의 말밑이 ‘물+지게’, 물로 된 지게문이라는 사실이 새로웠다. 솔직히 가끔씩 무지개를
볼 때마다 저렇게 아름다운 곡선의 이름이 무지개라는 것이 어감이나 글자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근데 물지게라고 하니 뜻이 꽤 괜찮은 것 같다. 수채화를 물빛 그림이라고 하는데
비슷한 뜻 같다. 둘 다 고유한 빛깔에 물이 섞여서 맑게 보이니 말이다.
또 지게문 정확히 어떤 느낌의 문을 뜻하는지 궁금하다.
<바람>
동서남북 바람들의 토박이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들의 말밑,
자세한 뜻, 비슷한 이름들을 알게 되어 새로웠다.
바람마다 각각의 의미가 있고, 불어오는 방향의 특징이 담겨 있어서 신기했다. 또 나는
토박이말로 여러 의미를 담으려면 말이 길어지고 한자말로는 그걸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토박이말 한 글자만으로도 충분한 뜻을 담을 수 있어서 놀랍고 인상 깊었다.
앞으로 내게 불어온 바람을 알맞은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
<메아리>
메아리의 말밑이 재밌고 기억에 남았다. 뫼살이, 뫼에서 사는 것. 산속에서 메아리가 치면
마치 누군가가 내 말에 답해주는 듯해서, 저 깊은 산속에 누군가 살고 있는 듯해서 붙여진 이름 같다.
지금도 작은 동굴이나 크고 높은 건물 안에서 작게 메아리치면 그 울림이 신기하고 그걸 이용해서 놀게 된다.
하지만 산속에서 크게 외치면 산 속 동물들이 놀라고 불편해진다고 하니 메아리가 재밌어도 꾹 참아야겠다.
<조바심>
나는 지내면서 종종 조바심을 느낄 때가 있다.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숙제나 해야 할 것을 못 끝냈을 때,
내 계획이 어그러질 때, 내 차례가 어서 오지 않을 때, 글을 쓰는데 글감을 정하지 못하거나 막힐 때,
서둘러 결정하지 못할 때가 그렇다. 그리고 이 순간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모두 마음이 급해질 때 조바심을 느꼈다. 시간이 없어서, 당황해서, 답답해서, 잘하고 싶어서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면 조마조마해지고 안달이 났다.
그런데 마음이 급해지면 해야 할 일들이 잘 안 되고, 예민해지고,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또 그러다 보면 조바심은 더욱 생기고, 나아지는 게 없었다. 아마 내 감정에 너무 휩싸여 있고
차분해지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앞으로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끈덕지게 버텨보는 것을 더 연습해서 조바심 내는 일을 줄이고 싶다.
<꼬투리 잡다>
전에는 괜히 누군가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내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남들의 작은 실수 하나도 그냥 넘어가기 싫어했지만 그러면서도 남들이 실수하길 바랐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땐 그게 이상한 생각이란 걸 몰랐다.
지금은 남들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계산하고 있다. 튀지 않게,
걸리지 않게 잘 처신하려고 머리 쓰며 지낸다. 집이 아닌 곳에서는 자잘한 계획들을 세우고,
조금씩 긴장하며 지낸다. 누군가는 그것이 좋지 않다고,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삶이 나에게 그리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 가르침은 내 경험들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
나에게는 믿을 만하고 그것을 어겼을 때에 어떤 일이 생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가르침을 따를 것이고 그러면 꼬투리 잡히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꼬투리 잡는 일은 두 가지가 있다.
실수나 착각을 굳이 끄집어내서 말하는 것과 정말로 잘못한 것 때문에 혼내는 것.
하지만 둘 중 무엇이든 상관없다. 잡히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러려면 조심하되 뻔뻔해져야 한다. 내가 이 삶을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줌마, 아저씨>
나는 어릴 때부터 마을 어른들을 이모, 삼촌이라고 불러서 그게 익숙하고 더 좋다고 생각했다.
또 아줌마, 아저씨라고 하면 뭔가 버릇없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기분 나빠할 것 같기도 했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만나는 많은 어른들을 이모, 삼촌으로 불렀다.
오히려 아줌마, 아저씨는 장난스럽게 놀릴 때 쓰였다. 그래서 아줌마, 아저씨의 정확한 뜻과
말밑을 알게 되었을 때 꽤나 낯설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모, 삼촌보다 먼저 정답게 불렸던 말이
아줌마, 아저씨라는 사실이 새로웠고, 시간 지나고 주로 쓰는 낱말들이 바뀌면서 이렇게
어감이 달라지는 것이 재밌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말을 쓰는 것이 어울릴지 생각해 보았다.
먼저 아줌마, 아저씨는 괜찮은 뜻이지만 결혼을 기준으로 쓰이는 말이어서 헷갈리고 그렇다고
모두 어른으로 일컫자니 많이 이상했다.
두 번째로 이모, 삼촌은 지금 우리에게는 넓고 친숙하게 쓰이지만 실은 친척을 부르는 말이어서 잘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큰 제한이나 조건 없이 넓게 쓸 수 있고, 어울리는 새 낱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모 삼촌 아줌마 아저씨가 쓰이는 뜻을 고루 담을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이모 삼촌 아줌마 아저씨가 본래 뜻과 다르게 쓰이며 오해받고 있다는 것과
그 때문에 새 말이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것이었다. 조금 달라지더라도 익숙한 말을 쓰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쓰임과 뜻이 같은 말, 그러니까 뜻과 같게 (뜻대로) 말을 쓰고 싶은 마음이다.
솔
<이랑, 고랑>
이랑 옆에 고랑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이랑은 “일다”에서, 고랑은 “골다”에서 온 말이라는 것도 인상 깊었고,
‘고랑이 이랑 될 날이 있다’라는 옛말도 기억에 남았다. 푹 꺼진 고랑이 이랑이 된다니, 무슨 얼토당토 없는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늘땅살이 할 때 진짜로 그럴 때가 있었다. 아무리 이랑을 높게 올려도 비바람을 맞고,
작물들을 기르다 보면 이랑이나 고랑이나 비슷하게 낮아진다. 그래서 다시 밭을 만들게 되면
그 전의 이랑과 고랑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책에서도 말했듯 영원히 고랑에만 머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다들 힘 잃지 않고 지내면 좋겠다.
요즘 하늘땅살이 시간에 이랑 다듬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해서 더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었다.
<배우다>
‘배움’, ‘배우다’라는 말이 ‘배움’에서 왔다는 게 인상 깊었다. 흔히 ‘공부’라고 했을 땐 주로
영어, 수학 같은 과목들이 먼저 생각난다. 지금은 그런 국어, 수학, 과학, 영어 같은 것들을 잘하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다들 그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높은 경지에 이르려고 한다. 그런데 ‘배움’은 다르다.
배움은 생각으로만,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조금씩 스며들도록 해서 몸에 배는 게 배움이다.
‘몸’에 배야 하는 거다. 냄새가 옷에 배고 종이에 물감이 스며들어 배듯이 배움도 마찬가지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면서 정작 실제 삶이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배웠다고 할 수 없다.
새빛들에서는 ‘배움’을 한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몸에 배게 하는 건 너무 어렵다. 3년째 새빛들에 다니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하지만 계속 깨어서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배움들이 하나둘 몸에 배지 않을까 싶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
나는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이 이야기를 우리 삶에 빗대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러니까 푸른 이들은 앞선 어른들의 배움을 따라가고, 또 동생들은 우리와 어른들의 문화를 받아들인다.
이 관계들 모두가 ‘실과 바늘’의 관계 같다고 생각했다. 언니 가는데 동생 가고,
선생님 가는 대로 학생들도 걸어간다. 서로 같은 방향으로 향하여 서로가 꼭 필요한
‘바늘과 실’ 같은 관계가 바로 우리인 것 같고, 앞으로 더더욱 그랬으면 좋겠다.
<어른의 말공부 11쪽~136쪽 읽고 느낀 점>
‘양껏 먹고, 마음껏 놀고, 실컷 사랑합니다. 그러다보면 싫증이 날 수도 있지요.
끝까지 가지 말고 조금씩은 남겨두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힘껏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니 것, 내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 뒤라 그냥 그 단어들을 조합해 문장을 만든 것일 뿐인데,
기억에 남았고 앞으로도 잘 기억하고 싶은 말이다. 나도 저렇게 힘껏 살고 싶다.
<잣대>
이중잣대는 세상을 어지럽힌다. 자, 잣대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잣대’라는 단어가 ‘자’에서 왔다는 게 새로웠다. 그냥 별생각 없이 쓰던 말이었는데
뜻을 알고 나니 더더욱 반듯한 잣대를 세우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물론 언제나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게 오히려 평등하지 않기는 하다. 부자들에게 누진세를 내게 하고, 취약계층에게 복지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익이나 어떤 마음 때문에 이중잣대를 세운다면 그건 정말 별로인 것 같다.
나도 평소에 지내며 사람들이나 상황에 이중잣대를 세우고 있진 않은지 잘 깨어있어야겠다.
<꼬투리를 잡다>
‘꼬투리를 잡다’라는 말이 콩 꼬투리에서 왔다는 게 새로웠다. 자주 쓰고, 자주 듣는 말인데
이렇게 뜻을 새롭게 알게 되어 신기했다. 나는 남의 말에 꼬투리를 자주 잡는 편이다.
그 사람이 무슨 뜻으로 그 말을 한 건지 뻔히 알면서도 습관처럼 그러기도 하고
장난으로 맞춤법이나 문법, 혹은 사실관계 같은 걸 꼬투리 잡기도 한다. 꼬투리만 볼 게 아니라
그 안에 콩을 봐야 한다는 건데, 나는 별로 안 좋은 습관이 있다. 꼬투리만 잡는 건
서로 소통하고 마음과 생각을 나눌 때 걸림돌만 될 뿐이다.
앞으로는 좀 더 의식하고 노력해서 꼬투리를 잡는 게 아니라 말의 의미를 더 주목하고, 공감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가을학기 말본 시간에는 『우리말이 서럽다』 를 길잡이 삼아 토박이 말을 공부했습니다.
배운 낱말을 써서 삶글을 써보았어요.
누리
<가/끝>
끝과 가의 차이를 알게 되고 나서, ‘마루 끝에 앉아서’라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그 말도 본뜻 대로 해석하면 마루에서 떨어지는 건가 싶어 웃음이 났다. 아무튼 끝과 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는 삶에서 늘 이 둘을 밀어낸다고 느꼈다.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는 가장자리가 아닌 가운데에 있고 싶어 하고,
다른 이들보다 뒤처지지도 앞서가지도 않으려 했다.
또 무언가를 더 나아갈 수 없을 만큼 끝까지 해본 적도 없다.
그렇게 가장자리로도 끄트머리로도 가지 않으려 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속한 무리에서, 내가 사는 삶에서 밀려나고 떨어지는 것 같았고
알 수 없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것이 없는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큰 도전들도 피하고 일부러 나서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가운데에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가장자리에 있지 않을까?
내가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건 이미 그 끝에 가본 사람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러면서 그 사람들은 떤 마음으로 그곳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또 만약 힘없이 밀려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간 것이라면 그 자처하는 마음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남을 헤아리고 돕는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걸 종종 느끼기에, 이들도
비슷한 마음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았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든든히 뒤를 받쳐주는 사람,
가장자리에 머물고 끄트머리로 향하는 일을 의미 있고 신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굴레와 멍에>
굴레는 소나 말머리에 씌워 목에 매어 놓는 얼개라고 한다.
멍에는 소나 말이 도구를 끌게 하려고 목덜미에 얹어 메우는 막대라고 한다.
그 쓰임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둘 다 사람이 짐승을 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굴레와 멍에가 짐승에게서 벗겨지고 풀어지기 전에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어쩌면 굴레와 멍에는 알게 모르게 나를 막아서고 잡아두는 것들, 내가 스스로 넘어서고 끊어버리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에게 지워진 멍에와 내 삶에 씌워진 굴레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귀찮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귀찮음이란 굴레는 내가 숙제를 시작할 때마다, 해야 할 일을 꺼내들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내가 일을 미루고, 늘어지고, 딴짓을 하게 만든다.
귀찮음은 나에게 아직 시간이 넉넉하다고 속삭이며 나의 조그마한 끈기와 열정을 사그라뜨려버린다.
그 굴레를 벗어나기란 정말 어렵다.
또 어떤 때에는 누구보다 빠릿빠릿한 내가 할 일 앞에서는 이렇게나 늘어지고 힘없는 모습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모순된다고 느꼈다.
그나마 귀찮음을 이기게 하는 것은 지켜보는 사람들이다. 함께하는 사람들, 비춰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이 정도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귀찮음을 완전히 이겨내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나에게 찾아오는 굴레 앞에서
덜 끌려다닐 수는 있지 않을까. 귀찮은 만큼 강해지고 싶다.
<맑다/밝다>
맑다와 밝다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예문을 만들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맑다는 깨끗하고 순수한 쪽이고 밝다는 환하고 빛나는 쪽이라고 느껴진다.
그렇지만 둘 다 아름답고 순수한 느낌을 뜻해서 그런지 ‘맑고 밝다’나 ‘밝고 맑다’로 붙여서 많이 쓰는 것 같다.
한 예로 새빛들 아침 인사말인 ‘서로 비추며 밝고 맑게 지내겠습니다.’라는 말이 있다.
늘 하던 인사라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는데 말뜻을 배우고 나니 새롭게 들렸다.
맑다의 짝은 흐리다이고, 밝다의 짝은 어둡다이니까 맑고 밝다는 뚜렷하고 솔직하게 빛난다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뜻을 알고 나서 보니 새빛들 인사말이 우리가 바라는 삶과 관계를 담은 깊은 다짐으로 느껴졌다.
전보다 더 와닿기도 했다. 조금 더 뜻을 기억하며 인사해야겠다.
<할 말/못할 말>
이 두 개가 낱말인지 처음 알았다.
할 말과 못할 말을 가르는 잣대는 ‘사람을 어우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사랑으로 헤아리지 않으면 할 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우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때에 맞게, 맺어온 관계에 맞게, 정도껏
해야 하며 단 한 가지도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 생명을 만나는 일이어서 마음과 기운을 살피는 게 맞지만, 늘 어렵고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이렇게 해도 될지 걱정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러 경험을 쌓다 보니(아직 부족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할 말, 못할 말을 가릴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상황마다 잘 대처해야 하니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가 보다.
앞으로도 사리는 힘을 많이 많이 기르고 싶다.
또 할 말을 제 때 하는 것보다 못할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그렇다고 너무 신경 곤두세우고 위축되지는 말기!
나답게 어우러지는 연습을 해나가야겠다.
▧ 말꽃(문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갈래
나는 말꽃은 대체로 다 좋아한다. 새로운 상상과 우리의 삶과 아름다운 표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특별히 시를 재밌게 읽고 있다.
기발하고 영감과 배움을 주는 여러 시들을 읽으며 정말 다양하고 좋은 시가 많다고 느낀다.
또 생각보다 배움과 깨달음을 주는 시가 많아서 새로웠다.
나는 그런 배움을 주는 글을 읽는 걸 좋아해서 시가 맘에 든다.
그래서 지금도 여러 시집을 뒤적이며 재밌게 시를 읽고 있다.
솔
<끝나다>
요즘 ‘끝’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작게는 ‘숙제의 끝’, ‘하루의 끝’에 대한 생각부터, 크게는 ‘내 삶의 끝’,
‘내 중등 시절의 끝’이 되기도 한다.
2025년 9월, 내 새빛들 생활의 가장자리에 서게 된 지금, 나는 어떻게 남은 3개월을 더 뜻깊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또 중등의 끝, 고등의 시작 전 그 어중간하고도 자유로운 시간이 기대되고도 늦추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분명 아무 학교에도 속하지 않게 될 그 시간이 설레고 기대되지만, 또 새빛들에서의 시간도
어느새 끝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공허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동시에 오히려 그 공허가 앞으로 다시 겪을 일 없는 감정일 수 있겠다는
되려 귀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공간과 시간의 가장자리, 끄트머리에 다가설수록 그것들은
더욱 소중해지고 간절해지는 것 같다. 하루하루 알차게, 그렇지만 조급해하지도 실망하지도 말고
좋은 갈무리, 행복한 끝을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찾아오는 아마도 마지막일 방학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
<올가미/올무>
올가미와 올무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딱 1년 정도 전이었는데, 산으로 산책을 다녀온 둥이가 다리에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너무 놀란 우리 가족은 둥이와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며칠 뒤 붕대를 풀어보니 상처가 많이 감염되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작은 상처를 발견하지 못해 그 상처가 그대로 곪은 것이었다.
더 큰 병원으로 가보았지만 이미 손 쓸 틈이 지나버려서 절단 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둥이가 산에서 올무에 걸렸던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둥이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절단 수술 이후 둥이는 1년이 지났지만 그전처럼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어린데도 관절도 안 좋고, 체력도 금방 바닥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청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지낸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덜컹하고 올무를 설치한 사람들이 미워진다.
그리고 둥이가 너무 안쓰럽다.
아직도 숲속 동물들이 그런 고통을 겪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화가 난다.
인간의 욕망으로 다치는 생명이 제발 줄어들기를 언제나 바란다.
<움/싹>
드디어 올해 하늘땅살이가 끝났다.
갈무리가 조금 남긴 했지만 밭에서 할 일은 모두 끝냈다.
이제 개울 건너 밭에 다시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작물들을 모두 정리해 썰렁해진 밭이라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두 친구가 밭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어서 내년 새빛들의
하늘땅살이를 떠올리며 걱정이 덜기도 했다.
바로 밀과 쪽파다.
올 가을에 심은 밀은 잘 움텄고, 쑥쑥 커서 싹이 되었다.
칙칙하고 삭막한 밭에 푸른 기가 조금 있어 눈에 확 띄는데,
내년에 동생들이 먹을 밀 싹을 미리 잘 심고 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밀 싹을 보니 뭔가 올 한 해가 끝나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밟혔을 때 오히려 쑥쑥 크는 밀 싹처럼 나도 씩씩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이 부분을 읽으며 자연스레 생각난 노래가 있었다.
‘마음’이라는 노래인데, 기억나는 가사가 이거다.
“제게 대답하지 않으셔도 돼요. 달래주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세상 모든 게 죽고 새로 태어나 다시 늙어갈 때에도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 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이 노래의 내용이 마음의 뜻을 잘 설명했다고 느꼈다.
노래 짓기를 할 때, 가사 하나하나의 뜻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겠구나 싶었다.
나는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사람이고, 노래를 짓다 보면 자꾸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쪽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노래를 짓다 보면 내 삶이 노래에 잘 담기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사 하나하나, 음 하나하나에 마음을 꾹꾹 담아 노래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말꽃(문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갈래
내가 말꽃에서 가장 좋아하는 갈래는 소설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일곱 살 무렵 한글을 배우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책에 더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1~2학년 때 해리포터를 처음으로 읽었는데, 그게
내 인생 소설이 되어서 아직까지도 가끔씩 펼쳐보곤 한다.
고학년이 될수록 역사책을 좋아하게 되어서 소설을 좀 놨었는데,
6학년 즈음 새로운 갈래의 소설에 눈을 뜨게 되었다.
바로 무협지와 로맨스였는데, 한참 액션 판타지 무협지를 보다
로맨스도 좀 보다 다시 그 책들에 질리게 되었다.
너무 내용이 비슷비슷하고 별 이야기가 없었고, 무엇보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눈 때문에 웬만한 소설은 작가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오고 또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나는 소설에 자신의 뜻과 마음을 담을 수 있었다는 걸 최근에야 많이 느꼈다.
그래서 드디어 고전 소서이나 조금 어려운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고
지금도 여러 책들을 읽어가는 중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 좋아했었던 갈래가 있었다.
바로 추리 소설이다. 정말 한결 같이 좋아했는데,
워낙 죽고 죽이고 피 튀기는 내용이 많다 보니 요즘은 조금 삼가며 지내고 있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도 추리소설은 재밌게 쓸 수는
없는 걸까 하는 고민과 궁금증이 생겼다.
건희
<겨루다>
난 일상에서 다투는 일이 좀 있다. 그리고 겨루는 것도 즐거워한다. 나는 어떤 기준을 놓고
서로의 생각을 겨루는 것을 좋아한다. 각자의 생각은 서로 이해시키고, 허점을 발견하는 것이 즐겁다.
근데 생각을 겨루고 싶어 이야기 나누다가 다투는 일이 잦다.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리곤 서로 존중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끝나다/그치다>
나는 말하는 것을 그치지 못한다. 그래서 함께 이야기해야 될 때 혼자 이야기하고 있을 때도 종종 있다.
말이 많으면 오해도 생기고 여러 가지 불편한데도 그렇게 된다. 그럴 때는 스스로도
내가 그런 줄 잘 모르지 않는데 멈추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그런 순간이 올 때면 어떤 기준이나
가늠을 가지고 말을 마쳐보려 한다. 말이란 보이지 않는 것이라 가늠하기 어렵지만 도전해 보겠다.
끝나지 않던 말을 끝내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지!
<쉬다/놀다>
난 요즘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 나는 천성이 퍼져있는 걸 좋아하고, 미루고, 시간 때우기를 잘한다.
하지만 그런 나를 바꿔보고 싶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너무 빡빡하다.
좀 지친다. 이렇게 힘들 때 필요한 게 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쉼이 필요하다.
나에게 쉼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잠을 자는 것이다. 하지만 자는 시간도 요즘은 조금 아깝다.
그래서 나는 놀듯이 미션 클리어하듯이 재밌게 공부를 해가고 싶다. 또 놀면서 쉬고 싶다.
조금 어렵지만 나에게 주어진 학업을 즐겁게 해 가며 쉼을 얻고 싶다.
<고맙다>
나는 일상에서 고마움을 느낀 적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삶 자체가 감사뿐이었다.
내가 지금 마을에서 사랑받는 것, 따뜻한 집에서 살아가는 것 등 내 삶의 모든 것이 고마움이었다.
나도 감사하며 내 할 일 하며 다른 이들에게 고마움을 나누고 싶다.
▧ 말꽃(문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갈래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아직 읽어본 것이 소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해 그런 것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설이 좋다. 소설은 서사에 맞춰 등장인물을 바라보게 되는데 읽을 때 마음이 편하고 직관적으로
나의 삶 또한 보게 된다. 예전에 나는 장편소설을 좋아했다. 장편소설 정도 돼야지
이야기 진행이 완만히 일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SF 단편소설이 좋다. 짧은 시간 짬 내서 조금씩 읽기 좋아
마음이 편하고 그 속에서 나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글 읽는 것을 좋아하기에 좀 생소한 수필, 희곡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