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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1920년대 부활
I. 1915년 즈음에 의가 다시 선두에 나섰다
1. 각각 연구하여 비슷한 결론들
우리가 이미 주목한 바 주의 인도 아래 다른 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이 같은 때에 각각 따로 비슷한 연구 분야를 연구하는 때가 온다. 이것은 확실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새로운 연구에도 그러했다. 이것은 1915년에 엘렌 화잇이 죽을 때 즈음에 시작되었다. 부인의 죽으심은 그 방향으로 여러 사람의 마음을 인도했다. 앞장들에서 본 바와 같이 1900-1910년까지 10년간 비판적 문제들과 압력의 집중점이 가장 유감스럽게 그 배경에서 이 큰 주제를 복잡하게 했다. 그때는 1890년대에 했던 것과 같이 강조하는 일이 실패되었다. 그리고 여러해 동안 그것은 대부분 무 활동 상태였다. 주요 문제들이 요구되는 활동들과 더불어 첫째 자리를 찾이 했다. 이제 경사스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2. Prescott와 Monigomery에 의한 자극적인 연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연구와 강조를 새롭게 할 시간이 분명히 왔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이 피차 영락없이 따로 열심히 재 연구하기 시작하여 이 장엄한 주제에 관하여 가르치고 설교했다. W. W. Prescott와 따로 J. W. Weastphal과 다른 이들, Oliver, Montgomery는 남부 Hemisphere에서 새로 조직된 지회를 가르치기 위하여 1915년 12월에 남미로 가기 전에 얼마동안 그 문제를 열심히 연구하기 위해 깊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Prescott교수가 Montgomery를 따라서 남미로 가는 같은 배 위에서 잤다. Prescott은 그 지방 사업에 협조하고 지회를 조직하는데 조력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그는 일연의 목회 연구회를 지도하고 사역자들의 효과를 따로 준비했다. 두 분이 모든 분의 유익을 위하여 저들의 연구를 제시했다.
3. 돌아오면서 피차 강조한 주제를 발견
Martha Montgomery이 남미 지회의 속기자로서 봉사했다. 그녀는 그녀의 부친의 그 당시 믿음의 의에 깊은 관심과 그가 쓴 논문들과 그녀가 타이프치고 그가 이 분야에서 준 권면과 교훈 등을 잘 회상한다. 그녀는 또한 그녀가 J. W. Weastphal이 남미에 있을 동안과 그 지회의 다른 지도적인 형제들과 그 문제에 관한 대화와 진지한 토론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것은 다시 생생한 주제가 되었다. Monygomery는 1921년 가을에 미국에 돌아왔다. 그 후 얼마 안되어 Montgonery목사는 대총회 지도자들과 일선에 있는 다른 이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새로운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했다.
4. 믿음의 의가 또 다시 선두에
Montgomery sms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이 큰 주제에 관하여 글을 쓰고 설교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그는 많은 기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1922년 1926년까지 미국을 위한 대총회 부의장이었고 1926-1936년까지 일반 부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926년의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서 9명의 설교자 중의 한 명이었는데, 모두 이 한가지 최고 주제의 여러 면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그 당시 정기 안식일 오후 연구 그룹 지도자들 중의 한 분이었다. 믿음의 의는 1926년의 총회 끝난 후에 계속적으로 다시 확실히 선두에 있게 되었고 그렇게 되기로 예정되었다. 모든 수준 대총회, 지회, 합회, 지방에서 이 신령한 준비에 강조하기 시작했다. 점점 저 멀리 더 넓은 범위로 퍼졌다.
Ⅱ. Prescott는 Dick과 Daniel의 관심을 자극함
1. Prescott는 Dick의 흥미를 일으킴
그러나 뒤로 돌아가서 1918년에 W. W. Prescott은 서캐나다 연합회의 캠프미팅을 지도하도록 임명되었다. 그 당시 카나다 연합 대학장 E. D. Dick은 그 연합회의 교육 부장도 겸하고 있었다. 그는 그 후에 대총회 서기였고 그 다음에 우리 신학원 학장이 되었다. Dick과 Prescott은 그 같은 켐프미팅을 지도했다. Dick은 결과적으로 그의 모든 충만함 중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배경 하에 모든 교리와 강조의 핵심으로서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일련의 연구를 Prescott이 제시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은 Dick에게 새로운 관심을 일으켰고 성장하는 각성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Prescott에게는 그것은 좀 후인 1920년에 출판된 그의 교과서 그리스도의 교리 핵을 만든 준비의 일부분이 되었다. 한편 그리스도의 뛰어남 믿음의 의와 매우 명백히 연결된 1921년 1년간 장년 안교교과 4기분이 Prescott이 매우 효과 있게 광범위하게 심은 이 씨앗들이 풍성한 수롹을 얻게 되었다. 그의 개인 생애의 가장 결정적인 점에서 A. G. Danells의 잠재적인 관심과 흥미를 일으킨 것을 1923년과 1924년 그의 영적 태도, 그가 사용한 문구대로를 1922년에 대총회장에서 물러난 후에 다시 결정하기 위하여 이 큰 주재들과 원칙들을 깊이 연구하도록 강요당했을 때 Prescott가 제시한 지식의 일부였다.
Ⅲ. 진리의 완전한 조직이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었다
1. 전통적 성경 교수의 결함
Prescott은 잘 알려진 신학자였다. 그는 자기의 권리로 성경 그리고 신학과 역사를 깊히 연구하는 분이였다. 그는 그 당시 성경 연구 강조의 우리의 전통적 방법에 있어서 내용과 방법 모두 어떤 전통적인 약점과 결함들을 예리하게 알아차렸다. 그는 전제로서 성경 진리의 제한된 이해만을 학생에게 주고 너무 자주 영원한 복음의 산 핵심을 남겨두는 경향을 가진 부당하고 판에 박힌 듯한 엄숙한 과정이라고 느낀 것에 대해 염려했다. 그는 관습적인 관념과 제시에 있어서 교리적인 진리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대부분 분리되어 있었고 교리는 축상적인 지식적인 관념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면 성경 전체에 대한 관계에 충분히 유의함이 없이 특히 그리스도 안에 중심이 된 전체적인 강조에 유의하지 않고 다니엘과 계시록을 역로서 많이 강조했다. 그리고 성경 교리에 있어서 특히 학생들은 모든 진리의 근원이요 구체화되신 분이신 그리스도와의 중대한 관계를 연결된 산 연결을 모르고 독립적인 성경 주제들의 연속을 공부했다.
2. 증거가 되는 성구의 발달된 수집가들
이리하여 교리들은 증거 성구로서 수집한 성서적 참고 절들의 집합체에 건설된 교리의 선언이 되었다. 무론 그 계획은 분명히 공로가 있다. 그러나 Prescott에게는 그것은 충분치 않았다. 그것은 개개인 진리들과 별개의 교리적인 견해를 지지하기 위하여 증거 성구를 위해서 탐구자들이 발전시켰다. 이 과정은 너무 많은 경우에 있어서 추상적인 교리들의 수집함에 있어서 마른 뼈들의 집합체 너무 흔히 모든 것이 생명과 진리의 근원에서 분리된 가 되었다. 지적 승인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을 때때로 전부였다.
3.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되고 중심이 됨
Prescott에게 있어서는 성경 연구 계획은 학생들에게 온 성경을 알게 할 필요가 있고 건전한 주석의 원칙들과 과정을 알게 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들과 신학적 증거들을 제시해야 할 뿐 아니라 복음의 그리스도를 학생들의 시기와 영적 필요를 제시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모든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되고 중심을 이루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가 주장하기를 모든 진리는 창조주 입법자, 계시자, 선지자, 모든 성화시키는 분 구세주, 의의 근원, 중보자, 보증인, 심판장, 생명 주신 분, 다시 오시는 왕과 같이 어떤 자격이 있는 그리스도를 직접 다 잘 빛나게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Prescott는 교실에서 성경 교수를 하기 위해서 그 참 목적과 기별에 충실하려면 항상 성령의 중심 주제이시며 그 분 자신의 모든 진리의 산 실체이신 그 사람을 충실하려면 항상 성경의 중심 주제이시며 그 분 자신의 모든 진리의 산 실체이신 그 진리의 충분한 배경을 만드는 수단으로서 사용할 설명 증거들, 논리, 논증, 찬조 등을 사용해서 이 중에서 이에서부터 만유이시며 만유 가운데 계신 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의 영광스럽고 당당한 모습이 빛난다.
4. 모든 교리를 통일시키는 형상
Prescott은 단순히 율법, 안식일, 성소, 조건적 불멸성, 재림 그와 같은 논제의 모든 교리적 범주에 관한 성서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도리어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최고의 필수적인 구체화된 교리, 모든 것이 포함된 그리스도의 교리가 있다. 그 분은 중심의 핵을 형성하는 통일시키는 형상이요, 참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의 연결을 이루는 형상이시다. 소위 교리적인 문제들은 오직 성경의 하나의 최고 존재자의 여러면 혹을 특성들 그의 모본, 가르침, 능력의 공개 혹은 묘사이다. 이 고상함 사상은 강조에 관하여 결정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Prescott는 이 모든 것을 1920년에 출판된 그리스도의 교리 대학 성경 교과서에 예증하고 구체화하려고 애썼다. 보통 어떤 이들은 그의 목표나 그의 목적 의식을 포촉하지 못했다. 실상 그것은 많은 자들에 의하여 오해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전술한 말을 믿지 ㅇ낳았다. 적지 않은 수가 독립적인 제목들로서 성경 교리들에 관한 좋은 옛 전통적인 강조 우리 교회의 신조를 형성하고 역사적인 증거 성구의 신앙을 구성한 전통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 이들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지나치게 강조하고 독특한 특별한 교리들을 그렇게 하는 것은 충분히 않다고 두려워했다.
5. 새로운 강조를 어떤 이들이 원망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초월성에 관하여 강조했는가를 의문했는데 그는 그것을 강조했다. 왜 교정하고 수정하는가? 왜 기존 전통적인 모본을 혼란케 하는가? 이 새로운 접근의 시도는 우리 교회 기초를 놓은 조상들이 발전시킨 독립적인 교리들의 조직의 사상에서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실로 그가 참석했던 미내아폴리스의 옛 논쟁의 재판이었다. 어떤 나라 교수 분야에 있는 다른 교사들은 그런 강조는 과학, 어학, 역사 기타 등등과 같은 다른 분야와 비교해 볼 때 성경 부분에 그늘진 곳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성경 교수는 우리 재림교 대학들의 필수적인 신임을 얻기 위하여 2번째 위치 하위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까지 느꼈다. 분명히 Prescott은 자기 시내에서 앞섰다.
6. 받아들여지도록 예정됨
그러나 피는 뿌려졌다. 원리는 선언되었다. 이들은 마땅한 때에 수확을 가져오도록 되어 있다. 비록 Prescott이 살아서 그것을 보지는 못했을 지라도 어떤 이들이 오해했고 다른 이들이 이상하게 반대했지만 그는 점차 이해되고 그의 큰 목적을 파악한 자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주요 계획이 어떤 이에게 조롱을 받는 한편 그런 일은 항상 진리의 더욱 효과적인 가르침을 위하여 확대된 계시의 투쟁의 길이 되어 왔다. 이것이 그것이 일터를 휩쓸지 못했던 이유이다. 그것은 훗날을 위해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Prescott의 노력은 기조적인 원칙들의 부흥과 연속이다. 그의 사업은 점차 힘을 가해가지 시작하여 점차 정당한 속에 있게 되었다. 부언해야 할 것은 주로 성경 편에 관하여 부담을 갖는 한편 그는 스스로 그가 깊이 믿고 있는 예언의 신의 원칙들과 적용과 근본적으로 조화된다고 믿었다. 그의 교과서는 개척자였고 영구적인 공로가 있다. 그 기록을 가지고 그것을 검토해 보자. 왜냐하면 그 책이 드물기 때문이다.
Ⅳ. 기록할만한 공헌을 한 그리스도의 교리
1. 교리와 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중심성(그리스도의 교리는 1980년대에 나타난 책들)
복음의 진수로서 선포를 완수하기 위한 유일한 희망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함 중에 계신 그리스도의 중신됨을 제시하는 책들 중의 첫째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1920년에 Prescott이 출간한 이 교과서는 1888년 미네아폴시드 총회 32년 후에 그 역사적인 회기에 한 청년으로서 직접 참석했던 분, 그 기별을 받아들이고 대학 행정과 성경 교사, 대총회 부회장, 교회 기관지 Reveiw지의 편집자로서 옾은 신임의 지위를 가지신 분에 의해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표지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교리는 대학들과 신학원들에서 사용을 위해서 출판되었다. 그 표지의 범위는 그 내용을 일견해서 알 수 있다. 18항 중에서 13항이 기독교의 중심 진리,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 유일한 구세주 그 다음 신성, 성육신, 속죄의 죽음, 부활 승천, 중보사업, 그리스도의 생애를 삶, 그의 재림, 성령, 그리스도를 원 위치에 둠 등이다. 이것은 거시에 필수적 관계 속에 있는 특수 교리들이 뒤따른다. 그 중요성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인쇄되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요 장들을 요약한다. 왜냐하면 이 원리들과 조목들이 모든 이에게 알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로운 강조를 소개했다. 서론적 기록에 다음과 같은 말로서 Prescott의 부담의 핵심이 드러난다. 다만 신학적 신조만으로는 죄의 00에서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평화와 안식을 나눠줄 수 없다. 만일 그가 죄에서 구원하는 구세주라면 우리는 반드시 그 분을 길 진리 생명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는 그 주위에 있는 교리들의 지식이 그의 복된 충만함 속에 있는 그 분을 어둡게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참으로 1888년의 연장이다.
2. 이해 가능한 접근 계획
각 항은 교훈의 연속으로 되어 있다. 매 교훈은 지지하는 성구의 명단이 뒤따른 제안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매장마다. 그 교훈의 사상을 강화하고 예증하는 인용들이나 주의의 연속으로 끝맺는다. 예컨데 제1과 하나님에 관한 합당한 지식은 인간의 지성의 보조 없이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에게서 나온 지식을 주셔야 하고 성서에 제시되어 있다. 주위에는 계시는 항상 하나님을 알기 위해 절대 필수적이다. 하늘이 하나님을 증거하고 땅이 자연의 작용을 가르치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내는 한편 신령한 계시는 자연을 해석함에 있어서 오직 틀림없는 확실한 기초이다. 자연의 작용이 헌신할 느낌을 일으키는 한편, 그 헌신을 인도할 수는 없다. 더욱이 저주 아래 있는 자연은 부적합한 계시밖에 줄 수 없다. 그것은 설계사의 증거를 제시하지만 그 분을 우리에게 충분히 제시할 수는 없다. 기록된 말씀은 과거 영원한 시대를 꿰뚫고 장차 영광을 계시한다. 그것은 아버지를 계시하고 이들을 증거하고 성령을 증거 한다.
3. 신성과 인성의 연합
성서의 저자와 권위, 영감의 사실, 하나님의 기록된 산 말씀 등을 다루면서 Prescott은 성경이 어떻게 전체 조직이 되며 성서에 또한 존재한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되는가를 나타낸다. 영감으로 계시된 진리들은 사람의 언어로 표현되었다. 성경은 장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 성경은 죄로부터의 인류의 회복을 기록한 구속의 계시요, 묘사이며 인간 영혼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 그리스도를 통한 최후 승리의 확신을 기록한 구속의 계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성서 중에 핵심적인 인물에로 인도한다. 그 책 속에 모든 곳에 성경의 본질과 중심이신 그리스도 자신으로 인도한다. 구약에서 그 분은 그 예언의 핵심이요, 한 점으로 집중하는 초점이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큰 지남철이다. 그리스도는 성경과 그 예표의 주요 열쇠이다.
4. 하나님의 최고 계시
이것은 제 2항으로 인도한다. 기독교의 중심 진리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는 계시된 분이요 계시자이신 최고 계시이시다. Prescott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다루고 그를 인자로서 우리의 본성에 속한 연약함에 둘러 쌓인 참 가족이었다. 영원하신 말씀, 우주의 창조주와 대 주재, 그의 성육신의 증거들에 관하여 한 인상적인 인용문에 말하기를 이 두 기둥 위에 견고한 두 교각 위와 같이 각각 한 대륙 위에 한 큰 만이 그 사이에 있듯이 한편에는 그리스도의 신성, 다른 편에는 그의 인성으로 우리가 영광으로 걸어가는ㄴ 강을 통과하는 다리로 건설되어 있다.
5. 기독교는 한 인격 위에 구체화되었다
Prescott는 그리스도를 메시야로서 다룬 후에 기독교는 그리스도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그의 5가지 제안이 있다.
①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인격 위에 굳게 놓여있다.
② 진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살게 된다.
③ 그리스도 자신이 모든 교리의 실재이다.
④ 복음의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실체임을 강조한 후 Prescott는 진리는 그리스도와 분리될 때 결코 옳게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생명이요 진리의 빛, 그 영원한 실체와 근본이시다. 복음은 구속적인 요인이요 철학이나 공식이 아니다. 복음은 구세주에 관한 한 기별만은 아니다. 그것은 구주 자체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 분 자체가 기독교이다. 그의 구세주의 직분은 교리 체계 속에 있지 않고 그 자신의 인격 속에 있다. 우리는 그 분을 떠나서 그의 은사를 받을 수 없다. 복음은 단지 하나의 교리 체계가 아니다. 또 추상적 교리의 뼈들과 해골의 집합체가 아니다. 생명, 그리스도 자신의 그 생명은 필수적이다. 설교자와 풍성한 주제는 성육신한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승천하신 그리스도, 봉사하신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에 관해서 설교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하고 다만 우리밖에 하늘에 계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Ⅴ. 영원한 복음의 영원한 진리들
1. 계시록의 최고 증거
제 4 항에 (그리스도에 관한 위대한 사실들) Prescott은 7 기본적 사실들을 열거한다. 그의 신성의 성육신, 속죄의 죽으심, 부활, 승천, 중보 사업, 그의 재림, 복음은 뛰어나게 중요하며 철학이나 신학이 아니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하여 Prescott은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신과 형상으로 계시된 하나님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유일한 그의 인격과 사업의 합당한 해설이다. 구약의 스스로 계신 분이 신약에서 예수의 인격에 나타났다. 그는 나타나신 하나님이요 미래를 모르시는 것처럼 과거를 모르시는 스스로 계신 분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영원한 현재이시다. 그리고 복음과 경험에서 그리스도의 계시의 최고 증거는 그를 따르는 자들의 생애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증거이다.
2. 성육신(모든 역사의 열쇠)
성육신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탄생 시에 한 새로운 존재가 생기게 된 것이 아니요 그의 존재의 순서이다. 한 변화가 생겼다. 그는 아버지와 꼭 같이 영원하다. 예수의 인성의 몸 안에 아버지와 분별되나 아버지와 밀접히 관련된 한 인격자,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영원부터 존재하셨던 분이 살아 계셨다. 이리하여 성육신은 역사의 가장 엄청난 사실이다. 성육신은 절대 필수적인 것, 신성과 인성의 연합, 그의 신성이 그의 인성을 파괴하지 않고, 그러므로 지상에서 유한하시고 무한하신 분이었다. 이리하여 영합된 말씀과 성육신 한 말씀을 파괴하지 않고 그러므로 지상에서 유한하시고 무한하신 분이었다. 이리하여 영감 된 말씀과 성육신 한 말씀 기독교 신앙의 쌍둥이 기둥이다. 그의 성육신에서 예수는 전네 아니었던 것이 되었고 인간 육신 생활의 제한성을 받아들이셨다. 이리하여 인성은 신성에 결합되었다. 때문에 그는 하늘 보좌로 돌아가실 때 그가 취하신 인성을 가지고 가셔서 영원한 영광 중에 그것을 지나신다. 그러므로 한 인격 속에 하늘과 땅, 하나님과 인간이 연합되었다. 그리고 하늘에서도 인간이 되시는 것을 그치지 않으셨다. 이리하여 성육신은 그것이 의미하는 모든 것과 더욱이 그 결과에 있어서 놀랍다. 이것이 기독교의 중심적, 긴요한, 필수저인 사실이요 신앙이다.
3. 인간 역사에 신성의 침투
성육신은 진정 모든 역사의 열쇠이다. 그것을 향하여 모든 것은 완성될 때까지 움직인다. 그것은 찬탈자로부터 이 세상의 홀을 다시 찾으신 분에 의하여 인간의 역사의 침략이었다. 이것은 인간 역사의 중신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 화목케 하신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 그 밖의 모든 것은 이 중심 사실에 부속된다. 타락에서 성육신까지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그것을 위한 준비였다. 성육신의 목적들에 관하여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멸절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 인간 생활과 본성으로 들어온 참 인간이었다. 그것은 죄의 형벌과 권세에서 모두 구속하기 위하여 신성과 인성의 신비하나 조화된 연합으로 결합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죄 많은 인류와 매우 밀접히 연합했으므로 그 분은 자기 자신의 몸과 개인 경험 중에 비록 개인적으로 죄가 없을지라도 그 슬픔 뿐 아니라 그 죄 짐을 지셨다. 이리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우리의 길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중에 거하시는 한 분을 통해서이다.
4. 자원해서 대신 무죄한 죽음
제 20과에서 자원해서 한 행위를 강조한 후에 Prescott은 자기희생의 최고 성취로서 인류를 위한 무비의 복종의 행위에 대하여 복음서에 할애된 놀라운 분량, 마태복음 30쪽 중에 10쪽, 미가 19쪽 중에 7쪽, 누가 복음의 1/4, 요한복음 24쪽 중에 10쪽은 그 최고의 의미를 지적한다. 그리스도는 이 때 죽느냐 다른 때 죽느냐 중에 선택한 것이 아니요 죽느냐 안 죽느냐 중에 선택하셨다. 그는 대신 죽으셨다. 죄를 없이하고 생명을 회복하기 위해 사죄를 사기 위해서 노예를 구속하기 위해 사단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잃어버린 사람을 화목 시키고 회복하기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 대속자로서 십자가 위해서의 그의 죽으심은 자발적 대신 무죄한 희생, 목적이 있고 영광스런 것이다. 그는 죄인을 위하여 죄와 저주가 되셨고 인간을 위한 하나님께 제물과 희생이 되셨고 그의 죽음으로 그를 화목 시키고 그의 보혈로 인간을 사시고 진노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구속하시고 의롭다 하셨다.
5. 속죄의 넓은 범위
그의 죽으심은 죄,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에 죽으심이었다. 죄는 하나님의 필수품으로 죽음을 만들었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대신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형벌에서 해방되었다. 구원의 구속적인 대가, 그의 죽으심은 신성한 율법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켰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든지 인간을 용서할 수 있다. 그 분은 결코 개인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죄의 결과를 충분히 지셨다. 속죄는 의를 만든다. 발보리에서 희게 씻어지는 일이 없다. 오히려 죄인이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있는 장벽을 헐어버림으로 희게 씻어진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자신이 재 연합된다. 하나님에 관한 최대의 일은 그의 사랑이다. 우주에서 최대의 일은 그의 율법이다. 인간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것은 죄요, 이 모든 것이 함께 만나고 속죄에서 해결된다. 죄는 폭로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모드 ㄴ인간을 위해서 준비된 우주적인 희생이다.
6. 부활(기독교 교리의 모퉁이 돌)
부활은 신약 성서가 기록되기 전에 기독교회에서 믿었고 전파되고 널리 퍼지고 그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 수많은 분애와 증인의 증언은 함께 솔직한 사람들을 위하여 의심할 수 없는 논증을 구성한다.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모퉁이 돌이다. 100번 이상 말한 것이다.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인간 생활의 허무를 구체화시키는 것과 불가능의 복잡한 어리석은 일의 연속적인 역사로 되돌아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7. 근본적 창조의 중보자
10항(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에서 31과 5가지 점을 들어서 근본적 창조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다룬다.
①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그의 아들의 중보를 통해서 주신다.
②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중보역이다.
③ 만물은 말씀의 중보 역을 통해서 존재케 되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됨
④ 그리스도는 중보, 창조와 물질적 우주의 통치에 중보역이다.
⑤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는 주역으로서 창조에 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하셨다. 주의에 주석하기를 중보는 창조와 통치와 구속에 있어서 모두 영원하신 아들의 인격에 중심 되어 있다. 그는 창조되지 않은 중보자요 그를 위하여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존재케 되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만물 사이에 중보자이시다. 만물을 존재케 하시고 저들을 적응시키고 세계에 율법을 주시고 고등 피조물에게 이성과 양심을 부여하시고 저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관한 지식을 계시하신다. 그는 감각 세계의 모든 형태와 세력 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시다. 그는 생명과 빛의 중보자이시다.
8. 신인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고리
32과는 4부분으로 나눈다.
① 창조주와 구속 주는 같은 분이요 구속은 창조를 내포한다.
② 만물을 창조하신 그 분이 인간 속에 새 맘을 창조하신다.
③ 근본적인 창조가 창조주를 통해서 중보 된 것같이 새 창조에도 그렇다.
④ 그리스도께서 근본적으로 못한 것은 아무 것도 둘 사이에 화목의 매체로서 불충분하다. 육체로 오신 인간으로서의 그의 생애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한 것은 아무 것도 죽으심과 부활로 완성된 그의 생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보증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애도 처음부터 끝까지 중보적 생애요 아들을 통한 중보의 생애이다. 세계의 모든 신비는 그리스도 안에 중심이 되고 세계 신비의 최후 해결은 그의 인상이 영원하신 아들의 중보사업과 기능이다.
Ⅵ. 율법, 은혜, 복음의 관계
1. 율법과 복음의 관련성
36과에서 이들의 관계와 의가 다음의 제안들 속에 간결하게 제시되어 있다.
① 십계명의 율법은 의의 표준은 제시하고 가르친다.
②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의 원칙 위에 기초가 되어 있고 우리에게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들을 가르친다.
③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인간에게 속하지 않았다. 인간은 죄로 하나님과 분리된 고로 사랑의 울법을 성취시키기가 절대 불가능하다.
④ 복음 중에 율법에 기록된 의가 제시되어 있고 율법은 이 의의 진실을 증거 한다.
⑤ 이 의는 그리스도의 믿음과 받음으로 얻을 수 있다.
⑥ 이같이 율법의 한계에 의해 생긴 필요를 응하기 위하여 내재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준비되었다.
⑦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순종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생애 중에 율법이 이루어진다.
⑧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지시키지 않으시고 자기 자신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죽으심. 율법을 불순종한 형벌을 폐지하셨다. 그를 받아들이는 자들을 위하여
⑨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구원을 가져오고 우리를 율법을 범함에서 우리를 건지신다.
⑩ 율법은 율법의 구원할 수 없는 죄를 계시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우리에게 요구된 의를 줄 수 있는 분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2. 은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거룩케 하신다
그의 기록에 Prescott이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를 떠나서는 율법은 결코 그것을 순종하여 인간을 의롭게 만들지 못한다. 은혜는 칭찬하기 위해서 선한 사람을 찾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그러나 다만 의를 인정하는 것은 공의이다. 도리어 칭찬하기 위해서 선한 사람을 찾아서 믿음으로 구원할 수 있고 거룩케 하고 영화롭게 할 사람을 찾고 있다. 율법은 은혜와 완전히 구별되고 다르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금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이 탄원하시고 베푸시는 것이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요 은혜는 살리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 앞에 모든 입을 막고 은혜는 모든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송케 한다. 율법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간격을 만들고 은혜는 죄인을 하나님께 가까이 인도한다. 율법은 말하기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다. 은혜는 믿으면 산다고 말한다. 율법은 가장 좋은 사람도 완전히 정죄한다.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값없이 의롭게 만든다. 율법은 예방책의 한 조직이다. 은혜는 도움의 조직이다. 율법 아래에서는 양이 목자를 위하여 죽는다. 은혜 아래서는 목자가 양을 위해서 죽는다. 은혜는 율법을 이룰 길을 준비한다.
3. 그리스도는 우리의 잃은 생명을 회복하신다
37과(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에서 이와 관련된 분야에 아래의 제안들이 나타난다.
① 하나님의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다.
② 하나님에게서 온 생명은 원래의 창조에서 인간에게 나눠주었다.
③ 이 생명은 죄를 통해서 상실했다.
④ 하나님의 아들은 그 자신 속에 생명이 있고 그는 이 생명을 인간 가족에게 가져다주려고 오셨다.
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을 받음으로 받는다.
⑥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은 사망을 택하는 것이다.
⑦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모든 죄인을 사망에서 구원받는다.
인간 본성에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영구적인 생명이 없다. 그리고 타락에 빠져서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되어 졌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은혜로 사망의 상태에서 구원 받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으로부터 시작되는 부활의 생명을 나눠받는다.
Ⅶ. 성소, 제사장, 중보의 봉사
1.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를 예표 한다
지상 성소와 그 구성 분자의 모형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제사장 붕사의 예표이다. 이같이 법궤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친다. 두가지 재료들 금으로 입힌 나무, 하나는 보통 물질, 또 하나는 매우 귀한 것으로 된 법궤는 그리스도의 두가지 본성, 인성과 신성, 전자는 나무, 후자는 금으로 대표된다. 법궤 안에는 율법의 두 돌비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은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다. 그 율법 위에는 덮는 속죄소가 있다. 그리스도는 참 시은좌이시다. 세상이 하나님과 화목 되는 것은 그를 통해서이다.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않고 화목 시키는 것은 그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시은좌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교통하신 것같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와 교통하신다. 그것을 덮은 시은좌와 더불어 법궤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인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육체로 거하신다. 법궤 위에 두 그룹이 마치 경의와 기쁨을 표현하듯이 시은좌를 향하여 서로 얼굴을 향하고 서 있었던 것처럼 천사들이 인간의 구속 사업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을 놀라움으로 연구한다.
2. 중보 사역에 관한 참 조직과 거짓 조직이 비교됨
우리의 제사장 그리스도(제 39과)로 돌아가서 우리는 Prescott의 9가지 개관을 연구하자.
①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기 위해서 그가 제사장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삶과 죄 중에 참여했다.
②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며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았다.
③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여러 가지 특성에 있어서 우월하고 더욱 뛰어난 분이다.
④ 그리스도는 하늘 성소에 있는 제사장이다.
⑤ 그리스도는 은혜의 보좌 위에 있는 제사장, 자비와 은혜의 봉사자이시다.
⑥ 그리스도의 봉사는 더욱 뛰어난 봉사이다.
⑦ 제사장으로서 그는 우리 때문에 죄를 위한 자신을 제물로 들임으로 호소하신다.
⑧ 그 제물은 우리 구원을 위하여 효과가 있다.
⑨ 우리의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는 그의 끊임없는 중보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다. 이것은 필수적으로 거짓 중보 조직에 대항한 경고로 인도한다.
40과에서 참 조직과 거짓 조직을 비교하여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① 참 조직체에서 중보자는 신이요 인간이다. 한편 거짓 조직체에서 땅의 중보자는 하나님의 자리를 취하려고 하지만 오직 인간일 뿐이다.
② 참 조직에서 중보자 되신 분은 근본 창조시부터 중보자였던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다. 그러나 거짓 조직체에서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대신의 기능을 주장한다.
③ 참 조직 테에서 그 제물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모든 자들을 위해서 한번 자신을 드리셨다. 그러나 거짓 조직체에서 성병을 드리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고로 갈보리 위해서의 희생과 꼭 같다고 주장한다.
④ 참 제도에서 참 성소는 하늘에 있으나 거짓제도에서 모든 카톨릭 교회를 성소로 간주한다.
⑤ 참 제도에서 제사장은 그리스도 자신이나 거짓 제도에서 단지 하나의 인간이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 대신 행할 권리를 주장한다.
⑥ 참 제도에서 시내산에서 주신 하나님의 율법이 인간 중에 기록되나 거짓 제도에서 하나님의 법이 교회의 법으로 변경되어 여러 계명들이 첨가되고 삭제되었다.
3. 거짓 중보 제도가 참 것을 대치함
거짓 중보 제도를 해석하면서 예언과 그 성취에서 Prescott은 작은 뿔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군대의 왕을 대적하고 참 것을 제하고 거짓 성소 봉사를 대치함으로 그리스도의 중보의 기능을 박탈하므로 그리스도를 제외함. 그 같은 배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은 죄의 인간으로서 사도 바울에 의해 예언되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 세운 중보 제도를 첨가함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복음의 중대한 교리를 뒤집어엎었다. 그 사상을 연장시키면 제 4계명의 참 안식일은 원래 창조와 재창조에서 모두 한 중보자를 통해서 계시되었다. 반면에 거짓 안식일은 거짓 중보 사업으로 대치시킨 로마 카톨릭 교회의 권세의 표이다. 이리하여 카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시키는 안식일은 거짓 중보 사업으로 대치시킨 로마 카톨릭 교회의 권세의 표이다. 이리하여 카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가르친다.
(해설난) 그 전과에서 그리스도의 중보의 참 교훈은 매일의 견해는 기록되고 그 기초가 제시된다. 이 특성만이 1920년에 아직 이교주의 사사에 대하여 완강히 주장한 자들에 대하여 그 전체 교과서와 멀리하게 했다. 이것만이 이 항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그 전체 교과를 부인하게 한 기초가 되었다. 특히 그리스도에 관한 제한된 아리안 사상을 대항해서 대조적으로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신성관과 합했을 때
Ⅷ. 종교 개혁의 중심 진리
1.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됨
45과로 돌아가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하여 Prescott이 말하기를 사람은 스스로는 불의하고 무력하고 희망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 의롭게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면 그리스도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되고 영접 받는다. 그 후에 그는 의의 4가지 양상을 설명한다.
① 은혜로 말미암는 침의(롬 3:24, 딛 3:7)
② 보혈로 말미암는 칭의(롬 5:9, 3:25), 피=수단
③ 믿음으로 말미암는 침의(롬 5:1)
④ 행위로 말미암는 칭의(약 2:20-24). 그 다음에 그가 주석하기를 위의 어느 하나라도 ③을 내포한다. 그리고 위의 네 가지 모두가 칭의의 경험에 나타난다.
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그의 의의 선물을 받는다. 그리고 의의 선물을 받는 것은 우리 죄의 용서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를 믿는 이유로 인하여 죄인이 가납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미리 심판을 받고 정죄가 끝난다. 끝난 정죄, 미리 심판 받는 심판, 하나님의 자녀들의 현재의 의와 미래의 영광이 모두 믿음에 근거를 가진다. 의롭다 함은 죄 없다로 선언함이요 입법자와 율법에 의하여 변호하고 가납되는 것이다. 칭의란 낱말은 종교적으로 보편적으로 모두 항상 법률과 관련된 낱말이다. 그것은 재판자의 앞에서 무죄 석방, 변호, 수락되는 것이다. 우리의 죄, 채무, 빚, 정죄 받음에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죄 선언을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석에서 가납의 선언을 받는다.
2. 은혜는 믿음의 의를 가져옴
그리스도의 속죄는 은혜가 믿음의 의를 가져오게 한 방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죄가 되신 것에 상응하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게 된다(고후 5:21). 그리스도의 보혈, 희생, 순종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연관되어 언급된다. 바울은 처음에는 율법의 행함으로 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자기 행위의 빈약함을 알았고 동시에 그 속에 집착된 불 경건한 요소가 괴롭혔다. 그 다음에 그는 자기 앞에 영원한 권세와 위험, 필수적인 부동의 용서 없는 율법의 깊은 기초에서부터 일어나는 율법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자기 자신의 행함은 부정하고 메마른 것이었다.
개혁자로 종교 개혁의 핵심
다음에 다른 계시가 있다. 바울은 그 생명, 부활, 죽음 중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다. 사랑과 자비는 그의 오심에 관한 영감이었다. 순종과 희생, 그 모습, 의가 나타났다(율법 자체만큼 깊이 뿌리박힌 의, 그 크기에 있어서 장엄한 조금도 변하거나 쇠퇴하지 않고 찬란한 영광으로 빛나는 의). 죄인이 그것을 볼 때 그는 받아들이고 신뢰하고 하나님께 새로운 접근과 가까워짐을 의식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과 교제에 들어간다. 그는 그 사랑하는 분 안에 가납된 것을 발견한다. 여기에 두려운 율법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다. 믿음에 관한 응답으로서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저들에게 오는 죄인의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가 있다. 이것이 종교 개혁의 중심 진리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성령과 역사에 모두 힘이 있다. 성경에서 그것은 위대한 교리적인 편지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주제이다. 흐리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역시 명백하다. 종교 개혁 지도자들을 움직인 것은 그 진리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울의 기별이요, 서방 교회의 대 종교 개혁의 그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Prescott의 책의 진수였다.
3. 1931년 기본 신조에 대한 준비
1920년의 이 Prescott의 책은 남은 교회의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여진 원만한 형태의 우리 교회의 기본 신조의 선언으로 인도된 20 세기의 연속적인 산물의 첫 번째 것이었다. 성경에 기초된 그리스도의 교리 는 예언의 신의 보증과 빛과 조화되고 그리스도 중심 형태로서 인류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최후 기별의 위대한 진리의 점진적인 선언으로 결정체가 되었다. 이리하여 Prescott의 책은 큰 외침과 늦은비 아래서 완성될, 1888년에 미네아폴리스에서 선언된 진리의 완전한 부흥과 충분한 수락을 위한 길을 닦는데 도왔다. 그것은 비교할 것이 없는 짝지어 되는 것이다. 많은 신조에 있어서 Prescott의 강조는 있었던 것과 있어야 할 것 사이에 한 다리, 주요 관련을 짓는 것이다. 그것은 책의 형태로 재언한 1888년의 기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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