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1989년 이전 Burma)는
인도차이나반도 내에서 가장 면적이 크며, 아시아에서 10번째로 큰 국가입니다.
고대 미얀마에서는
북부 이라와디강 주변 평야지대에서는 쀼족이 도시국가를 형성해서 살고 있었으며,
남부에서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몬족이 모여 왕국들을 세워 살고 있었고,
아라칸 산맥의 서쪽에 기원전부터 라카인족의 왕국이 있었습니다.
9세기경(통일 신라시대)에 버마족이 이동해 와서 쀼족과 동화되었고
1050년대(고려 시대)에 바간 왕국을 세웠습니다.
바간 왕국은
몬족 왕국을 정벌하고 몬족 왕국의 불교를 수용하여 국교로 정하고
버마족의 언어와 문화를 중심으로 상좌부 불교 문화를 이룩했습니다.
바간 왕국은은 몽골족의 침략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되었으며
여러 소왕국들이 난립하여 패권을 다투다가
16세기에 따웅우 왕조에 의하여 미얀마의 2번째 통일 왕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따웅우 왕조는 동남아 역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군림하였으며
태국의 고대국가 아유타왕국을 초토화 시켜서
타이왕국이 방어가 유리한 늪지대인 방콕으로 나라를 옮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세기 초반에 미얀마 세 번째 통일 왕조인 꼰바웅 왕조가 라카인왕국을 정벌하고
현재 인도 서북부의 마니푸르와 아삼 지역까지 왕국의 영토로 만들었습니다.
꼰바웅 왕조는 영국 동인도회사와 분쟁을 일으키게 되었고
60여년간(1824~1885) 3차례의 전쟁 끝에 마침내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 제국의 침략을 받아 잠시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연합국에 의하여 해방되어 1948년에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미얀마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아웅산장군과 그의 동료 30인은
처음에 일본군에 협력하였으나 후에 연합국에 협력하여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
아웅산장군은
소수민족들의 자치권을 대폭 인정하는 정책을 실현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독립군 동료(?)에 의해 살해 되었습니다.
1962년에 독립군의 일원인 네윈장군이 주도하여 군사 쿠데타가 일으켜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네윈은 버마식사회주의를 지향하여 외부와 관계를 끊고
본격적으로 국가 후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1988년에 일어난 ‘8888민주화항쟁’으로 수 많은 무고한 국민이 희생되었습니다.
군부가 부분적인 민주화를 허용한 2010년의 총선으로 민주화길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의 총선에서 아웅산장군의 딸인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야당이 압도적인 승리로
미얀마는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2020년의 총선에서도 민간정부가 다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다음 해인 2021년 2월 1일 아침에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이 주도한 군사구테타로
민주정권이 전복되었고 현재 국가가 내전상태에 이르렀습니다.
အေးမြဖြူ - ဖူးငုံချစ်ပန်း
미얀마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다민족 다문화 국가 중의 하나로
167개 이상의 크고 작은 민족이 있으며,
이들이 사용하는 민족 고유 언어만 해도 107개 정도 됩니다.
2016년을 기준으로 미얀마의 총 인구는 약 5,700~6,000만 명이었으며
주요 민족으로는
버마족 70%(4,000만 명), 샨족 10%(505만 명), 꺼잉족 10%(카렌족, 506만 명), 라카인족 3%(152만 명),
몬족 2%(102만 명), 친족 2%(102만 명), 카친족 1%(51만 명), 중국인 1%(51만 명),
인도인 과 파키스탄인 1%(51만 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행정구역은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7개의 구(Division)와
7개의 주(State)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ung San Suu Kyi welcoms Angela Jolie to Myanmar
퓨 도시 국가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11세기 중반까지
현재의 미얀마(버마)에 존재했던 도시 국가들의 집합체였습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기원전 2세기 초에 퓨(安義)족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초기의 도시국가들을 세웠으며
건축학적, 예술적 증거로 4세기경에 Pyu 영역이 인도 문화와 접촉했음을 나타냅니다.
퓨 도시국가중
스리 크세트라(Sri Ksetra)는 서기 7세기에 최고의 퓨(Pyu) 도시 국가로 부상했습니다.
7세기에서 9세기 초에 걸쳐 도시 국가의 규모와 정치 조직의 규모가 커졌지만,
9세기까지는 아직 큰 규모의 왕국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퓨 도시국가들은
서기 750년대와 830년대 사이에
윈난(雲南)의 난조(南超) 왕국의 거듭된 공격으로 무너졌다고 합니다.
PYU Ancient City , Myanmar
바간왕국(1044년-1287년)
9세기에 Pagan(현재의 Bagan)에 있는 작은 정착지에서 성장하여
1044년 아나우라타(Anawrahta)왕에 의해 미얀마 최초의 통일왕국으로 건국되었습니다.
아나우라타 왕은
1057년 몬왕국을 정복하고
몬왕국의 Theravada 불교문화를 흡수하여
찬란한 바간왕국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왕국의 전성기 동안
Bagan 평원에 약 1000개의 사리탑과 10,000개의 사원 및 3000개의 수도원을 건설했으며
그 중 2,200개 이상의 사원과 탑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바간왕국은 1287년까지 250여년간 존속했으며
전성기 때 바간의 인구는 50,000에서 200,000 사이로 추산되며
왕국의 인구는 150만에서 200만 사이로 추정이 됩니다.
1277년애서 1286년사이
원나라의 침략전쟁에서 바간이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항복하여 왕국을 유지하게 되었으나
내부적 사정으로 1287년 바간왕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바간의 유적은
2019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세계3대 불교문화유적 중의 하나로 알려저 있습니다.
Bagan in Central Myanmar has about 2200 amazing Buddhist temples
The History of the Pagan Empire
따웅우(Toungoo, Taungoo)왕조는
2번째의 미얀마 통일 왕조입니다.
버인나웅 대왕의 재위기간에
라오스의 란쌍 왕국, 태국 북부의 란나 왕국과 동쪽의 아유타야 왕국, 북동인도의 마니푸르 등을 정복하여
그가 통치하던 따웅우 왕조는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넓고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미얀마 남부의 몬족들이 한따와디 왕국(1740년대)을 세우고
1752년 따웅우 왕조를 멸하여
266년에 걸친 따웅우 왕조는 266만에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The Myin Knights: The Forgotten History of the Burmese Cavalry MYANMAR DOCUMENTARY
꼰바웅 왕조(!752-1885)는 미얀마 3번째의 통일 왕조입니다.
제3대 국왕 신뷰신은 네 번의 청나라 침공을 막아 내었고,
아유타야 왕국을 점령하였을 뿐 아니라,
서쪽으로 인도 아삼 지방의 아홈 왕국까지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제6대 국왕이었던 보도파야는
1784년에 아라칸왕국을, 1814년에는 마니푸르 지역을, 1817년에는 아삼 지역을 편입시켰습니다.
마침내 국경을 마주한 영국과 꼰빠웅왕조는
60여년(1824-1885년)의 기간 공안 3차례의 전쟁 끝에
꼰바웅 왕조는 133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버마(미얀마)의 마지막 왕비, 수파얄라트 I 왕비 자리를 가로채 왕을 휘어잡고 영국에 맞서다 몰락으로..
60년간 세 번의 전쟁, 영국에 끝까지 무릎 꿇지 않은 나라 | 미얀마 그리고 로힝야 이야기 1부
Thingyan은
미얀마 신년으로도 알려진 보통 4월 중순에 열리는 축제로 4~5일 동안 진행되며 새해에 정점을 이룹니다.
현지인들은 악을 쫓기 위해 축제 기간중 서로에게 물을 끼얹습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은 공덕을 쌓는 의식을 행하며 보냅니다.
"Thingyan"이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 saṁkrānti에서 파생되었으며
"태양이 물고기자리( Pisces)에서 양자리(Aries)로 이동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역사가들은
Thingyan이 9세기 바간 왕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유사한 물 축제가 퓨(Pyu) 시대(2세기)에도 열렸다고 추측합니다.
2024년 12월, Thingyan은
"Atā Thingyan"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Hello Travel TV] 미얀마 띤잔축제, Myanmar thingyan festival, 4K, ပွဲတော်, Lễ hội Tinjan Myanmar, 缅甸廷扬节
Myanmar Thingyan Festival Images
혹시 같은 언어? 한국어와 미얀마어가 얼마나 비슷한지 한 번 보세요. [한국어-미얀마어 억양/음소/글자/단어/문법/어순 비교.대조] 한국어교육학 박사 수료자 미얀마 찬찬 쌤
미얀마어와 한국어 비교 영상
첫댓글 고구려가 망한 시점으로부터 약 200년 뒤 바간지역에 미얀마족이 나타났습니다.
설에 의하면 남조국의 군사로 미얀마 평정 후 주둔한 병력이라 하는데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남조국에 의해 퓨 도시국가들이 정벌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미얀마족은 정벌보다 그냥 터전을 잡아 이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얀마족은 덩치를 키우면서 퓨족을 흡수해서 바간왕국을 만듭니다.
바간왕국은 불교를 국가이념으로 삼고자 몬족왕국에게 불교경전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몬왕국을 점령한 바간왕국은 왕 이하 많는 몬족을 잡아와서 바간의 불교왕국을 만드는데 이용합니다.
미얀마족은 바간에 정주하기 전에 역사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또한 남조국이 있었던 윈난지방에 자리 잡고 있었던 민족이 아니고 어디선가 흘러 들어왔던 민족이었습니다.
외국의 유튜브를 보니 버마족이 기마민족안 것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사실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바간의 왕은 불교를 국가이념으로 수용하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바간 이후의 버마국가는 동남아시아 최강의 국가로 성장하며 영국을 상대하여 60여년간 싸워왔습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서 바간왕국은 소수의 고구려 유민이 만든 나라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흔히들 중국의 소수민족을 고구려이 후예라고 하는데 그들 민족 대부분이 거의 근세에 들어 들어와서 불교나 기독교를 믿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잃기는 쉬워도 신앙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고구려 유민의 수가 십만이 넘는데 이들이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마도 고선지장군이나 흑치상지장군이 필요에 의해 고구려 유민을 휘하의 군사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겠지요?
이들 군사중에서 주둔지에 남아 있거나 이탈해서 떠돌다가 바간까지 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