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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제: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전적인 허무함과 창조주 경외의 절대적 가치
제1부: 해 아래서 행하는 인간 수고의 허무함 (1~6장)
하나님 없이 세상적인 성취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적 시도의 부질없음을 논리적으로 고발합니다.
1장: 세상 지식과 자연적인 인간 지혜의 한계와 부질없음
2장: 육신적인 쾌락과 막강한 물질적 이득, 사업적 성취의 허망함
3장: 영원한 시간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이를 망각한 인간의 헛된 상태
4장: 인간의 무한한 경쟁과 근면, 성공 이면의 허탈함과 고독
5장: 헛된 종교적 형식주의와 재물, 부귀가 가져다주는 허무함
6장: 세상적인 성취를 다 이루고도 영혼의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인생의 낙망
제2부: 하나님과 함께하는 지혜로운 삶의 가치 (7~12장)
허무를 넘어 현실을 이겨내고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구체적인 영적 지침을 제공합니다.
7장: 세상의 부귀보다 명예와 선한 성품을 함양하는 일의 참된 가치
8장: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신뢰하는 선한 시민의 도덕적 의무
9장: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한계 비추어 오늘이라는 생명의 시간을 가치 있게 누리는 지혜
10장: 우매한 자들의 행태를 경계하고 분별력을 갖추는 슬기
11장: 장래의 추수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부지런히 씨를 뿌리는 자의 확신
12장: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신 선언과 심판을 바라보는 인생의 궁극적 본분 제시
전도서는 잠언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잠언이 지혜의 원칙들을 일상의 세부적인 도덕적 행동과 인간관계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복을 누리게 하는 실천서라면, 전도서는 인간의 존재적 한계와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짚어내는 거시적인 인생 철학서입니다. 잠언이 일상의 하부 구조를 다룬다면 전도서는 생의 전체 구도를 다룹니다. 전도자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인간이 왜 저토록 바쁘게 달리는가? 왜 수고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목적(Why)의 질문을 던집니다. 목적에 대한 답이 없이는 어떻게 살고 언제 일하는가 하는 하부의 질문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부조리 속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성찰하도록 이끄는 위대한 철학서입니다.
또한 전도서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배제한 채 인간의 이성과 자연적인 관점만을 신뢰하려는 '자연주의(Naturalism)'적 사고를 가장 신랄하게 반박하는 책입니다. 본서에 무려 29회나 등장하는 '해 아래(Under the sun)'라는 독특한 표현은, 하나님의 신령한 계시를 제외한 채 오로지 자연계와 인간의 한계 속에서만 인생을 바라보려는 천착한 자연주의적 시선을 뜻합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없는 해 아래의 세상 철학이 얼마나 맹랑하고 허무한지 생생하게 고발합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지혜롭고 위대할지라도 주님을 떠난 모든 수고는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것(Grasping for the wind)'과 같아서 허공을 치는 허탈함으로 끝날 뿐입니다. 저자는 공부에만 빠져 책을 많이 짓는 것도 결국 몸을 피곤하게 할 뿐이며(에 12:12), 궁극적으로는 그 지식 안에 무엇을 담고 어떤 목적으로 사느냐가 본질임을 역설합니다.
어떤 이들은 전도서가 허무주의와 신세 한탄으로 가득한 슬픈 책이라 오해하지만, 실상은 구약에서 인생의 기쁨을 가장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영적 낙관주의(Optimism)의 책입니다.
2장에서 육신적인 정욕과 쾌락만을 도하는 것은 백치(바보)와 같다고 경고하지만,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하며 누리는 심령의 즐거움과 일상의 낙은 하나님의 귀한 선물임을 누차 선언합니다(잠 2:24, 3:13, 5:18).
7장 14절의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하신 말씀처럼 기쁨과 사색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9장 7~10절의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하신 권고처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삶의 기쁨을 전폭적으로 향유하라고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외친 기별의 구약성경적 원형입니다. 하나님은 슬픈 눈빛의 금욕주의자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번지는 미소 속에서 백성의 참된 경건을 바라보십니다.
일부 비평학자들은 전도서가 "사람이 죽으면 짐승의 죽음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누가 장래 일을 알겠는가"라는 식의 회의론적 불가지론(Agnosticism)적 경향을 띤다며 영감성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본문의 특정 구절만 파편적으로 떼어내어 오해한 결과입니다. 전도서는 정반합(Thesis-Antithesis-Synthesis)의 변증법적 논리 구조를 지닌 거대한 한 편의 입체적인 설교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의 허무와 모순(정)을 날 것 그대로 노출시키고, 현실의 기쁨과 지혜의 삶(반)을 대조한 뒤, 맨 마지막 장에 이르러 모든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직면하게 되므로 창조주를 경외하는 것만이 인간의 온전한 본분이라는 영원한 결론(합)으로 대단원을 마무리합니다. 전체를 통틀어 읽어야 참뜻이 보입니다.
본서는 사후에 있을 인간 영혼의 불멸성과 종말론적 심판을 구약에서 가장 강력하게 선언하는 책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Eternity in their hearts)'을 주셨기에(전 3:11), 인간은 짐승과 달리 영원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육체인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전 12:7), 다가올 심판의 날을 의식하며 인생의 청년의 때에 속히 준비하라고 촉구합니다.
본서 12장 1절의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신 외침은 큰 영적 울림을 줍니다. '창조하다'라는 동사 '바라(Bara)'에서 온 명사 '보레(Creator)'라는 칭호는, 하나님을 단순한 통치자를 넘어 우리 내면을 새롭게 빚어내시는 개조자로 선포하는 첫 고백입니다. 늙어서 기력이 다하고 머리에 백발의 은줄이 풀리기 전, 젊음의 활력이 있을 때 속히 주님을 왕으로 모시라는 비장한 권고입니다.
본서 12장 10절에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선언하며, 이 기별이 한 목자(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온 순수한 영감의 정경임을 스스로 확증합니다. 전도서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아 예언은 없지만, 전도자 솔로몬 자체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영원한 진리 자체이시며(요 14:6), 우리 영혼의 선한 목자이신(요 10:11)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지혜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마 12:42)"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서의 모든 지혜는 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지혜를 빌려온 흔적들입니다.
본서의 핵심 단어 어휘 수치를 보면, 전도자라는 말이 7회, 인생의 허무를 뜻하는 '헛되도다'라는 말이 38회(1장 2절 한 절에만 5회 중복 등장),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10회 이상, 자연계를 뜻하는 해 아래가 29회, 그리고 지혜와 지혜자에 관한 표현이 무려 48회나 집약되어 성격을 대변해 줍니다. 헛되다는 뜻의 히브리어 '헤벨(Hevel)'은 본래 입에서 나오는 숨이나 안개, 증기를 뜻하는데, 인류 최초로 형에게 허무하게 죽임 당한 아벨의 이름과 어원이 같습니다. 주님 없는 인생의 호흡이 이처럼 안개처럼 찰나적임을 가르쳐 줍니다.
전도서의 최종 결론 신학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3)" 하신 기별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경영과 수고가 사람에게 있을지라도 모든 은밀한 일의 선악 간의 심판은 오직 여호와께 있습니다. 전도서를 읽으실 때 해 아래의 유한한 허무에 함몰되지 마시고, 해 위의 영원한 구원의 세계를 바라보시며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일상의 기쁨을 감사함으로 누리며 창조주를 온전히 경외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음 시간 아가서 공부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정리
명칭과 어원적 의미:
히브리어 표제는 '코헬레트(설교자, 회중 소집자)'이며, 헬라어 정경 명칭인 '에클레시아스티스'는 교회(에클레시아)의 집회를 이끄는 인도자라는 뜻입니다.
저자와 기록 연대의 영적 정황:
대다수 보수 정통 학도들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라는 내적 증거와 저자의 삶의 스케일에 따라 솔로몬이 BC 935년경 그의 생애 만년(노년기)에 기록한 인생 철학서이자 장엄한 설교문으로 확증합니다.
유대 백성들은 가을 수확 후 초막 천막에 살며 인생의 유한함을 성찰하는 초막절에 본서를 매년 통독했습니다.
자연주의의 타파와 영적 낙관주의:
본서에 29회 등장하는 '해 아래(Under the sun)'라는 문구는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인간의 이성과 천착한 자연계 안에서만 의미를 찾으려는 '자연주의'적 한계를 고발합니다. 하나님 없는 모든 수고는 안개와 같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무합니다.
그러나 본서는 허무주의가 아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일상의 수고와 낙을 감사히 누리라고 강력히 명하는 '영적 낙관주의'의 기별을 담고 있습니다.
전도서의 결론 신학:
전반부(1~6장)는 지혜, 쾌락, 부귀 등 세속적 성취의 허망함(정)을 논리적으로 나열하고, 후반부(7~12장)는 죽음의 유한성 속에 선한 성품과 지혜로운 준비의 가치(반)를 대비시킵니다.
최종적으로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 권고하며, 모든 은밀한 행위는 선악 간에 하나님의 엄숙한 심판대 앞에 서게 되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온전한 본분(전 12:13)"이라는 최종적인 영원한 신학적 결론(합)을 선포하며 구약 지혜의 정수를 완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