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와 당근과 올리브유 한 스푼을
◎실용인문학#26》 삶에서 이런 원리를 발견했다.
by관찰작가의 여유시간
8시간전
아침마다 착즙기 돌아가는 묵직한 소리로 집안의 하루가 시작된다. 맑고 진한 주황색 즙이 쪼르르 컵을 채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내 몸 구석구석에 건강한 기운을 꽉 채워 넣는 듯한 뿌듯함이 차오른다.
우리 집 베란다 한구석에는 늘 10킬로그램짜리 당근 상자가 놓여 있다. 이 당근 상자 뒤에는 사실 아내의 고집이 숨어 있다. 아내는 잔돈에는 유독 고집이 센 편이라,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토스 앱을 끈질기게 켜고 걸음 수를 채우며 포인트를 모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 푼돈이 제법 쌓였고, 이걸 어디다 쓸까 하다가 문득 당근을 산 것이 시작이었다.
위암 수술을 받고 1년, 입맛도 크게 변하고 음식에 대한 변덕도 심해진 아내였지만, 신기하게도 이 당근즙만큼은 피로가 덜하고 몸이 편하다며 잘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지 말라던 토스로, 하지 않아도 될 고집으로 산 당근이 어느새 매일 아침의 습관이 되었다. 서로의 건강을 바라는 마음이, 계획도 아니고 그저 잔돈 쓸 데를 찾다가 꾹꾹 눌러 담긴 셈이다.
그러다 당근의 핵심 영양소인 베타카로틴이 지용성이라, 올리브유를 더해야 체내에 온전히 흡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름이라는 짝꿍을 만나지 못하면 그 좋은 성분도 그저 겉돌다 지나쳐 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아내가 잔돈으로 당근을 사두고 손수 깎아 즙을 내어 건네는 일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마음의 교류다.
하지만 그 애정과 노력이 서로의 몸과 삶에 제대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올리브유 같은 '작은 섬세함'이나 '온기'가 더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착즙 된 진한 당근즙 위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살그머니 떨어뜨린다. 주황빛 즙 위로 투명한 기름방울이 동그랗게 맺히는 것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이 만나 비로소 완전해지는 순간.
오늘 아침은 단순히 건강한 즙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 아니다. 하지 말라던 토스를 끈질기게 켜던 아내의 고집이, 조용히 우리 안에 다정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매개체를 더해주는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