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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받기
마가 4:26-29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And He was saying, "The kingdom of God is like a man who casts seed upon the soil; and he goes to bed at night and gets up by day, and the seed sprouts and grows--how, he himself does not know. "The soil produces crops by itself; first the blade, then the head, then the mature grain in the head. "But when the crop permits, he immediately puts in the sickle, because the harvest has come." Mark 4:26-29
하나님의 나라는 주가 계신 곳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삶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거기에 당연히 나 자신도 존재합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주와의 연합된 자 자신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씨를 뿌리는 것처럼 이루어지는데 여기 오늘의 비유에서 말하는 중요한 두 가지는 어떻게 된 것을 모른다는 것과 땅이 홀로 열매를 맺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주와 동행하는 삶의 아주 중요한 점인 숨어계신 하나님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The kingdom of heaven is where the Lord is, and at the same time, should be fulfilled in our living, while I myself is existed on there. The kingdom of heaven reveals the life of mine to be unified with the Lord. It will be proceeded like spreading seed. Two points on this parable of today are that it will be done without knowing how it does and it is like to bear fruit by itself. This parable contains the very important message of the Gospel that God is hidden.
성경의 에스더서는 유다가 망하고 백성의 유지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을 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모르드개와 그의 사촌 에스더가 어떻게 바벨론의 최고 대신과 왕후에까지 오르게 되며 그들로 통해 이스라엘의 명절인 부림절이 제정되게 된 사연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학자들 중 어떤 이들은 이 에스더서를 정경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에스더서는 성경 중 유일하게 하나님이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은 책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종교적 행위조차 없습니다. 금식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차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 책이 정경에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에스더서가 ‘숨어계신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sther in the Old Testament records the situation of Jews to be exiled to Babylon. It wrote how Mordecai and Esther had become the highest noble and Queen to establish Purim, one of the most joyful feast of Jews. By the way some of scholar insist to get rid of this book from the canon with the reason why this book has never mentioned the name of God, even the calling God, as well as any religious activity except for fasting only one time. Then how could this book had been written on the list of canon? That is because this book, Esther, is telling us about the hidden face of God.
성경의 이야기들은 몇 가지 핵심어들이 반복되면서 그 구조를 이끌어가는 경우들이 있는데 에스더서에서는 그 중 하나가 ‘잔치’입니다. 여기는 무려 열 번의 잔치가 베풀어집니다. 그런데 그 중 다섯 번은 페르시아(바사)인에 의해서, 그리고 나머지 다섯 번은 유대인에 의해서 배설됩니다. 이는 에스더서 전체의 권력의 이동을 보이고 있으며 그 과정마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계속 이어서 진행됩니다.
Narrative of the Bible used to take some key word to proceed the story, while one of the key word in Esther is feast. We can count even ten times of feast here this book. By the way the first half was prepared by Persian and the later half was by Jews, that reveals us the movement of power, while many incidents had been happened look like coincident.
아하수에로 왕은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귀빈들에게 왕후 와스디를 불렀지만 왕후는 자신도 바쁘다고 오지 않습니다. 노한 왕은 왕후를 폐하고 전국에 처녀들에게서 새 왕후를 뽑습니다. 유대인인 에스더는 신분을 감추고 결국 왕후에 오릅니다. 한편 사촌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보살피려 왕궁에 갔다가 대신들 중에 왕을 모살하려는 음모를 듣고 이를 고해 왕을 위험에서 구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대로 잊혀 집니다. 사울과 대적이었던 아말렉의 왕 아각의 자손 하만은 당시 왕의 최고 대신이었습니다. 사울의 자손이었던 모르드개는 그에게 절하지 않았고 하만은 모르드개 만이 아니라 온 유대인을 다 죽일 음모를 꾸미고 한 민족이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명목으로 왕에게 이를 허락받습니다.
King Xerxes gave a banquet and called his Queen for nobles, but she did not come because she as well was busy. King was so angry that he commanded her not to come any more in the presence of him to give her royal position of other more than her, who was Esther. Mordecai, cousin of Esther, came to hear someone with a plan to kill the king, so he reported it to save the king. But it had been forgotten without any reward. Haman, son of Hammedatha, the Agagite, was angry at Mordecai, who did not bow before him, to have a plan to kill every Jews as well as Mordecai. So he reported to the king to get the permit to kill Jews in one day, saying a people had made this country confused.
자기 집 뜰에 높은 장대를 세우고 거기에 모르드개를 메어 달 계획을 세워놓고 왕에게 최종 결재를 받으러 가기 전날,왕은 잠이 오지 않아 왕의 기록을 살펴보다가 전에 모르드개의 신고로 자신이 위험에서 건져진 내용을 읽고 아무런 보상이 없었음을 알고는 진멸의 재가를 얻으러 온 하만에게 ‘만일 왕이 누구를 높여 영광되게 하려면 어떻게 하리?’하고 묻습니다. 하만은 그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해서 왕같은 대우를 해주라고 하자 왕은 모르드개에게 그리 해 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 말살의 어명은 이미 내려진 고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이 때를 위해 네가 왕후가 된 지 어찌 아느냐? 하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왕 앞에 나갑니다. 이에 하만이 에스더에게 살려 달라고 엎드려 간청하는 것을 왕은 욕보인다 생각하고는 그를 멸하고 모르드개를 달려던 나무에 하만을 달고 유대인을 죽이려던 날에 그 죽이려던 대적들을 오히려 진멸하는 상황이 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이 날들을 기념하여 부림절이라 하고 오늘까지 유대인의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By the way, the day before Haman was willing to get the permit from the king with a plan to hang Mordecai on a tall tree, the king could sleep to read the book of record of kings to find the record of Mordecai to save the king himself not to be rewarded. When he saw Haman, he asked him, If I want to glorify someone, how would I do for him? Thinking the one is Haman himself, I suggested something, but it was not him but Mordecai. But the permit to kill Jews was still active. So Mordecai told Esther to say about that to the king. She agreed with it, saying, "if I perish, I perish." When the king heard from her, he got angry, but when he returned to the Queen, he saw Haman was fallen down to Esther. He through it kind of ravish the Queen, and ordered to kill Haman to the tall tree that was prepared for Mordecai, and to protect Jews from any harm. So Mordecai and Esther established that day to celebrate for every year.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직접적으로 보이지도 않으시고 그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치 우연이라고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사건들이 합목적적으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를 만나게 됩니다. 에스더서에는 ‘만일 ~하였더면’이라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만일 왕이 그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읽었어도 다른 페이지를 읽었더라면, 일들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면, 등등 수많은 상황이 모두 들어맞아 결국 대적에게 죽임을 당할 슬픔의 날이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의 날이 된 것입니다.
The book of Esther is telling us about the living of the people of heaven to live in this earth, being not as the people of this world. As we could find the name of God in Esther, so is this world. God would not reveal his own face or voice, but seeing things happened altogether coincidentally for the sake of the same purpose, we can find the touch and providence. Esther is continuously saying many 'what ~ if' situations. What if the king would not read the book on that night? What if he read another page? What if the time was not fit a little bit? something like that. Every situation fit altogether to make the sadness to the day of joy.
이런 기록은 그 때 그렇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이러한 복음의 면을 일컫기를‘숨어계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를 홀로 두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각자가 자유의지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물론 거기에 얼굴을 보이지는 않으시지만 하나님은 상황을 주관하시고 또 연합된 인격 안에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마치 우리 홀로 혹은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택하신 자들의 삶입니다.
God of all this record would work today for us in the same way. We call this, 'the hidden face of God', that reveals us to live according to our free intension, not leaving us alone. Even the face of God is hidden, He manage all situation, being with us in the unification. To bear fruit by ourselves, or to be seemed to, is the way of those who would live the kingdom of heaven on this earth.
이러한 ‘숨어계신 하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님은 기적 속에서만 역사하시고 나머지 자신의 모든 삶은 자신이 맘대로 살아가는 줄로 알게 되고 또는 자신이 봉사를 하거나 어떤 체험을 하거나 할 때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나머지의 삶의 부분에서 하나님이 안계시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합하여 선을 이루시고 나의 인격에 나의 생명처럼 함께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하십니다.
Anyone without this Gospel used to think God is just existed only in some miracle beyond our limit, while the rest of our living should be controled for myself. They say whenever they would serve others, they can feel dwelling of the Lord, if they would not, no feeling of the Lord can be detected. We should know the hidden face of God. But He leads us to fulfill the full amount of the maturity of the growth of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