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에 공개되는 글은 연세대학교 성소수자 인권 행동 Queer, We Are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 당사자의 기고글입니다.
각각의 글들은 전체 성소수자의 의견을 대표하지 않으며,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우리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위로가, 또 누군가에게는 이해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여성혐오 범죄를 마주하며
-알(R)
나는 사실 크로스드레싱을 엄청 자주 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하고 싶기는 하지만 막상 크로스드레싱을 하려면 절차가 너무 복잡하기에 결국 포기하는 때가 많다. 부모님 등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 드레스업을 하는 일은 따로 긴 시간을 요하는 일상과는 분리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드레스업을 하고 혼자 외출을 해본 적은 지금까지 대략 3~4번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중 한 번은 나는 아주 큰마음을 먹고 외출을 했었다. 모텔을 두 번 대실하기 돈이 아까워서 결국 모텔 안에서 혼자 사진을 찍고 마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외출을 하기 위해 아예 돈을 더 내고 숙박을 잡았다. 집에는 과제하느라 못 들어간다고 연락도 미리 해놓은 상태였다. 그날을 기대하며 예쁜 구두도 사놨었다. 그동안 모텔 안에서 사진만 찍던 나에게 드디어 구두를 신어볼, 외출할 일이 생긴 것이다.
내 마음은 이런 기대들로 좀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또각또각 도도하게 걸어가는 나에게 어떤 잘생기고 젠틀한 남성이 다가온다. ‘저기요, 저 죄송한데, 지나가시는 모습을 봤더니 너무 제 스타일이셔서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랑 차 한잔..?’ ‘아, 흠! (남자인 것이 들킬까봐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아.. 저.. (그러나 다시 마음을 먹고.) 저, 저 씨디 아세요?’ ‘네? 씨디요? 아뇨.’ ‘아, 씨디는 여장남자인데,,, 제가 씨디에요. 취향 맞으시면 차 마셔요.’ ‘아, 진짜요? 와 그런데 이렇게 예쁘세요? 전 상관없는데요?’ 오 예!
그날 난생처음 혼자서 외출을 해본 날 정말 남자들이 쫓아오기는 했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 명 씩이나. 한 명은 나한테 차나 한잔 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차 마시러 가자고 가리킨 쪽이 너무 후미진 곳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내 스타일이 아니기도 해서 거절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거절을 해도 쉽게 물러가지 않았고, 내가 한 100미터 정도 걸어가는 동안 계속 쫓아오며 계속 차를 마시자고 했다. 결국 내가 4번째로 싫다고 하자 그 남자는 결국 자기 갈 길을 갔다.
다른 한 명은 소름끼치게도 그 첫 번째 남자가 나를 쫓아오는 동안 더 뒤에서 천천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드레스업을 할 때 렌즈를 끼면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 잘 몰랐는데, 한참 멀리에서 봤던 사람이 첫 번째 남자가 떠난 자리에서 다시 나에게 접근해서 ‘이 시간에 뭐 하냐?’고 물어봤던 것이다. 글쎄, 그때가 한 2, 3시쯤 됐을까. 나는 당연히 그 사람에게 대답할 의무도 없었고, 그렇게까지 쫓아온 그가 무섭기도 했기에 그를 무시하고 다시 내 갈 길을 갔다.
사실 무섭기는 했지만, ‘설마’ 싶었다. 그리고 모처럼 날 잡고 나온 외출이기에 더 많은 곳을 둘러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얼마 후 깨달았는데, 그 남자는 그러는 내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멀리서 나를 쳐다보고 있고, 다시 멀리서 돌아보면 건물 뒤에 숨어서 나를 쳐다보고 있고 했던 것이다. 무신경한 나도 그때는 좀 정신이 번쩍 들어서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그러다보니 횡단보도가 나왔는데, 불이 좀처럼 바뀌지 않아서 그 남자와 내 거리가 점점 좁혀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한 것은 그 건너에 동네 파출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파란불이 된 순간 나는 길을 황급히 건넜고, 그 남자는 건너지 않았다. 다만, 그 남자가 나지막하게 ‘씨팔’이라고 말하는 것만은 분명히 들었다.
나는 그 ‘씨팔’을 일종의 포기 선언으로 들었다. 그것이 강간이든, 살인이었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또 20분 정도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무심코 뒤를 돌아봤는데 그 남자가 있었다. 나는 내가 잡아놨던 모텔을 향해, 다시 뛰다시피 걸어갔다. 그러면서 속으론 이렇게도 생각했다. ‘내가 과민한가?’, ‘그래,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다가오진 않잖아.’ 그렇게 원래 내가 있던 모텔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5분 뒤 내가 있던 모텔 방의 문이 덜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5분 뒤에 카운터에서 전화가 왔다. 카운터를 통해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방금 들어간 남성분 일행이냐?’ ‘아니다, 나 일행 없다.’ ‘그럴 것 같아서 내쫓았다. 누가 왔었냐? 너 쫓아서 누가 따라왔는데 몰랐냐,’ ‘그 사람이 모텔 1층부터, 5층까지 다 돌아다니면서 문을 열어봤다.’ ‘아, 날 따라온 모양이다. 쫓아내 줘서 고맙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자고 다음날 아침 모텔을 나왔다. 그리고 정말 위험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사실은 아주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 사건을 얘기하며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우리 동네가 너무 험한 곳인가? 내가 너무 동네사람 같지 않게 성장을 했었나? 내가 입은 거라곤 고작 와이셔츠에 H스커트, 스타킹에 뾰족구두, 거기에 검정 코드였는데, 그게 그렇게 야했나? 사실 그 사람이 따라오는 것을 나도 무의식중에 즐겼나? 나는 왜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계속 돌아다녔나? 나는 성폭력의 위험도 패싱의 성공 사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인가? 그렇게 돌아다닌 내가 위험을 자초한 부분도 어느 정도 있는 것인가? 친구랑도 얘기했었다. 그 시간에 돌아다니는 여자는 성매매 여성으로 보는 것일까? 성매매 여성한테는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모텔로 따라오라는 뜻이었다고 믿는 놈이었을까? 남의 일이었다면, 무조건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을텐데, 정작 내가 겪고 나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최근에 강남역 사건을 목격하고 나서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그냥 내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나에겐 먼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아 ‘그것이 그런 성폭력의 위험이었구나.’를 납득하기에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렇게 ‘여장’을 했을 때 겪은 사건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내가 ‘여장’하지 않았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들도 다시 떠올랐다. 삽입 섹스 안 하겠다고 해도 몇 번이고 손가락을 넣던 원나잇 상대들. 세상에, 내 몸에, 내 구멍에 허락도 안 했는데 맘대로 손을 넣다니. 그런데 나는 그냥 ‘아, 삽입 섹스 안 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여성혐오 범죄 사례를 마주하고 나서야 폭력의 문제가 생각보다 나에게 가까이 있는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그동안은 그냥 ‘남자답게’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한 일들이었는데, 사실
내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상황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그게 왜 여성 혐오 범죄냐? 남자도 범죄의 대상이 된다. 특정한 성별에 관계가 되어 있다는 증거 있느냐?’ 등등. 마치 총여에게 ‘게이에게도 투표권을!’이라고 딴지를 걸 때처럼, 손쉽게 페미니즘에 딴지를 거는 도구로 사용되는 다양한 성, 혹은 다양한 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의 사례들. 그러나 강남역 사건은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이다. 나는 이렇게 여성혐오가 아니라고 부득불 우기는 사후의 상황들이 그 범죄가 바로 여성혐오 범죄였음을 방증하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자라서 당연하게 누려왔다. 반성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한 편으로 그것이 여성혐오의 범죄임을 인정하고 이러한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일종의 ‘내부 고발자’들이 고맙기도 했다. 개중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수준으로 깊게 성찰하는 글들에는 감동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나는 ‘여성혐오’ 범죄가 일어난 것이 나에게 왜 문제가 되는지, 나는 어떤 지점에서 이 문제 상황에 공감하는지에 대해 좀 더 밝혀주기를 원한다. 내가 머리를 ‘여자처럼’ 길렀을 때의 경험이라든지, 내가 ‘남성’ 집단에서 배제되었을 때 갑자기 내 위치가 취약해졌다든지 등등. 나는 어떤 자기 원인이 없는 ‘옳은 일’은 자칫하면 굉장히 시혜적인 구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장’이라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여성혐오’의 심각성에 공감할 만한 상황들은 분명 많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여성혐오’를 보다 우리의 문제로 생각되고, ‘같이 해결하자’는 말이 ‘서로 싸우지 말자’는 말로 악용되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 이상적인 기대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