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당해 후송간 소대장은 지금 어디?
중상당해 후송간 소대장은 지금어디?
1971 4월 22일 부터 시작된 맹호 16호 작전 혼쩨산 전투에서, 1연대 5중대 2소대로 기억,소대장 성명 기억안남.소대무전병 김우연 즉사. 소대장 적의총 4-5발 맞음.생존상태 적의 총알 수없이날아 오는가운데 뒤로 끌고 나가 구출에 성공 ,안전지대 까지옮긴후 헬기가 와서 후송병원으로 갔음, 뒷날 다른동료들 병문안 갔는데 내게 고맙다는 인사 전하라면서 한국 대구의 군병원으로 이송한다고 한것이 마지막임,너무나 험난했던 상황아래 일어난 일이라 한번 보고 싶네요.당시 중대장 이름이 박호장이며 아마 소대장이 살아있다면 불구자로 고생하고 있을것 같습니다.
여기는 미국이며
ttaepark@yahoo.com 으로 연락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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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사: 맹호 1연 2대대 5중대 중대장 대위 박 장호 1소대장 소위 안 수흥 2소대장 주위 허 복남, 3소대장 주위 이 용운,
무전병 상병 최 우연 12012526,71년4월26일전사,
상병,한 기수,11972457,71년4월26일전사.
병장, 김 형숙,11937266, 71년4월25일 전사. -[01/25-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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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사: 박호장 대위의 제 5 중대는 대대 전술지휘소 지역에 대한 수색을 끝낸 다음 차츰 범위를 넓혀갔다. 제 1 소대장 안 수흥 소위는 829 고지의 좌측 능선을 따라 수색하다가 정오경 방향을 알 수 없는 적으로부터 저격을 받아 척후병 오 상록 상병이 부상당했다. 소대장은 적의 위치를 찾으려 애쎴으나 능선 일대가 무성한 정글이어서 온종일 헤매다가 해가 저물자 매복에 들어갔다. 날이 새면서 제 1 소대가 전날 오 상병이 부상을 입은 위치에서 300 미터쯤 더 진출하여 왼쪽으로 우회하려는테 정글의 덤불 속에서 연발사격이 날아왔다. 따따따...따따따..김 형숙 병장과 한 기수 상병이 직격탄 을 맞고 그자리에서 숨졌다. 적의 사격 위치를 알수없서 .일단 유리한 지형으로 옮기다보니 두 구의 시체를 적중에 남겨 놓은 꼴이 되엇다. 소대장은 시신을 회수 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때적으로부터 집중 사격을받아 소대장 안 흥수 소위와 김 한수 병장이 적탄을 맞앗다. 소대장과 김병장은 적이 포위하기 일보 직전에 겨우 빠져 나왔다. ,,,맹호16호 작전중에 4월25일.. -[01/26-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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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사: 소대장 을 구출하기 위하여 선임하사 황 강로 중사가 특공소대를 편성하여 공격중 .위치가 노출되면서 적으로부터 B40적탄통 사격을 받아 최 우연 상병이 전사하고 분대장 주 경협 하사가 부상하였다. 황 중사가 반사적으로 적축에 뛰어들었으나 그 역시 적탄에 맞아 특공대의 공격은 무위로 끝난채 철수의 길에 올랐다. 28일 아침에는 적과 대치한 가운테 주변수색을 하다가 적이 사격한 B40 적탄통의 유탄에 맞아 이 범재 상병 등 3 며이 부상하였다.4월30일 제2소대가 공격을 실시했다.그러나. 적진에 도달하기도 전에 공격이 좌절되면서 소대장 허 복남 중위가 적탄으로 부상하였다.대대장은 106미리 무반동총 2정으로 고폭탄 18 발을 사격하고 제3소대장 이 용운 중위가 적의 거점을 공격하였으나 이상하게도 적의 저항이 젼혀 없였다. 소대장은 김 형숙 병장과 한 기수 상병의 시체를 찾았으나그들은 알몸인 채였다. 그리하여 비로소. 전우의 유해를 헬기로 후송할 수 있었다. 맹호 16호작전 전사기록중에서... -[01/26-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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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태 준: 백하사님 전사기록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실 상황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중대민사병 이였습니다. 1971년 4월 22 혹은 23일, 맹호 16호 작전이 개시됨. 우리 중대는 함몬드베이스(푸캇북방) 에서 헬기로 혼쩨산 정상에 오전에 렌딩 하였음. 렌딩 당시 정글속에서 베트공들의 흔적이 많이 발견됨. 전열을 정비하여 2소대로 기억되며, 먼저 수색하여 출발한지 채 1~20분도 되기 전 수많은 총성과 수류탄 굉음이 났고 중대장이 위급하게 무전을 쳤으나 응답이 없음. -[01/27-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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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태 준: 그래서 나와 무전병 주영효를 현지 확인 차 파견. 채 50미터도 안 된 상태에서 소대무전병 최우연이 적탄통(B40)으로 머리를 맞아 즉사. 소대장은 그 옆에 업드려 있었음. 그 때까지 부상안당한 상태였음. 수 많은 총탄이 오고가며 적의 매복에 걸린 우리 소대원들의 신음소리와 고함소리로 아비규환이였음. 베트공은 우리보다 위쪽에서 사격하였고 우리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 였음. 내가 소대장옆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위쪽방향으로 사격을 가하자 소대장도 같이 사격하였음. 그런데 적군의 정조준인듯한 사격이 소대장에게 가하여져 내 옆에서 쓰러졌음. 그리고 그 주위에서 사천출신 -[01/27-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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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태 준: 오영현 이 M72로 적군의 동굴을 향해 발사하려는 순간, 역시 정조준인 듯한 총알이 목밑을 관통, 사망. 그리고 앞쪽에서 소대장을 찾고 살려달라는 고함소리가 많이 들렸음. 그 앞에 최달림이 사망.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인천 출신 수염이 많았던 친구 팔에 총을 맞고 5시간만에 구출됬으나 과다출혈로 사망. 나는 소대장을 무전병과 같이 정상능선을 가지않고 옆으로 돌아 적의 사격권을 피하면서 겨우 중대 본부까지 도착. 그리고 나는 106미리 무반동총을 공급받아 적의 동굴입구에 사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사격을 가할때는 들어가버리고 사격이 멈추면 다시 나와 우리를 괴롭혔음. 그 후로 소대마다 돌아가면서 여러차례 공격하였으나 우리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01/27-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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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태 준: 어느 날 밤 새벽 3시경 월명 정규군의 습격을 받아 우리중대는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계속되는 아군포 사격이 실수로 잘못떨어져 4~5명이 전사하였음. 22일간의 전투 기간중 사망한 동료들의 시체를 마지막으로 106미리 탄박스로 뚜껑없는 관을 야전삽으로 만들어 헬리콥터에 매달아 보낼때 살아있는 친구들과 많이도 울었다. 정말 힘든 전투였다. 나는 운이 좋아 이상이 없지만 불구자가 되었을 소대장을 한번 보고싶네요. -[01/27-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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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사: 박태준 전우님 반갑습니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실 상항과 약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8일동안 치욕의 작전이면 실패한 작전입니다. 대대 전술지휘소가있는 829 고지 정상의 대대장 벙커에 아군 포병의 낙오탄이 떨어져 작전과 선임하사관 임 동현 상사와 김 복술 일병이 숨졌다.,,,함몬드베이스 뒤 쟌안 마을 작전에서 3월29~31일 11중대,연대수색중대 ,장갑중대 왕창 깨진 작전 소문들으셨는지요. 11중대 1소대1분대장 입니다.
상사 임 동환 80033330 71년4월29일 전사,
병장 오 영현 11944506 71년4월30일 전사.
병장 최 달림 11956128 71년4월24일 전사,
일병 김 복술 12036465 71년4월29일 전사.1연대5중대가 16호작전에서 많은 파해를보고 다음 맹호 17호 작전에서는 큰 전과를 올려습니다... -[01/27-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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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태 준: 백하사님 많은 소식 고맙습니다. 쟌안 마을 작전 잘 알지요. 그날오후 팬티 바람으로 쉬고 있는대 갑자기 출동명령으로 늦은 오후 함몬드 베이스와 연결된 쟌안 마을 입구에 공격 준비 했지요 그당시 듣기로는 11중대 1개 소대가 대대병력의 공격으로 전멸된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그날 공격안하고 대기명령으로 마을을근거리로 포위 하면서 밤새도록 포병의 곡사포 공격이 무수히 이루어졌지요. 새벽 먼동이틈과 동시 저히 5중대가 제일 먼저 개활지를 이동하면서 마을을 공격했는데 들어가는 과정에 전날 11중대원들의 시체가 즐비했고 연대 공수부대 원들의시체(대위등 장교포함) , 장갑차는 시동걸린 상태로 발견, 전날의 험악한 상황을 알수있었습니다,우리는 바짝 긴장하고 접근하였으나 적은 적막이었고 적군 시체만 약 30구(포살) 발견 함몬드 베이스 쪽으로 모아 확인하고 우리손으로 매장하였음. 듣기로는 정규군 대대병력에게 우리11중대가 당한것으로암.결국 그전투로인해 그북쪽 산악블로킹작전 미군탱크부대와 합동 마을작전 그리고 맹호 16호와 연결되었지요, 아무튼 였날을 기억하며 몇자 적어봅니다 백하사님 고맙습니다 -[01/27-18:17]-
첫댓글 아이디를 "백하사"라고 쓰는 분의 글은 그당시에 우리중대의 일을 나름대로 소상히 아는 듯하나 박태준님의 이야기대로
어느책에서 퍼 온 것 같습니다. 당시에 홈피 운영자도 중대본부에 근무하면서 개략적으로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 오래된
사실이라 기억이 희미해서??? 하여튼 내가 보관하고있는 책중에 백하사가 이야기한 투의 사실 기술이있읍니다.
아쉽게도 3권으로 인쇄되어 출판된책이나 (1,2,3권중에) 3권을 보관하고있지요. 아마도 1,2권이 맹호부대의 작전과
세세한 사실들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3권은 청용부대의 이야기였습니다. 백하사가 말한 것은 위의 1,2권중에
어느 것을보고 싸이트에 올린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 7월12일(화요일) 서울의 보훈병원에 갔다가 절친한 고교동기동창(베트남전쟁파월)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도중에 그 친구에게서 "백하사"의 소식을 듣고는 위의 얘기를 했더니 자기가 "백하사"를 잘 안다고했다. 백하사에 대해서 내가 더 알고 싶어했더니 더 자세한 얘기를 해 주면서 고교동기동창은
전화까지 걸어서 나에게 백하사와 통화까지 하도록 해 주었으며 백하사라는 전우는 1연대 11중대에서
`70년하반기부터 `71년하반기까지 근무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주었다.
즉 백하사는 내가 근무하던 때에 근무를 했고 나아가서 관련서적을 집중적으로 읽고서
댓글로 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박태준전우는 직접 작전지역에서 하나부터 열까지를
직접 확인했으니 박태준전우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더 더욱 확실 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