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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6. (일) 오후 3시에 [고양-파주방]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임에는 플라워스톤님, 대화님, 찰스님, 그리고 저, 이렇게 네 사람이 참석했습니다.
플라워스톤님께서는 요즈음 듣고 계시는 인문학 강의 얘기를 하시며, 병에 대한 공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부분을 요즈음 인문학 공부를 통해 충족시키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제가 막상 교직을 그만두고 힘든 상황과 심한 우울상태를 겪다보니, 이전에 제가 알고 있던 치료/재활/재기에 대한 지식이나, 심리학/상담학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고, 그래서 저도 요즈음에 인문학 공부를 짬짬이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당사자든 가족이든 "[관]이 터져야 한다."는 의견을 말씀드렸는데, "자기 나름의 [관점]이 정립되어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인생관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잠시 보충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타인의 관점에 의지해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문서적을 읽고, 전문가들로부터 배우고, 다른 가족들과 당사자들로부터 배우되, 그것이 자기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읽고 듣고 배웠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깨달은 바가 무엇이냐?", "그것이 본인 자신의 인생에 어떻게 접목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당사자와 가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단순히 병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사회복지학, 또는 간호학과 같은 이쪽 분야의 학문이나, 진단-치료-재활-재기에 대한 지식과 같은 이쪽 분야의 전문지식만으로는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저 자신이 심각한 현실적, 심리적 어려움에 처해봤더니,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나아가서 이것 저것 관심가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는 "잡학"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제 경우에는 관심의 초점은 항상 조현-조울-우울이 무엇인지? 이 문제로 고통받는 당사자와 가족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 저것 공부하거나 경험하면서 끊임없이 이 주제, 이 화두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여전히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경험하고 생각해봐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특히 당사자와 가족들의 경험담과 생각을 주의깊게 들어보는 일이 필요한데, 자기 나름의 "관"을 형성해가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가 제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플라워스톤님께서 자기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고 자기 나름의 "관"을 상당한 정도로 갖게 되었기에, 요즈음 인문학 공부에 푹 빠지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플라워스톤님께서는 자신이 느끼는 인문학 공부의 매력은 단순히 지식 자체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쪽 "사람"들을 만나는게 즐겁고 행복하다 하십니다. 철학이나 인문학을 가르치는 분들이나 공부하시는 분들, 예술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많답니다. 플라워스톤님께서는 그 분들에게서 조울증을 지닌 당신의 아들에게서 보던 특성들을 많이 보고 있고, 자신도 그런 특성을 가졌는지 그쪽 사람들과 잘 통하고 유대감을 느끼신 답니다.. 저는 그쪽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플라워스톤님의 말씀대로 특이한 사람, 괴짜 또는 조현-조울 특성을 상당한 정도로 갖고 있고, 그것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꽤 있을 듯합니다.
저는 플라워스톤님의 얘기를 매우 재미있게 들었고, 상당부분 동의하고 공감했습니다.
대화님은 아직까지 카페에 가입하시지는 않았지만, 카페게시글이 비회원들도 상당부분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어서 제 동영상도 보고 이런저런 글들도 보셨답니다. 진단명을 정확히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저는 조현 특성을 지닌 걸로 생각하며 들었습니다. 아들은 대학에서 세 번의 학사경고로 제적당한 후, 발병하여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이후 군대도 다녀오고, 다른 대학으로 편입하여 졸업하고, 취직도 했답니다. 지금껏 약물복용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취직한 회사에서 3개월만에 잘리고 이번에는 스스로 "병원에 같이 가달라."고 요청해서 외래진료를 받았고, 약물복용을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재발이 안타깝고 낙담되기는 하지만, 이번의 재발로 아들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약물복용을 자발적으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으시답니다.
서울에 사시는데, 남편과 아들이 다른 곳에 가는 길에 자신을 모임장소에 내려주고 갔다 하시면서, 남편과 아들이 같이 왔어야 하는데 이런 데 관심이 없다고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모임 후에 제게 문자를 보내주셨는데, 그 내용이 저로서는 반가웠기에 아래에 소개합니다.
"교수님~~ 어제 만났던 엄마입니다. 잘 내려가셨는지요? 뵙게 되어서 큰 도움이 되었고 영광이었습니다. 순수한 뜻 잘 알겠고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직 시련을 극복하고 의연한 모습 보이지 못하는 연약한 엄마네요~ 감사합니다~ 소중한 시간내어 주셔서~~"
저는 바쁜 일들로 깜빡하고 답장을 못하고 있다가, 좀 전에야 "다음 달에도 뵙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답장을 했네요. 대화님의 문자 내용 대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찰스님은 뒤늦게 5시쯤 참석했습니다. 모임을 하고 있는데 3시 30분쯤 전화가 와서, "모임이 있다는 카페 게시글을 지금에야 봤는데, 지금 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어서 흔쾌히 오라고 했습니다. 홍제동 사신다고 들었고, "반복성 우울장애"를 지니고 있답니다. 매달 1, 3주 토요일 오후 2~4시에 "같이 가는 길"이라는 당사자 모임을 하고 있는데, 찰스님이 지난 10년간 책임을 맡아서 해오고 있답니다. 장소만 한울 사무실을 빌려서 하고 있을 뿐, 한울과는 관련없는 독립적인 자조모임이랍니다.
찰스님과 제가 서로 알게 된 건 돌처럼님의 덕분입니다. 2주쯤 전에 돌처럼님께서 제게 메일을 보내시면서 당사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이런 사람이 있다고 연락해보라고 권해주셨고, 찰스님께도 그 이전에 제 얘기를 하고 제 연락처를 알려줬답니다. 그래서 두 번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고, 이번에 얼굴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신 돌처럼님께 감사드립니다.
찰스님은 40세라는데, 아저씨 티가 전혀 나지 않았고, 20대로 보이는 외모에 피부가 매우 좋아보였습니다. "찰스"라는 닉네임이 우리로 치자면 "철수"에 해당된다고 하면서, 미국에서는 흔한 이름이기도 하고, 순진하고 순박한 느낌을 주는 호칭이랍니다. 일산에서 3년 정도 요리사로 일했던 경험을 이야기 해주셨고, 20살이 되기 전부터 음식점 주방에서 일해서 한 때는 월급도 많이 받던 잘 나가는 요리사였답니다.
찰스님이 5시에 오셨기에, 6시에 모임을 마칠 수 없어서,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저녁식사비는 플라워스톤님께서 내주신 듯한데, 대화님과 함께 부담하셨는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두 분이 다 계산하시겠다고 황급히 계산대로 가셔서... 아무튼 숯불돼지갈비와 냉면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찰스님께서 얼마 전에 미술작품전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다고 해서, 관심을 보이자,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자신의 작품 사진들을 보여줬습니다. 플라워스톤님, 대화님, 저, 모두 다 작품이 너무 훌륭하다고 감탄했습니다. 찰스님이 신이 나셨는지, 바로 보여주겠다면서 식사 하시다 말고 종이를 사러 가셨고, 사오신 편지지 뒷면에 식사를 마치자 말자 쓱쓱 그림을 그렸는데, 가방에서 뭔가 꺼내더니 치약도 재료로 활용하시더군요. 불과 3~4분만에 완성한 그림을 제게 주셨는데, 사진을 찍으려니 아직도 치약 냄새가 화하게 나네요.
찰스님은 자신만만하고 유쾌한 분인 듯한 느낌이었고, 관심사와 재주가 다양하신 듯했습니다. 제 경우에 나중에는 찰스님께 적응이 됐는데, 처음에는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5시에 커피숍에 도착하셔서, 인사를 하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뒤에, 대화님께 대뜸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라고 해서, 저는 대화님이 혹시라도 상처받으셨을까 하여 걱정되었습니다. 대화님께서 애써 웃으시며, "제 눈이 어때서요? 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라고 하자, 찰스님께서 "걱정하는 눈빛, 그 눈빛 정말 싫어요."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사람을 척 보면 안다고 하면서, 저보고는 "의심이 많으시네요."라고 했고, 부연설명으로 "이렇게 볼 때, 저 사람은 어떤가 하고 관찰하는 눈빛이시네요."라고 했습니다. 플라워스톤님께는 "어제 몇 시간 주무셨어요? 잠을 푹 주무셔야 해요. 눈이 피로해 보여요."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듯 첫 만남이 당황스럽게 시작됐는데, 나중에 헤어질 무렵에는 많이 편안해졌고 친근감을 느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날의 모임은 분위기도 좋았고, 얘기도 잘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고양-파주방] 모임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나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축이 될만한 분이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플라워스톤님께서 본인은 요즈음 인문학 공부가 너무 재미있고, 그쪽 모임을 포함해서 모임이 9개나 된다고, 여기에 또 새로운 모임을 추가하기는 버겁다고, 자신은 이후로 모임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처음부터 그 말을 했는데 제가 덜컥 모임을 한다고 공지해버렸다고,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무리라고... 대신 카페 게시글에 댓글을 열심히 달겠다고... 하셨고... 대화님과 찰스님은 서울에서 오셨고... 일산에는 오페라의 유령님이 사시지만, 오늘 "어머니 치매가 심해지셔서 내일 병원에 재입원하셔야 해서, 당분간 모임에 못갑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는데, 어머님 간병을 해야 하는 처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오페라의 유령님 어머님의 상태가 다소라도 호전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러다 보니, [고양-파주방]의 경우, 덜컥 만들어 두기는 했는데 정작 고양-파주 지역에 계시는 분들 중에는 현재 참여하실 분이 안 계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모임을 강행하자니, 서울 사는 사람들이 일산까지 가서 모임을 해야 하는 이상한(?) 현상이 지속될까 걱정되고... 애매모호하고 살짝 난감한 상황입니다.
[고양-파주방] 모임은 매달 첫 번째 일요일 오후 3시에 일산 마두역 근처에서 한다고 일전에 제가 공지했었는데, 1월의 경우에는 첫 번째 일요일이 1월 3일입니다. 저로서는 그 때까지 기다려보고, 고양-파주지역에 거주하시는 누군가가 참석하겠다고 하시면, 원래 계획대로 진행해 나갈 생각입니다. 하지만 신청자가 없다면, 대화님/찰스님과 의논하여 모임장소를 서울 대화역이나 홍제동 쪽으로 옮기고, 모임방 명칭도 바꾸면 어떨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모임을 폐지할 수도 있겠지요. 저로서는 고양-파주 지역의 누군가가 참석의사를 밝혀주시기를 바라는데, 일단은 연말쯤까지 기다려볼 생각입니다.
이번에 [고양-파주방] 모임에 참석해주신 플라워스톤님, 대화님, 그리고 찰스님, 만나뵈서 반갑고 좋았습니다.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뵙기를 희망합니다.
첫댓글 고양파주 모임 재미있게 하셨군요. 저희 어머니는 치매가 아니라 뇌경색이십니다. 어머니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아~ 미안해요. 뇌경색이셨군요... 쾌유를 빕니다.
수고많으셨네요,
저도 다녀온 듯, 얘기하듯 잘 올려 주셨네요,
언제쯤이나 나도 달필이 될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