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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레저 산악회
남미 페루 - 칠레 - 아르헨티나 트레킹 기행문
페루 와이나피츄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트레킹, 모레노빙하, 피츠로이, 세레토레
2015년 1월
제1일 : 시애틀 - 휴스톤 - 페루 리마
제2일 : 리마 - 쿠스코 (페루 항공 국내선)
쿠스코 잉카유적지 돌아보기
제3일 : 쿠스코 - 마추픽추 타운 (기차)
제4일 : 와이나픽추 등반 및 마추픽추 유적지
제5일 : 마추픽추 타운 - 쿠스코(기차)
제6일 : 쿠스코 - 리마 (항공 국내선)
리마 둘러보기
제7일 : 리마 - 산티아고(항공 국제선)
산티아고 시내 둘러보기
제8일 : 산티아고 - 아레 푼타네스 (칠레 항공 국내선) - 푸에르토 나탈레스(버스)
제9일 :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 Paine National Park) 산장 1박
제10일 : ” 2박
제11일 : ” 3박
제12일 : 칠레 국립공원 - 푸에르토 나탈레스
제13일 : 푸에르토 나탈레스 - 아르헨티나국경(버스이동) - 엘 칼라파트
제14일 : 엘 칼라파트 - 모레노 빙하 트레킹 (버스, 배)
제15일 : 엘 칼라파트 - 엘 챨튼 (버스)
제16일 : 피츠로이 왕복
제17일 : 세레토레 왕복
제18일 : 엘챨튼 - 엘 칼라파트 - 푸에르토 나탈레스
제19일 : 푸에르토나탈레스 - 산티아고 - 리마 - 휴스턴 - 시애틀
1) 제 1 일 : 남미대륙에 발 도장 찍다
남미 대륙은 나로서는 처음 가는 곳이었다.
기분 좋은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에 공항으로 향했다. 지난번 그랜드 캐년 갈 때에 국내선 비행기시간에 조금씩 시간의 여유를 부리며 공항에 도착하여 담소하다가 수속이 늦게 된 몇 몇분이 후발대로 온 경험들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국제선이니까 일찌감치 약속을 잘 지켜 나와서인지 모두 원활한 수속을 할 수 있었다. 휴스톤에서 한번 갈아타고 페루 리마에 도착하니 밤이 되었다.
공항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숙소가 있었는데 숙소 바로 앞집 마당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그곳은 나이트 클럽이었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일정한 사람이 밖으로 나온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입장시키느라 밖에서 많이 기다리고 있어서 호텔 앞은 시끄러웠다. 도착 첫날밤 조용히 잠자기는 틀렸다. 그러고 보니 금요일 밤이었다. 페루의 열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금요일 밤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게 되었다.
내일 새벽에 다시 쿠스코로 가는 페루 국내선을 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아주 다른 조용한 밤을 보냈다.
2) 제 2 일 : 잉카의 후예를 만나다
다음날 새벽 5시. 너무 일러서 아침식사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호텔에서는 약간의 음식을 차려놓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요기를 한 후 공항으로 나와 쿠스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잠만 자고 갈 것 같으면 공항 근처에서 묵어도 되었건만 막상 공항은 구도심에 위치해 있어서 근처에는 깔끔한 숙소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쿠스코는 3,350 m에 있는 도시라 비행기에서 바로 내리면 고산 적응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미리 출발 전에 고산 적응약을 한 알씩 먹었다.
이곳 페루에서 만든 고산약은 한국인에게 효력이 좋음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고 박영석 대장이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후 수색하기 위해 5,500 m에 긴급 투입된 사람들이 이 고산약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쿠스코는 마추픽추에 가기위해서는 꼭 들러야 하는 도시이며 옛 잉카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많은 잉카 유적지가 있다. 아르마스 광장, 12각돌, 산토도밍고 대성당, 거대 요새 삭사이 와망 잉카 신전 캔코, 피삭, 인디오 시장등등
골짜기에 있는 천연 염전도 둘러보았다. 산기슭에서 염전을 일구는 모습이 생소했다.
페루는 관광수입이 GNP(국민 총생산)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1950년의 쿠스코의 인구는 35,000명이었는데 지금은 35만 명이라고도 하고 60만 명이라고도 한다. (가이드마다 틀림) 쿠스코가 번성했을 때에는 100만이 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참고해서 가름해 보면 된다. 대학도 3개 있다.
유적지에 도착하니 사진 찍을 준비를 한 잉카의 후예그룹들이 여럿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고 라마를 데리고 준비하고 있는 것도 경제 활동 참여의 한 모습이다. 라마 두 마리를 데리고 있는 그룹도 있고 아이들이 새끼 라마를 안고 있는 그룹도 있었는데 후자가 더 인기가 있었다.
그래도 다른 쪽에서 시샘을 하는 기색은 없고 호객도 하지 않는다. 그냥 옆에 와서 포즈를 취할 때까지 청순가련형으로 라마를 데리고 마냥서 있기만 했다.
물건을 사라고 권유도 하지만 고개만 저으면 그대로 순순히 물러난다. 동남아에서처럼 악착같이 버스 떠날 때까지 흔들어 대며 끈질기게 굴지 않는다. 순수한 잉카의 후예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의 키보다 더 큰 무거운 돌들을 옮기는데 그들의 선조가 힘을 다 바쳤을 정도로 그들의 민족성은 순수 그 자체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민족성 때문에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요새를 만들고 살지 않았을까…
잉카제국이 멸망한때가 16세기 초인데 그때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문화가 꽃피운 때다.
그시기에 무거운 돌에 매달려 살았을 그들을 생각한다.
스페인이 쳐들어 왔을 때에는 무기는 없고 농기구만 있어서 스페인 침략자 200명한테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내어주고 말았단다.
3) 돌이야기
이곳은 태양신의 유적지가 많다.
1,500년대에 16Km 밖에서 옮겨온 돌도 있고, 그보다 더 멀리 36Km나 떨어진 곳에서 큰 돌을 옮겨왔다고도 한다. 95톤짜리 돌도 옮겨 오려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심지어 1,030톤짜리도 있었다고 하며, 옮겨오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은 돌은 저주받은 돌이라고도 한단다.
잉카신전을 스페인 침략자들은 카톨릭 성당으로 만들었는데 지진이 났을 때에 다시 잉카 터만 남고 스페인 성당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이곳의 카톨릭은 토착 종교와 어우러져서 현지 안내인의 설명을 듣다보면 카톨릭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구분이 잘 안될 정도다. 물론 현지 언어 설명과 영어 해석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의 종교에 심취한 현지 가이드가 자신의 종교와 카톨릭을 접목시켜서 설명하여 오히려 혼란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카톨릭이 전파될 때에 그 나라의 토속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음은 익히 아는 바라… 안내원이 뭐라고 설명하든, 그 배경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안내원은 자신의 종교에 대해 자신감이 넘쳐서 마치 포교하는 것 같았다.
태양신의 상징 목걸이도 선물로 내게 주었다.
4) 페루 전통요리 GUY
고산에 적응하기 위해 쿠스코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기차를 타고 본격적으로 마추피추를 향하여 들어갈 예정이다.
쿠스코 도착 후 점심식사는 페루 전통무용공연을 하는 큰 음식점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이곳의 옥수수 알은 얼마나 큰지 여느 사람의 손톱보다도 더 컸다. 여기가 바로 가나안땅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
전통음료인 알콜이 약간 섞인 치카모라다, 치카블랑카라 불리는 전통음료가 아주 큰 컵에 담겨 함께 나왔는데 우리나라로 말하면 막걸리 같은 음료였다. GUY라고도 하고 기니픽이라고도 부르는, 새끼돼지 같기도 하고 햄스터 같기도 한 동물요리가 메인 접시에 담겨 나왔는데 페루요리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없던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각 사람 앞에 한 마리씩 놓여진 GUY는 비싼 이곳 정통 요리라고 하지만 사진 찍는 것으로 비싼 요리 값을 지불해야만 했다. 내장을 빼내고 그 속에 냄새를 없애기 위한 풀 종류의 채소를 넣었다고 하는데 반토막 칼질하여 속의 풀이 다 보이고 새끼발톱까지 자세히 보여서 도저히 이것을 앞에 두고는 비위가 약한 나는 사이드에 있는 야채도 먹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새벽달님이 사이드 채소만 다른 접시에 덜어 주셔서 뒤돌아 앉아서 비어있는 다른 테이블에서 먹었다. 내가 만약 사전에 공부를 해 왔더라면 음식을 앞에 놓고 이렇게 까지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을텐데… 헬렌은 미리 페루 음식공부를 하고 와서 ‘페루에 오면 기니픽 맛을 꼭 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본받을 점이다. 여행할 나라에 대해서 사전 지식을 너무 안 갖추고 온 나 자신을 질책하였다.
여행하면서 나라마다의 전통음식을 시도해 볼 정도는 되어야 세계여행을 할 자격이 주어질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자격미달이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먹기 힘든 요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이드에 곁들여 나온 속을 넣은 파프리카 튀김은 맛있었다. 기니픽을 드셔본 분의 표현에 의하면 쫄깃쫄깃 하다고 한다. 그러나 살이 적어서 별로 먹을 것은 없었단다.
5) 제 3 일 : 마추픽추를 향하여
쿠스코에서의 둘째 날, 짐가방을 잘 꾸려서 호텔에 맡겨놓고 2박할 간단한 베낭만 꾸려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오얀따이땀보로 향한다. 이곳은 우루밤바강과 계곡을 잘 내려다 볼 수 있으며 가파른 언덕의 지형을 잘 살린 요새마을로 실제 잉카의 왕 망코잉카는 수도 쿠스코를 버리고 이곳에서 지형을 활용하여 스페인 군대를 격퇴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열심히 잘 싸워서 이겨 놓고도 태양신을 숭배하기 때문에 해만 지면 전투를 멈추는 바람에 결국에는 스페인에게 무너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 때문에 이곳을 결국에는 침략자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드디어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로 들어간다. 기차는 조망을 잘할 수 있도록 유리창이 천정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푸르른 숲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식탁보까지 드리운 채 우아한 간식을 서빙 받으며 낭만의 시간을 즐겼다. 기차가 가는 길의 산 위쪽으로 잉카 트레일이 있단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트레킹을 원하는 사람은 걸어서 마추픽추로 들어 갈수 있다. 말로만 듣던 잉카 트레일이다. 그러나 여러 날이 더 필요하게 되어 그만큼의 여건이 허락 되지 않는 사람들은 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굳이 차로 들어 갈수 있는 거리까지 힘을 빼면서 걸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완전히 이솝의 <여우의 신포도>식으로 사고해 본다. 이번에는 남미를 크게 다뤄야 하기 때문에…
선아씨는 다음에는 잉카 트레일을 걸어보자고 한다. 갈 곳이 많은데 이곳에 언제 다시 올수 있을지… 그러나 할 일이 또 하나 있는 셈이다. 언젠가는 걸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6) 마추픽추타운
기차의 종점인 마추픽추 역에 내리니 역 근처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곳을 뚫고 지나가게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덕분에 눈요기를 잘 하였다. 가죽 제품의 가방들이 특별히 대장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무래도 이곳을 떠나기 전에 하나 살 것만 같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흘러내리는 아구아 칼리엔테스 강을 건너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우리의 호텔로 들어갔다. 전망도 좋고 시설도 좋고 로비에서는 인터넷까지 되는 곳이다.
다만 6층의 방까지 올라가려면 숨을 헐떡여야 한다. 이곳이 2,800미터?
물론 엘리베이터는 없다.
저녁은 이 마을에서 원하는 음식점을 찾아 마음대로 드시라는 가이드의 말씀으로 우리는 서로 흩어져서 요리를 잘 할 것 같은 음식점을 삼삼오오 찾아보기로 한다.
며칠 한식을 못 드셔서 갈증기가 있는 분께 모두 맞춰드리기로 하고 자연스럽게 중국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각자 테이블에서 양껏 시켜 맛있게 먹었다. 값도 적당했다. 이 마을의 정식 명칭은 아구아 칼리엔테스이지만 쉽게 마추픽추 타운으로 불리는데 음식점과 마사지 샵이 많이 있다. 밤에는 천둥 번개 소리가 요란하여서 다음날 비가 오면 어쩌나 염려하였는데 다행히 새벽에 비가 그쳤다. 이곳은 10월~4월까지 우기이고 건기가 5월부터 9월까지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시애틀과 비슷하다. 비가 내리는 스타일만 빼고는…
시애틀은 젊잖게 내리는 비, 이곳은 요란법석 떨며 내리는 비…
7) 제 4 일 : 와이나픽추 등반
현지 가이드는 어제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타고 오지 않았다. 우리가 타고 온 기차 요금은 편도 84불, 현지인들은 더 값이 싼 기차를 이용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관광객 따로, 현지인 따로 기차값이 정해져 있다. 그는 값이 싼 현지인들이 타는 기차를 타고 아침에 도착하였다.
새벽 일찍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각자 등산 장비를 구비하고 마추픽추로 떠나는 버스에 오르려고 호텔을 나서는데 산중턱에 안개가 걸린 모습이 아름다워 넋을 잃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안개가 걷히지 않으면 여기까지 와서도 마추픽추를 정작 못보고 갈수도 있단다.
아무리 아름다운 안개라도 사라져야 할 때는 사라져야 한다.
버스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가는 데… 물론, 이곳도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갈수도 있다. 지그재그 산등성이를 돌아 돌아 올라가니 어지럽고 아래를 보면 아찔하다. 여기다가 산길을 내려오는 버스와 마주치면 서서 기다려야 한다. 좁은 길이지만 저만의 규칙을 가지고 운행한다. 그러다가 후진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드디어 종점 마추픽추입구에 내렸다. 이곳은 하나의 다른 나라에 입장하는 것처럼 여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또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갈수 없다. 마추픽추에 일단 들어선 후 우리들은 먼저 와이나픽추로 향했다. 마추픽추의 뜻은 old mountain, 와이나픽추는 young mountain 뜻이다.
우리가 흔히 사진으로 보는 마추픽추는 이 old 산과 young 산 사이에 있는 유적지이다.
와이나픽추는 마추픽추 유적지를 내려다보며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 하루 200명만 입장할 수 있다. 입장은 하루에 두 번, 그것도 일단 들어간 사람이 모두 다 나온 후 다시 입장시킨다. 그것은 그만큼 가파르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들어갈 때도 사인을 하고, 나올 때도 사인을 한다. 우리일행은 7시 25분에 입장하고 9시 40분경에 마지막 퇴장사인을 하였다.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꼭 고무덮개가 있는 스틱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들은 어제 오얀따이땀보에서 스틱 고무 덮개를 모두 구입하였다.
와이나픽추에 대해서는 짜릿하다는 말밖에 다른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렵다.
등산을 많이 하였지만 이렇게 경사도가 높은 산은 처음이다. 시작하는 길은 숲속 일반적인 길과 같다. 그러다가 곧 내려가기를 시작해서 골짜기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간다. 시간적으로는 2시간~ 2시간30분밖에 안 걸리지만 아찔함은 대단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정말 오금저리며 후들후들 다리가 떨린다. 그러나 이것을 재미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특히 내려올 때에…
평소 등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권할 코스가 아니다. 이 길을 우리일행들은 모두 완주하였다. 배낭을 메고 지나가기 비좁은 곳에서는 배낭을 벗어서 먼저 통과시키고 그 후에 사람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지나오기도 하고…
내려오는 길에서는 앞에 있는 한국아가씨가 울고 있는 바람에 발을 제대로 놓기도 어려운, 폭이 좁은 계단에서 앞의 사람이 진정될 때까지 마냥 기다려 주기도 했다. 그러나 안전요원이 있어서 그렇게 진도가 못나가는 사람들은 한 사람씩 손을 붙잡고 내려가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좁은 길이 한없이 정체되기 때문에…
와이나 픽추 등반은 참 좋은 경험이었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면서 우리들은 모두 안전하게 내려온 서로를 축하해 주느라 정작 단체사진을 찍는 것을 잊어버렸다. 와이나 픽추 등반을 먼저 한 다음에 마추픽추를 탐색하며 태양성전, 해시계등을 둘러보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곳들을 두루 다녀 보았다. 예전의 유적은 많이 허물어 졌고 그것을 복원시켜서 관광지로 만드느라 수고한 흔적이 엿보인다. 한 쪽에는 허물어 진 모습 그대로 보존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 타운으로 돌아와 점심식사는 전사장님이 안내한 곳으로 가서 맛있게 식사하였다. 보통의 경우는 가이드가 데리고 가는 식당이 별로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여행은 전석훈사장님이 홍재인대장과 함께 대학 산악연맹활동을 같이 한 사이여서 훌륭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마추픽추 타운에는 온천도 있으니 수영복을 가져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엊저녁에 여회원들은 마사지를 받았으나 모두 별로였다고 한다.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지 않은 길’인 온천이 더 낫지 않았을까…
와이나픽추를 모두 안전하게 완주했다는 감격을 안고 기차를 타고 다시 계곡에서부터 나온다.
이번에는 기차안에서 패션쇼가 열렸다. 라마의 털을 이용하여 만든 제품을 팔기 위해서 기차 종사원들이 서로 다르게 옷을 입고 나와 한 바퀴씩 도는데… 순수한 이들이 이렇게 쇼를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도 정이 가기도 하여 물건을 못사는 대신에 박수를 힘껏 쳐 주었다.
8) 제 5 - 6 일 : 쿠스코, 리마
쿠스코 호텔로 돌아와 저녁 야경을 즐기고 한식당 사랑채를 찾아갔다. 그런데 뜻밖에 식당의 사장님이 홍대장님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후배라고 한다. 홍대장님은 가는 곳곳마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니… 지난번 알프스등정 갔을 때에도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있는 식당주인이 알아보았으니… 처신이 좀 힘드시겠다.^^
문 닫을 시간에 식당에 들어가서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는 염려하면서도 한식이 고픈 우리들은 맛있게 먹고 나왔다.
쿠스코에서 리마로 나오는 길은 들어 갈 때와 마찬가지로 국내선.
또 페루 리마에서 칠레 산티아고까지는 국제선.
산티아고에서 푼타 아레나스 까지 칠레 국내선.
이번 여행에서는 비행기를 열 번 정도 타나보다. 이것으로 우리는 시간 절약을 하며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었다.
9) 제 7 일 : 해산물 매니아의 천국, 칠레
칠레의 관문 산티아고에서 한국 가이드만나서 하루 산티아고 관광.
트레킹이 목적인 우리들에게는 환승하는 주요도시의 잠깐의 도시 관광은 완전 덤이라고 할 수 있다.
칠레는 해안이 긴만큼 해물요리가 많아서 맛있는 요리들을 먹었다.
이곳에서 현지인들이 안 먹는 홍어를 한국으로 수입하는 무역상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역시 똑똑한 사람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국립공원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산티아고에서 칠레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푼타 아레나스로 이동.
그곳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버스이동.
이곳은 아주 한적한 마을로 시외버스 기사에게 말만 잘하면 호텔까지 데려다 준다.
특히 우리 일행처럼 17명이나 되면 더욱 그렇다.
정감있는 호텔에서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안내할 핸썸 가이드 크리스를 만나 사전 설명을 듣는다.
저녁도 그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에 들어가 맛있게 먹었다. 식당이름은 잊었지만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 골고루 훈제한 요리들이 나왔다.
식당은 많은 사람들로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고 우리들은 정말 즐겁게 담소하며 여유 있는 식사 시간을 즐겼다.
10)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Torres del Paine National Park)
빙하를 마주하며 빙하 가까운 곳까지 배를 타고 들어가서 내리면 바로 국립공원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곳 국립공원은 레이니어 원더랜드 트레일처럼 한바퀴 돌면서 동서남북모든 방향에서 트레일을 경험할 수 있는데 모두 완주하려면 9박 10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중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남쪽 루트를 3박 4일, W형으로 트레킹 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W 트레일이라고도 부른다.
위도, 경도, 해발이 표시되어 있는 표지판이 있어서 자신이 있는 곳이 지금까지 가본 곳 중에 최남단인 것도 알 수 있고 자신의 생애 기록 중 해발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해발 18미터도 있었으니…
거대한 호수를 보면서 걷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날씨와 기온도 걷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국립공원의 첫 번째 산장은 훌륭했다.
비록 밤에 자가 발전기가 멈춰 서서 샤워를 하다가 당황하기는 했지만…
각자 랜턴을 켜놓고 샤워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그러나 이런 산속에 멋진 산장이 있고, 또 대형 식당이 있어서 서비스 해주는 음식을 먹으니 행복하기까지 했다.
산장 바로 옆에는 각자 텐트를 칠 수 있는 텐트촌이 마련되어 있었고 커다란 물통이 있었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텐트를 갖고 와서 텐트촌에서 사용해도 되고 식사도 식당을 이용해서 사먹을 수도 있다.
산장은 2인실, 4인실, 6인실 등 각 2층 침대로 이뤄져 있었다.
다음날 산장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챙겨주는 점심도시락을 받으니 묵직한 것이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게 했다. 이렇게 먹을 것을 많이 주다니… 커다란 샌드위치, 쿠키, 쥬스, 오렌지 등 간식까지 챙겨주었다. 하루 종일 걸으니 그만큼은 먹어야 제대로 걸을 수 있나보다. 하기는 이것이 먹을 것의 전부니까…
이날도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걸었는데… 꼭 우리나라의 한려 수도 같기도 하고…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이 즐겨 다닌 시애틀근교의 캐스캐이드산맥과 비교하고 있었다.
‘역시 캐스캐이드가 아름다워’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아무튼 아름다운 경치들이었다.
두 번째 날 산장은 어제만큼 좋지는 않았다. 3층 침대로 이뤄져 있고 한 방에 9명씩 남녀 구분없이 혼숙이었다. 우리들은 여성회원들 9명이 같은 방을 쓰고 부부회원은 혼숙방에 들어가기로 했다. 2층까지는 그래도 올라가서 잘 수 있는데 3층은 정말 사용하기에는 가슴이 떨렸다. 난간도 없는 3층 침대를 주다니… 한번 올라가기도 힘들고 밤에 화장실은 어떻게 한담?
젊은 후배들이 용기있게 3층을 사용하여 준다고 하니 고마울 수밖에…
시설이 첫 번째 산장만 못하지만 이곳도 침대 하나가 하루 120불이란다.
세 번째 날의 산장은 또 그냥저냥…
역시 3층 침대이며 9명이 같은 방을 사용한다. 그런데도 침대 하나에 120불이라고 한다. 이곳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은 밖에 텐트촌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잔다. 그만큼 텐트장비등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야 하는 것이다.
밤이 되니 쌀쌀했다. 휴게실에는 난로가 있었고 나무가 쌓여 있어서 우리들은 이곳에서 불을 쬐며 이야기 했다. 미국에서 온 어린 아가씨 두 명은 와인을 각각 들고는 난롯가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텐트에서 자는 아가씨들인데 자연스럽게 와인을 시켜서는 난롯가에 앉아 밤을 지새우려는 듯이 보였다. ‘똑똑한 사람들이로군!’ 이날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내일 토레스 델 파이네로 일출을 보러 가려면 새벽4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저녁에 미리 내일 아침 식사를 받아 챙겨놓았다. 이것은 아침이 될 수도 있고 점심이 될 수도 있다. 각자 자기 컨디션대로 먹으면 된다.
다음날 새벽에 모두 기상하여 헤드랜턴을 켜고는 부지런히 산에 올라갔다. 정신없이 올라갔다. 먼저 동이 터 버릴까 봐서. 앞 사람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깜깜한 밤에 빨리 걸었는지…
그날 아침,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보고나서부터 우리들은 더 이상 캐스케이드와 이곳을 비교하는 일을 멈추었다. 햇빛받은 토레스 델 파이네여! 그 아름다움을 보게 해 주시려고 구름 낀 날씨에도 잠시 해를 비춰주신 창조주께 감사한다.
11) 토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 Paine
파란색의 탑들 이란 뜻으로 테우엘체족 언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파이네 그란데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도 멋지게 우뚝 솟은 탑과 같은… 산들!
파타고니아 대 초원지대에서 2,000~ 3,000 미터 높이로 치솟은 거대 바위산군!
그 위로 햇살이 비출 때에 찬란하게 빛을 내며 변하는 산!
탑과 같은 바위산과 호수가 함께 어우러진 고고함!
탄성을 낼만한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기에 우리들은 잠을 조금밖에 못잔 것과 해가 뜰까봐 정신없이 서두르며 올라온 수고와 이곳까지 오는 경비 마련하느라 애쓴 것 등등 모든 잡념을 한순간에 잊어버렸다.
황홀 그 자체였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곳도 있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지으시고, 보게 해주신 창조주께 대한 감사가 절로 나왔다.
이곳은 자기 발로 힘들게 걸어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만큼 더 뜻 깊다.
아래는 호수, 거대한 타워가 몇 개 우뚝 솟아 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
바로 오늘 우리들은 이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해가 10분만 더 비춰 주었으면, 아니 5분만 더 비춰 주었으면…
우리는 그곳에서 더 깊게 묵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햇살받은 토레스 델 파이네에 감격할 틈이 그야말로 잠시 있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서둘러 하산 준비를 하며 토레스 델 파이네에 올라 올 때까지 비가 오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내려왔다.
만약 빗방울이 들지 않았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없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내려오는 길도 정말 한참이었다. 새벽 4시부터 산행 하고는 다시 산장에 돌아와 맞이하는 늦은 아침식사는 정말 꿀맛이었다.
짐을 꾸려 하산하여 동쪽 국립공원 입구까지 나오니 정오가 다 되었다.
할 일을 다 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리를 태우고 아르헨티나로 갈 버스를 기다리며 칠레의 따뜻한 햇볕을 즐겼다.
우리를 안내한 크리스 현지 산행 가이드는 1년에 9개월은 이 파이네 그란데 국립공원에서 지낸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3박 4일 전 일정 모두 날씨가 좋은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겨울이면 황량하고 삭막할 것이다. 바람도 세게 불고…
그러나 지금은 아주 좋은 날씨다.
드디어 부상자가 나왔다. 다름 아닌 전 사장님. 그의 신발이 다 닳아서 그의 발에 커다란 물집이 잡혔다. 제대로 걷지 못하신다.
12)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를 향하여
자그마치 버스가 2시간이나 늦게 왔다는 사실!
아니면 우리들이 산에서 예상보다 너무 일찍 내려왔던가…
현지여행사 여사장의 남편과 아들이 우리 일행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가기위해 동승하여 왔다.
우리들이 먹을 고기가 듬뿍 들어간 맛있는 점심 도시락도 준비해 가지고 왔다.
아마도 점심 도시락 준비 때문에 많이 늦었던 것 같다.
우리들은 국립공원의 예정된 트레킹을 모두 성공적으로 끝낸 후련함에 롯지마당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낭에 기대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정해 놓은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곳에 있든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찬가지 인지라 누구 하나도 짜증내지 않고 칠레의 따뜻한 햇볕을 즐기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누구라도 짜증을 냈다면 모두 힘들었을 것이다. 칠레의 현지여행사 여사장은 품도 넉넉하지만 느긋한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 보다. 2시간 늦게 왔어도 크게 미안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대신 도시락을 잘 준비하여 왔다.
칠레에서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트로 가는 길은 거의 비포장도로로 되어 있다. 아르헨티나 국경 입국 심사가 있기는 하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다. 컴퓨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여권에 도장 찍어 주는 것이 전부다. 아르헨티나에 입국했다는 증거를 남기는 기록은 각 개인의 여권외에는 아무 곳에도 남아 있지 않는다.
비포장도로를 3시간을 달려서 엘 칼라파트에 도착. 이곳까지의 길은 황량한 사막길이었다.
EL CALAFATE 도시는 검문이 철저하다. 하나의 도시로 들어올 뿐인데도 국경이나 통과하는 것처럼 꼭 검문소를 거치게 해놓았다. 국경이 허술하기 때문에 첫 도시의 관문이 철저한가 보다. 국경에서 이 도시까지는 사막이라 숨을 곳도 마땅치 않으니…
EL CALAFATE 분위기는 화려한 관광지 그 자체다.
아르헨티나가 디폴트 상태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모두 빙하를 보러온 관광객으로 보였다. 실제 거주인구보다 유동인구가 몇 배 더 많은 도시다.
음식점마다 기다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아사도’라는 훈제요리가 유명하다는 뷔페식당으로 갔으나 9시 반에 오라고 한다. 지금이 저녁 8시인데…
다른 나라라면 그 시간은 식당이 문을 닫을 시간이지만 이곳은 9시 40분쯤에 해가 지기 때문에 식당들이 늦게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지금이 이곳은 여름 성수기라서 그런 영향도 있다.
호텔에 먼저 체크인하고 짐을 정리한 후 식당 예약 시간에 맞춰 가서 문어 무침, 아사도등을 맛있게 먹었다. 한국에서 온 손님을 여러분을 만났는데 그들은 반 자유여행 중이었다. 말하자면 교통편과 숙박은 여행사에서 정해주고 여행 일정은 그들이 직접 세우고 식사는 각자 경비로 하고… 그런 식이었다. 이렇게 될 때에 여행경비가 더 비싸질까? 아님 저렴하게 될까?
중년여자분 한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디 어디 가셨어요?’ 하고 묻자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여러 군데 갔는데 어떻게 그걸 다 알아요?’하고 대답하는데 마치 ‘한군데도 제대로 아는 곳이 없어요.’ 이렇게 들렸다. 스스로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다 보니 만사가 다 귀찮아 진 것 같다.
13) 모레노 빙하 트레킹
다음날 빙하 투어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서 모레노 호수에 도착.
모레노 호수에 면한 모레노 빙하는 남극과 그린란드를 빼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빙하라고 한다.
빙하 관광을 하는 방법은 3가지로 나뉜다. 배를 타고 가서 빙하 가까이에서 보는 방법, 배로 건너가 직접 아이젠을 신고 빙하 위를 트레킹하는 방법, 배를 타지 않고 빙하 전망대로 가서 빙하를 마주보는 방법 이렇게 세 가지이다. 그중에서 우리는 두 번째와 세 번째를 같이 하기로 하였다. 배가 도착할 때마다 관광객이 수십 명이 내렸는데 이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그룹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그룹으로 나누어 설명을 듣는다.
빙하 트레킹을 하는 이곳은 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목장이었단다. 목장의 소를 다 풀어주고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소들이 야생 들소가 되었고 이곳에는 퓨마도 있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근처에서 낚시하던 사람이 퓨마의 공격으로 다쳤다고 한다.
우리는 보트를 타고 건너가서 빙하위의 트레킹을 하였다. 아이젠(크렘폰)을 가져 오지 말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주 굵고 튼튼하게 생긴 8개의 발이 달린 아이젠을 각 개인마다 직접 신겨준다. 그 다음에는 걷기교육을 하는데 빙하의 비탈길을 오를 때에는 양발을 사선으로 하고 오르며, 내려 올 때는 앞으로 곧장 내려오되 무릎을 약간 굽히고 몸 뒤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라고 한다. 이 트레킹은 65세 이상은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전 사장님이 적당히 생년월일을 쓰셔서 우리 회원들은 모두 하였다. 크램폰 신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걷는 것이 매우 힘들고 무겁다고 하였으나 알프스 마테로사 산장 가는 길에 위험한 크레바스를 밧줄매고 통과한 기억을 갖고 있는 오드리, 재인, 대청봉, 헬렌, 햇살에게는 너무 짧은 퍽 아쉬운 트레킹이었다. 이 트레킹은 일반 관광객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코스라 난이도가 낮았다. 교육을 받고 한 줄로 서서 영어 가이드를 쫓아서 빙하의 점점 위쪽으로 올라갔다. 우리들은 크램폰을 많이 착용해 보아서 겁내지 않고 즐기듯이 빙하위로 올라갔다.
칠레 쪽의 3,000미터 넘는 산에 매년 15미터씩 오는 눈들이 아르헨티나쪽으로 밀려 내려와 빙하를 계속 덮는단다. 모레노 빙하는 물위로 100미터, 물 아래로 100미터가 있단다.
깨끗하며, 희다 못해서 푸른빛을 내는 빙하는 정말 맑았다. 빙하의 물을 떠서 맛보니 맛도 좋았다. 빙하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빙하의 얼음으로 칵테일을 만들어서 함께 축배를 드는 것이었다. 빙하의 얼음이 참 맛있다. 난생처음 위스키도 맛보았다. 이래저래 여행은 술을 늘게 만들어 주나 보다. 정말 남미에 와서 별것을 다 해보고 있네…
이것을 보고 여행할 때마다 느는 것이 술이라고 하던가?
빙하 트레킹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와서 여행사 창문에 붙어있는 빙하관광 팜플렛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배낭을 멘 한국인이 오시더니 50세 이상은 안 된다고 한다. 그분들의 가이드가 아마 50세 이상 할 수 없다고 했나보다.
우리는 그 얘기를 듣고 속으로 다 웃었다.
저녁식사는 각자 취향대로 가고 싶은 음식점에 자유롭게 가서 식사하였다.
이 도시에는 주인 없는 떠돌이 개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들을 헤치면서 돌아다녔다.
어느 때가 되면 떠돌이 개들에 대한 대책이 나오겠지만, 지금은 개들의 천국인 것 같다. 우리가 저녁 먹은 음식점에도 사람이 들어오는 출입문 앞에 송아지만한 큰개가 천연덕스럽게 누워있어서 웨이터가 음식을 갖고 밖에 앉은 손님에게 들고 나가면 ‘개에게 걸려서 다 쏟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할 정도다.
14) 아르헨티나의 쇠고기 요리 ‘앗사도’
내일은 이곳에서 3시간을 달려 엘 챨튼 EL CHALTEN으로 들어가서 이틀 밤을 묵게 된다.
엘 챨튼은 조그마한 마을로 겨울에는 상가가 모두 철수하여 마을이 비게 된다고 한다.
피츠로이와 세레토레를 보기 위해서는 이 작은 마을에 묵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마을에 앗사도를 잘하는 훌륭한 음식점이 있어서 우리는 즐거웠다.
고기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스테이크중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로 평한다.
민들레 잎에 고추장 쌈을 해 먹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먹어본 스테이크중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네요’ 하고 옆자리의 K에게 말했더니 미국에서도 비싼 스테이크 시키면 맛있단다, 나는 완전히 촌사람이 되고 말았고 대청봉역시 아내에게 맛있는 스테이크 하나 제대로 사 먹이지 못한 남편이 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에는 소가 많아서 냉동선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에는 고기는 다 버리고 가죽만 수출했다고 한다. 앗사도는 훈제방식으로 요리한 것이다.
15) 피츠로이 Pitz Roy
피츠로이를 향하여 출발.
전사장님은 더 많은 것을 보여 주시려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우리들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셨다. 즉,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서로 다른 길을 이용해서 다방면으로 보여 주시려고 시도 하셨다. 그러나 우리들이 버스를 타고 간 그 길에 새로운 다리가 놓였는데 폭이 좁아 승용차 정도만 지나갈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 나왔다.
그 덕분에 버스 기사 분은 하루 편하게 쉬시는 날이 되었고 우리들은 입구까지 약 1 km를 더 걸어갔다. 물론 나올 때도 더 걸었고 총 24 km를 걸었다.
피츠로이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유네스코 세계5대 미봉에 선정되었단다.
유네스코 5대 미봉에는 알프스의 마테호른, 몽블랑, 히말라야의 아마다 블람, 마차푸차레
이곳 피츠로이가 들어간다고 한다.
정말 선정된 산들은 내가 한눈에 보아도 황홀하게 멋있다!
그러나 햇볕을 받을 때에 더욱 멋있다.
그 자체로도 멋있지만 인간에게 감격을 안겨줄 수 있을 때에는 자연의 빛을 받을 때이다.
어찌 산들만 이렇겠는가?
가정의 아버지를 빛내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필요한 것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비쳐줄 때에 그 값어치는 더욱 빛나는 것이다. 좋은 친구 역시 마찬가지일거고…
날씨가 너무 맑아서 정말 잘 보였다.
전사장님은 이곳을 다섯 번 오셨는데 오늘처럼 선명하게 잘 본 적이 없었다고 하신다.
보통의 견우 이곳은 바람이 세어서 비바람을 앞에서부터 맞고 가는데 바람이 어찌나 센지 허리를 제대로 피지 못한 채 걸으셨다고 한다.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날씨가 좋아서 우리들은 올라가는 내내 아름다운 피츠로이를 감상하며 올라갔다.
마지막 1 km는 정말 어려운 난 구간이었다. 흘러내리는 돌 때문에 걸음이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올라갔는데도 다시 미끄러져서 내려오고 또 그러고… 반걸음씩 겨우 앞으로 나아가는 셈이 되었다. 피츠로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오르니 호수를 앞에 놓고 있는 피츠로이가 얼마나 멋진지…
멋진 모습을 보는 것도 한순간!
후미대원들이 아직 도착하지 못하였는데…
이때부터 비가 오며 바람이 부는데 정말 바람의 매운맛을 잠깐 보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바람 축에도 들지 못한다고 한다.
정말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신기할 정도로 오늘 날씨가 좋았다고 하는데 마지막에 바람의 맛을 약간 맛보았다.
오늘 피츠로이를 다녀오고 저녁식사 식당도 걸어서 갔다 오니 대청봉의 만보계로는 36,500 걸음을 걸었다. 지금까지 기록상 캐스캐이드 five fingers 35,000보를 넘어섰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하던가…
전사장님은 다 닳은 신발 때문에 등산화를 유료로 빌려 신으셨는데… 이 신발은 더 문제가 있었단다.
정말 발을 제대로 딛지를 못하신다. 저런 발로 피츠로이를 다녀오셨으니 얼마나 힘드실까…
16) 세레토레 Cerre Torre
발이 아파서 걸음을 엉거주춤 걸으시는 전사장님을 대신하여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인솔하였다. 이 가이드는 우리에게 겁을 잔뜩 주었는데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라도 더 못 걷겠다고 하면 모두가 함께 그 자리에서 돌아와야 한단다.
그러니 그럴 사람은 아예 출발 하지도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준다.
‘그래서 아예 빠져 버릴까?’하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정도다.
우리들은 콩쥐팥쥐의 팥쥐엄마한테 엄포를 듣는 콩쥐의 심정으로 새 가이드를 따라서 세레토레를 다녀왔다.
자연에서 소변을 볼 때에는 냇가에서 15미터를 떼라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사실은 잔소리가 아니라 너무 귀한 말씀이었는데도…
그는 가이드였지만 한편으로는 감시자였다.
비로소 지금까지 우리들이 얼마나 편한 마음으로 가이드를 잘 만나서 트레킹을 잘 하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날도 화창하고 맑은 날씨가운데서 20 km를 걸었다.
어찌나 정상이 뽀족한지 세계에서 암벽으로는 가장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고 한다.
인정한다!
17) 돌아오는 여정
들어갔던 것만큼 되돌아 나오는 시간이었다.
19일간의 여행에서 우리들은 비행기를 12번 탔고, 각 지역의 특산물을 고루 맛보았으며
음식점 선택부터 일정, 시간들을 자유스럽게, 멋스럽게 보냈다.
전석훈사장님은 아이거 북벽을 두 번이나 오른 산악인이다.
미국의 캐년들을 딸과 함께 탐색한 여행들이 KBS에 방영되고 비디오로도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그는 산악인으로서 자랑할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겸손하게, 우리들의 성실한 가이드역을 맡아 주셔서 이번 여행을 한층 편안하게 해주신데 대해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어느 여행이든지 그렇지만 멤버가 중요한데…
남미 트레킹에 함께 한 회원들은 ‘언젠가 다시 한 번 또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는 여운을 남겼다.
다시금 조금씩 변한 모습으로 이 길을 다시 걸어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큰 행운일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처럼 좋은 날씨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지만…
아~ 다시 가고 싶다!
첫댓글 너무 훌륭한 사실적인 표현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억이 새롭게 새록새록 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애 최고의 여행을 꼽으라면 저는 남미여행을 꼽고싶습니다.
준비하여주신 홍재인 대장님 전석훈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 같이하여 주신
오드리님이하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와 멋진 여행 그리고 생생한 기행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