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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과 익숙한 것과의 새로운 인연, 용봉산~덕숭산
1. 일자: 2016. 12. 24 (토)
2. 장소: 덕숭산(495m), 용봉산(381m)
3. 행로 및 시간
[용봉초교(09:26) -> 미륵암(09:42) -> 투석봉(10:11) -> 용봉산(10:19) -> 노적봉(10:53) -> 악귀봉(11:00) -> (식사) -> 절고개(11:26, 윗가루실 1.1km) -> 임도(11:42) -> 윗가루실(11:55) -> 용봉저수지(12:01) -> 수덕고개(12:20) -> 사람바위(12:51) -> 전월사(13:00) -> 덕숭산(13:16) -> 정혜사/만공탑(13:36~42) -> 향응각/소림초당(13:48~52) -> 수덕사(14:03~10) -> 주차장(14:20]
< 용봉산~덕숭산 산행을 준비하며 >
지난 한 주 산행을 쉬었더니 몸이 근질거린다. 몇 주 전 ‘영상앨범 산’에 소개된 용봉산을 눈 여겨 봐 두었는데 산악회 금주 산행지로 올라왔다. TV로 본 바로는 암흥이 멋졌고 산정에 서 바라본 내포 신시가지도 시원스러웠다. 거리도 멀지 않아 연말 부담 없는 산행을 하려 신청을 했다.
용봉산은 높이로 큰 산은 아니며 험하지도 않으나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정상까지 산행하는 동안 수 백장의 한국화를 보듯 시시각각으로 풍경이 바뀌는 것이 매력이라 한다. 산뿐 아니라 소나무 군락이 도처에 있고, 바위 절경과 보물급 문화재도 산재한 유서 깊은 산이다. 덕숭산, 수암산 등 주변 산을 제치고 홍성의 진산으로 칭송 받고, 블랙야크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 중 하나이니 더욱 가고픈 욕심이 난다.
가야 할 길을 살핀다. 용봉초교~용봉산 50분, 용봉산~수암산 100분, 수암산~덕산온천 30분이다.
덕숭산, 백대명산에 한참 미쳐 있을 때 올랐다 날머리를 잘못 잡아 황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곳이다. 호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예쁘장하고 아담한 산으로 기슭에 수덕사를 품고 있다. 산보다는 산이 품고 있는 비구니 사찰로 더 유명하다. 들머리를 어디로 잡든 2시간 반이면 완주가 가능하다.
< 희망사항 >
산악회에서 안내하는 코스는 용봉산~덕숭산 연계 산헹이다. 14km 거리로 종주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전 덕숭산 산행에서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하산해 고생한 기억이 있고, 수덕사를 다시 찾고픈 욕심도 있다. 지도를 살피다 용봉산을 내려서 수덕산으로 접속하는 지점 인근에 덕산온천이 있음을 발견한다. 오래 전 여름 부모님 모시고 서해 바닷가로 놀러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들려 목욕을 했던 곳이다. 마음이 동하고 시간이 허락하면 덕숭산은 포기하고 온천욕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 여겨진다. 용봉교~덕산온천의 산행거리는 8km이고, 덕산온천에서 수덕사까지는 불과 5km 거리니 큰 무리는 없다.
들머리는 용봉초교로 정해졌으나 날머리는 여러 대안이 가능하다. 결정은 현장에서 하자. 간밤에 홍성 지역에 눈이 왔다 한다. 모처럼 설경 산행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배낭에 클램폰을 챙겨 넣는다.^^
(여기까지는 산행 전 준비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홍성 가는 길에 >
다시 추우진 날씨, 집을 나서자마자 콧등이 싸늘하다. 제대로 된 겨울이 오나 보다. 서둘렀는데도 시간이 빠듯하다. 언제부턴가 시내버스의 난폭운행이 사라지고 있다. 승하차 승객이 없어도 정거장에 일단 정차하고, 급출발 급정거도 줄어들고 등등. 덕분에 불안감은 줄어들었으나, 시간에 쫓기거나 성격 급한 이들에게는 느려터진 버스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게 정상이니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리라. 잘못된 관행들이 하나 둘 제자리로 돌아올 때 이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허겁지겁 버스에 오른다. 죽전에서 산객을 태우더니 소등을 한다. 7시 반이 지나도 밖은 어둡다. 한 겨울이란 말이 실감난다. 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선잠이 깨면 충청도 땅에 들어서 있으리라.^^
< 용봉초교에서 악귀봉 >
서해대교를 넘으며 바라본 하늘은 뿌옇다. 날씨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겠다. 들머리에 도착하니 9시 20분, 적당한 시간이다.‘슬기롭고 바르고 튼튼하게’, 용봉초교 정문 비석에 새겨진 글귀다. 아담하지만 번듯한 교정에 어울리는 말이다. 공부 몇 자 더 하는 것보다 바르고 튼튼한 게 훨씬 낫다. 나이가 들수록‘바르게’산다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걸 자주 느낀다. 인성교육을 절감한다.
행장을 준비하고 입장료를 내고 산에 접속한다. 포장도로가 길게 이어진다. 눈의 흔적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고도는 100미터 남짓, 워밍업이 끝나갈 무렵 예사롭지 않은 절 집이 나타난다. 미륵암이다. 대웅전 옆으로 석불이 서 있고, 우측 밑으로는 작은 석굴도 보인다. 평범한 사찰은 아닌 듯. 먼 발치에서 전경을 살핀다. 얼마 전‘바람이 지은 집, 절’이란 책을 읽어서 그런지 절 주변 풍경이 예전보다 친밀하게 다가온다. 좀 더 살피고 싶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발길을 접는다.
< 용봉초교 / 미륵암 >
미륵암을 지나며 가파른 돌 길이 시작된다. 돌은 이내 바위로 바뀌고 그 사이로 풍경이 하나 둘 열린다. 바위 난간에 잘 생긴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룬다. 흰 눈을 머리에 쓴 모습이 솔의 푸르름을 돋보이게 한다. 소나무는 빗물을 머금은 모습도 좋지만 역시 눈을 인 풍경이 더 멋지다.
앞서 출발한 산꾼들이 하나 둘 힘겨움을 호소한다. 정체가 생긴다. 오를수록 눈이 흔적이 잦아진다. 용봉산의 첫 봉우리는 투석봉이다. 작은 공터 난간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편의 동양화다. 솔의 푸르름 사이로 바위와 흰 눈이 조화를 이룬다. 멀리 가야 할 봉우리들이 우뚝하고 산 아래 도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첫 인상만으로도 용봉은 예사 산이 아니다. 기품이 있다. 당차고 옹골진 느낌이다.
눈 덮인 바위 난간 길을 조심스레 오르내린다. 암릉의 향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온 몸이 분주해진다. 미끄러운 발 조심하랴, 바위 타고 오르며 네 발 쓰랴,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손 쓰랴…. 화려한 풍경에 덩달아 눈도 바빠진다.
< 용봉산 정상석 / 노적봉으로 향하며 >
계단을 치고 오르자. 용봉산 정상이다. 정상 인증샷을 향한 긴 행렬을 기다리지 못하고 홀로 뒤로 빠진다. 정상 인증은 비스듬한 위치에서 찍은 정상석 사진이 대신한다. 시끌벅쩍한 정상을 벗어나자 이내 고요가 찾아 든다. 산이란 묘한 장소다. 조금만 벗어나도 분위기가 영 다르다. 바위 길을 내려서자 너른 공터가 나온다. 뒤편으로 조망이 확 트인 포터 존이다.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준다. 눈 덮인 바위 위에 올라서자 내포 땅의 전모가 드러난다. 충청 내륙의 길지 중의 길지, 이 좋은 터에 새로운 도청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평온한 도시가 아침에서 깨어나고 있다. 전방으로 가야 할 봉우리가 도열해 있다. 파라솔이 보이는 봉우리가 노적봉 일 테고, 그 뒤 험악한 봉우리가 악귀봉 같다. 말하지 않아도 발 길이 저절로 봉우리로 향한다.
긴 계단을 내려선다. 응달이라 눈이 얼어 붙었다. 배낭에 넣어둔 클램폰이 제 역할을 다한다. 바라보는 풍경이 예술이다. 기묘한 바위와 소나무 만으로도 감동인데 흰 눈까지 더해져 색감이 환상적이다. 올 겨울 처음으로 겨울 산을 걷는 낭만을 제대로 느껴본다. 멀게만 보이던 노적봉은 지척이었다. 인파 속에서 틈을 내 용케도 바위를 치고 오른다. 물개바위가 상징인 노적봉에 오른다. 바위에 걸터앉는다. 그 어느 능력자가 조화를 부려 산정에 이리 기묘한 바위를 옮겨 놓았는지, 보는 이의 눈은 즐겁기만 하다.
< 물개바위 >
노적봉에서 악귀봉도 지척이다. 계단이 있어 오르내리는데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계단에서 바라보는 바위들에는 저마다의 이름표가 붙어 있다. 너무 작위적인 해석이란 느낌도 들지만 이름을 준다는 건 분명 사물과 인연을 맺는 한 방법이다. 바라보고 사진 찍고 하다 보니 어느덧 용봉산 암릉과는 이별이다. 바위 밑 정자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투석봉에서 악귀봉까지 1시간 구간이 용봉산의 하이라이트였다. 기대이상으로 좋은 구경을 했다.
< 악귀봉에서 덕숭산 >
출발 전 나눠 준 지도에 따르면 오늘의 정규코스는 용봉산~수암산~덕숭산~수덕사이다. 꽤 멀지만 비고가 크지 않고 중간에 도로도 걷게 되니 6시간이 주어졌다. 단축 코스로 용봉산만 종주해 덕산온천으로 갈 수도 있고, 용봉산에서 출발해 수암산은 가지 않고 중간에 빠져 덕숭산으로 가는 단축 코스도 있다. 악귀봉을 넘을 때까지도 코스 선택을 하지 않다가, 절고개 이정표를 보자 선택의 기로에 선다. 용바위/수암산에 마음이 가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윗가루실 1.1km라는 확실한 이정표가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 반신반의했던 절고개 하산로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자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눈 쌓인 북사면을 누군가 나보다 앞서 간 이의 발자국을 따라 비탈을 내려간다. 길의 흔적이 없어졌다 나타났다 반복하며 희미하게 이어진다. 어쩌면 앞서 간 이는 사람이 아니라 멧돼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북정맥에서 알바를 많이 경험한지라 웬만한 험로에는 별 반응이 없다. 앞에 마을이 보이니 가다 보면 길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다.
눈 비탈을 15분쯤 내려오자 계곡이 보이고 곧 공사중인 임도가 나온다. 일단 잘 내려왔다. 그런데 이후로는 방향감각이 없어진다. 임도는 지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정신을 가다듬고 우틀한다. 한참을 내려서자 마을이 보인다. 곧 윗가루실 등산안내판을 만난다. 길을 제대로 온 것이다. 이후 도로를 따라 용봉저수지에 도착했고 이어 다시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수덕고개에 당도했다. 생각 외로 도로가 길어 지루했으나 원 코스로 가도 고속도로 옆 도로를 3.7km나 가야 하니 길 사정은 마찬가지 일 게다.
음식점이 어지럽게 서 있는 수덕고개, 인근에 육괴정이란 유적지가 있다 한다. 도로가 끝나고 덕숭산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입구에 펜스가 쳐 있다. 넘어야 하나 망설이다 주위를 살피자 펜스가 끝나는 곳에 길이 나 있다. 조심스레 접근해 산과 접속한다. 선명한 등로가 산으로 이어진다. 발 길이 닫지 않은 숲, 낙엽이 온기가 눈을 녹인 좁은 오솔길을 따라 덕숭산에 올라 붙는다. 낯선 등로를 홀로 걷다 보니 지난 산행 길을 잃고 헤맨 트라우마가 스친다. (집에 와 지도로 주변을 살피니, 당시 수덕산 반대 방향 대치리 부근으로 내려온 게 확실하다. 산길은 길지 않았으나 찻길로는 돌아가게 되어 멀다, 꽤 많이 지불한 택시비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ㅋㅋ)
흰 눈이 호위하는 낙엽 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호젓하단 말 뜻을 알 것 같다. 조용하고 완만한 숲 길을 30분 걷자, 단조로움을 덜어 줄 바위 군락이 나타난다. 마치 키 크고 마른 사람을 조각한 듯한 바위가 길가에 떡허니 서 있다. 잠시 쉬어 갈 겸 바위에 기대 선다. 마침 하산하는 이들이 있어 잠시 이야기도 나눈다. 수덕사 하산로를 잃었단다. 이리 가도 된다 말해주었다.
< 용봉저수지 / 사람바위 >
지도에 암자 표시가 있어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오른다. 바가지 2개가 가지런히 놓인 약수터가 보이고 그 뒤편으로 묵언 수행 중으로 출입을 막는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비탈에 난간을 만들고 세운 작은 암자.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전월사이다. 정진에 방해가 될까 하여 조심스럽게 문 앞까지만 갔다 조용히 돌아 나온다. 문틈으로 보이는 안쪽은 적막에 쌓여 있다. 말을 아껴 부디 성불하시길.
정상이 240미터 남았다는 이정이 보인다. 고도는 거의 정상에 다 왔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마지막 고비를 넘어 덕숭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여러 무리의 사람들로 정상석 인근은 시끄럽다. 500미터도 안 되는 산이지만 정상에는 바람이 불고 녹지 않은 눈이 수북하다. 13:16, 버스 출발시간이 3시 반이니 시간 여유는 있다. 이정표는 1.7km 남짓을 내려가면 수덕사라 한다. 여유롭게 하산을 즐겨야겠다.
< 덕숭산 정상에서 / 만공탑에서 >
< 덕숭산에서 수덕사 >
가파른 비탈에 쌓인 눈을 보며 클램폰을 다시 찰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정혜사 앞까지 내려와 버렸다. 정혜사는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대표 선승, 만공 스님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총독부가 조선불교의 일본화를 주장하자 호통치며 공박한 의로운 선승이다. 덕숭산에 머물며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쓰다가 전월사에서 입적하셨다 한다. 오르며 문이 닫혀 있던 그 암자에서 말이다.
정혜사 역시 문이 닫혀 있다. 내려서며 올려다 본 축대의 크기로 절의 규모를 짐작해 본다. 길 옆 작은 계단이 암자로 이어질 듯 한데, 나무가 가로질러 출입을 금하고 있다. 조심스레 타 넘고 들어간다. 아치형 바위가 자연스레 석문 역할을 하고 그 뒤로 건물들이 서 있다. 석문 밑으로 들어가 먼 발치로 안을 들여다 보고는 나왔다. 눈길을 끌만한 구조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무슨 연유로 암자 곳곳을 막아두려는지 쉽게 이해 되지 않았다.
< 향운각에서 >
만공탑을 지나 계단을 내려선다. 우측으로 잘 생긴 사면 석불이 서 있다. 관음보살입상이다. 건축 연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90년쯤 된)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제법 묻어나는 잘 조각된 보살상에 이끌려 마당 안으로 들어간다. 관세음보살, 세상 모든 중생의 신음 소리를 듣고 되비추어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구원의 보살이다. 관음의 지혜란 너와 내가 하나임을 체득하고 이기심의 나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무심코 외던‘관세음보살’의미를 되새겨 본다. 향운각의 보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대숲에 둘러 쌓여, 돌로 집까지 지은 샘터가 마당 한가운데 있다. 이제껏 보아온 샘터 중 가장 멋지다. 그 품격에 놀라 연신 셔터를 누른다. 마침 눈까지 내려 운치를 더해준다. 그 모습이 마치 천상의 샘터로 기억될 것 같다. 최고다.
계속되는 유서 깊은 유적지에 감동은 커져만 간다. 길가에 세워진 사면석불도 비록 진품은 아니지만 다양한 부처님 모습이 눈 길을 끈다. 소림초당을 지나 수덕사 경내로 들어선다. 절 뒤에서 안으로 들어서는 건 화려함보다는 후미진 속살을 들여다 재미를 준다. 눈에 익은 건물들, 그 중의 압권은 역시 고풍스러운 대웅전의 모습이다. 채색이 더해지지 않은 나무 그대로의 결이 최고를 만들어 준다. 그 은은한 고색창연함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바탕의 미가 꾸밈을 넘는다.
< 소림초당 / 국보 49호 수덕사 대웅전 >
인파가 북쩍이는 곳이건만 이상하리만큼 수덕사 경내는 조용하다. 절은 심란을 잠재워 형상 너머 본질을 보는 곳이라는 의미를 몸으로 확인한다.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불탑 넘어 확 트인 마당에서 바라보는 먼 풍경이 안정감을 준다. 명찰의 건축은 건물만으로 구성된 게 아니고 공간과의 어울림이 더해져야 참 멋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수덕사는 그 자체가 정교히 디자인된 건축물이다. 대웅전 뒤편으로 돌아든다. 담쟁이로 둘러 쌓인 석축이 눈길을 끈다. 대웅전 마당 계단을 내려선다. 몽환적 분위기의 하늘 밑, 커다란 나무가 도도히 서 있다. 그 밑으로 돌담이 길게 이어진다. 아! 하는 탄성이 나올 만큼 멋진 화면이 연출된다. 마침 노 부부의 나무로 접근하는 실루엣이 보인다. 오늘 최고의 풍경이다. 날씨마저 사진의 풍경이 된다.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보는 눈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수덕사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소중한 사진 몇 장을 얻는다. 두 개로 나뉜 천왕문을 지나 수덕사와 이별을 한다. 최고의 공간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에 뒤돌아 다시 눈길을 보낸다.
< 돌담과 고목이 있는 풍경 >
< 에필로그 >
첫만남과 익숙한 것과의 새로운 인연, 오늘 산행을 대표하는 말이다. 용봉산의 화려한 암릉에서 작지만 당찬 기상을 느꼈고, 덕숭산 하산 길 여러 불교 유적지를 둘러 보며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맛보았다. 당초 생각처럼 용봉산만 올랐다면 덕산온천으로 내려와 따듯한 온천 물에 몸을 녹이는 호사를 누렸겠지만, 덕숭산의 여러 유적지와 인연을 맺진 못했을 일들이다. 귀찮아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는 노력이 전에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경험했다.
국가적으로 좋은 일보다는 아픈 사건들로 점철된 병신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옛 것을 익혀 새로운 지혜를 만드는 노력이 절실할 때다. 마음 다잡고 또 전진하자.!!
< 용봉산~덕숭산 산행 궤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