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전쟁중인 한국에서 건강한 청년이라면 꼭 가야하는 곳이 군대이다. 고등학교까지 틀에 박힌 생활에서 졸업하여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청춘에게 군입대는 사회생활의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죽음을 뜻한다. 이 영화는 신검에서 시작하여 입대로 마무리된다. 젊은 날의 추억을 뒤로 하고 입영열차가 출발할 때는 극적인 분위기가 고조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남자가 가지고 있는 결코 행복하지 못한 기억도 이제는 소중하게 회상하곤 한다.
70년대의 배경은 장발단속과 통금, 그리고 명시적으로 이 영화에서 표현되지는 않지만 유신독재체재였다. 술만마시면 토로하던 그의 희망처럼 영철은 동해바다까지 그가 자가용이라고 주장하는 자전거를 타고가서 그대로 고래에게 접근한다. 현실에서는 자살이 되겠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입시에 실패함은 물론 신검에서 불합격하고 미팅에서 채인 그에게는 현실의 장벽에 대항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삼포세대라는 말이 유행한다. 하지만 모든 젊은이는 시공을 초월해서 불안하다. 일제치하의 강탈, 전쟁중의 살육, 60년대의 가난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의 부재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의 위기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의 저임금, 비정규직, 저취업률에 대한 고민은 사치스럽게 생각해야할지도 모른다.
대학 철학과에 다니는 병태(윤문섭)와 영철(하재영)은 그들 나름의 꿈과 이상을 키우면서 젊은 대학 시절을 보낸다. 어느날 미팅에서 서로 알게 된 병태와 영자(이영옥)는 싱그러운 대화 속에서 우정과 애정 사이를 넘나든다. 한편 영철은 여자친구와의 만남도 시들하여 그의 꿈인 고래를 잡으러 동해바다로 떠난다. 현실의 질식할 것 같은 폐쇄성에 대항이라도 하듯 그는 한없이 넓은 바닷가 벼랑 위에서 자전거를 탄 채 바다를 향해 돌진한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는 그 모든 모순과 부조리의 늪에서 해방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병태는 머리를 빡빡 깎고 군에 입대하는 열차에 오른다. 역 플랫폼으로 달려나온 영자는 갑자기 문어 대가리 모양으로 깎인 병태의 머리를 보고는 눈물짓는다. 차가 떠날 무렵 차창으로 상반신을 숙인 병태에게 입맞춤을 하려고 발돋움을 자꾸 하는 영자를 보다못해 순찰 헌병이 살짝 받쳐주어 연인의 이별을 아릅답게 장식하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