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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달이 뜬다.
기울면 숨는 것을 알면서도
달은 또 뜬다
가고 오는 것을 알고 있는 달은 뜨고 지는 것에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다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관조하는 이에 마음에 드는 것으로 족하다
보는 것이 아름다우면 스미는 것 아름답고 진 후 잔상도 퍽 아름답다
믿음이란 것 마음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성찰이다.
성찰에 무슨 시간이 필요한가 성찰의 시간에 때를 두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이 성찰의 시작이고 바로 지금 깨달음이 마음에 차야 한다.
그러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만 있다면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正念이 늘 곁에 있다.
곁에 있으면 늘 저절로 행복해진다.
正念을 향해 걷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 속죄의 짐을 지우고
사유의 벗들과 걸음을 옮기려 길을 떠난다.
자연과 공존하며 사유하고 나누자!
이음이 끊어져 정지되면 사멸의 수순이 기다리는 것이 상례다. 행의 끝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새로움을 지녀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스스로 새 생명이 되어 나서야 한다. 사순의 전례, 그러한 의미가 압축되어 마음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수순의 길이다. 무엇보다도 절박하게 다가 온 역질, 인간이 그려 놓은 문명의 시간적 자산의 기초들을 쓸모없게 만들어 놓았다. 경계가 짓는 삶의 모순들을 이기려면 스스로 통찰해야 한다. 혼자가 되어라! 혼자가 되어야 연결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강박에 시달려 온 시간도 일 년의 시간을 넘어섰다. 이젠 자연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이어야 한다는 의식의 판각이 새겨졌다.
그래 사유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마음을 사유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는 움직임의 동력이 여러 날 살게 하였다. 그 덕이였을까? 念의 마음 문학이란 주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로소 하나의 点이 만들어진 것이다. 점, 점을 이어나가면 분명한 하나의 선(線)이 생긴다. 선을 이으면 여러 개의 갈래가 생기는데 이것을 제대로 수습하여 질서를 잡으면 어였한 공간이 생긴다. 이를 평화의 공간이라 하며 숨 막힘의 끈을 놓으려 사유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사유의 길을 동행할 旅人들과 출발의 시간이 정해졌다. 그리고 다시 전체의 일정을 스크린 하며 결점을 몇 가지 찾아낸 후 수정의 시간을 거쳐 완성해 두었다.
back-peack를 꺼내 준비해 놓은. 사유의 시간으로 가는 도움자료와 일정표, 커피 보온병, 작은 물병, 책 한 권, 연필, 메모지, 손지갑, 손수건, 물티슈 작은 것 하나, 색안경, 장갑, 방풍, 보온성 쟈겟, 행동식, 그리고 나섰다. 아차! 황급하게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가 방으로 내달려 책상 위에 놓인 마스크를 귀에 걸고 전철역으로 곤두박질~~~ 요즈음 이런 일이 다반사다.
수 십여 년을 마스크 없이 살아온 습관이 있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튼 늦지 않고 정각 09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는 08시 45분 도착 계획,
침묵이 흐르는 객차, 빈 의자 뒤로 가 앉아 추억을 소환하고 있었다. 어느 해인가? 추운 겨울 산사 부근 숲에 텐트를 치고 휘발유 버너를 이용하여 밥을 지어먹은 후 비로봉을 향해 올랐던, 그리고 계속 내리는 눈에 하산 길은 고욕 그 자체였었다. 추억을 소환하는 사이 진부에 도착하였다. 택시를 불러 오른 후 엄청 쌓인 눈 길 사이를 달려 동피골 입구로 향하도록 주문을 넣었다.
박용열의 시를 생각하며 오대산 설경을 즐겼다. 박 시인은 청진에서 출생 그곳 성진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 당시 국군 수도사단 18 연대 입대, 전투 중 부상으로 우측 폐와 양쪽 발가락을 절단해야 하였다. 1953년 명예 제대한 후 195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노을이 당선되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선다.
오대산 가는 길 박용열
구불구불 제멋대로 자란
꼬부랑 소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는
산 계곡 산 기슭 돌아서
구름도 곤한 김에 머물고 있는
7월의 별 맑은
한나절이 하도 무더워
지나치던 제비도 꼬리 축일 때
헤엄치던 청개구리 그늘에 앉아
뽈록 뽈록 하품난 하고 있는
송사리 떼 나죽어 뛰노는 연못 위로
여기저기
몰래 피었구나
하얀 예쁜 연꽃이.
시를 떠 올리다 도착하여 택시를 돌려보낸 후 동피골 아래 계곡을 유심히 살피자 엄동의 두께가 터진 사이로 봄이 물마중을 하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이 물은 금강연(金鋼淵)에 잠시 머물다 일주문 옆을 휘돌아 나가 한강으로 흘러갈 것이다.
적설은 깊었다. 그리고 체적도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빠르게 혼자 다가 가 판단을 하기 시작하였다. 눈의 상태 - 습설, 기온 - 대 낮으로 갈수록 기온은 오를 것이다. 복사열이 걷기에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 줄 것이다. 보행에 대한 불편 - 이것이 문제다. 초설이 쌓인 그대로 전구간 눈이 남아 있다면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 이를 중히 여기고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보며 점검해 보자, 럿셀이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걷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특히 일정을 왕복에서 편도로 변경하여 일정을 수정해 놓아 강행하기로 하였다. 근래에 이런 설경을 보는 기회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스틱도, 아이젠도 없어도 걸으며 사유하기엔 최적의 환경이 오늘이다. 다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사유의 길로 Dash~~~~
오대산(五臺山)의 명칭은 대(臺)가 다섯 곳이나 있어 오대산이 되었다. 동대, 서대, 남대, 북대 그리고 중대가 있어 다섯 대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마음에 뜨는 달이 아름다운 산사,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불가의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이다. 동쪽 동대(東臺) 만월산을 등지고 들어앉은 월정사는 늘 푸르른 사철 침엽수의 향이 넘치는 곳이다. 산 전체가 불교 성지로서 자비심도 곳곳에 넘친다.
산은 푸르고 흐르는 물은 맑은 옥수다. 우리들의 삶의 시간도 물을 닮았다. 한번 흘러 간 물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흘러 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이 소중한 것이다. 푸르름이 가득한 오대산, 이곳엔 천혜의 선물이 있다. 맑고 청청한 바람과 공기가 있어 달과 별이 가득하고 우통수를 시작점으로 흐르는 물은 청정함을 빗어 주고, 폐부를 찌르는 전나무 숲 향기가 바로 그것이다.
푸르른 오대산에는 소나무와 어느 산에서나 흔하게 자라는 칡도 자라지 않는다 한다. 그 연유에 대하여 불가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소나무와 칡과 관련하여 나옹과 관련된 전설이 이어지고 있는데... 나옹 혜근(1320-1376)께서는 1339년 스무 살 나이에 출가합니다. 그리고 1347년 28세 나이에 양주 회암사에서 깨달음 얻고 원나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 오대산에 머무는데 나옹 선사께서 어느 날 발우에 음식을 담아 가던 중 소나무 가지에 쌓인 눈이 떨어져 노한 산신령이 쫓아내서 사라졌고, 북대에 있던 미룩암의 나한상을 상원사로 옮겨야 하는데 아주 어려운 일이라 모두 꺼려 나옹선사께서 나한전으로 가 주장자로 바닥을 두드리며 산승이 옮겨야겠습니까! 하자 나한상들이 스스로 일어나 상원사로 걸어 옮겨 갔는데 도착하여 세워보니 나한상 한 분이 사라지셨다. 오던 길을 살펴보니 한 분이 칡넝쿨에 걸려 곰 짝 달싹 못하고 있어 이 또한 오대산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을 나옹 선사와 연결시켜 전설을 만들어 전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생육 조건이 맞지 않는 생태 때문에 자라지 못하는 소나무와 칡을 나옹선사의 이름 빌려 전설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움이 만든 사람들의 정분이지요. 곧잘 옛 선현들께서는 그리움을 전설로 달래신 적이 참 많습니다. 살아가는 멋이지요.
사유의 준비를 끝낸 후 걷기 위하여 선재교를 넘어섰습니다. 선재동자(善哉童子)에서 따온 이름 선재교, 선재동자는 화엄경에 나오는 구도자로서. 이 동자의 구법에 의해서 화엄경 입법 게의 차례가 정해진다. 53명의 선지식을 두루 찾아보고 마지막에 보현보살을 만나서 10 대원을 듣고 아미타불 정토에 왕생하여 법계에 들어가기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눈은 두 가지 종류로 간단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마른 설과 젖은 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눈은 습설 즉 젖은 눈이었습니다.
적당한 흡착력이 있어 미끄러움이 없어 걷기 편안합니다. 밤이 되면 결빙되어 아이젠 도움 없이 걷기 불편하지만 우리들이 걷는 시간 때에는 최적의 보행 컨디션을 제공하는 것이 습설입니다.
흰 눈 사이로 보이는 조릿대, 환경 생태계를 말해 주는 대표적인 식물입니다. 오염의 척도를 가눔 할 수 있는 대표적 군락 식물입니다. 늘 유쾌하고 관심 많은 분께서 조심스럽게 조릿대 잎을 살며 시 당겨봅니다.
쉬지 않고 달려온, 그동안의 삶은 환자들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잠시 내려놓고 휴(休)를 선택하였습니다. 경영은 멈추지만 주어진 능력은 분명 선한 일에 재생될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만... 오늘 사유의 시간이 길고 깊으실 것 같다는 예감을 첫 사진에서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젠 자신과 잘 놀아주시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걷는 것만으로도 심신은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마음, 그냥 정겹습니다.
마음이 밝으면 모든 것과 소통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마음의 어두움을 경계해야 할 이유는 불통으로 생기는 단절의 두려움 때문입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휴(休), 휴식(休息), 잠시 분주함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자신과 놀아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옛사람들은 그 귀함을 나무를 빌려와 적었습니다. 직립 인간의 삶은 고단함 그 자체입니다. 스스로 지탱하고 서야 하는 구조가 주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을 잠시라도 나무에 기대어 서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나무는 어쩌면 어머님 같은 마음입니다. 자식에게 유익한 것만 따로 정제하여 주시는 마음이 고스란히 나무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 나무에 고단한 정신과 몸을 기댈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어 있다가 슬쩍 한 사람이 피해버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 사람이 당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지만, 나무는 죽어도 피하지 않습니다. ~~ 나무라는 존재성이
너무 탐나는 시간이 바로 숲에서의 여행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가슴으로 기대어 보고 때로는 만져 보기도 합니다.
또한 솔향을 맡아보기도 하지요. 우리 민족은 소나무를 송(松)이라 부르며 공경의 끈을 버리 않었습니다. 나무들 중에 최고의 품격을 지니고 있는 소나무는로 집을 짓고 소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사용하며 사용하고 살다 소나무로 만든 마지막 집에 의지한 채로 흙으로 돌아 가 소나무 아래에 묻힙니다.
한 손으로 잡아 보기도...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행복합니다.
살며 시 안아보면 소나무의 맥박은 고요한데 나의 심장 소리만 느꼅집니다. 늘 그대로 그곳에 있으며 산소로 충만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매 순간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필요한 것을 불필요한 이상으로 얻으려 욕심의 마음이 이어지기 때문에 고요할 적이 없습니다. 마음이 심해에 있으면 고요하지만 수면 위에 있으면 한 시도 고요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번뇌의 속도가 달리지고 질 또한 달라지는 법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정념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평화, 참 평화를 빕니다. 입으로만 하는 평화가 아니라, 선한 마음으로 모으는 평화를 빕니다.
나무들이 가득한 숲에 포위된 모습이 갑갑하기보다는 자유의 포만을 느끼게 됩니다.
빛의 양에 따라 피사체는 사진의 화질을 결정합니다. 마음에 밝은 빛이 그늘 없이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바른 생각입니다. 그러함이 이어지면 복되고 행복하게 됩니다.
눈 덮힌 숲 속에
순백의 고요한 길이 열렸으니
나 또한 순백의 마음으로 길을 이어나가리...
미처 눈을 밟는 소리도 느낌도 잊은 채 걸음을 이어 왔습니다. 그리고 약초를 심기 위하여 숲 속의 빈터 개활지에서 멋진 숲의 풍경을 찾아내었습니다.
이런 사진을 속사로 여러 장을 담은 후, 기다렸습니다. 도착한 旅人들 에게 스마트 폰으로 담아 보라고 이르고 눈 길을 열며 다시 앞으로 나갔습니다. 흰 공간,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나에게 주어진 여생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면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자문해 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생 자기식으로 자기만의 삶을 그림을 그리다가 화폭을 접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평가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려 놓은 그림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일부러 모른 채 한 사람들은 평가의 대상에서 조차 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그러한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그것도 지식인이며 행동하는 양심이라 자처하던 군상들에게 더더욱...
그러다 뒤 돌아보니 아직도 촬영 중...
걷는 모습을 보고 기억해 두고
앞으로 가려하자 부르는 소리가 있어 되돌아보니 사진을 찍어 달라 아우성(?)이 정적을 흔들어 놓습니다.
아무래도 이것보다는... 동적이면서도 불안전한 것보다는
정물적인 이 모습이 대비적으로 혼란을 극복하는 모습으로 다가와 배경으로 삼아 보았습니다. 제목을 붙인다면 혼란과 고요입니다.
다시 길은 이어지고... 걷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으니 꾸준히 길을 열어 나가야 합니다.
한 움큼 잡아 던지니...
질세라! 즉각 무장하고 덤빕니다. 그렇지만 싱겁게 싸움은 종료되고 눈 사람 옆에 서서...
휴전을 서약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마실 가는 아낙의 마음으로 눈 길을 걸어 나갔습니다.
사방천지 눈이 가득 , 마침 약초재배 관계로 몇 년 전 열어 놓은 시멘트 다리, 한쪽으로 기우뚱하였지만 양지바른 곳이라 잠시 앉아 쉬어 가기는 안성맞춤, 점심 끼니로 각자 준비해 온 행동식을 적절하게 배분한 후 몰려 앉았습니다.
커피 향으로 목 마름을 진정시키고, 쑥떡, 샌드위치, 삶은 달걀, 월병, 오렌지, 인삼차, 순으로 먹은 후 다시 잔여 행동식 배분으로 사탕, 초콜릿 등 을 나누었습니다.
봄기운이 세력을 넓히자 물마름은 점점 커져갑니다. 소리도 졸졸 수준은 넘어섰습니다.
적설은 더욱더 넉넉한 인심을 발휘하고 조릿대의 청정함은 빛을 더합니다. 산 짐승도 갔을 법한 길입니다.
일치와...
불 일치의 미를 실험하고...
산에서 내려온 토끼도 잡아 두었습니다.
적과 흑의 매력적인 빛의 교차도 경험하며 잠시 休를 갖기로 하였습니다.
색다른 휴식의 방법도 경험하는 시간도 있었으며...
깊은 눈 수렁에 즐거움은 더해 나갔습니다.
눈 처마로 길은 기우뚱....
결국 한 사람은 자빠지고...
저 길에서 느낀 고단함은 상록 숲에 풀어놓고 다시 조릿대 숲으로 젖어들어갔습니다.
앗! 셧터를 누르려다 후미의 사람들에 재미있는 짓을 발견하고 자세를 낮춰 찍은 사진입니다.
자작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느껴져 가던 길을 멈추고 동무가 되어 준 사진입니다.
숲 속의 작은 빈터
사람의 체취를 느끼고 산 짐승도 다녀간 듯
여기저기 흰 눈에 박힌 새, 고라니, 산토끼 발자국
겨울은 산 짐승들 나기가 버거운 계절이다.
백설이 쌓여 길을 지워도
그 녀석들이 마을을 찾아 간 흔적만 뒤 따라도
길을 잃은 염려는 없다
초심으로 돌아 가 눈 세례를 한 후 사순절 기도를 받치는 순간을 포착하였습니다.
질세라! 기도의 여인도 동참, 양 손을 모은 기도는 분명 허락을 받아 내실 것입니다.
목표 지점까지 딱! 중간, 시작은 반이라 하더니 그런 것 같습니다. 念의 문학 산책도 이 다리를 건너가면 반에 도달합니다.
기다려야 나타나는 旅人들... 보이지 않으면은 궁금하고, 소리라도 듣는다면 좋으련만, 오늘 같은 날은 사소한 대화 소리는 눈이 먼저 삼켜버려 울림도 없습니다. 숲에 쌓인 눈은 방음효과와 온실 효과를 동시에 제공합니다.
경계를 넘으려면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흩어진 마음을 재충전하고...
평소에 제일 아끼는 마음 풍경 너울 앞에서 잠시 머물다 가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래 계곡의 여름 가을 풍경은 압권입니다. 일교자가 너무 심해 단풍이 아름답고 여름은 물이 가득 흘러 여름 정취를 아름답게 수놓는 계곡입니다.
그리고 그 옆 언덕 위에 서 있는 아래는 조릿대가 무성하고 그 위로 낙엽송이 장대를 이어 하늘을 받치는 모습이 곧아 후련하게 마음을 놓아주는 곳입니다.
일엽(一葉)을 좋아하시는 성미가 아름답습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생각하며, 깊은 눈 처마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습관적으로 화인더를 조이고 개방하며 눌렀습니다. 그리고 현재시간에 대하여 알려 주며, 그냥 허비할 시간이 없다 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시간관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이미 귀경에 대한 사고(思考)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길고 긴 사유의 시간을 흘러 보냈습니다. 사유의 정리는 각자의 몫입니다. 혼란스러운 현재의 삶의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생각을 열어 놓고 살아야 합니다. 생각마저 굳어 버리면 모든 것이 굳어 버리게 됩니다. 화석으로 변하는 순간 타인의 관리에 나를 전부 내놓는 일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자신과 끝까지 잘 놀아 주는 자아(自我)가 있어야 합니다.
점점 으스러져 가는 삶의 청정함, 기댈 곳은 밝은 마음입니다. 소통의 끈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사유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지탱하고 사유의 끝에는 늘 바른 마음이 걸려야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바르면 행복의 요소가 충족되고 평화가 늘 침잠되기 때문에 正念을 갖는 일은 중요합니다.
저녁으로 가는 빛이 전나무 숲으로 가득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일주문이 나옵니다. 그 문을 나서면 오대산을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선계와 속계를 구분 짓는 문이 바로 일주문입니다. 일주문 옆에는 늘 청정한 물이 흐릅니다. 속계에서 알게 모르게 묻힌 것들을 맑게 씻어내라는 의미이지요. 절대신을 믿는 우리들의 신앙에도 그러한 절차가 있습니다. 성수로 씻어낸 깨끗한 마음으로 입당하는 것과 같은... 이곳에 다 적지 못한 사유의 마음은 따로 한 페이지를 만들어 적어 두려 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1시간 30분의 여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주문에서 걸어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10분을 시용하면 1시간 20분으로 줄어둡니다. 그래 계획을 다시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 1시간 30분 배정해 두었던 오후 일정을 다음으로 미뤄도 늦은 점심 겸 저녁을 챙기고 나면 남는 시간은 고작 30분 정도, 그리하여 박광훈 씨에게 전화를 걸어 5시 20분까지 와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만약 근무환경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보내도 된다고 언질을 주워 놓았기에 재론 없이 진부가 고향인 선배를 보내주어 제대로 진부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예정된 열차를 타고 귀경할 수 있었던 사연입니다. 모처럼 눈 쌓인 숲 속 길을 걸으며 사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설악과 소백에선 설경의 아름다움을 결국 오대산에서 풀 수 있었습니다. 다음 문학 산책은 꽃 향기와 함께 하는 문학 산책으로 주제를 정하고 수습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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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마 만인가~*!!
기차에서 내려 진부에. 들어서는순간
새하얀 겨울왕국이 펼쳐져 ~*
봄의 문턱에서
아름다운 설원을 볼수있고 걸을 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감사한 하루였나~*
도심의. 답답한 환경을 피해서
마음과 몸이 힐링이 되는 시간들
적절한 계획으로 무리없이.
일행을 이끌어 주신 리더님께
감사드립니다~*
숲 속을 가득 채운 백설~~ 사라진 길 위를 정 적이으로 감싸 안아겠지만 오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을에 가지마다 걸어 놓은 가을겆이 씨앗들은 북풍설한에 봄 바람에 이리 저리 땅 위로 흩어져 버려 배가 고파던 산짐승 들은 산사와 사하촌으로 내려 가는 눈 위에 길을 남기며 오고 갔었을 것입니다. 폭설 후에 최초로 길을 내는 신분은 바로 산 짐승들입니다. 덕분에 잘 다녀 온 것입니다. 형제적 친교 안에서 마음을 섞으며 이해와 배려 덕분에 평화롭게 사유의 길을 다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음 수순으로 꽃향기와 문학 산책의 길이라는 주제로 길을 열어 놓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꾸벅~~~^&^
하얀 설원의 공주님늘 넘 보기 좋아요, 함께 하고픈 생각이 굴뚝 같네요,
평화를 빕니다. 꾸벅~~~^&^ 초대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역질 관계로 제한적이지만 맥은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4명 씩 조를 이루어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결정되시면 데레사 지매님에게 연락을 주시십시요. 방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