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 시 심사평|
시의 본질에 충실한
송찬호
이번 2022년 문예바다 가을호 공모 시에 모두 서른아홉 분의 작품이 도착하였다. 그중에서 다섯 분의 작품을 눈여겨보았고, 시의 본질에 충실한 「절룩」과 「시클라멘」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절룩」은 몸의 불편함을 통하여 일상과 자아를 성찰하는 시다. 화자는 왼발을 접질렸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 갑자기 몸의 일부분이 온전치 못하게 되거나 기능을 잃으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시에서 ‘절룩’은 그런 불편함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절룩거리며 걷다가 문득 절룩거리는 일상과 현실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존재로서의 자신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절룩이 나타나기 전에는 누구의 절룩이 보이질” 않다가, “수많은 절룩 속에서 혼자 절룩여 보고 나서야 깨닫는 오후”가 그런 순간일 것이다. ‘절룩’이라는 말로 쌓아 올린 다층적인 시의 구조가 견실하면서도 시적 의도가 군더더기 없이 잘 관철되고 있는 작품이다. 새로운 시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말의 의미를 재발견하면서 시적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분명한 어법을 내보일 때 새로운 시와 만날 수 있다. 「절룩」이 그 좋은 예이다.
「시클라멘」은 담담한 어조의 시다. 하지만 읽고 나면 그 울림은 강렬하다. 여태껏 시클라멘을 몰랐다면 그 꽃이 어찌 생겼나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당신’ 사이에 시클라멘이 있다. 그것은 꽃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시클라멘은 “물로 키우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의 “입김으로 키우기”도 하는 꽃이다. 삶은 늘 순탄치 않고 때로 사랑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지만, 시클라멘은 기어이 “화분에 젖꼭지만 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야 만다. 베란다 작은 화분에 핀 시클라멘을 앞에 두고, “한겨울에 이토록 화사한 꽃을 피웠으니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다 했다”라고 말하는 화자의 행복이 절대 삶의 과장이 아닐 터이다. 이 시에서, “들어올 땐 싱그럽고 빠질 땐 뜨끈한 바람이 문틈을 들랑거렸다 그 바람이 꽃을 피운다 했다 그녀처럼”이라는 문장은 단연 돋보인다. 사랑의 감정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붉게 피는 시클라멘을 매개로, 사랑의 애잔함과 생활의 안간힘을 이토록 적실하게 담아낸 시도 드물다. 되풀이해서 읽게 만드는, 잔잔하지만 울림이 큰 시다.
송찬호 |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분홍 나막신』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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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분홍 나막신』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