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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3장 1-10절. 주 안에 굳게 서라.
1. 지난 시간에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 <삶의 소망이요, 환난 중에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과 영광이요, 보람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날과 달리 당시에는 불신자들이나 교인들에게도 위대한 사도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불신자들이 죽이려 했고, 자기가 세운 어떤 교회에서조차도 거짓 사도로 불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도,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불신자의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정진하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기뻐했고, 삶의 보람을 느껴 감사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온갖 고난을 당하고 수모까지 당하더라도, 자녀가 부모를 존경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성실히 공부해가는 것을 보면, 살맛 나고, 희망과 기쁨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2. 오늘 본문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1-5절.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간절히 보고자 했으나, 형편상 가지 못하여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6-9절. 지금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와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을 사모하며, 주 안에 굳게 서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감사한다는 내용입니다.
10절. 바울이 다시 가게 되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부족한 부분을 더욱 온전케 해주고자 한다는 내용입니다.
3. 오늘의 설교 제목은 <주 안에 굳게 서라>입니다.
1-5절.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간절히 보고자 했으나, 형편상 가지 못하여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1-2절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낸 경위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1절.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when we could endure it no longer, we thought it best to be left behind at Athens alone,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Διὸ μηκέτι στέγοντες, ηὐδοκήσαμεν καταλειφθῆναι ἐν Ἀθήναις μόνοι,
Therefore no longer enduring, we thought it best to be left behind at Athens alone,
‘참다’(στέγ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enduring) 계속 참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머무기를’(καταλειφθῆν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left behind) 단호하게 확실히 머물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좋게 생각하고’(ηὐδοκήσαμεν)는 부정과거로서(we thought it best) 바울 일행이 자기들만 아덴에 머무는 것을 분명히 좋게 생각했던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바울 사도가 AD 51년에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다가, 교회를 설립했으나, 불신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한 달도 못 되어서, 데살로니가에서 쫓겨나왔습니다.
데살로니가를 떠나서, 남서쪽으로 80킬로 떨어진 베뢰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복음을 잘 받고 그 말씀을 상고하였으나, 데살로니가의 불신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바울을 죽이려고 하자, 바울은 동역자들인 디모데와 실라도 버려두고, 혼자서 배 타고 멀리 남쪽의 아덴(아데네)로 도망을 갔습니다.
바울이 아덴(아데네)에 있을 때에, 디모데와 실라가 왔습니다.
2. 이처럼 바울 사도는 자기는 불신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도망을 왔지만, 데살로니가에 남아 있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몹시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동역자인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파송했던 것입니다.
2절.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e sent Timothy, our brother and God's fellow worker in the gospel of Christ, to strengthen and encourage you as to your faith,
디모데를 보내노니
καὶ ἐπέμψαμεν Τιμόθεον,
and we sent Timothy,
직역하면 ‘그래서 우리가 디모데를 보냈다’는 뜻입니다.
‘보내노니’(ἐπέμψαμεν)는 부정과거로서(we sent) 바울이 과거에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던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키므로, ‘보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동사가 ‘서신적 과거’(epistolory aorist)가 아닌 확실한 이유는 6절에 지금은 디모데가 바울에게 와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τὸν ἀδελφὸν ἡμῶν καὶ διάκονον τοῦ Θεοῦ ἐν τῷ εὐαγγελίῳ τοῦ Χριστοῦ,
the brother of us and fellow worker of the God in the gospel of the Christ,
직역하면 ‘우리들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동역자인’이란 뜻입니다.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εἰς τὸ στηρίξαι ὑμᾶς καὶ παρακαλέσαι ὑπὲρ τῆς πίστεως ὑμῶν
in order to strengthen you and to encourage concerning the faith of you,
직역하면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격려하기 위하여’란 뜻입니다.
‘굳건하게 하고’(στηρίξαι)와 ‘격려하기 위하여’(παρακαλέ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trengthen, to encourage)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확실히 굳건하게 하고, 정말 확고하게 격려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보냈다는 뜻입니다.
1.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형제’(ἀδελφὸν)라는 말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같은 형제라는 뜻으로, 유대인들은 같은 유대인들을 형제라고 불렀는데, 여기서는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디모데를 ‘형제’라고 불렀고(고후 1:1, 골 1:1, 몬 1:1), 디모데를 직접 부를 때는 ‘믿음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딤전 1:2, 딤후 1:2).
‘일꾼’(διάκονον)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자’란 뜻으로서 교회의 집사직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딤전 3:8.12).
사탄을 섬기는 불신자들은 ‘사탄의 일꾼’으로도 표현했습니다(고후 11:15).
2.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굳건하게 하고, 믿음을 잘 지키도록 위로함으로써,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 생활을 잘하게 하려는 것이란 취지입니다.
‘굳건하게 하는 것’은 튼튼한 반석 위에 세우는 것을 가리킵니다(눅 9:51).
즉 성도들의 신앙을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세우는 것을 가리킵니다.
특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 지역의 이방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성도들을 말씀으로 굳건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고, 또 위로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이나 핍박을 당할 때, 믿음이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받았으나, 뿌리가 깊지 못하면, 환난이나 핍박을 당할 때, 넘어지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마 13:20-21)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서면, 홍수가 나고 탁류가 흘러도 그 신앙의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마 7:24-27)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너는 돌이킨 후에 내 형제들을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눅 22:32).
이처럼 주의 종들이 성도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을 볼 때,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2:42-43.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3절.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at no one would be disturbed by these afflictions; for you yourselves know that we have been destined for this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τὸ μηδένα σαίνεσθαι ἐν ταῖς θλίψεσιν ταύταις.
that no one to be moved in the tribulations these
이 소절까지는 앞 절에 연결되어, 디모데를 보내는 목적이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고 격려하며(앞 절), 환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본 절) 것이란 말씀입니다.
‘흔들리지’(σαίνεσθαι)는 현재 부정사형 수동태 동사(be moved)로서 환난 중에서도 항상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αὐτοὶ γὰρ οἴδατε ὅτι εἰς τοῦτο κείμεθα·
Yourselves for you have known that for this we are destined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것을 위하여 우리가 세움을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알리라’(οἴδατε)는 현재완료로서(you have known) 너희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움을 받은’(κείμεθα) 현재 수동태로서(we are destined) 현재 계속 세움받은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κεῖμαι)은 ‘놓여지다, 임명되다, 지명되다’(am laid, set, appointed, destined)는 뜻으로서 바울이 이 일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임명을 받고, 지명되어 있음을 가리킵니다.
1.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흔들리다’(σαίνεσθαι)는 말은 ‘흔들리다’는 뜻 외에도 ‘아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성도들이 불신자들에게 핍박과 환란을 당할 때, 믿음이 흔들려서 불신자들에게 아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하고, 위로하여, 여러 환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파송했습니다.
2.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여기서 ‘우리’는 모든 믿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즉 믿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란 뜻입니다. (마 16:24, 행 14:22, 빌 1:29, 딤후 3:12, 벧전 4:12-13)
이처럼 마귀의 자녀인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을 핍박하고 환란을 당하게 할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으므로, 우리 성도들도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리고 성도가 핍박을 당할 때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12-14.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4절.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ndeed when we were with you, we kept telling you in advance that we were going to suffer affliction; and so it came to pass, as you know.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καὶ γὰρ, ὅτε πρὸς ὑμᾶς ἦμεν, προελέγομεν ὑμῖν ὅτι μέλλομεν θλίβεσθαι,
and indeed, when with you we were, we were telling beforehand you that we are about to suffer affliction
직역하면 ‘그리고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참으로 우리가 환난 당할 것이라고 너희에게 미리 말하곤 했는데’란 뜻입니다.
‘있을’(ἦμεν)은 미완료과거로서(we were) 전에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계속 같이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미리 말하였는데’(προελέγομεν)도 미완료과거로서(we were telling beforehand) 바울이 과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장차 환난 받게 될 것을 계속 말하곤 했던 것을 가리킵니다.
‘환난 받게 될’은 두 단어로 되어 있는데(μέλλομεν θλίβεσθαι) 앞의 단어는 현재형으로서 ‘--하게 될 것이다’(we are about to)는 뜻이고, 뒤의 단어(θλίβεσθαι)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uffer affliction) 계속 환란 당하게 될 것을 뜻합니다.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καθὼς καὶ ἐγένετο, καὶ οἴδατε.
just as also it came to pass, and you have known
‘그렇게 된’(ἐγένετο)은 부정과거로서(it came to pass) 확실히 그렇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아느니라’(οἴδατε)는 현재완료로서(you have known) 너희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1.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 받게 될 것을 미리 말해두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항상 평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많은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고, 바울 사도도 유대인들과 우상 숭배하는 이방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았듯이,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바울의 예언대로 유대인들과 우상 숭배자들에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2.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1) 어떤 면에서 환난과 핍박은 성도들에게 불가피하게 정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ribulation and affliction are to be our lot)
요한복음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지키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21;17-19.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데살로니가후서 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요한1서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시편 91: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편 121:5-9-8.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스가랴 2: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5절.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reason, when I could endure it no longer, I also sent to find out about your faith, for fear that the tempter might have tempted you, and our labor would be in vain.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διὰ τοῦτο κἀγὼ, μηκέτι στέγων, ἔπεμψα εἰς τὸ γνῶναι τὴν πίστιν ὑμῶν,
because of this I also, no longer enduring, sent in order to have known the faith of you
직역하면 ‘이 때문에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해서 (그를: 디모데를) 보냈다’는 뜻입니다.
원문에는 ‘그를’이란 말이 없으나 의미상 잘 된 번역입니다.
‘참다 못하여’에서 동사(στέγων)는 현재분사로서(enduring) 부정어(μηκέτι:no longer)와 함께, 계속 참고 있지 못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알기 위하여’(γνῶ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로서(to have known)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란 뜻입니다.
‘보냈었노니’(ἔπεμψα)는 2절과 똑같이 부정과거로서(sent, 주어만 2절은 1이칭 복수 we이고, 5절은 1인칭 단수임) 바울이 과거에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낸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μή πως ἐπείρασεν ὑμᾶς, ὁ πειράζων, καὶ εἰς κενὸν γένηται ὁ κόπος ἡμῶν.
lest somehow tempted you, the (one) tempting, and in vain would be the labor of us
직역하면 ‘시험하는 자가 혹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시험하는 자’(ὁ πειράζων)에서 뒤의 단어(πειράζων)는 현재분사이고(tempting) 앞에 정관사(ὁ, the)가 붙어서 특정한 인물 즉 사탄을 가리킵니다.
‘시험하여’(ἐπείρασεν)는 부정과거로서(tempted) 사탄 마귀가 성도들을 의도적으로 강하게 시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헛되게’(εἰς κενὸν γένηται)에서 동사(γένητ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would be) 마귀가 바울의 수고를 단호하게 헛되게 만드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1.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바울이 참다 못해서 디모데를 보냈는데, 이것은 마귀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해서, 모두 믿음을 버리고, 바울의 복음 전도가 헛수고가 될까 염려가 되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2.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1) ‘시험하는 자’(ὁ πειράζων: the tempter)란 말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어서, 성도를 시험하는 사단 마귀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2:9.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마태복음 4장 3절에서는, 이 마귀가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2) 이 부분에는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한 애정과 사모함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습니다.
1절에 “우리가 참다 못하여...”, 5절에도 “나도 참다 못하여...”
이 말은 바울 사도가 몸은 떠나 있지만, 마음만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간절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심정은 자녀가 군대와 유학 가 있을 때, 몸은 멀리 떠나 있지만, 마음만은 간절한 애정과 사랑으로 자녀에게 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 사도는 몸은 아데네와 그 후에 고린도에 와 있지만, 마음만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전부 가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마음도 온전히 우리에게 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온 마음이 성도들에게 와 있습니다.
혹시 젖먹이 엄마가 그 젖먹이를 잊는 한이 있을지라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한시도 잊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한 가지 더 바라기는, 교회 직분자들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자신이 맡은 성도들, 학생들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며, 사랑으로 돌보시는 직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9절. 지금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와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을 사모하며, 주 안에 굳게 서 있다는 것을 듣고 정말 감사한다는 내용입니다.
6절에는 먼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소식을 전한 내용입니다.
6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now that Timothy has come to us from you, and has brought us good news of your faith and love, and that you always think kindly of us, longing to see us just as we also long to see you,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Ἄρτι δὲ, ἐλθόντος Τιμοθέου πρὸς ἡμᾶς ἀφ’ ὑμῶν
plesently but, having come Timothy to us from you,
직역하면 ‘그러나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서 우리에게 와서’란 뜻입니다.
‘와서’(ἐλθόντ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과거에 왔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καὶ εὐαγγελισαμένου ἡμῖν τὴν πίστιν καὶ τὴν ἀγάπην ὑμῶν,
and having brought good news to us the faith and the love of you
‘기쁜 소식을 전하고’(εὐαγγελισαμένου)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rought good news) 디모데가 기쁜 소식을 분명히 전한 과거의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εὐαγγελίζω)은 ‘기쁜 소식을 전하다, 복음 전하다’(announce good news, preach good tidings)는 뜻입니다.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καὶ ὅτι ἔχετε μνείαν ἡμῶν ἀγαθὴν πάντοτε,
and that you have remembrance of us good always
직역하면 ‘그리고 너희가 우리의 기억을 언제나 좋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는 뜻입니다.
‘가지고 있다’(ἔχε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have) 계속 가지고 있는 모 습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ἐπιποθοῦντες ἡμᾶς ἰδεῖν καθάπερ καὶ ἡμεῖς ὑμᾶς,
longing us to see just as also we you
직역하면 ‘우리가 너희에게 그런 것과 똑같이 너희가 우리를 보고자 하면서’(항상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좋은 소식을 전했다)란 뜻입니다.
‘보고자 하면서’(ἐπιποθοῦντες--ἰδεῖν)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분사로서(longing) 언제나 보고자 하는 상태를 가리키고, 뒤의 동사(ἰδεῖ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ee) 현재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을 지금도 계속 보고 싶어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바울 사도가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해서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도망갔고, 또 유대인들이 베리아까지 와서 죽이려고 하자, 바울이 디모데와 실라조차 버리고 배 타고 도망가서 아덴으로 와 있었는데, 지금은 디모데가 아덴에 있는 바울에게로 왔다는 것입니다.
2.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디모데가 바울에게 전한 소식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은 지 한두 달밖에 안 되었는데도, 유대인들의 핍박을 이기고 믿음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과 예수님과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바울에게 전했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사회적인 핍박이 심하면, 신앙생활을 포기하기 쉬운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믿은 지 한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유대인들과 동족들의 핍박을 이기고 믿음 생활을 잘하고, 주님과 바울 사도를 사랑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이 소식은 바울에게 큰 기쁨과 위로가 되는 소식이었습니다.
즉 바울이 죽음의 위협을 무릎 쓰고 전도하여, 데살로니가 교회가 설립되었지만, 바울이 도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라지지 않고, 굳게 서 있다는 기쁜 소식은 바울의 복음 전도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바울이 다시 복음 전도에 계속 헌신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되어주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고생해서 자녀를 낳고 길렀는데, 자녀가 방탕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 부모가 고생 중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동기가 되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3.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1)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에 대해서 나쁜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항상 좋은 생각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잘 생각한다”는 말은 “좋게 생각한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2)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 사도를 나쁘게 생각하려면, 얼마든지 나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이 일어나니까, 교인들을 놔두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을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 사도에 대해서, 조금도 나쁘게 생각지 않고, 항상 좋게만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얼마나 너그러운 마음과 이해심과 사랑이 풍성한 성도들이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든지 바울을 비난할 만한 상황 가운데서도, 바울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너그러이 사랑해주는 모습이 만고에 빛나는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3) 부모는 자녀들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를 용서하고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교회에서도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성도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이 장로님이나 권사님의 잘못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사도요, 선교사요, 목사인 바울을 용서하고 사랑했습니다.
(4) 이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받은 바울 사도는 너무도 감사하고, 기쁘고, 사랑이 넘쳤습니다.
저도 목회 생활을 하면서, 잘못과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연로하신 장로님이나 권사님들이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또 젊은 집사님들이나 성도님들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을 경험할 때면, 목숨 바쳐 충성해야 하겠다는 각오와 충성심이 생기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훌륭한 목사는 훌륭한 교회가 길러낸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 권사님들과, 젊은 집사님 성도님들께서도 부족한 저를 이렇게 늘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훌륭한 목사로 길러주시니 금년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4.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간절히 보고자 한다’는 동사(ἐπιποθοῦντες--ἰδεῖν)는 현재분사와 현재로서(longing to see) 계속 간절히 보고자 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 사도를 변함없이 계속 간절히 보고자 했습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바울이 자기만 살겠다고 성도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을 갔기 때문에, 바울을 욕하고 비난할 것인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도망간 바울을 욕하지 않고, 오히려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 믿게 해준 은혜에 대해서 무한히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다시 바울을 보고, 은혜의 말씀 듣기를 간절히 원하고 보고 싶어 했습니다.
얼마나 복음 전도와 예수님의 구원이 감사했으면, 이렇게 도망간 전도자요 목회지를 간절히 보고자 했겠습니까?
참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믿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해서 ‘너희는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살전 2:19-20)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도 ‘간절히 사모한다’는 이 동사(ἐπιποθῶ: long after)를 사용했습니다. (빌 1:8)
세상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간절히 보고 싶어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보고 싶어 하고, 자식은 부모 형제를 보고 싶어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끼리도 서로 간절히 보고 싶어 합니다.
이와같이 성도들도 예수님 안에서 서로 보고 싶어 하고, 서로 기도해주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들은 그런 사람은 꼴도 보기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기 싫어하면, 큰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시고, 성령 충만하시어 서로 보고 싶어 하고, 떨어지면 서로 기도해주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성령님이 충만한 우리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reason, brethren, in all our distress and affliction we were comforted about you through your faith;
이러므로 형제들아--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διὰ τοῦτο παρεκλήθημεν, ἀδελφοί, ἐφ’ ὑμῖν
because of this we were encouraged, brothers, as to you
직역하면 ‘형제들아, 이 때문에 우리가 너희에게서 위로를 받았노라’는 뜻입니다.
‘위로를 받았노라’(παρεκλήθημεν)은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 were encouraged) 과거에 크게 위로받은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ἐπὶ πάσῃ τῇ ἀνάγκῃ καὶ θλίψει ἡμῶν, διὰ τῆς ὑμῶν πίστεως,
in all the necessity and affliction of us, through the your faith
직역하면 ‘우리의 모든 궁핍과 환난 중에서 너희 믿음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1. 7-9절에서는, 디모데가 전하는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을 들은 바울 사도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까?>란 내용은 참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2.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바울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때는 고린도에서 52년 초에 썼기 때문에, 아직 실라가 빌립보 교회로부터 선교 헌금을 가져오기 전이므로, 육신적으로는 <궁핍과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환난’이란 사도행전 18장에 나타난 대로, 고린도에 있는 불신 유대인들이 바울을 심하게 핍박하면서, 나중에는 총독 갈리오에게 사회사범으로 처형시켜달라고 고소한 것을 가리킵니다.
3. 이러므로 형제들아--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1) 바울이 고린도에서 육신적으로는 이렇게 궁핍과 환난을 당하고 있었지만, 디모데를 통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굳센 믿음과 바울에 대한 사랑의 소식을 듣고, 바울은 “이제는 우리가 살리라”는 기쁜 탄성을 질렀습니다.
(2)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굳센 믿음의 소식 듣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자녀를 군대나 해외에 멀리 떠나보낸 부모는 자녀가 잘 있다는 소식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듣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복음 전도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고, 굳건한 열매로 교회가 계속 서 있는 모습이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가정도 버리고, 출세도 버리고, 복음 전도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만일 전도하여 세워놓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유대인의 핍박으로 사라져버렸다면, 바울은 얼마나 낙심하고, 실망했겠습니까?
아마 복음 전도가 실패했다면, 죽고 싶고 더 이상 전도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은 지 한두 달밖에 안 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유대인과 동족의 핍박을 이겨내면서 바울이 전한 복음 안에서 신앙생활을 굳게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크게 감사하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한 마디로 ‘이제는 우리가 살리라’고 했습니다. (다음절)
8절.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now we really live, if you stand firm in the Lord.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ὅτι νῦν ζῶμεν ἐὰν ὑμεῖς στήκετε ἐν Κυρίῳ.
for now we live, if you you are standing firm in Lord
직역하면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서 있으면, 이제 우리가 살리라’는 뜻입니다.
이 문장에서 ‘너희’(ὑμεῖς: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선즉’(στήκε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are standing) 지금 계속 굳게 서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살리라’(ζῶμεν)도 현재형으로서 ‘우리가 계속 마음 놓고 살겠다’는 뜻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1)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이란 말씀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유대인과 동족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주 안에 즉 바울이 전한 복음 신앙 안에 굳게 서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단체나 정당에서 그 지도자가 도망을 가거나, 감옥에 가면, 그 단체나 정당은 뿔뿔히 헤어져서 해산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 사도가 유대인의 핍박을 피해서 도망을 갔는데도, 유대인과 동족의 핍박을 이겨내면서 굳센 신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은 믿은 지 한두 달밖에 안 되었는데도, 이런 굳센 신앙에 서 있는 것은 정말 놀라운 위대한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전도자 바울은 유대인의 핍박을 피해서 도망갔는데도 불구하고, 믿은 지 한두 달밖에 안 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유대인과 동족의 핍박을 이기고 주안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실로 기적같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굳센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한 마디로 ‘이제는 우리가 살리라’고 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어떤 청년(김**)이 어떤 처녀(김*옥)와 연애를 할 때, 처녀 부모 형제가 심한 반대를 해서, 두 남녀가 더 이상 연애를 계속할 수 없었는데도, 그 처녀가 부모 형제의 반대를 무릅쓰고, 청년을 따라 살기로 결심했을 때, 그 청년이 ‘이제는 살리라’고 고백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청년과 처녀는 부모의 반대에도 같이 살기로 결심하고, 부엌도 없는 문간방 하나를 월세로 얻어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이 청년 남녀는 어렵사리 신학 공부를 하고, 군목이 되고, 자녀를 삼 남매 낳고, 훌륭한 가정을 이룩했습니다.
결국 양가 부모님이 이 목사님 내외를 통해서 믿음을 갖고, 이 목사님 내외의 품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부모 형제가 결혼을 반대하더라도, 당사자가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이제는 살겠다’는 위로와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반대한다고 해서, 당사자의 마음이 흔들리면, 상대방은 절망하게 되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목숨의 위험을 느끼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전도하고, 교회를 설립했는데, 믿은 지 한두 달밖에 안 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유대인들과 동족들의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신앙을 굳게 잘 지킴으로, 바울은 ‘이제는 우리가 살리라’는 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를 잃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늘 전진해 가시는 성도님들과 우리 교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9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hat thanks can we render to God for you, in return for all the joy with which we rejoice before our God on your account,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τίνα γὰρ εὐχαριστίαν δυνάμεθα τῷ Θεῷ ἀνταποδοῦναι περὶ ὑμῶν,
what for thanksgiving are we able to God to give concerning you,
직역하면 ‘우리가 너희에 대해서 어떤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란 뜻입니다.
‘드릴 수 있을까’(δυνάμεθα---ἀνταποδοῦναι)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형으로서(we are able) 계속 드릴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뒤의 동사(ἀνταποδοῦ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로서(to give) 단호하고 확실하게 드리는 것을 가리키며, 원형(ἀνταποδίδωμι)은 ‘동등하게 돌려주다, 보상하다’(give back as an equivalent, recompense)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확실하게 계속 보답할 수 있을까?’라는 뜻입니다.
우리가--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ἐπὶ πάσῃ τῇ χαρᾷ ᾗ χαίρομεν δι’ ὑμᾶς
in return for all the joy that we rejoice because of you
직역하면 ‘우리가 너희 때문에 그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그 보답으로’ (하나님께 어떻게 보답할까)라는 뜻입니다.
‘기뻐하니’(χαίρ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rejoice) 현재 바울이 계속 기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ἔμπροσθεν τοῦ Θεοῦ ἡμῶν,
before the God of us
1.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모든 기쁨’이란 근심 걱정이 없는 절대적인 기쁨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서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을 듣기 전에는 근심 걱정으로 염려했고, 고린도에서 당하고 있는 ‘궁핍과 환난’(3:7)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와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핍박 속에서도 주 안에 굳게 서서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자, 모든 염려와 궁핍과 환난을 다 잊어버리고, 절대적인 기쁨을 가지고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2.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들은 복음 안에서 핍박 속에서도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너무도 기쁜 소식을 듣고, 자신이 어떻게 보답할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목회적 헌신과 열정을 갖게 되는 것은 이처럼 성도들이 말씀에 따라서, 굳센 신앙을 갖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녀들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굳건히 잘 자라주는 것을 볼 때, 부모의 심정은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자녀를 위해서 희생할 각오를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굳건한 믿음으로 늘 전진하셔서, 목회자와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새 힘을 얻고, 헌신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성도님들과 교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0절. 바울이 다시 가게 되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부족한 부분을 더욱 온전케 하여 주고자 한다는 내용입니다.
10절.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s we night and day keep praying most earnestly that we may see your face, and may complete what is lacking in your faith?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νυκτὸς καὶ ἡμέρας, ὑπερεκπερισσοῦ δεόμενοι
night and day, exceedingly imploring
‘간구함은’(δεόμενοι)은 동사로서 현재분사(imploring)이므로, 계속 간구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δέομαι)은 ‘요청하다, 간구하다, 기도하다’(request, beg, pray)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밤낮으로 간청하는 기도를 게속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 얼굴을 보고
εἰς τὸ ἰδεῖν ὑμῶν τὸ πρόσωπον
for the to see your the face
‘보고’(ἰδ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to see)로서 단호하고 확실하게 보는 것을 가리키며, 앞의 동사(간구하다: δεόμενοι)와 연결되어 ‘확실히 보는 것을 계속 간청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καὶ καταρτίσαι τὰ ὑστερήματα τῆς πίστεως ὑμῶν;
and to supply the things lacking in the faith of you
‘보충하게 하려’(καταρτίσαι)도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upply) 확실하고 단호하게 보충하는 것을 가리키고, 역시 앞의 동사(δεόμενοι)와 연결되어 ‘(너희의 부족한 점을) 확실히 보충해주려고 간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바울 사도는 핍박 때문에 뒤에 두고 도망 온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서 밤낮으로 심하게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간구했습니다.
정말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바울의 성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경험에 따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살전 5:17)
2.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1) 너희 얼굴을 보고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즉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전도하고 (행 18장), 에베소에서 3년간 전도한 후이기 때문에(행 19장) 최소한 5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수납하려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행 20:1-4)
사도행전 20:1-4.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2)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아무리 훌륭한 신자라도 이 세상에서는 결함이 다 있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은 지 불과 한두 달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행 17:1-3),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즉,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신앙적 결함은 ① 4장 2-11절에 말씀한 대로, 도덕적 결함도 있었고, ② 4장 13절에 말씀한 대로, 재림신앙에 대한 교리적 결함도 있었습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늘 은혜로 고쳐가는 것이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사랑으로 성도들의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주고 올바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바울 사도처럼, 훌륭한 사도도 부족한 점들이 있었는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 사도에 대해서 시험받지 않고, 좋은 점만 생각하는 훌륭한 성도들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굳건한 신앙생활을 하니까, 바울 사도는 이제는 우리가 살리라고 환성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목회적 헌신을 다시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감사가 바탕으로 잘 형성되었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두려움 없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부족한 점을 책망하고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과 핍박 중에서라도 주 안에 굳게 서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이 더욱 성장하고, 주님께 큰 칭찬과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