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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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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인과 자리를 잡았다. 어디선가 파랑새가 날아와 꽃이 만발한 화원으로 안내할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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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기다렸던 봄꽃의 화원 풍도로 떠난다. 공용주차장에는 벌써 차가 꽉 찼다. 환승주차장은 붐비고 마침 의자 자리가 비어서 자리에 앉았더니 옆에 앉은 젊은 여인이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풍도라고 하니 감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바람꽃을 보러 간다고 했다. 그래도 딱히 느낌이 오지 않는 눈치이다.
바람꽃이 영어로 아네모네라고 하니 그제야 “아~”하면서 웃는다. “영어를 잘 아시나 봐요!” 하니 일행과 함께 모두가 웃음이 빵 터졌다.
낯선 전화가 왔다. 오늘 산행을 알려준 세다이가 연락을 준 여인이다. 대합실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서 출발했다.
#좋은글 #산행 #자유 #산행후기
(인터넷 사진)
버스는 휴게소를 들리지 않고 이내 서산 삼길포항에 도착했다. 버스를 내리니 안개가 자욱하고 주차장과 거리에는 승용차로 꽉 찼다. 낚시를 온 사람들이다.
삼길포항은 아주 옛날에 소난지도로 제트스키를 타러 갈 때 왔었던 기억이 있다. 자그마한 포구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굉장하다.
여객선은 당초에 9시 반에 출발하기로 했었는데 안개로 출항이 한 시간 늦어진다고 한다. 일행 중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여기저기 기웃하다가 버스 탈 때 전화를 한 여인과 그의 지인과 일행이 되어서 항구를 배회했다.
어느 여인이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바라보며 자기는 안개 낀 항구가 좋단다.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안개 낀 항구를 좋아하는 여인이 나는 좋다고 했다. 모두가 웃는다.
그렇게 시간은 됐고 배가 출항을 한다고 한다. 배는 정기 여객선이 아니라 유람선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둘이 함께 온 어느 낯선 스마트한 여인이 뒤돌아보면서 뒤에 있는 동상이 무슨 물고기냐고 묻는다. 우럭이라고 답을 하니 “거봐 맞지”하면서 서로가 확인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일행이 되었다.
여객선은 이 층 구조로 되어 있다. 일 층은 의자로 되어 있고 이 층은 바닥이다. 설계는 온돌로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등받이가 없는 이동용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창가로 쪼르륵 앉았다. 안개가 한 100m 앞에서 시선을 막는다. 섬들이 보이는 풍경이 좋은데 아쉽다고 한다. 빨강 파랑 노랑 깃발이 달린 부표의 그물 주인이 다르다고 얘기하고 바다의 깊이를 물어봐서 서해는 약 평균이 44m라고 하니 우럭의 두 여인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는다.
옆에 한 여인은 44m 바다가 엄청 깊단다. 동해는 2,000m도 넘는다고 하니 그렇게 깊냐고 한다.
서해는 12,000년 전까지만 해도 초록의 풀이 무성한 평원이었다고 한다. 노루 사슴이 뛰놀고 우리 조상님들이 사냥하던 곳이다. 조상님들께 인사하자고 했다.
그렇게 안개를 뚫고 풍도 항구에 도착했다. 집들이 몇 채 있는 작은 항구이다. 은행나무가 있는 골목길로 올라간다. 길가에는 막 새순을 올리는 초록의 파들이 싱그럽다.
이것은 쪽파 저것은 양파 대파 마늘 부추를 맞추며 올라가면 엄나무밭이 있고 두릅 밭이 있다. 그 끝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나타나고 여기부터 야생화 군락지다.
(풍도 항구 도착)
저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노란 복수초꽃이 있고 길가 덤불 속에 하얀 꽃이 보인다. 꿩의 바람꽃이다.
어느 아줌마 할머니가 나는 군락인 줄 알았는데 저거냐고 실망하는 눈치이다. 아마도 그 여인은 유채꽃처럼 바람꽃이 한밭 가득 있는 것으로 기대했었나 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복수초꽃이 눈에 확 들어오고 사람들이 사진을 담느라 바쁘다. 이곳 복수초꽃은 꽃송이가 크고 시절이 지나서 그런지 꽃잎 끝이 하얗게 변색이 된 꽃이 있다. 꽃철이 조금 지난 느낌이다.
(현호색)
(추위에 움츠린 노루귀)
밤새 추위에 움츠렸던 꽃잎을 아직 활짝 펴지 못하고 돌돌 말려 있는 꿩의바람꽃 노루귀가 눈에 들어온다. 초라하다. 실망의 눈길이 여기저기 보인다.
변산바람꽃 아니 풍도바람꽃을 찾아보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노루귀가 가끔 보여서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풍도바람꽃은 이미 졌고 지고 있었다. 아직 지지 못하고 있는 꽃을 찾아 헤맨다.
노란 복수초를 담았다. 이를 보고 우럭 여인이 갤럭시는 되는데 자기는 아이폰이어서 안 된다고 하면서 아쉬워한다. 그러면 갤럭시를 쓸 것이지!
아이폰이라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꽃에 핸드폰을 바짝 갖다 대서 안 되는 것이다. 카메라가 초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꽃에서 멀리 떨어뜨리고 초점을 맞추고 렌즈로 확대해서 담으면 된다. 우럭 여인의 핸드폰으로 그리 찍어주니 좋단다.
과수원 같은 밭에 허술한 담장이 둘려 있고 그 안 관리하지 않은 나무 아래에 하얀 바람꽃이 한가득 피었다. 가까이 가보고 싶지만 가까이 갈 수 없는 여인과 같은 꽃이다. 그것도 순백이다.
풍도바람꽃을 찾았지마는 꽃잎은 졌고 그나마 있는 꽃잎도 해묵은 창호지처럼 퇴색했다. 오는 것이라곤 아쉬움뿐이다. 일행은 점점 사라지고 우럭 여인도 보이지 않는다. 홀로 남았다.
(풍도바람꽃)
(추위에 움츠려 있는 꿩의바람꽃)
(복수초)
(노루귀)
이곳이 야생화 군락지라고 지도에 나와 있어서 이곳에만 야생화가 있는 줄 알고는 더 보고 싶어서 곳곳을 찾아다녔다. 우리 일행은 다 떠나고 낯선 일행이 올라왔다.
경사진 평원에는 노란 복수초꽃으로 가득하다. 찾는 노루귀와 바람꽃은 귀하다.
노란 복수초꽃이 한 송이 피었을 때 만남은 황금빛 황홀함으로 소중한 꽃이었는데 수없이 펼쳐진 복수초꽃은 그냥 노랑 그림물감으로 들어온다. 왜 이럴까? 더 많은 황홀함으로 받아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아쉬워도 미련이 남아도 길을 떠나야 하기에 정상으로 올라갔다. 이게 뭐래! 야생화 군락지에만 있을 줄 알았던 복수초꽃이 산기슭에 가득하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헬기장이 있다. 섬 주민 응급구조 헬기장이라고 안내판이 있다. 여기에서 홀로 앉아 풍도바람꽃에 바람맞고 바람떡으로 점심을 먹었다. 헬기장 한쪽 경사면에서 무엇인가 캐고 있는 여인들이 있어서 다가가 보니 달래를 한 움큼씩 캤고 캐고 있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한마디 했다. “저~ 여기 달래 내가 작년에 심어 놓은 건데!” 하니 땅만 보고 달래를 캐던 여인들이 머리를 든다. 한 여인이 “아저씨가 관리하는 거여요!”한다. 내가 웃으니 그제야 우스갯소리인 줄 알고는 “네”하고는 계속 캔다.
(달래 캐는 여인)
경사면을 내려서니 대극이 초록으로 한가득 이다. 대극은 그 꽃받침이 마치 입술처럼 생겼다. 앙증맞고 특이하다. 대극은 새싹이 올라올 때 빨간 것이 예쁘다. 그 올라오는 새싹을 보지 못해서 또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내려오니 한 여인이 커다란 카메라를 손에 잡고 엎어져 있다. 뭔가 있다 싶어서 보니 노루귀이다. 저 너머 화원에서 그리 찾았어도 눈에 잘 띄지 않던 노루귀가 한가득 이다.
거기다가 날씨가 풀려 꽃잎도 가슴을 활짝 열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있나! 우리는 더 많은 만남을 위해 그 모습 그대로 집에 함께 가기로 했다.
(대극)
내려오는 길에 바위를 만났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A 코스인 산책길이고 왼쪽으로 산길인 B 코스이다. 나는 B 코스로 방향을 잡았다. 산책길을 조금 벗어나면 북배전망대 바위전망대이다.
북배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이곳은 섬의 북쪽이 아니고 서쪽이다. 그리고 저 위쪽에 진배라는 또 다른 지명도 있다. 그러면 북배의 북은 북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 한국말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북처럼 나와 있다는 말이다. 북의 의미도 불룩 나와 있다는 말이다. 배도 불룩 나와 있다는 말이다. 북배란 북처럼 불룩 나와 있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진배”는 또 뭘까? 아마도 “긴배”이었을 것이다. 길게 배처럼 나와 있는 것을 말한다.
이곳은 바다와 땅이 너무 사랑하는 곳이다. 서로가 너무 그리워 안고 또 안다 보니 몸이 빨갛게 드러난 곳이다. 너무 멋져서 너무 사랑이 깊어서 다 보여주기 싫어서 바다가 안개로 가리 운다.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리면 어쩌면 허망함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오랜 사랑을 하라고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겨준다.
동행인을 소리쳐 찾아보니 두 남녀가 있는데 자신들은 연세 때문에 A 코스 산책길로 간다고 한다. 나는 홀로 B 코스로 접어들었다. 오늘따라 사랑 찾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파도 소리도 저 벼랑 아래 있어서 들려오지 않고 적막 속에 옅은 안개를 뚫고 내려오는 햇살을 받으며 걷는데 여기서도 노루귀가 반긴다.
찾아도 없던 노루귀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삶이란 그런가 보다. 없어서 찾을 땐 그렇게 귀하더니 찾고 나면 흔하게 되는 것 말이다.
(남산제비꽃)
언덕을 오르고 더 가파른 산기슭 계단을 숨을 헐떡이며 올랐다. 한 쌍의 연인이 길가에 있는 벤치용 탁자에 앉았다. 좋은 일을 하라고 얼른 서둘러 지나갔다.
이곳은 대극 보호구역이다. 초록의 대극이 산기슭을 덮었다. 여기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평평한 길이다. 풀숲에 하얀 꿩의바람꽃이 보여서 들어갔다. 나오는 길은 가시덤불이다.
마을 도로로 접어드니 장닭이 보인다. 가까이 가니 암탉 몇 마리가 모래 목욕을 하고 있다. 장닭이 가까이 오지 말라고 째려본다. 그래 나는 관심이 없으니 네가 다 차지해라!
건너 산기슭에도 꿩의바람꽃과 노루귀가 한가득 이다. 우산나물도 머리를 들어 올렸다.
(개별꽃)
(우산나물)
(노루귀 잎과 노루귀 꽃)
항구로 와서 배를 타고 삼길포로 돌아왔다. 버스가 출발하려면 한 시간 반이 남았다. 그동안 자유시간이라고 각자 음식점을 찾아갔다. 전화 여인이 칼국숫집에 가자고 한다.
칼국수를 자신이 산다고 한다. 이 나이에 여인이 칼국수를 사주다니 아직 괜찮은가 보다. 그것보다는 여인이 종속적이지 않고 자주적인 멋진 여인이다.
칼국수를 먹고 바다가 보이는 이 층 커피솝에 가서 커피와 차를 샀다.
AI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 얘기도 했다. AI 시대는 노동자에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직업이 실직할 예정이다. AI 시대에 사는 방법으로 일부 금융투자가 대두된다. 어차피 돈은 회사가 버니 말이다.
자연히 상법개정도 얘기했다. 상법개정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가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 단어인데 그 파장은 크다.
우리나라의 기업은 그동안 잘 나가는 사업은 잘라서 대주주가 갖던가 자식 손주에게 나눠줬다. 전체 주주의 돈을 개인이 착취한 것이다. 미국 같으면 무기징역감이다.
이것을 앞으로는 못하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여럿이 있다. 상법개정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상법개정을 이제 이해했다고 한다.
바다의 풍경이 좋은데 버스 시간 때문에 테이크아웃을 해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졸다 보니 어느덧 다 왔다. 일찍 도착했고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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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보고 싶은 분만 보시길
나(우리)라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겨왔는지
어떻게 다른 지를 추적하고 추정해 본 글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으니 의견이 다르다면 자신의 생각대로 하시고 의견을 말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단군왕검의 할머니의 할머니 신상, 인터넷 사진)
언년이의 볼록한 젖가슴에서 나오는 하얀 젖의 성분은 어떨까? 오늘 나의 모습을 만든 비밀은 무엇일까? 다른 인종과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다.
서해초원(서해바다)이 우리들의 조상이 살던 땅이란다. 오늘 그 초원(바다)을 바라보면서 조상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프리카 동부의 열대우림이 약 500만 년 전에 기후변화로 초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나무 위에서 주로 나뭇잎을 먹으며 어쩌다 열매를 먹던 인류의 조상은 초원으로 내려와야 했다. 나무에 살면서 앞발이 손으로 바뀌었다.
초원은 나무 위에서 살던 인류의 조상이 살기에는 험난했다. 우선 네 발로 걸으면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인류 조상의 눈은 배와 일직선으로 네 발로 걸으면 땅만 보였다.
(인터넷 사진)
어쩔 수 없이 두 발로 서야 했고 두 발로 서도 1m 남짓한 인간은 커다란 풀숲에서 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인류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선 인간)는 약 8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네안데르탈인 북경원인 자바원인 등이다. 이들은 환경과 먹이에 따라서 생긴 모양이 달라졌다고 한다.
풀뿌리는 즐겨 먹던 인종은 어금니가 소처럼 발달 됐고, 사냥을 잘 해서 주로 육식을 한 네안데르탈인은 사람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한다.
(인터넷 사진)
인류는 나무 위에서 맛나게 나뭇잎을 먹던 초식에서 살기 위해 어떤 것이든 먹어야 하는 잡식으로 바뀌었다.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턱 근육을 덜 사용하게 됐고 그러면서 뇌가 커졌다고 한다.
고기라고 해서 사슴고기가 아니다. 메뚜기 등 곤충을 먹고 쥐를 잡아먹고 육식동물이 먹다 남긴 것을 주워 먹고 했단다.
나중에 밤에 사냥하는 사자 같은 육식동물을 피해 낯에 큰 동물을 사냥하면서 오래 달리다 보니 열을 빨리 식히기 위해 몸에서 털이 빠지고 피부가 자외선을 막기 위해서 까맣게 되었다고 한다. 불을 사용하면서 뇌가 더 커졌다고 한다.
사냥하는 데 인간의 유일한 신체의 장점은 오래달리기였다. 동물은 오래 달리면 몸에 젖산이 쌓여서 뛰지 못하고 멈춘다.
사람의 몸은 어느 구석 하나 사냥하기에 좋은 것이 없다. 그래서 사냥감과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돌팔매질하다가 나중에는 돌도끼 더 나가서 돌창을 만들어서 멀리서 투척했다.
이 돌창은 획기적인 도구이다. 오늘날로 치면 미사일과도 같다. 드디어 인간이 호머 에렉투스에서 호머 사피엔스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호머 에렉투스(선 인간)에서 호머 사피엔스(도구 인간)가 된 인류의 조상은 약 13만 년 전부터 동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시작해서 약 6만 년 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먼저 탈출한 인류는 대부분 죽고 약 6~7만 년 전에 탈출한 인류가 사우디를 거쳐 일부는 유럽으로 가고 일부는 인도를 거쳐 남아시아 순다랜드를 거쳐 필리핀 대만을 거쳐 서해초원(서해바다)에 도착한 사람이 우리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빙하기로 필리핀 대만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고 서해 바다는 육지였다. 우리는 해안을 따라 왔고 육지로 올라간 사람은 중국인이 됐다.
(4만년 전 서해초원, 인터넷 사진)
약 4만 전년에서 3만 5천 년 전에 서해초원(서해바다)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을 한다. 지금 제주도 주변 바다일 것으로 추정을 한다. 처음엔 주로 바다를 낀 초원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을 한다.
날씨가 풀리면서 만주초원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잘살고 있었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고 한다. 약 2만 5천 년 전후의 일이다. 대부분이 남하하고 일부는 얼어 죽고 그중에 살아남은 몇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땅을 파고 움막을 짓고 사냥을 하며 살았다. 이들이 우리 조상의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인터넷 사진)
추위에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늘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옷을 입은 것은 약 10~7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처음에는 그냥 걸치는 가죽이었다. 세밀한 바느질을 한 것은 이때로 본다. 바지는 우리가 먼저 만들어 입었다. 바지는 선비족을 통해 나중에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우리가 사는 게 우리의 의지로 사는 줄 아는데 사실 호르몬이 알아서 조절하며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호르몬을 만드는 것 중에 비타민 D가 있는데 이는 사람의 골격을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뼈대를 관장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먹이로 섭취가 가능한 데 이 비타민 D는 사람의 피부에서 만들어진다. 아프리카에서는 이 비타민 D를 만드는 것보다 자외선을 막아서 피부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 피부에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서 피부가 까맣게 되었다.
그런데 북쪽으로 가면 자외선이 적고 햇빛도 적어서 까만 피부로는 비타민 D를 만들 수 없어서 멜라닌 색소를 버리고 하얀 피부가 되었다고 한다. 햇볕을 적게 쬐면서 행복 호르몬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혹독한 추위에 아이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면 햇빛을 못 봐서 비타민 D를 만들 수 없는 아이는 죽어야 한다. 이를 극복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났다.
어느 여인 언년이의 모유에서 비타민 D가 공급된 것이다. 언년이의 모유에서 비타민 D가 나오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아이가 이를 먹고 살아남았다.
에스키모인은 우리보다 더 북쪽에 산다. 우리보다 피부가 더 하야야 하지마는 우리보다 피부가 검다고 한다. 이유는 먹는 음식인 해양동물에는 비타민 D가 풍부해서 그렇다고 한다.
(삽니, 인터넷 사진)
이 비타민 D를 공급하는 기적 같은 모유의 유전자 변이는 앞니와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우리의 앞니는 다른 인종과 달리 안으로 푹 들어가 있다. 삽처럼 생겨서 삽니라고 한다. 손가락을 앞니 뒤로 넣어서 확인해 봐라. 삽니가 아니면 다른 인종이다.
이 유전자는 행복 호르몬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행복 호르몬 아난다마이드가 적게 분비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덜 행복하다. 돈을 왕창 벌어도 별로 행복하지가 않고 더 벌어야 행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욕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이 유전자 영향이 크다.
사람의 귀지는 촉촉하게 젖어있는 습식이 기본값이라고 한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인류가 습식이다. 한국 사람과 같은 인종만이 건식이다. 추운 곳에서 귀가 물기가 있어서 어는 것보다는 뽀송뽀송 말라서 있는 것이 생존하기가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유럽은 하고 물을 수도 있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도 그렇고 유럽이 우리나라보다 더 북쪽에 있지마는 덜 춥다. 멕시코 만류의 따뜻한 해류 때문에 그렇다. 햇볕은 덜 쬐는데 온도는 더 높다. 거기에 맞게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인터넷 사진)
이 건식 귀지의 유전자는 사람의 체취와도 연결되어 있다. 체취는 땀샘의 일종인 아포크린샘에서 나는데 이 유전자는 A형(건식)과 G형(습식)이 있는데 한국인은 AA형인 ABCC11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포크린샘이 거의 없는 것이다.
성호르몬에 의해서 촉진되기도 한단다. 샘에서 나올 때는 냄새가 없으나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우리는 건식 귀지를 갖는 대신에 체취를 잃어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 체취가 없는 관계로 한국은 향수가 발달하지 못했다.
동물에게서 체취는 기본값이고 중요한 의사전달 수단이다. 고양잇과는 뺨에 있는 취선의 체취로 의사전달을 한다. 서로 뺨을 비비는 것이 이 체취를 서로에게 바르는 것이다.
미국에서 실험했다. 남녀 각각 20명을 모아 놓고 향수를 뿌리지 말라고 했다. 함께 모여서 모임을 하고 남녀에게 각각 호감이 가는 사람을 적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한쪽의 입던 옷을 늘어놓고 고르라고 하니 자신이 호감을 느꼈던 사람의 옷을 고르는 것이었다. 체취이다. 상대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를 고르는 기본값은 체취이다. 동족을 찾는 것이다.
각각 호감이 가는 체취가 다르다. 좋아하는 체취의 사람을 만나면 잘 이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향수가 이것을 방해하고 있다.
체취가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데 비호감이 문제이다.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살 때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되었는데 다른 인종이 섞여 살다 보니 체취가 문제이다. 한국 사람은 체취가 없다. 체취가 있는 사람은 약 0.006% 정도 된다고 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화장품 가게에 와서 놀라는 것이 이 체취 탈취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화장품을 잘 만드는 나라에서 말이다.
요즘 일부의 사람들이 서양의 향수를 진하게 쓰는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에게는 유전적으로 거부감이 강하다. 다시 말해서 비싼 향수 뿌리고 욕먹는 것이다. 한국인은 냄새가 없는 것이 기본값이고 이에 적응되어 있다. 먹는 음식에 따라서 외국인에게 약간의 냄새가 나기는 한다.
(인터넷 사진)
추우니까 열을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려고 피부의 진피층이 두꺼워졌다. 진피층은 살갗 바로 아래 있는 피부이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콜라젠이 있는 피부이다.
이 진피층이 두꺼워서 우리나라 사람의 피부가 탱탱하다. 피부가 늦게 늙고 젊게 유지되는 것이다. 나이에 비해서 주름이 없다는 것이다. 서양인은 이 진피층이 얇다. 20대만 지나면 피부가 늙는다.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백인은 어릴 때만 이쁜 이유이다.
(인터넷 사진)
너무 추워서 코가 튀어나와 있으면 동상에 걸린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광대뼈가 튀어나오면서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혹독한 바람과 추위에 열을 덜 빼앗기려고 눈꺼풀이 두꺼워지고 눈 구멍이 가늘고 좁게 되었다.이것이 간빙기 추위에 변한 우리 민족의 특성이다.
(인터넷 사진)
2만 3천 년 전에 서해바다는 초원이었고 일본과 육지로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우리와 같이 살던 사람 중에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원주민이 되었다. 약 2만 3천 년 전에 우리와 헤어진 것이다. 일본이 말하는 키가 작은 조몬인이다. 지금은 그 원주민이 거의 없다.
날씨가 따뜻해 지면서 서해초원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초원은 다시 서해 바다로 변했고 사람들은 다시 만주로 올라갔다고 한다. 일본 조몬인과 이때 헤어졌다.
약 8,000년 전이 가장 따뜻했다. 이때는 바다가 만주초원까지 올라갔고 태풍도 만주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내몽골 사막이 비도 자주 오고 따뜻해서 살기 좋은 땅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한반도는 산림지대로 초원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초원에서 살았다. 산림지대인 한반도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민족의 고향 홍산, 인터넷 사진)
이때 약 9,000년 전에 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 황하 문명보다도 훨씬 먼저이며 이를 우리는 홍산 문화 또는 그 이전 문화라고 한다.
약 8,000년 전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집단문화가 발생했고 언어가 통일되면서 우랄 알타이어가 여기서 발생하였다고 어느 서양학자는 말한다. 원시인의 언어는 동네마다 달랐는데 큰 집단이 되면 하나의 언어체제가 생긴다.
이들의 특징은 기장을 심었고, 메주콩을 심었고, 수렵했으며, 적석총 즉 돌로 무덤을 만들었다. 신라왕릉도 흙인 것 같으나 속은 돌무덤으로 되어 있다.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했으며, 비파형 동검을 사용했고, 곰을 숭배했다.
(기장, 인터넷 사진)
여기서 처음 농사를 지은 것은 기장이라는 곡물이다. 그래서 기장문화권이라고도 한다. 하얀 메주콩도 여기서 처음 농사를 지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된장 문화의 시작이다.
고대의 생업은 농업, 유목, 수렵, 어업으로 구분을 한다. 이들은 반 농업 반 수렵 생활을 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북방 유목민이라고 배웠는데 그렇지 않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봐도 어디에도 유목 생활을 하는 것은 없다. 수렵하는 사람들이다. 기마민족설은 가짜이다. 유목민은 아니지마는 수렵을 하면서 말은 탔다. 우리는 몽골에서 내려온 기마민족이 아니다.
(수렵도, 인터넷 사진)
이들은 약 5,000년간 따뜻한 기후로 문화를 꽃피우면서 여기에서 잘 살았는데 약 4,800년 전에 극심한 추위가 찾아왔다고 한다. 기후변화가 또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흩어졌다. 서쪽으로 간 사람이 몽골족과 선비족과 튀르키예족이 된 것이다. 선비족은 중국에 복속되면서 없어졌다. 북쪽으로 가서 이누이트 등이 됐다.
같은 동물일 경우 북쪽으로 갈수록 몸집이 더 커지고 키가 더 큰데 몽골족은 우리보다 작다. 이유는 작은 몽골 조랑말을 타고 사는데 상체가 크면 말에서 떨어져 죽을 확률이 높다.
몽골 사람은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다리가 길고 상체가 작고 다부지게 생겼다. 결국, 우리보다 키가 작다. 유목은 몽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더 서쪽인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언어의 전파, 인터넷 사진)
더 서쪽으로 간 사람은 동진해 오는 백인과 만나는데 이 서쪽으로 간 홍산인이 백인의 남자는 죽이고 여자를 데리고 살았다. 그래서 외모는 서양인을 담고 언어는 동양말을 쓰는 인종이 탄생한 것이다.
후에 몽골이 또 피를 섞었다. 이게 되풀이되면서 점점 더 서양인을 닮고 말은 동양의 언어를 썼다. 남아메리카 인디언이 스페인어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
우랄 알타이어를 쓴다는 터키 사람은 동양인의 유전자가 약 10~15%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의 유전자가 각각 40%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언어는 동양 언어를 쓴다. 웃기는 민족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의 언어의 추억에는 동생은 동쪽으로 가고 형은 서쪽으로 갔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동쪽으로 간 사람이 우리나라라고 생각한다.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말이다.
(인터넷 사진)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단군께서 남하하시어 나라를 세우셨다. 한반도 평양이 아니라 만주 요하 지방이다. 4,300년 전이니 2차 추위가 찾아온 시기와 비슷한 시기이다.
환인(桓因)의 작은 아들 환웅이 내려왔다고 하는 데 이것도 일본인 역사학자가 조작한 것이다. 환인의 아들이 아니라 환국(桓國)의 아들이다.
여기 환(桓)이란 아마도 “큰”이란 뜻일 것이다. 또는 나라라는 뜻일 수도 있다. 큰 나라에서 와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은 단군 이전에도 이미 커다란 나라가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 고대언어는 우리 글자가 없어서 한자를 빌려 적었다. 적는 사람에 따라서 또는 시대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취향에 따라서 적어서 글자가 제각각이다.
(공주 고마나루 곰신)
우리말에
검=금=김=곰=군=간=칸=큰=한=환 이란 글자는 크다. 위대하다, 신, 왕이란 의미의 글자이다.
“한”은 큰 것이니 마을이 큰 것이 곧 나라이다. 변한, 마한, 진한, 대한이다.
고구려라는 말이 돌궐(투루키예) 비석에 맥크리로 나온다. 뭔 말인가 싶은데 이 말이 정확한 우리의 고대언어이다. 고구려는 한자로 적어 놓은 것이다.
그 의미를 살펴서 추정해 보면
ㅇ 맥(맏) + 크리(구리, 고을, 도시, 서울) => 맏이 고을 즉 제일 큰 고을이 있는 곳이다. 요즘 말로 서울이고 나라이다.
ㅇ 맏 : 맏이, 먼저, 머리, 우두머리, 산마루 등의 말로 높음, 처음, 먼저, 제일이라는 의미이다
고구려는 부족연맹체에서 출발했다. 제일 부족이 맥크리이면 두 번 세 번째는 무엇인가? “나(노)”이다. “나”들이 합쳐지면 “나나”이다. 즉 나라가 되는 것이다.
고대언어에 나라라는 말은 환, 구리, 한, 가락, 부여(벌, 부루), 나(라), 가야 등이 있다.
우리가 배우는 단군신화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역사를 신화로 조작한 것이다. 이 역사관은 경성제대 출신들에 의해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국 역사는 특히 고대사의 반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만들어 놓은 거짓말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얼마 전에 대통령이 일제 잔재 역사학자들에게 질문하는 모습이 나왔었다.
우리가 사는 땅은 매우 척박한 땅으로 충분한 곡식과 고기를 생산할 수 없었다. 방편으로 채소를 많이 먹으면서 상체가 길어졌다.
(인터넷 사진)
중국 산동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은 중국인이 되어 버렸고, 일본으로는 약 3,200년 전부터 농경문화를 가지고 건너가기 시작해서 주기적으로 건너갔다.
일본이 말하는 야요이인이다. 약 23,000년 전에 간 원시 일본인 조몬인과 섞이고 고기를 먹지 않아서 키가 작아졌다. 채소를 많이 먹던 사람이 채소를 적게 먹으면서 뻐드렁니가 됐다.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상대적으로 다리가 길다. 축구를 잘한다.
(인터넷 사진)
4,800년 전부터 약 500년 주기로 추위가 찾아왔다고 한다. 원인은 바다의 심층 해류의 변화 때문이라고 추정을 한다. 가장 최근의 추위는 1,600년대이다. 경신 대기근 때 약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약 7,000년 전부터 추위가 약 500년 주기로 올 때마다 남하한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 전에 살던 사람들은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볼 수 없다. 연천의 검은모루 구석기인은 우리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다른 인종이다. 호머 에렉투스(선 인간)이다.
일본은 23,000년 전의 구석기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구석기가 있었다고 대서특필하는 일이 있었는데 조작된 것이다.
한반도는 땅이 좁고 산악지대이고 계절의 변화가 심해서 농사짓기에 열악한 곳이다. 내가 초딩 때 모를 심기 위해서 한 달 동안 두레박으로 물을 펐던 기억이 있다. 물을 푸며 졸다가 우물에 빠지기도 했다. 다행히 우물에 물이 바닥이었다.
(인터넷 사진)
벼농사는 물을 끌어와야 하는 등의 어려움으로 혼자 지을 수 없고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도움을 받으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해서 싫어도 참여를 해야 한다.
도울 때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치껏 알아서 일을 찾아서 신속히 한다. 이게 과하면 오지랖이 된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행동이다. 목동은 혼자 있어도 된다. 계절을 놓치면 농사를 망치게 되어 계절에 맞게 빨리빨리 해야 했었다.
싫든 좋든 관계를 맺기 위해 웃어야 했고 돌아서서 욕을 하고 눈치껏 알아서 하고 빨리빨리 일해야 했다. 살기 위해서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호구조사를 한다.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말도 있다. 관계를 빨리 맺기 위해서다.
모심기는 타작은 날짜를 잡아서 돌아가면서 한다. 다른 집에 심을 때는 내가 일꾼이지만 내 집에 심을 때는 내가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에서 농사는 딱히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수행한다.
따라서 성격이 주인공 정신 즉 주체성이 강하다. 과거에는 내 집 모심을 때 내가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한턱 쏠 때 내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존중받기를 바란다. 주인공 대접을 잘 해 줘야 미음을 안 산다.
주인공과 대장은 다르다. 대장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마는 주인공은 환경에 따라서 바뀐다. 어떤 일에 주체가 되는 또는 주목을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우리의 마음은 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일본인은 자기 임무만 수행하면 된다.
(인터넷 사진)
우리의 농사는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누구나 대체할 수 있었다. 농사와 생활은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고 가족 전체가 참여해야 했다.
따라서 가족 속에 개인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개인은 묻히고 우리가 있다.
그래서 “나”라는 개념과 “우리”라는 개념이 헷갈리고 넘나들며 때론 동일시한다. 그 와중에도 언어적으로는 “나”본다는 “우리”가 앞선다. 예를 들어서 “우리 남편은”이란 말을 언어적으로 보면 함께 있는 여자들의 모두의 남편이 된다. 하지마는 “나”라는 말을 하는 여자의 남편이 된다. 서양 여자가 서양 언어로 “우리 남편은” 하고 말을 한다면 기겁할 일이다.
나는 남이 아니고 너이고 곧 우리이고 우리는 끈끈한 관계로 엮어있는 남이 될 수 없는 생명공동체인 가족란 의미일 것이다.
그 가족이란 우리를 확대하면 마을일 수도 있고, 회사일 수도 있고, 모임일 수도 있고, 나라일 수도 있다.
가족이 아프면 곧 내가 아픈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픈 일이 있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나선다. 우리는 모이면 가족처럼 구성하려는 특성이 있다. 언니 오빠 하면서 말이다.
가족은 다 따뜻하지 않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일본의 아버지는 나가서는 힘을 못 써도 집에 들어오면 깡패란다.
한국의 아버지는 일부를 빼놓고 대부분 다정다감하고 민주적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대부분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 한국은 민주적 가족 중심인데 일본은 자연재해와 전쟁에 공동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서 수직적 지역사회 중심이다.
일본의 질서는 압력과 폭력에 의해서 이루진 것이고 한국은 비교적 자발적이다. 한국인은 가족에게서 억울하게 소외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억울한 것을 못 참는다.
(인터넷 사진)
논은 발이 푹푹 빠진다. 이왕이면 발이 덜 빠지는 것이 힘이 덜 든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발바닥이 넓게 진화됐다. 발바닥이 넓은 것은 뛰는 데는 좋지 않다.
등산화는 서양에서 만들었다. 서양사람들은 한국 사람보다 발의 볼이 좁다. 따라서 등산화도 발의 폭이 좁게 만든다.
과거에 등산화를 새로 샀을 때 불편했다면 상당 부분이 이 이유이다. 한국회사가 만든 등산화는 이런 환경이 적용해서 편하다.
(인터넷 사진)
기록상 백제 시대부터 쇠젓가락을 사용했다고 한다. 위생상 최고인 이 쇠젓가락은 사용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그런데 이 쇠젓가락을 사용함으로써 소뇌와 전두엽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이 손기술이 공업화 과정에서 정밀 제품을 만드는데 최고의 공적을 세웠다고 한다. 한국 경제 발전의 원인은 바로 이 쇠젓가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인터넷 사진)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시었으나 광복 이후에 한글 교육이 시작되었다. 당시에 문맹률 78%에 이르렀다고 한다. 광복 후에 약 13년 만에 문맹률이 4%로 줄었다고 한다. 문맹 퇴치에 기적의 글자이다.
한글은 그냥 글자가 아니라 뇌의 시공간 감각을 발달시키는 글자라고 한다. 다른 글자는 그냥 소릿값을 기억해 내는 데 불과하다. 소리는 좌뇌만 작동하는데 한글은 글자 모양과 음운체계가 좌우 뇌를 동시에 자극한다고 한다.
그리고 컴퓨터 시대에 자판에 신속하게 입력을 할 수 있어서 소통이 매우 빠르고 정보전달이 정말 빠르다. 일본어와 한자는 입력하기 어렵다. 알파벳도 그리 쉽지 않다.
알파벳은 음가가 정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A”의 발음이 “에이” “어” “아” 등 여러 개이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정확한 것을 물을 때는 알파벳 한 글자씩 몇 번이고 되풀이 묻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떤 서양학자는 한국의 경제 발전의 원인 중에 한글을 꼽기도 해서 기사를 보고 놀랬던 적도 있다.
문제는 이 쇠젓가락과 한글이 한국인의 뇌를 자극해서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2026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뇌가 한국인으로 선정되었다. IQ 테스트에서 최고점이다.
(2026년도 IQ테스트 국제 순위, 인터넷 사진)
정리해 보면 수 만 년 변해온 우리의 모습은 이렇다.
1.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멜라닌 색소를 잃어서 피부가 하얘졌다. 일부 유럽인보다 우리의 피부가 더 하얗다. 피부가 하얗진 것은 좋은 데 행복 호르몬이 작게 나온다고 한다.
2. 추위를 견디려고 키와 몸집이 커졌다.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키다.
3. 모유에서 비타민 D가 나오고 이로 인해 앞니가 삽니가 되었고, 행복 호르몬인 아난다마이드가 적게 나온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아서 늘 불안해하고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늘 뭔가 더 가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 호르몬은 이것 말고도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이 있으니 이를 촉진하기 위해서 햇볕 쬐기, 운동하기, 스킨쉽 등을 하면 된다고 한다. 등산이 최고인 이유이다.
4. 귀지가 건식이고 이로 인해 체취가 안 생긴다. 향수를 안 써도 되어서 향수가 발달하지 못했다. 먹는 음식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약간 날수도 있다.
5. 추위를 견디기 위해 피부의 진피층이 두꺼워져서 피부 노화가 늦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 다른 인종에 비해 주름이 잘 안 생긴다. 철면피다.
6. 추위를 견디려고 광대뼈가 튀어나오면서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눈꺼풀이 두껍고 눈 구멍이 가늘고 좁다.
7. 척박한 땅에서 사느라 채소를 많이 먹으면서 상체가 길어졌다. 다리가 짧아서 달리기를 잘못한다.
8. 사계절이 순식간에 바뀌는 척박한 땅에서 협동으로 벼농사를 짓고 살다 보니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기 위해 싫든 좋든 관계를 맺기 위해 애를 썼고, 돌아서서 욕을 하고,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며 살았다.
관계를 중요시하며 판단과 일 처리가 빠르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서 하고, 때론 오지랖을 떤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관계를 빨리 맺기 위해 호구조사를 한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의 습성이 됐다.
9. 우리의 농사와 생활은 가족 단위로 했다. 개인보다는 가족이 우선이고 그러다 보니 나라는 개인보다는 우리가 먼저이다. 우리 일이면 내 일이 아니라도 나선다. 굶는 것은 참아도 억울한 것은 못 참는다.
10. 논은 발이 푹푹 빠진다. 우리 발바닥은 논에 덜 빠지게 진화되었다. 발바닥이 넓다는 것이다. 서양회사 등산화는 볼이 좁다. 한국산은 한국인의 발넓기를 고려해서 만들었다.
11. 쇠젓가락을 사용하면서 손의 감각과 조절능력이 탁월하다. 손으로 하는 정밀 공업, 골프, 수술, 반도체 등을 아주 잘 한다. 세계 최고수준이다.
12. 한글은 사용하면서 좌우 두뇌가 활성화되어 뇌가 좋아지고 컴퓨터 시대에 소통이 빠르다. 핸드폰에 매달려 산다.
이렇게 한국인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은 이것뿐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 정리가 안 된 특성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한국인의 특성을 볼 수 있는 당신은 행운이다. 일 년을 준비해서 요약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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